잠입 (4)
근육의 성큼성큼 움직이는 발걸음에 매달리듯 따라간 곳은 피트니스와 수영장이 같이 있는 곳이었다.
“3조는 본래 여자들만 들어가는 곳이거든... 여자들 가운데 타격조에 오는 신입이 없다 보니, 남자 신입이 들어가는 행운이 생겼다는 소리다.
“......”
“행운이라는 거지. 뭐 그렇다는 거다.”
“......”
“청일점이란 말이다. 기대되지 않냐? 응?”
“......”
“크하하하핫! 짜식- 쿨 한 척하기는.”
“......”
“뭐. 뭐야? 설마 너 부끄러워하는 거냐? 나이가 21살이라고 했으면 군대도 갔다 오지 않았겠네. 설마 동정이냐 엉?”
‘빌어먹을.’ 저절로 욕이 나왔다. 웅웅 거리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수다를 떨 줄이야. 장근태의 겉보기 얼굴은 늙었었는데.
21살이라니 만으로 스무 살이라는 소리였다. 허리디스크로 군대 면제 받고 푹 삭은 사람이나 방위산업체 근무요원으로 근무한 것처럼 보인 장근태가 파릇파릇한 21살이었다니...
“생긴 건 조숙하게 생겨서 아직도 동정이라니. 쯧- 남자는 말이다. 힘-그리고 여자-”
“......”
아-이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자동적으로 필터링이 되기 시작했다. 옆에서 떠는 근육남을 무시하고 피트니스 센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봤다. 1조와 3조 두 조가 운동을 하고 있었다. 새벽 5시에 운동이라. 대체 무슨 정신인지 모르겠다.
“야- 척인경이 신입 데려왔다. 이번에는 좀 살살 다뤄라 대체 몇 번째냐?”
신입이라는 말에 4쌍의 눈동자가 반응을 보였다. 운동을 하던 여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 다가왔다. 전부 여자였다. 근육이 농담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3조가 전부 여자였다니...
멀찍이 떨어져 있을 때는 전혀 몰랐었다. 가까이서 보자 여자들은 전부 훤칠한 키에 탄탄한 몸매를 가졌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타격조였다. 변종이나 빗치를 잡는 것은 제대로 훈련받은 성인 남성도 목숨을 걸 일이건만 여자라니...
“엉? 신입 그 표정은 뭐지? 설마 여자들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은가 보네?”
근육몬이 옆에서 거들었다. 그러고 보니 보안팀 지하실에 있던 테스토스테론도 주둥이로 옆사람들을 충동질 했었다.
“아닙니다. 타격조에 여자들만으로 구성된 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러니까 신입. 네 말은 여자들로 된 조라서 만만해 보인다는 거지?”
“그런 뜻이 아니라...”
“하긴 네 놈 실력이면 그럴 법도 하지.”
가까이 온 한 여자가 근육질에게 말했다.
“8조 조장. 그게 무슨 소리죠?”
“크하하하- 이놈이 이게 맹탕이 아니더라고. 어제 내가 된 통 당할 뻔 했다니까. 어이 신입 어제 했던 거 해봐. 팍-하고 굴러서 피한 거. 왜 여자들 앞이라서 쪽팔려?”
말 끝 마다 여자. 여자. 여자를 찾는 근육몬이었다. 그냥 주둥이를 확 꿰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여자들 생각은 달랐다. 처음에는 ‘훗 귀여운 놈.’이라고 하던 표정이 서서히 살벌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게 아닙니다.”
“왜? 여자들이 쳐다보니까 그냥 중심에 힘이 불끈 빳빳해져?”
여자들의 얼굴이 차갑게 식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대체 나한테 뭘 바라는데?’ 구석에서 수건으로 땀을 닦던 얼음미녀가 무표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진아-”
“네 조장!”
내 바로 앞까지 왔던 여자. 제일 처음 나에게 관심을 보였던 여자가 얼음공주에게 대답했다. 짧게 스포츠로 깎은 모습이 인상적인 여자였다.
“신입 솜씨 좀 봐라.”
“네. 들었지 이쪽으로 나와.”
“저... 전...”
이대로 가다가는 샌드백이 될 따름이었다. 샌드백이 된다면? 급속재생이 걸릴 가능성이 있었다. 팔다리가 부러지지 않더라도 눈이 퉁퉁 붓도록 때렸는데 몇 분 만에 멀쩡해 진다면?
‘젠장. 이겨야 하나?’
그것도 걸리지 않게 이겨야 했다. 제대로 훈련 받은 사람의 눈을 속이고 이길 수 있을까?
“오- 신입 여자랑은 싸우지 않겠다는 건가? 그렇지 남자가 갑빠가 있지 여자랑 어떻게...”
“닥치세요.”
얼음공주의 한 마디에 근육몬이 입을 합 다물었다.
“신입 글러브 껴. 헤드기어도.”
다른 여자들이 글러브와 헤드기어를 건네 줬다. 글러브도 핑거오픈타입이었다. 관절기도 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아니 체격차이를 보자면 관절기를 노릴 가능성도 있었다.
“미진아. 적당히.”
“네. 반응만 보죠.”
미진이라는 여자가 얼음공주에게 그렇게 대답하고는 입모양으로 나에게 말했다.
[똑바로 해. 제대로 못하면 꺾어버린...]
말을 끝내기 전, 탄환처럼 몸을 앞으로 뻗었다. 입모양으로 말을 하더라도 말을 하면서는 숨이 밖으로 나오는 법. 신경이 입에 집중된 그 순간 명치를 향해 주먹을 틀어박았다.
“커-윽-”
미진이 그대로 배를 부여잡고 새우처럼 몸을 꾸부렸다. 컥컥-숨을 쉬지 못하고 구부러진 미진을 보곤 주변이 사늘하게 식었다.
‘너무 강하게 친 건...’
차갑게 내려얼어붙은 공기를 깨뜨리는 것처럼 낮고 굵직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크하하하핫- 봤지? 봤지? 저거 저놈 물건이라니까! 내가 뭐라고 했어.”
“......”
“......”
“수연아.”
근육몬의 웃음소리에 무너진 분위기를 다시 얼리려는 것처럼 얼음공주가 수연이라는 여자를 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신입- 이리 나와.”
이대로 계속 간다면 위험했다. 지금도 아슬아슬했다. 더 강하게 쳤거나 느렸다면 걸렸을 것이다. 여기는 군대가 아니었다. 용병, 민간군사기업 (Private Military Company)이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끌려갈 필요가 없었다.
‘도박은 싫어하지만.’
오늘 하루를 날리는 것보다 낫다. 어차피 이곳에서 오래 있을 것도 아니고 필요한 것만 챙기면 바로 떠날 상황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짜증스러운 목소리 소리를 질렀다.
“에이-씨- 이게 뭡니까? 더러워서.”
헤드기어를 벗어 집어 던지고, 글러브를 내 팽개쳤다.
“소개시켜 준다고 하더니 처음부터 실력 좀 보자고 협박하지 않나. 이제는 돌아가면서 찔러보는 겁니까? 왜요? 속 시원히 때릴 때까지 계속 할 생각이요?”
“크하하하핫! 저놈 보게. 진짜 물건이네.”
“......”
“......”
“언제까지 이럴 겁니까? 거기 조장 마음에 들 때까지 구르란 말입니까?”
얼음공주가 무표정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보안팀에 있겠다고 한 사람을 불러오더니 공인 샌드백 만들 생각입니까? 오늘 개인 정비하라고 해놓고 말 바꾼 그 양반에게 좀 물어봐야겠군요. 이것도 타격조 전통인지. 빌어먹을...”
몸을 홱 돌려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벤치프레스에 걸터앉아 구경하던 근육몬이 벌떡 일어섰다.
“어? 어? 야? 너 미쳤어?”
“거기 서.”
근육몬의 당황한 목소리와 얼음공주의 차가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지만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심장이 욱신 짓눌렸다. 살기? 앞으로 데굴- 굴러 밖으로 내달렸다.
“뭐. 뭐야 저 새끼...”
“.......”
근육몬의 어이없다는 중얼거림과 대답 없는 서늘함을 무시하고 대장실로 향했다. 설마 새벽 5시 30분에 대장이 있을까? 싶었는데 있었다. 이 동네는 정상인이 없는 것 같았다.
막 의자에서 일어나려던 김갑수가 다시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무슨 일인가?”
“타격조 전통에 린치가 있습니까?”
“린치?”
김갑수의 얼굴에 그어진 흉터가 꿈틀거렸다.
“네.”
“자세히 말해봐.”
근육몬이 끌고 나간 것부터 3조에서 실력을 살피겠다고 차례차례 달라붙은 것까지 말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김갑수의 몸에서 열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린치다?”
“그럼 그게 린치가 아니면 뭔가요? 개인 정비 시간을...”
내 말을 자르는 것처럼 김갑수가 벌떡 일어나며 내 머리통을 그대로 책상위에 틀어박았다. 김갑수는 변종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움직임은... 변종보다는 느리지만 나와 비교를 해도... 반사적으로 김갑수의 움직임에 반응하려는 몸을 억지로 경직시키자 몸이 굳었다.
나무토막처럼 뻣뻣한 상태에서 머리통이 책상위에 틀어박히자 젓가락이 움직이는 것처럼 몸이 붕 떠오르다 처박혔다. 쿵- 둔탁한 충격과 함께 콱!- 내 머리통을 짓누르기 시작하는 갑수였다.
“이- 싸가지 없는 새끼가... 어디서...”
갑수가 콧김을 내뿜으며 말하는데, 노크 소리가 났다.
“들어와.”
문이 벌컥 열리며 근육몬이 들어왔다.
“어? 아- 이 새끼 진짜 여기 왔네.”
“이 새끼가 한 말 사실이냐?”
김갑수가 근육몬에게 물었다. 근육몬이 어깨를 으쓱했다.
“예- 지금 보아하니 반응 확인하신 것 같은데. 제대로 훈련 받지 않아서 그렇지 감각은 괜찮지 않습니까?”
“흐음- 이 새끼가 좀 의심스럽다며?”
갑수의 말에 근육몬이 낮은 목소리로 호들갑을 떨었다.
“에이- 이 새끼가 그 놈들이라면 이렇게 일을 벌였겠습니까? 꼬와도 알랑방귀를 뀌며 살살 기었겠죠.”
“그렇군. 그래도 싸가지가 없단 말이야.”
“에이 요즘 애들이 다 그렇죠. 새삼스럽게.”
꽈악- 머리를 내리누르는 힘이 강해졌다. 확실히 내가 조금 더 강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라면 일반인 2배는 넘는 힘이었다. 대체 여긴... 김갑수가 내 머리통을 내리누르며 나직하게 말했다.
“개인 정비는 취소다. 오늘부터 참가한다. 이의 있나?”
“어... 없습니다.”
내리누르던 힘이 빠지며 몸이 책상 밖으로 밀려났다.
“그 새끼 잘 키우면 물건이 되겠어. 데려가.”
“그럼 챙겨가겠습니다. 따라와 새끼야. 아주 오냐오냐 해줬더니...”
근육몬이 내 팔을 꽉 틀어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
“이 새끼 완전 똘아이 새끼네. 아무리 요즘 애들이 군대를 모르고 막간다고 하지만 너 미쳤냐?”
근육몬이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렸지만 시큰둥했다. 스무살 초반이었다면 어쩔 줄 몰랐겠지만 나름 산전수전 겪어본 내 경험으로 보자면 후임의 빠진 군기 잡아보려 애쓰는 선임의 모습일 따름이었다.
사실 근육몬의 중얼거림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근육몬의 움직임-스펙의 잔존효과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태도. 실력을 보자며 대련을 하자는 미진이라는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힘을 조절했다고 하더라도 명치는 명치였다. 한 방에 기절을 시키려고 작심하고 때렸는데 처음 반응만 충격을 받은 반응이었을 뿐이었다. 새우처럼 웅크리고 콜록-콜록- 몇 번하더니 고작 10~15초 만에 회복해 나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일반인이라면 족히 몇 분에서 몇 시간은 제대로 운신하지 못할 정도의 충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빨리 회복됐다.
‘김갑수도 마찬가지.’
나보다는 약하지만 분명 일반인의 운동능력 2배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의자에서 튕겨지듯 일어난 그 반응 속도는 분명 정상인의 범주에서 벗어난 속도였다. 마치 스펙을 맞은 신입의 반응속도를 보는 것만 같았다.
스펙에 대한 소문이 사실일까?
장근태가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스펙을 맞으면 맞을수록 변한다고 했던 이야기였다. 계속 맞게 되면 어느 순간 임계점에 도달하게 되고 괴물로 변하게 된다. 괴물이 되는 것과 동시에 신체의 벨런스가 망가지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괴물로 변하는 순간 녹아내려 죽는다고 했다.
믿을 수 없었다. 만일 스펙에 그런 효과가 있다면 변종이나 빗치를 잡을 때 스펙을 사용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아니. 변종이 스펙효과까지 본다면?’ 변종이 죽기 전에 입힐 피해가 더 클지 몰랐다.
내가 반응했던 것을 떠올려보자면 변종이 스펙을 맞고 날뛰면? 거기에 싱싱한 인간들이 널려있는 곳이라면? 재앙이 될 수도 있었다.
“이 새끼가 알아들었냐?”
“네...”
빡- 내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근육몬이었다.
“알아듣기는 뭘 알아들어. 딴생각했지?”
“아닙니다. 그리고 근무시간 외에는 편하게 하라더니 대놓고 구타입니까?”
“뭐! 뭐?”
“그럼 오늘 몇 시에 출동입니까? 3조에 가서 아까 하던 짓을 계속해야 하는 겁니까? 그냥 사생결단을 내서 며칠 푹 쉴까요?”
“하- 이거 완전히 꼴통새끼네.”
근육몬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참 이걸 어떻게 요리해야 하나 생각하던 근육몬이 갑자가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하핫- 그래. 새끼 그 정도는 돼야 살아남겠지. 뭐 비밀도 아니니까 말이야. 악이 있네. 깡이 있어. 아- 우리 조에 결원이 있었으면 확 데려오는 건데.”
근육몬이 내 어깨를 탁탁- 치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운동이 끝나지 않았는지 1조와 3조의 운동은 계속되고 있었고 속속 다른 조들도 모여 수영을 하거나 운동을 시작했다.
“근데 수영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네요.”
“수영은 칼로리가 많이 소모가 되니까 말이야.”
“칼로리요?”
“그래. 스펙을 맞으면 칼로리 소모가 늘어나거든.”
칼로리 관리를 한다? 주제를 살짝 다른 방향으로 바꿨다.
“운동하면서도 스펙을 쓰나요? 부작용이 있을 텐데.”
근육몬이 픽-웃었다.
“그렇지 부작용이 있지.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