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정리 (2)
미도와 미노는 진작 준비를 마치고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노는 내가 준 이글이글 배지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불타오르는 것 같은 홀로그램 영상이 햇빛에 반사됐다.
“늦었네.”
“늦기는 시간 맞춰서 왔는데. 시간보다 일찍 온건 그쪽 사정이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찍 왔다고 유세라면 무시해줄 뿐이다. 내가 시큰둥하게 반응하자 미도가 분위기를 바꿨다.
“뭐- 됐어. 근데 조금 떨어져서 말해.”
미도는 인상을 쓰며 나보고 떨어지라고 했다. 유미의 체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도였다.
“왜?”
“후-너... 그거랑 뭐하다 왔어?”
미도가 짜증 섞인 폼으로 손바닥으로 휙휙 허공을 휘저었다.
“뭐하기는...”
“하아- 신경 거슬리네. 준비는 됐지?”
“미끼? 준비됐다. 계획대로 유인하면 되는 거지?”
미도가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아마도 뭔가 할 말이 있으니까 일찍 나온 것 같았다.
“그게 말인데 위치를 좀 바꿔야겠어. 여기보다는 이쪽이 더 나은 것 같아서 말이야.”
“장소를 바꾸자고?”
“흥분하지 말고 여기를 봐봐. 맨홀 놈은 좀비들을 어느 정도 지배할 수 있어.”
“......”
“그런데 본래 계획했던 장소는 여기야. 미리 나와서 확인해 보니까 유인하려고 곳에 아직 좀비들이 많이 남았더라고. 맨홀 놈이 좀비들을 조정해서 진로를 막으면? 그 좀비들을 뚫고 유인할 수 있겠어?”
“하- 참-”
그저 탄성만 나왔다. 내 탄성을 뭐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미도가 나지막하게 단언했다.
“그리고 설령 뚫고 제대로 유인했다고 쳐도 결과는 마찬가지야. 맨홀을 잡아두는 동안 좀비들이 밀려오면 당신과 나 둘이서 좀비들과 맨홀을 잡아두는 게 가능할까?”
점점 어이가 없었지만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좀비들이라... 맨홀 한 마리도 벅찬데 좀비들까지는 무리겠지... ”
지도의 한 부분을 표시하는 미도였다.
“이쪽으로 유인하면 좀비들과 맨홀이 몰려오더라도 충분히 잡을 수 있어.”
이곳에 오면서 봤던 골목이었다. 그러니까 좁은 도로 양쪽에 주차된 차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는 곳이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차량들 아래로 페트병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몰아놓고 불을 지를 생각이군.”
“그래. 뒤와 양옆에 불을 지르고 앞만 막으면 되니까 여유 있게 잡을 수 있어.”
내가 침묵하자. 미도가 재차 설득했다.
“유인하는 것만 성공한다면 이게 훨씬 유리한 방법이라고, 일단 유인한 뒤 불을 붙이면 퇴로가 불바다가 되니까 퇴로를 막을 필요가 없게 되잖아. 퇴로를 막을 필요도 없고 앞만 막으면 된다. 어떻게 생각해도 이게 더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조목조목 변경된 작전이 유리하다는 걸 강조하는 미도였다.
“확실히 일리가 있군.”
내가 동의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는 미도였다.
“그럼 내일 그렇게 하지.”
“뭐? 내일? 계획대로 지금 해야지 내일이면 맨홀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어.”
“그래? 꼭 지금 해야 하나??”
목에 걸고 있던 작은 막대기를 뽑았다. 조그맣게 생긴 것이 안에서 딸려 나오자 미도가 노려봤다. 작게 뽑혀 나온 것을 입에 물며 중얼거렸다.
“아- 담배라도 있으면 좋겠네.”
뽑은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담배 피듯 입에 물었어도 인상을 펴지 않는 미도였다. 신경이 예민해 보였다.
“맨홀 놈은 사냥터를 정하면 어지간해서는 바꾸지 않는다고. 녀석이 움직이기 전에 그 앞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내일하자니 뭐가 문제야? 작전은 확실하다고.”
다른 빗치와 미도의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른 빗치들은 이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성을 가지고 도구를 사용한다거나 사냥을 하는데 함정을 파거나 덫을 놓는데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도는 철근으로 만든 창을 쓰고 덫을 놓고 함정을 파고 미끼를 사용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담배를 피듯 물고 있던 막대를 입으로 불자. 픽-하는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그것을 듣고 미도가 인상을 썼다. 그러거나 말거나 픽-픽 불어댔다. 작게 김빠지는 소리가 났다. 모기가 윙윙거리는 정도의 소리였기 때문에 바짝 긴장했던 미도의 표정이 짜증으로 변했다.
“그만 장난치고. 다른 방법이 있으면 말해 봐.”
“다른 방법? 무슨 방법? 픽-”
소리도 나지 않는 피리를 픽픽 불어대는 나를 보고 미도가 재차 재촉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그럼 없던 얘기로 할까?”
“아니 잡아야지. 잠깐.”
미도의 옆에서 미노가 내가 준 이글이글 배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거 가슴에 다는 것보다 모자에 다는 게 더 멋있을 거 같다. 이리 줘봐 달아줄게.”
내가 어깃장을 놓을까 싶어서인지 미도가 고개를 끄덕이자, 미노가 손에 쥐고 있던 이글이글 배지를 나에게 건네줬다.
“모자 좀 벗어봐. 모자 옆에 이렇게 달면 더 멋있을 거야.”
배지를 모자에 쿡-눌러 달았다.
“앗 따따다. 이거 뾰족하네.”
바늘이 손끝을 질러 피가 나며 배지 뒷면과 모자 끝에 빗방울이 묻었다.
“에이 안 묻었어. 티도 안나.”
배지를 단 모자를 씌워주곤 말했다.
“저기 유리창에 가서 봐봐. 어때? 괜찮지?”
미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미도를 봤다. 미도는 유미의 체향 때문에 날카로워진 심사를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성의 없이 끄덕였다.
“그래서... 시간 끌지 말고 말해. 오늘 맨홀을 잡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뭐. 그렇게까지 한다면 잡아야겠지. 계속 반대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고 말이야.”
내가 방패를 들고 메이스를 고쳐 쥐곤 앞장서자, 미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노에게 말했다.
“넌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잡아. 알았지?”
“알았어. 누나는?”
“금방 따라 갈게.”
미노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기 위해 먼저 나섰고, 미도는 내가 가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교차로까지 나왔다. 미노가 들어간 골목에는 차들이 빼곡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스치면서 봤었던 것이 맞았다. 주차된 자동차 아래에 페트병과 기름통들이 눈에 들어왔다.
“맨홀은 일단 사냥을 시작하면 더 큰 먹이가 보이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아. 그러니까 유인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저 골목 안쪽으로만 들어오면 확실히 잡을 수 있으니까 거기까지만 유인하라고.”
미도가 식은 죽 먹기라는 식으로 말했다.
*
손에 쥔 메이스와 방패를 고쳐 쥐었다. 미도는 내 옆에서 창을 들고 따라나섰다. 금방 돌아갈 줄 알았는데 미도는 제법 오래 따라왔다. 지도에서 표시된 장소가 가까워졌는데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어디까지 따라올 셈이야?”
“맨홀이 어디 있는지 느끼지 못하잖아. 내가 근처까지 가서 알려줘야 하지 않겠어?”
“궁금해서 하는 소린데 갑작스럽게 작전을 바꾼 거야?”
“말했잖아. 그걸 왜 묻지? 끝난 이야기 아닌가?”
피식-웃음이 나왔다.
“작전 말이야. 생각해 보니까 그렇더라고 갑자기 바꿨다고 생각하기엔 장소가 너무 좋아서 말이지. 양쪽으로 5층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가 있어 자연적으로 ㄷ자형으로 폭 파인 것이나 마찬가지인 골목도 그렇고”
얼굴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되묻는 미도였다.
“무슨 말이야?”
“이런 말이지! 퉷!”
담배처럼 물고 있던 피리를 미도의 눈에 뱉으면서 방패로 밀어 붙이며 메이스를 휘둘렀다. 방패로 몸을 밀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것처럼 몸을 뒤로 훌쩍 피한 뒤, 창으로 메이스를 흘려 막고는 곧바로 반격을 시작하는 미도였다.
카각! 콰각! 철근으로 만들어진 창이 불꽃을 튀기며 방패와 메이스를 갉아먹었다. 미도가 입 꼬리가 죽 찢어진 미소를 지은 채, 연속적으로 창을 찔러대며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주차된 자동차 아래 페트병들이 너무 많이 돌아다니더라고, 안에 물이 들었을 리는 없고. 저 안에 휘발유가 들었으면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을 텐데 방금 전 갑작스럽게 작전을 바꿨다고 보기에는 너무 공교롭지 않아?”
“역시 아까워~그년만 없었으면 좋았을 것을...”
투둑! 방패가 웅웅 떨며 묵직한 공격을 흘려 막았다. 부우욱!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찌르는 걸 막는 건 간단했다. 유미보다 확실히 힘이 약했다. 속도는 비슷한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방패로 막는데 문제는 없었다.
“당일 갑자기 계획을 바꾸는 걸 의심하지 않으면 병신이지. 그리고 말이야 그걸 순진하게 믿었다고 하더라도...”
의외였다. 나만 시간을 끌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이쪽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호호- 눈치가 빠른데.”
거북이처럼 방패로 착실하게 막아냄에도 미도는 여유를 부렸다. 내 힘이 자기보다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릴 수 있는 여유였다. 한 번 싸워본 상대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가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욱!
“눈치라니 무슨 섭섭한 말을... 이런 지형을 오늘 아침에 찾았다고? 웃기지 말라고.”
“감이 좋네. 근데 그뿐이야? 고작 그걸로 알아챘다면 좀 실망인데?”
미도는 여유 있게 내 말을 받아주며 창을 부지런히 찔러댔다. 내가 도망치지 못하게 끈덕지게 접근하면서 견제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미노가 올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도망치지 못하게 막기만 한다면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퇴로가 없는 불바다. 사방이 틀어 막힌 공간에서 불을 다루는 놈과 내가 같이 있어야 한다는 데 그걸 모르겠어. 불바다 속이라면 도우러 올 수도, 갈 수도 없잖아. 맨홀을 죽이고 난 뒤 각개 격파하기는 딱 좋은 상황 아니야?”
“호- 역시 그냥 죽이기엔 아까워. 그래서 말인데 오늘 같이 좋은 날, 이렇게 허무하게 죽기는 억울하지 않아?”
퉁! 철근으로 만든 창이 방패를 북 두들기듯 두들겼다.
“뭐야? 싹싹 빌면 살려주기라도 할 억양인데?”
“정말 아까워서 말이야. 달려있는 혹만 뗀다면. 지금이라도 받아 줄 수 있는데 말이야.”
“달려있는 혹이라 유미를 말하는 건가?”
“그래 그년 말이야.”
푸욱! 신경질적으로 창을 박아대는 미도였다.
“혹이라? 근데 말이야. 문제는 그게 아니라고.”
“?”
슬슬 준비해야 했다.
“너는 큰 실수를 했어.”
“무슨 실수?”
미도가 길게 찢긴 미소로 되물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챘을까? 그런 질문은 틀린 질문이야. 제대로 된 질문을 해야 제대로 된 답을 구하지 않겠어?”
“호호호홋. 그래? 어떤 질문이 제대로 된 질문이지?”
부우우욱! 강철 방패가 코코넛 껍질 파이듯 푹 파이면서 깊은 자국이 생겼다. 확실히 힘이 좋았다. 유미와 대련을 하면서 빗겨 막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았다면 진작 방패가 관통됐을 것이다. 삐져나오는 신음을 삼키며 말을 계속했다.
“이를 테면 이런 질문? 함정인 줄 알아챘으면서 모르는 척 도망치지 않고 먼저 공격한 이유가 뭘까?”
“!”
“아니면 이런 질문? 막기에 급급한 놈이 무슨 배짱으로 시간을 끌고 있을까?”
“훗- 고작 그런 허풍?”
잠시 흔들렸던 미도가 코웃음을 쳤다.
“허풍이라니, 소리도 나지 않는 피리를 왜 불었을까?”
미도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럼 문제. 만약 피리로 신호를 보냈다면, 신호를 받은 유미가 아직까지 오지 않는 이유는 뭘까?”
“너... 설마? 설마.”
“빙고- 유미는 어디로 갔을까?”
크아아아아.
이제까지 뒤집어쓰고 있던 껍질을 벗어 던지듯 흉성을 터뜨리며 달려드는 미도였다. 쾅! 한 방에, 방패가 찌그러지며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충격을 상쇄하기 위해 일부러 몸을 먼저 띄웠지만 역시 그걸로 모든 충격을 상쇄하는 건 힘들었다.
유려한 곡선을 그렸던 방패가 찌그러지면서 흘려 막기, 빗겨 막기가 불가능해졌다.
푸칵! 두꺼운 철근으로 만든 창이 2mm두께의 철판을 뚫고 안으로 쑥 박혀들었다. 방패 안쪽에 있는 뼈대를 이용해 뚫고 들어오는 창을 격자처럼 얽은 뒤 방패를 아래로 내려 밟는 것과 동시에 메이스를 휘둘렀다.
유미와 함께 연습했던 동작. 창을 뽑아내기 위해 힘을 주고 있었던 오른팔을 메이스로 내려치자 단단한 미도의 팔이 부러졌다. 뻐억! 우직!
급속재생을 하지 못하게 방패를 비틀어 창대를 비틀었다. 부러진 팔이 재생되기도 전에 뒤틀리자 비명을 지르며 창대를 놓는 미도였다.
끼아아아아!
비명을 지른 입을 쭉 찢은 채, 그대로 달려드는 순간. 20kg짜리 바벨이 원반처럼 날아와 미도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뻑! 중심을 잃고 앞으로 꼬꾸라지는 미도의 눈에 굵직한 메이스를 박아 넣었다.
끼아아아악!
안와를 박살내고 들어간 메이스가 뇌를 헤집었다. 특수 방탄복마냥 탄력 있던 미도의 피부가 순식간에 힘을 잃었다. 고통을 견디지 못한 미도의 피부에 소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우직!
“죽어!!!”
커득! 주먹으로 망치질 하듯 손잡이를 때려 박자, 메이스가 두개골을 깨고 밖으로 삐져나왔다. 부르륵 떨던 미도의 몸이 축 늘어졌다.
“후우- 씨발-”
마무리를 하려고 틀어박힌 메이스를 잡아 뽑았다. 으직- 철근으로 만들어진 메이스가 뽑히며 도도독- 뼈 걸리는 소리를 냈다. 그 순간, 하나 남은 눈동자가 부르르 떨더니 번쩍 눈을 떴다.
“이런 썅!”
끼에에에에- 미도가 벌떡 거미처럼 몸을 뒤집은 채 도망치기 시작했다. 메이스가 두개골을 관통했는데도 움직이다니 지겹도록 질긴 생명력이었다.
“던져!”
부와아아악!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20kg짜리 원형 바벨이 총알처럼 쏘아졌다. 뻐억! 거미처럼 도망치던 미도의 머리통이 옆으로 확 꺾어지며 꼬꾸라졌다.
“아... 으 사......”
메이스를 치켜든 내가 달려들자 허우적거리는 미도였다.
“닥쳐!”
콰직!
연속된 치명상으로 재생력을 잃은 두개골이 폭발하듯 터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머리를 잃은 몸통에 달린 사지가 부르르 떨리다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