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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70화 (70/261)

USB (2) ●

뉴스 모음은 아마도 죽은 신입이 개인적으로 모은 자료를 넣어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머지 자료들은 어떻게 보면 중요한 자료였고 어떻게 보면 기본적인 자료였다. 특히 후반부로 가면 일종의 교육용 교재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렇게 본다면 일종의 신입들에게 나눠주는 기본교육용 자료일 가능성이 컸다. 뭔가 대단한 정보가 있을까 싶었는데 거의 대부분은 직접 변종이나 비치와 마주치면 알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하긴 마주치고도 살아남기가 쉽지는 않으니까.’

그러고 보면 이 자료들은 교육용 교재로 충분했다.

[빗치와 변종은 거리를 주지 말고 제압해야 한다. 만약 근거리에서 싸울 경우 관절과 경동맥을 노린다. 관절과 경동맥은 놈들도 강화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적들의 완력은 최소 고릴라 수준으로 상정하면 된다. 잡히면 그걸로 끝이다. 놈들은 맨손으로 사람을 찢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잡히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것은 냉각제를 충전한 창이다. 놈들의 피부가 질기고 단단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무기로는 제압하기 힘들다. 이 창은 냉각제를 이용해 얼리기 때문에 그 부분을 공략하기 쉽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 석궁용 볼트에도 냉각제가 충전되어 있다.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는 힘들지만 놈들의 재생능력을 국소적이지만 무력화 시킬 수 있다.]

조교처럼 보이는 사람이 여러 가지 무기를 들고 하나씩 설명을 했다. 모든 무기들은 이미 빗치나 변종을 잡는데 최적화된 형태였다.

[일반탄으로는 저지하기 힘들다. 철갑탄과 우라늄탄이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관통에 의한 유탄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사용에 유의해야 한다. 대표적인 포위 방식은 이런 모양이다. 중앙에서 질소 창과 석궁으로 견제를 하며 양측 면에서 교차사격을 한다.]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누적해 재생능력을 떨어뜨린 뒤, 뇌를 공격하는 것이 제일 확실한 방법이다. 안구와 안와 부분이 약점이기 때문에 얼굴을 노리는 것이 유효하다. 일단 뇌에 타격을 입은 놈들은 약해지기 때문에 그 때를 놓치지 말고 확실하게 제압해야 한다.]

[놈들은 상처를 입으면 급속재생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상처를 재생하는데 필요한 영양소는 단백질과 지방이다. 전장에서 단백질과 지방질이 많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조교로 보이는 사내가 빗치의 특성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려는 순간 새로 만들어준 메이스로 유미가 바닥을 두들겨 대기 시작했다. 깡-깡- 깡깡- 올라와 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USB의 자료를 노트북으로 옮겨 놓고 몸을 일으켰다. 영상을 보니 여러모로 심란해졌다.

일반좀비라고 하지만 영상에서는 좀비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감염자와 변이체 그리고 변종, 빗치가 등장했을 뿐이었다. 본 내용 대로라면 감염자는 아마도 맨 처음 회사 지하주차장에서 봤던 그런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기침을 하다 갑자기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사람을 때려죽였던 사람. 자동차 핸들을 꺾어 그대로 받아버렸던 사람들. 그렇게 따지면 기침을 했던 회사직원들도 전부 감염자라고 봐야 했다. 감염이 됐어도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변이체는 아마도 감염들 가운데 확실한 변이가 일어난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감염이 됐고 신체 어느 부분이든 장기든, 세포든 변이가 일어났다는 의미로 변이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좀비들이나 동면좀비, 변종, 빗치가 변이체에 포함된 개념으로 보였다.

감염자를 사살할 경우, 감염자 가운데 있는 변이체들은 좀비처럼 되살아난다는 의미일까? 방송의 내용대로라면 죽였더니 되살아났다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런 뜻으로 보였다.

감염자들 가운데 변이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나중에라도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소린가? 아니면 변이가 된 사람들은 죽으면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소린가?

고열과 혼수상태를 겪은 자들을 격리하라는 것을 보면 죽지 않아도 변이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런 케이스가 나와 유미였다.

확실한 것은 무장 세력이 변종, 빗치를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변종, 빗치의 대비 방법이 있는 것에 비해, 동면좀비라든지 일반좀비에 대한 대응책이나 대비 방법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주적을 변종과 빗치로 삼았다는 소리였다.

그런 것들이 이렇게 많이 생기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다음 자료들을 빨리 보고 싶었다. 신입이 이런 정보가 담긴 USB를 들고 다닌다는 것은 적을 인간으로 상정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이 적이었다면 작은 정보라도 넘겨주지 않기 위해 USB 같은걸 목에 걸고 다니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신입은 자기가 죽고 난 뒤 시신이 수습되지 못할 상황을 상정했을지 몰랐다.

자신이 죽더라도 USB를 구한 사람이 이 정보를 보고 변종이나 빗치와 싸우기를 기대했는지도 몰랐다. 어찌됐든 지난 일이었다. 그 때로 되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죽고 죽이는 관계가 협력관계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이건 사태 발생 전에 뭔가를 알고 있던 놈들이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이런 정보를 유통시키는 세력은 무슨 생각일까?

세계정복?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이렇게 세상이 망해버리면 정복한 의미가 뭐가 있겠는가? 그리고 사람들 싹 죽이고 세계정복을 할 요량이면 이렇게 골치 아픈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신경화학무기를 뿌려버리는 게 더 싸게 먹혔다.

200~300kg 정도만 살포해도 한반도에 면적에 해당하는 동물들을 전멸 시킬 수 있다는 화학무기도 있다는데, 그걸 대량생산해서 뿌려대는 게 더 쉬웠을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사태를 만든 것일까?

이런 자료를 준비한 것으로 보아 뭔가 계획이 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동기도 불분명했고 변종이나 빗치에 대응했던 장비들에 비해 후속조치가 너무도 어설펐다.

“하아-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젠장...”

유미가 벽면에 붙은 금속파이프를 퉁퉁 두들겨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또 좀비들이 불탔어요.”

긴장했었는데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좀비들이 또 다시 불에 타면 바로 말하라고 했었으니 유미는 잘못이 없었다. 한 참 집중해서 자료를 살피고 있던 맥이 끊어지면서 살짝 짜증이 났는지 조금 퉁명스럽게 말했다.

“누가 불 지른 건 아니고?”

“일단 화염방사기나 기름을 뿌린 건 아니에요. 근처에 사람도 없었고요.”

유미는 내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삐졌는지 사무적인 태도로 대답했다. 정말 자연발화란 말인가? 일반좀비들이 멀쩡하게 있다 홀랑 타버린다는 소리는 황당했지만, 유미가 이렇게 말한다면 진짜로 멀쩡하게 있던 좀비들에게 불이 붙었다는 소리였다.

“그래? 일단 올라가자.”

유미가 내가 들고 있는 USB 꽂힌 노트북을 보며 물었다.

“다 본건가요?”

“아니. 절반 정도 확인했나?”

“무슨 내용인가요?”

“뭐 이상 사태에 대한 뉴스 모음과 이런 저런 내용들... 전부 보고 나서 말해줄게.”

“네.”

USB에 뭐가 들어있는지 관심을 보이는 유미였다.

“먼저 볼래?”

“아니요. 됐어요. 이따 말해주세요.”

“그래? 좀비들이 탔다는 데는 어디야?

“저쪽이요.”

유미가 가리키는 부분을 보니 아직도 불타오르는 좀비들이 보였다. 6마리? 아니 5마리의 좀비들이 허우적거리다 풀썩 쓰러졌다. 고기가 타는 냄새를 맡았는지 주변의 좀비들이 어슬렁거리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좀비 한 마리의 몸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마치 지포라이터에 불이 붙는 것처럼 불꽃이 피어올랐다.

“어? 저거.”

황당했다. 말 그대로 멀쩡히 움직이고 있던 좀비의 몸에 불이 붙은 것이었다. 이윽고 그 옆에 있는 좀비에게도 불이 붙었다.

“쌍안경. 쌍안경 좀 줘봐.”

주변을 살폈다. 창문이 열려있는 곳에 40대? 50대 정도로 보이는 사내가 서 있었다. 사태가 발생한지 4개월이 지난 지금 사내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덥수룩한 수염과 기름진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남자였다.

다른 쪽에는 70살은 넘어 보이는 노인이 비슷한 나이의 할머니 휠체어를 끌고 옥상에서 불이 붙는 좀비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병원들이 모여 있는 빌딩에서는 간호사 복장을 입은 여자들이 머리를 내밀고 밖을 살펴보고 있었다. 불타오르는 좀비들을 대놓고 구경하는 사람들은 저 세 그룹이었다.

올백을 한 중년남성이 피식-웃고 좀비를 향해 손을 흔들자, 잠시 뒤 좀비의 몸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맙소사.”

내가 본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도인처럼 덥수룩한 수염에 올백 머리를 한 사내가 불꽃을 일으킨 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저 남자가 불꽃을 일으킨 건가요?”

유미가 살짝 호기심을 보였다. 입술을 핥는 것을 보니 과히 좋은 방향의 호기심 같지는 않았다.

“확실하지 않아.”

“어째서죠? 손으로 뭔가를 하는 것 같았는데.”

“손을 흔들었다고 해서 그게 불꽃의 원인이라는 증거는 되지 않아.”

“......”

이렇게 설명을 해줘도 좋을지 모르겠다.

“오늘 밤에 확인해 볼까요?”

“아니. 저건 그냥 무시하는 게 낫다.”

올바른 질문을 할 수 있다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면 침묵하는 것이 나았다. 보이는 것이 전부 사실이 아니기에 단정하기는 힘들었지만 지금 저 현상이 정말 초현실적이고 기존의 물리법칙을 벗어난 무엇이라면 절대로 엮여서는 안됐다.

“예? 왜요? 저게 진짜 막 초능력 같은 거면...”

유미가 들떠서 말하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저쪽이 초능력자든 뭐든 우리와 섞여 살기는 힘들었다.

USB자료에서 나왔듯 유미와 나는 특수한 케이스였다. 100번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내 피를 먹는 유미를 보고 호의적으로 반응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좀비에 변종에 빗치까지 설치는 세상이다 보니, 아무리 내 피만 먹는다고 하더라도 그걸 이해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했다. 자기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피를 빨아 먹는 새로운 괴물 취급 받을 게 분명했다.

“진짜 초능력자면 그것도 골치 아프다.”

“왜요?”

트릭이나 그런 것이 아닌, 진짜 발화능력이라면 골치 아팠다. 재생을 한다고 하더라도 화상에 의한 상처가 어떤 식으로 재생이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나오는 히드라가 떠올랐다. 재생력하면 알아주는 히드라도 목이 잘린 자리를 불꽃과 재로 지져 재생을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살가죽이 불에 눌러 붙으면, 움직임이 둔해지기 마련이었다. 깔끔하게 잘리거나 뚫리는 것이 아닌, 화상도 정상적으로 재생이 될까? 그러고 보면 함정에서 폭탄만 사용하지 않고 인화성 물질을 쌓아 뒀던 것이 떠올랐다. 데미지가 들어간다는 소리였다.

“그런가요? 그냥 잠깐 보고만 오면 안 될 까요? 진짜 초능력자가 있다면 신기하지 않아요?”

그래도 호기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신기하긴, 신기하면? 그걸 봐서 뭐하게?”

“와- 진짜 정서 메말랐네요.”

“정서가 문제가 아니라 궁금하다고 가보겠다고 하는 네가 문제야. 너 힘 좀 세졌다고 그러는 거지?”

요즘 운동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더니 겁을 상실한 것 같았다.

“훅- 가는 건 순식간이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 몰라?”

“알겠어요. 그냥 그렇다는 거죠.”

“꼭 가보고 싶다면 토치로 지저보자.”

“토치로 뭘 지진다는 거죠? 저를 지져보겠다는 건가요?”

입을 삐죽 내미는 유미였다. 이런 건 애초에 잡들이를 해야 했다.

“그래. 난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꼭 가겠다면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확인하는 게 좋지 않겠어? 너를 보자마자 그 초능력자인지 뭔지가 확 불을 질러버리면 어떻게 할 건데? 그러니까 미리미리 실험해 봐야지.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는지 확인해 봐야 대비도 되고 그러지 않겠어?”

“......”

“알겠어요. 가지 않을 게요. 대신 누군지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으면 그 때는 가도 되죠?”

“가기 전에 토치로 확인은 해봐야지.”

“......”

불퉁한 표정으로 날 보는 유미였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집 나가면 고생이고 엮이면 피곤한 법이었다.

“저렇게 불타오르는 것을 본 게 이번이 두 번째인가?”

“예.”

두 번이라면 판단하기 조금 애매한 횟수기는 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불꽃을 이용해 세력을 규합해 움직였다면 피곤했을 것이다. 세력을 규합하지 않았다는 건,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제 막 불꽃을 일으킬 수 있게 된 것일 수도 있고.

불을 지를 수 있다는 게 좋지만은 않았다. 불에 탄 좀비들에게서 풍기는 고기타는 냄새 때문인지 일반좀비들이 그쪽 방향으로 서서히 모이고 있었다. 일반좀비들이 모인다면 변종이나 빗치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정말 초능력자가 있을까요?”

“글쎄... 이론적으로 보면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닌데, 그래도 현존한다고 보기에는 힘든 게 초능력자라서 말이야.”

따지고 보면 급속재생이나 성인 3배에 육박하는 완력도 초현실적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이 끝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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