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정리 (4)
일반좀비든 동면좀비든 모든 좀비들은 시각보다는 후각, 청각에 의존해 움직이는 경향이 컸다.
그래서 후추를 사용하거나 파스를 뿌려 냄새를 지우고 하수구로 이동해 하수냄새로 좀비들의 이목을 속였다.
그런데 이렇게 피바다가 됐는데 좀비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현장. 마치 보존이라도 된 것처럼 그대로였다.
일반좀비들이 싱싱한 인간시체를 손도 대지 않았다고?
어째서?
맨홀 놈은 일반좀비를 통제할 수 있었다. 놈이 통제한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곳으로 오기 쉽게 하려고?
함정?
“이런 씨발!”
위기감응은 발동되지 않았다. 분명히 위험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감지와는 별도로 이성이 경고하고 있었다.
피해야 한다.
어디로?
일단 벗어나야 했다.
조심스럽게 접근했던 것과는 달리 전속력으로 현장을 이탈했다.
위기감응을 믿고 달리는데 집중했다. 순식간에 칼로리가 소모되는 감각. 바지가 찢어질 정도로 팽팽해진 허벅지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쾅! 인근 6층 높이 원룸 건물로 뛰어 올라갔다. 옥상에 올라 인근 골목길을 살폈다. 넓게 포위망을 구축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절로 긴장이 됐다. 건물 옥상에서 살펴본 광경은 예상을 벗어난 풍경이었다.
“어?”
이 주변에는 좀비들이 보이지 않았다. 함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반좀비를 다룰 수 있으니 주변에 멀찍이 포위망을 만들어 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골목마다 있어야 할 일반좀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이야?”
변종은 본능에 가깝게 움직이는 놈이었다. 함정을 파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 이상 두 수나 세 수를 내다보는 계획을 짜는 놈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USB에서 본 자료에서도 그렇게 설명했었다. 전투력으로 따지고 힘으로 따진다면 변종이 상당히 강하지만 빗치가 변종보다 무서운 이유는 이성 때문이라고 했었다.
분명히 변종은 이성적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이라고 했다. 그런 놈이 함정도 아니고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짓을 꾸몄다고?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변종들은 말을 할 수 없다고 했는데 미노는 말을 할 수 있었다.
변종들은 대부분 육체능력이 강화된다고 했는데, 미노는 발화능력이라는 특수한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일단 맨홀 놈이 어떻게 할지가 중요했기 때문에 1:1로 싸우기에는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놈이었기 때문에 우선 유미와 합류하기로 했다.
*
다행히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유미가 내 뒤를 힐끗 쳐다봤다.
“어? 그냥 오셨어요?”
맨홀 변종을 유인하러 가서는 혼자 뛰어온 것을 보곤 의아한 표정이었다. 유미는 일회용 라이터를 두 개나 옆에 두고 여차하면 볼트에 불을 붙여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맨홀 놈이 어디로 갔는지 없네.”
“그럼 그것들이 가짜 정보를 준 것 아니에요?”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일단 빗치와 빗치끼리는 페로몬이라는 것으로 영역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반해 빗치가 변종을 알아챈다는 건 무엇으로 알아챌까? 미도가 맨홀의 위치를 알 수 있다고 했지만, 거짓말일 가능성도 있었다.
“위치에 맨홀 놈이 얼마 전까지 있기는 있었어. 사람들을 거하게 죽여 놨더군.”
“그런데요?”
“그 뒤로는 보이지 않아. 근방에 좀비들도 없고 말이야.”
“어? 이 근방에 있던 좀비들은 그것들이 치운 거 아니고요?”
유미는 미도와 미노가 좀비들을 처리한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건 확실히 모르겠지만 맨홀 놈이 있던 근처에는 좀비들이 없었어. 맨홀 놈이 어디론가 끌고 갔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곳에 널어놓은 시체는 뭐란 말인가? 시간 끌기 용도? 뭘 위해서?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데요?”
“일단 꼬맹이 시체부터 처리하자. 이쪽 골목 끝에 있지?”
안쪽에서 몸을 숨기라고 했었으니까 이 안쪽에 있을 것이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유미가 내 팔을 잡았다.
“아니요. 거기 아니에요.”
“함정에 숨어 있지 않았어?”
“네. 냄새를 따라 갔더니 다른 곳에 있었어요.”
“어디 있었는데?”
“여기서 한 300m정도 떨어진 곳이요.”
“거기서 뭐하고 있든?”
“걷고 있는 걸 중간에 잡아서...”
“일단 가보자.”
*
두 블록 정도를 이동하자 좀비들이 내는 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좀비들이 없다가 있으니 공기부터 달랐다.
우워어어어
의미 없는 괴성을 내며 좀비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아까만 하더라도 거의 없었는데? 아깐 몇 마리 없었어요.”
고작 20~30분 사이에 좀비들이 몰렸다는 소리였다. 근처를 살필 수 있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쪽에 있는 좀비 몇 마리가 달려들었지만 유미가 간단하게 처리했다. 신체능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됐기 때문인지 순식간에 정리하는 유미였다.
“혼자 있을 땐 덤비지 않았는데.”
유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위로 미노의 시체가 있는 곳을 살펴보니 동그랗게 원형으로 둘러 싼 좀비들 중앙에 덩치가 큰 변종이 뭔가를 씹어 먹고 있었다. 옆에 있는 맨홀 뚜껑은 놈이 맨홀 뚜껑을 던진 변종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저게 먹고 있는 게 꼬맹이 시체 같아요.”
“그래.”
변종 놈도 미도와 미노를 노리고 있었단 말인가?
“유인하자.”
“네?”
“놈이 여기 있는 걸 알았으니 바로 유인하자.”
맨홀 변종 놈이 한 짓을 보면 또 어떤 짓을 할 지 몰랐다. 놈이 어디론가 숨어서 노리면 골치 아팠다.
“그럼.”
“바로 가서 대기해. 피리를 불면 알지?”
“알겠어요.”
내 단호한 목소리에 유미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뺐다.
등에 차고 있던 석궁을 들어 놈의 얼굴을 향해 겨눴다. 거리는 대략 70~80m정도 이 정도 떨어진 거리라면 놈이 달려는데 5~6초 가량 걸릴 것이다.
계단을 타고 올라온다고 생각해도 10초 내외.
유인할 루트를 머릿속에 그린 뒤 심호흡을 하곤 석궁을 쐈다.
팍! 소리와 함께 석궁이 맨홀 놈의 귀를 때렸다.
재장전.
눈이다.
놈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을 쏴야 했다.
크르?
막 미노의 머리통을 씹으려고 했던 놈이 고개를 돌렸다.
70~80m의 거리가 순식간에 압축된 것처럼 놈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핑! 소리와 함께 볼트가 일직선으로 날아가 꽂혔다.
크헝!
들고 있던 미노의 머리통을 집어 던지고 놈이 달려왔다.
작은 점처럼 보였던 녀석이 몸뚱이가 순식간에 커지기 시작했다. 유리창을 박살낸 맨홀 뚜껑이 벽에 틀어박혔다.
바로 뒤로 내려가 뛰어내린 뒤 그대로 함정을 파놓은 곳을 향해 내달렸다. 등 뒤에서 건물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맨홀 변종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크아아아아아!
놈이 분노의 함성을 내지르자 뒤통수가 찌릿찌릿 했다. 슬쩍 뒤돌아보니 눈에 입은 상처는 이미 아물었다. 실로 가공할 정도의 재생력이었다.
“빌어먹을 놈!”
코너를 돌면 그만이었다.
순간 심장어림이 욱신-내리 눌렀다.
으아아아!
달리던 그대로 앞으로 구르기 낙법을 했다.
부왁! 자동차 문짝이 뒤통수를 스쳐 지나갔다.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자동차 문짝이 물수제비를 튕기는 것처럼 아스팔트 도로를 튕기다 주차된 차량의 옆에 틀어박혔다.
박살난 자동차에서 삑삑거리기 시작하는 경보음과 박자를 맞추기라도 하는 것처럼 위기감응이 알람을 울려댔다.
앞구르기를 한 그 탄력 그대로 다시 내달렸다.
콰직! 방금 있던 자리에 덤프트럭 백미러가 틀어박혔다. 달려오면서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는 맨홀 놈이었다. 코너를 돌자 준비된 골목이 나왔다.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쾅! 코너 벽이 터지며 놈의 손이 쑥 빠져나오는 것을 위기감지로 피하고 안쪽으로 내달리며 입에 피리를 물었다. 탱크가 벽을 밀어버리고 달려드는 것처럼 놈이 코너를 박살내며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아아!
몇 초 안에 잡힐 것만 같은 가까운 거리.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폭발하듯 쏘아지는 녀석이었다. 놈이 생각보다 빨랐고 잡히는 대로 던지면서 일직선으로 도망치는 것을 막았기 때문에 이대로 간다면 폭발의 여파에 휩쓸릴 가능성이 컸다.
욱신-위기감응의 경고에 따라 다시 앞구르기를 하면서 입에 물고 있던 피리를 불었다. 픽-하고 낮게 김빠지는 소리가 울렸다.
‘빨리!’
픽-
함정의 중심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유미가 망설이는 것 같았다.
크와아아아!
‘잡았다!’는 것 같은 녀석의 외침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픽- "당장! 쏴!"
그 순간 팍! 불길이 이글거리는 볼트가 하얀 기름통에 틀어박히며 폭음이 터졌다. 불꽃은 순식간에 페트병을 터뜨리고 자동차에 옮겨 붙으며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콰아아아앙!
전신이 불꽃에 휩싸이는 것과 동시에 맨홀 뚜껑을 열어놓은 곳으로 뛰어내렸다.
첨벙! 불길로 인해 시야가 마비됐고 후각도 마비됐겠지만 놈이 내 뒤를 따라 뛰어내릴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메이스를 바닥에 박아 놓고 기다렸다.
하수구에 메탄가스가 있었는지 열린 맨홀 뚜껑위로 공기가 요동치며 올라가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맨홀 밖에서는 연쇄폭발음이 계속됐고 하수가 끓어오를 정도로 온도가 치솟아 올랐다.
연쇄폭발이 멈춘 것과 동시에 옆 맨홀 구멍으로 올라갔다. 사다리로 박아놓은 철근이 달궈져 손을 댈 때마다 치익- 고기 익는 소리가 났다. 아스팔트가 끓어올라 찐득해진 위로 매캐한 유독가스가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쾅!
콰직!
두들기고 부수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가자, 유미와 맨홀 변종이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맨홀 변종은 불타오르는 자동차 문짝을 도끼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유미는 방패로 침착하게 막고 맨홀 괴물의 다리를 집요하게 노렸다.
전신에 불이 붙은 채로 타들어가고 재생하던 맨홀 변종이 괴성을 지르며 들고 있던 자동차 문짝을 마구 휘둘러 유미를 떼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유미는 달라붙은 찰거머리마냥 거리를 주지 않고 버텼다. 하지만 가벼운 체중이 문제였다.
쾅!
묵직한 소음과 함께 근접해서 변종의 다리를 집중 공격하던 유미의 몸이 붕 떠올랐다.
“칫!”
유미가 억울하다는 듯 혀를 찼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맨홀 놈은 뒤로 밀려난 유미를 향해 들고 있던 자동차 문짝을 집어 던지고는 그대로 도망치려고 했다. 놈이 도망치기 위해 있는 힘껏 다리를 박차려는 순간 들고 있던 방패를 녀석의 무릎을 향해 집어던지며 내달렸다.
콰직!- 크워? ‘너? 네놈은?’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놈의 머리통에 메이스를 때려 박았다. 둔탁한 충격음이 터졌지만 놈의 머리통은 여전히 딱딱했다.
“빌어먹을!”
머리통을 두들겨 맞은 놈이 반사적으로 나를 붙잡으려는 순간 유미가 나를 밀쳐내고 중간에 끼어들었다.
“꺄윽!”
놈은 ‘이게 웬 월척이냐.’는 표정으로 손에 잡힌 유미를 한쪽 팔을 뚝 부러뜨렸다. 메이스를 쥐고 있던 유미의 오른팔이 축 늘어졌다 다시 재생을 시작했다. 유미가 발버둥을 쳤지만 거의 거대한 덩치의 손아귀에 잡히자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놈은 내가 휘두르는 공격을 몸으로 때우며 손아귀에 붙잡힌 유미를 제압하는데 온 신경을 쏟았다. 재생되고 부러뜨리고 아주 서서히 유미의 재생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놔! 까으윽!”
유미가 발버둥 쳤지만 무기를 놓친 유미는 놈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놈은 나와 유미의 발버둥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비릿한 미소, 이겼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아귀에 잡힌 유미를 인형가지고 놀듯 주무르던 놈의 붉은 눈빛이 유미의 가슴을 향했다. 변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굴곡진 몸매는 옷으로 가려지지 않았다.
치이이익! 찢어지는 소리
“꺄아아악!”
유미의 비명소리.
“이 새끼가아!”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몰랐다.
찌이익- 옷이 찢기는 소리.
이어지는 비명소리는 부작용 따윌 고민하던 내 이성을 증발시켜 버렸다.
'죽인다! 죽여버린다!'
주사기를 내 목에 대고 찔러 넣었다.
치익!-한 번. 치익!- 두 번.
목을 타고 들어가는 스펙의 약효가 순식간에 혈관을 태우고 지나갔다.
열기. 타오르는 불꽃이 내부를 휘감았다.
혈관이 타오르고 근육이 터지고 심장과 내장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격통!
그 뒤를 따르는 순수한 분노와 살의. 놈의 무릎을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단단한 메이스가 고무줄처럼 휘어져 보였다.
“죽어어어!”
빠직! 놈의 무릎 관절이 박살나며 동시에 메이스도 휘어졌다. 휘어진 메이스를 바로 피려는 것처럼 재생되는 놈의 무릎을 연속으로 내리쳤다.
콰직! 빠득!
크어어어!
놈은 반사적으로 유미를 벽으로 집어 던지고는 내 등판을 팔꿈치와 주먹으로 내려찍었다. 둔탁한 충격이 등판을 뒤흔들었지만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차가운 분노가 점점 더 커졌다.
“죽어! 새끼야!!!”
U자 모양으로 완전히 휘어버린 메이스를 바투잡고 놈의 턱을 올려쳤다. 콰득! 소리와 함께 턱뼈가 박살나며 부러진 이빨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재생이 되는 놈의 턱뼈를 움켜잡아 녹아내린 아스팔트 바닥에 매다 꽂았다.
퍽! 소리와 함께 아스팔트 바닥이 푹 꺼지며 놈의 머리통이 틀어 박혔다. 수직으로 올라간 주먹이 망치처럼 맨홀 놈의 머리통을 두들겨 댔다. 휘어진 메이스가 비틀어지고, 놈의 머리통이 움푹 꺼졌다가 재생되기를 반복했다.
크우어으어
“닥치고 뒈져!”
콰직!
재생이 된 이빨과 턱뼈를 다시 부수고 주먹이 놈의 목구멍까지 밀려들어갔다 나오자, 파운딩에서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치던 놈의 두 팔이 순간 파르르 떨었다.
일순 놈의 근육과 뼈가 말랑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죽어버려!”
콰직! 주먹이 놈의 머리통을 박살내고 아스팔트 바닥을 관통하듯 틀어 박혔다. 부르르 떨던 놈의 사지가 마지막 헛된 발버둥과 함께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불타오르는 아스팔트 바닥을 뚫고 유미가 달려와 품에 안겼다.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