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스트 DUST-82화 (82/261)

구역정리 (3)

미도의 얼굴에 뱉었던 피리를 다시 주워 목에 걸린 막대에 꽂았다. 이 피리가 없었다면 미도와 미노를 잡기 힘들었을 것이다. 배신을 당했을 때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

며칠 전, 유미가 죽은 신입이 가지고 있던 목걸이에 달린 기다란 막대를 뽑자 일종의 피리 같은 것이 나왔다. USB의 암호를 찾기 위해 썼던 막대, 숫자가 적혀있어 일종의 막대열쇠나 군번줄 같은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는데 작은 피리가 나왔다.

“아저씨 막대에서 뭐가 뽑혀요!”

“그냥 막대가 아닌 것 같은데? 그거 피리다.”

“피리요?”

“그래 한 번 불어봐.”

픽-픽-

“이거 소리가 이상한데요?”

유미는 소리가 잘 나지 않는 피리라고 투덜거렸었다.

“이리 줘봐.”

특수부대원이 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는 피리를 목에 걸고 있었을 리 없었다. 하지만 다시 불어도 바람 새는 소리만 났다.

-픽-픽

그래도 혹시나 싶어 꼼꼼하게 확인해 봤더니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신입이 목에 걸고 있던 피리는 특수한 음역대의 소리를 멀리 내보내는 피리였다. 비슷한 것으로는 개-피리 (dog-whistle)가 있었다.

개-피리는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고 개의 귀에는 들리는 영역대의 음파를 발산하는 피리를 말했다. 이걸 응용해 특수부대에서는 소리를 이용한 신호를 주고받기도 한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신입의 가방을 뒤져보니 리시버가 나왔고, 그것은 피리에서 나오는 초음파를 잡아채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저들이 배신하려는 기미가 보인다면, 신호를 보내겠다. 신호를 받는다면 즉시 신호대로 움직인다. 신호는 크게 셋이었다.

A) 위험-탈출.

B) 위급-지원바람.

C) 미노를 죽인다.

미노를 목표로 잡은 이유는 기습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문 클립에 달려있던 총탄이 폭발했을 때 재생하는데 오래 걸렸었다.

미노는 불꽃 능력이라는 능력은 있지만 육체적 능력이 약했다. 재생능력도 떨어졌고 내구성도 약한 편이었다. 유미가 전력을 다해 기습한다면, 한 방에 죽이거나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유미는 신호를 받자마자 피 냄새를 통해 위치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즉시 미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바벨을 이용해 원거리에서 기습. 미노를 한 방에 죽이고 전력으로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

5층 건물에서 한 번에 폴짝 뛰어내린 유미가 도도도 달려와 말했다.

“휴- 피리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어요.”

“쯧- 역시 이렇게 됐네.”

유미와 미도가 적대감을 품은 순간부터 결말이 정해진 것일 수도 있었다. 맨홀을 죽인 뒤 충돌하거나, 맨홀을 죽이기 전에 일이 틀어지거나 둘 중 하나였고 시간 문제였다. 혹시나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고 좋게 끝날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확인을 해야 했기 때문에 끝까지 가봤지만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

“애초부터 우리 둘이 처리했으면 좋았잖아요.”

“그러냐?”

처음부터 미도와 미노를 배제하고자 했다면 그 둘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펜트하우스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으니, 맨홀을 우리 쪽으로 유인할 가능성도 있었고, 다른 생존자들과 우리를 싸우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처음부터 적대의사를 명확하게 하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저쪽도 마찬가지로 그걸 감안해서 우릴 토사구팽하려고 생각한 것이었다. 문제는 다른 부분에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싫어했을까? 그 본능에 가까운 적대감을 이용해, 미도의 신경을 다른 쪽으로 쏠리게 하는데 성공했지만 영 찝찝했다.

펜트하우스 지하에서 보여준 유미의 행동도 그랬다. 미도가 통제되지 않는 적의를 표출했다면 유미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할 정도로 적대감정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미도의 시체를 콕 찔러볼 것처럼 가까이 간 유미가 차마 찔러보지는 못하고 질렸다는 것처럼 말했다.

“설마 머리통이 뚫리고도 움직일 줄은 몰랐어요.”

머리통이 날아간 사지가 힘겹게 꿈틀거리다 서서히 움직임을 멈췄다.

“가까이 가지 마라.”

“에엣? 머리가 날아갔는데요?”

“지하실에서 한 번 당했었잖아.”

“아-우- 그래도 이번에는 머리통이 없으니까...”

유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바비가 변한 빗치에게 한 번 당했었다. 머리통이 오목하게 우그러졌음에도 등판에 달라붙었던 그 질긴 생명력. 확실히 질겼다. 그래서 미리 대비하고 있었는데도 깜짝 놀랐다. 머리통이 완전히 박살났으니 죽기야 죽었지만 아직 신경은 살아있으니 낙지처럼 달라붙을 가능성도 있었다.

“작은 놈은?”

“한 번에 끝났어요.”

“추적은 생각처럼 잘 됐어?”

“네... 흐음...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유미는 내 피만 먹었다. 그래서인지, 내 피 냄새에 민감했다. 혹시나 싶어 확인해 본 결과 추적할 수 있었다. 그걸 이용해서 미노에게 마킹을 했다. 몇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도 용케 찾아간 유미였다.

“저기 차 밑에 보이지? 페트병에 휘발유가 들어있을 거야. 그것 좀 가져와.”

“네.”

*

화르르륵! 피어오른 불꽃이 시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서로의 시체를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빗치의 시체를 남겨둘 수 없었다. 일반좀비가 빗치나 변종의 시체를 먹고 변이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 이제 죽었나 보네요.”

거의 5분 가까이 꾸물거리던 미도의 시체가 완전히 늘어졌다. 유미의 목소리가 생각의 방향을 바꿨다.

유미를 보니 빌딩에서 만난 빗치가 떠올랐다. 빗치나 빗치와 유사한 존재들 사이에 영역다툼이 있다면 그래서 영역을 뺏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라면, 빌딩에서 만난 그 빗치가 유미를 빈사상태로 살려둘 이유는 뭘까?

‘영역이 아니라면 서열인가?’

“예? 뭐가 붙었어요?”

유미가 제 얼굴을 팔뚝으로 슥-닦았다.

“아니. 아니다.”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모를 일이다.

“작은 놈 시체는 어떻게 했어?”

“급하게 와서 처리하지 못했어요.”

바로 움직였다는 소리였다. 그래도 유미가 제때 왔기 때문에 미도를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었다.

“우선 맨홀부터 잡고. 가서 태우자.”

“네.”

연기를 보고 근방에 있는 맨홀이 움직일 것이다. 시체처리는 나중이었다. 맨홀이 접근하기 전 준비해야 했다.

“이번에는 제가 유인 할게요.”

“말했지? 나는 놈들이 보통 사람으로 착각하지만 너는 그렇지 않다고.”

“그렇지만... 맞다. 맨홀이 막 발정이 나서 달려들었다고 했다면서요. 저도 페로몬 그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요. 멀리서 유인하면 되잖아요.”

“페로몬에 발이 달렸니? 그게 바람에 멀리 퍼지면? 맨홀만 오는 게 아니라 인근에 있는 변종과 빗치 몽땅 달려들 텐데?”

“우- 그래도.”

유미는 내가 걱정스러웠던지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었다. 인아가 빗치로 부활한 뒤 페로몬을 흘리고 다녔다. 그 페로몬이 며칠 동안이나 흔적을 남긴 것으로 보아 페로몬을 이용한 유인은 위험했다.

“방금 잘 끝냈잖아. 이번에도 잘 끝낼 수 있어.”

“어떻게 할 건데요.”

유미의 목소리가 가슴팍을 간질거리며 흩어졌다. 계획은 처음과 같았다. 맨홀을 유인한 뒤 주변을 통째로 불바다를 만들어 놈의 체력을 깎아 먹는 것이 골자였다.

“그것들이 만들어 놓은 함정을 그대로 쓰게요?”

“손을 좀 봐야겠지. 일단 체력부터 회복하자.”

미노를 죽이고 죽도록 달려왔기 때문인지 유미의 체력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피를 먹여 체력을 회복시킨 뒤, 나도 근육보충제와 초콜릿으로 칼로리를 채웠다.

“바벨은 몇 개나 남았지?”

“저기 있는 것까지 합하면 3개요.”

바벨의 숫자가 좀 적어 보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미도와 미노가 함정을 판 곳은 맨홀 뚜껑도 없었고 교통 표지판도 없었다. 맨홀 변종이 들고 던질만한 것을 전부 치워놓은 곳이었다.

“그래? 3번이라. 3번...”

“어려우면 다음에 잡아요.”

“다음은 없어.”

벌써 미도의 시체에 불을 붙였다. 맨홀이 근처에 있다면 경계를 할 것이다. 놈은 타고난 사냥꾼이라고 했다. 빗치처럼 이성은 없지만 쉬운 상대였다면 미도와 미노 둘이서 이제까지 처리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러니까 놈은 또 다른 의미로 까다로운 상대라고 가정하는 게 맞았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성패는 놈의 재생력과 체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빨리 갉아먹을 수 있는가에 달려있었다.

“신호만 제대로 잡아서 불을 지를 수 있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어.”

미도와 미노가 파놓은 함정을 조금 고쳐서 쓰기로 했다. 그 둘이 자리를 잡으려고 했던 골목에는 휘발유가 담긴 페트병에 수십 병이 넘었다. 페트병이 폭발해 자동차에 불이 붙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불바다가 될 것이 분명했다.

“불은 어떻게 붙일 생각이신데요?”

“불화살을 써야지.”

“불화살이요?”

“그래 석궁 볼트에 불을 붙여 쏘면 가능해.”

확인이 필요했다. 500미리 페트병에 휘발유를 조금 넣어 과녁을 만들었다. 석궁 볼트에 면으로 반창고를 두른 뒤 등유를 흠뻑 적셨다. 석궁으로 쏜 볼트의 속도는 제법 빨랐기 때문에 풍압에 의해 불이 꺼질 가능성도 있었다. 불씨가 유지될 수 있도록 반창고 안쪽에는 솜을 붙였다. 표면의 불이 꺼지더라도 안쪽 솜에 붙은 불씨는 유지될 것이다.

팍- 500미리 페트병에 꽂힌 볼트에서 확 불이 피어오르더니 휘발유에 불이 붙으면서 폭발하듯 불꽃이 터졌다. 충분히 가능했다.

“됐다!”

남은 것은 시간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맨홀 놈을 함정으로 유인해 처리해야 했다.

“어떤 상황이든 피리 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쏴!”

“알겠어요.”

유미에게 단단히 주지시켰다.

*

맨홀이 있다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친 시멘트 바닥의 느낌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신경에 날이 섰다. 30~40kg짜리 맨홀 뚜껑에 머리통이 날아가면 한 방에 끝장이었다.

후우- 바짝 긴장했지만, 심장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이상이 없었다. 주변은 지독하게 고요할 뿐 살아있는 것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놈 나와라. 나와.’

맨홀이 숙련된 사냥꾼이자, 사냥과 살육을 즐기는 놈이라면 나를 보고서 그냥 있을 리 없었다.

훅- 비릿한 피 냄새가 바람을 타고 밀려왔다.

“설마?”

발걸음을 빨리해 앞으로 달려갔다. 생존자로 보이는 사람의 시체가 갈기갈기 찢겨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변종에게 물리면 좀비로 되살아나는 것 아니었나?’

분명히 마트에서 나온 변종에게 물린 사람들이 되살아났었다. 다른 변종은 모르겠지만 맨홀 놈은 좀비들을 조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좀비로 만들지 않고 갈가리 찢어 발겼다니...

자박- 포장 도로 위에 웅덩이처럼 고인 피를 밟자, 약간 끈끈한 느낌이었다. 죽은 지 오래 지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육편처럼 흩어진 고깃덩어리를 살폈다. 먹기 위해서 죽였다기 보다 사냥 자체를 즐긴 느낌이었다.

워낙 조각이 났기 때문에 몇 명인지 정확하게 특정하긴 힘들었다. 대략적으로 2~3명이라고 보였다. 박살난 K-1소총을 보니 한 사람은 예비군용 무기고에서 소총을 구한 것으로 보였다.

첫 희생자는 소총을 들고 있던 사람과 바로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사람. 총을 쏠 수도 피할 새도 없이 단 번에 죽었다. 맨홀 뚜껑에 맞아 피가 사방으로 튀었어야 했는데, 튀지 않은 곳이 있었다. 사람이 피를 뒤집어썼다는 소리였다.

‘2명이 아니라 3명이었군.’

맨홀 뚜껑을 던져 두 사람을 박살내고 공포에 떨고 있는 한 사람을 천천히 죽였다. 여기저기 조각이 널브러진 것으로 보아 세 사람을 조각조각 찢어발긴 뒤, 이동한 것으로 보였다.

먹기 위해 사냥을 한 것이 아니라, 사냥을 즐기기 위해 죽였다? 그러기엔 모순이있었다.

사냥감이 강할수록 더 큰 재미를 느끼기 마련이다. 사냥하면서 느끼는 재미를 따진다면 힘없는 인간을 잡아 죽이는 것보다 다른 변종이나 빗치를 잡아 죽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그런데 맨홀 놈은 인간을 잡아 죽이고 있었다. 게다가 제대로 먹지 않았다는 게 뚜렷하게 보였다.

‘먹는 게 목적이 아니다?’

사냥을 즐긴다면 인간 사냥이 아니라 변종이나 빗치 하다못해 동면좀비를 사냥하는 게 더 손맛이 있을 것이다. 영역 다툼을 놓고 본다면 더욱 그랬다. 유미와 미도가 서로에게 보였던 그 적대감을 생각해 보면 맨홀 놈이 다른 변종을 죽이고 다니는 게 정상이었다.

'잡아 죽인 인간을 먹지도 않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이걸 그냥 이렇게 두고?'

사냥터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흔적을 지우는 일이다. 변종이 빗치보다는 본능적이라고 하더라도 놈들은 타고난 사냥꾼이다. 변이가 되면서 문제가 생겨 언어능력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놈들의 영악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영악한 놈이 시체를 보란 듯이 찢어 발겨 흩어놨다고?

피 냄새가 사방으로 풍기게 했다고?

피 냄새가 났으면?

'어?'

일반 좀비들이 몰려와야 했다. 그런데 현장엔 일반좀비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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