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B (1) ●
멀쩡하게 돌아다니던 좀비가 불타올랐다?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었지만 제일 처음 떠오른 것은 자연발화였다. 하지만 자연발화는 굉장히 드문 현상이었다. 기존에 자연발화라고 소문났던 사건들도 대부분 조작된 것이거나 인위적으로 발화된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누군가 불을 질렀을 가능성이 컸다. 라이터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이면 좀비들 태우는 건 순식간이었다. 심지효과 때문인데, 어느 정도 온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몸에 있는 지방을 연료로 삼아 불이 계속 타오르는 것을 의미했다.
사람의 배꼽에 심지를 꽂아 태웠더니 오래 탔더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일단 불이 붙으면 체내의 지방을 연소시켜 불길이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사용해 좀비를 잡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좀비의 특징상 불이 붙었다고 가만히 앉아서 죽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불이 붙은 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불길을 옮긴다면?
사방에 불이 번질 확률도 있었다. 불도 불이지만 도시에서 불이나면 유독가스가 더 문제였다. 조금만 흡입해도 폐를 손상시키는 유독성분도 많았다. 그런 유독가스를 내뿜는 화재가 발생한다면 좀비를 잡으려다 질식해 죽을 수도 있었다.
“아- 그렇군요.”
“딱 좀비들만 탔다고 하니까 그게 신기하긴 한데.”
“어찌됐든 자연발화는 80%~90% 가짜니까, 사람들이 불을 질렀을지 모른다. 그렇게 무식하게 불을 지르는 사람들이라면 언제고 사고를 칠게 분명하니까 그쪽을 잘 살펴보도록 해. 혹시라도 또 이상한 일이 벌어지거나 좀비들에게 불이 붙으면 부르고.”
“네.”
유미에게 감시를 맡기고 내려왔다. 그간 유미의 일 때문에 잠시 뒷전으로 미뤄뒀던 것들을 다시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시작한 것은 신입에게서 가져온 물품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USB를 열어볼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스파이 영화 같은 것을 보면 USB를 꽂는 순간 위치추적이 시작되는 장면도 있었기 때문에 어쩐지 열어보기 찜찜했었다.
신입이 가지고 있던 거라 중요한 크게 비밀 정보 같은 것은 없겠지만 열어보기도 찜찜하고 그냥 신경을 끄자니 그것도 애매했다. GPS가 마음에 걸렸다.
GPS인공위성은 말 그대로 궤도를 돌고 있는 것이었다. 고작 4개월 만에 인공위성이 갑자기 멈추거나 그럴 일은 없었으니 GPS위성은 작동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USB를 작동시켰다가 위치추적이라도 들어온다면 위험했다.
지하실로 내려가서 보는 것이 좋았는데, 시체들이 사라진 마당에 나 혼자 내려가는 건 좋지 않았다. 노트북을 들고 안방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를 깔고 앉았다. 여기라면 전파가 어느 정도 차단될 것이다.
노트북을 켜고 USB를 꽂자, 암호를 입력하라는 창이 떴다. 신입이 가지고 있던 신분증 번호. 지갑에 있던 쪽지에 적힌 숫자. 군번줄 비슷한 막대에 적혀있는 숫자 등을 뒤섞어서 적었다. 다행히도 단순했다. 군번줄 비슷한 막대열쇠의 16자리 숫자를 조합한 8자리 숫자가 암호였다.
64G나 되는 USB에는 빼곡하게 이것저것이 담겨 있었다. 영어로 된 폴더도 있었고 일어로 된 폴더도 있었다. 20개가 넘는 폴더 가운데 한 폴더가 눈에 확 들어왔다. 가장 큰 용량을 차지하고 있는 폴더였다.
[따오기]
폴더의 이름을 보는 것과 동시에 쿡- 웃음이 나왔다. 세상이 망했어도 기러기와 따오기는... 실소를 참고 더블클릭한 [따오기] 폴더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들어있었다.
큼- 큼- 나도 모르게 주변을 살피게 됐다.
영상모음을 더블클릭을 하자 동영상플레이어가 구동됐다. FBI 경고문구 같은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정부는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특집방송을 녹화해 놓은 것 같았다. 내가 기절해 있었을 때 방송됐었던 내용 같았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화면 아래에는 계엄령 발동이라는 굵은 글씨가 뚜렷하게 박혀있었다.
옆으로 흘러가는 작은 글씨에는 ‘국민 여러분들께서는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출입을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정부는 소요사태를 조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같은 문구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감염된 사람들의 특징은 어떻게 됩니까?]
[극도로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자제력을 상실한 모습을 보입니다.]
[감정기복이 크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단순하게 보기 어렵습니다. 위험한 것은 폭력성이 매우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영상이 잘리고 다시 이어 붙였는지 또 다른 내용으로 넘어갔다. 계엄과 관계된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치안유지를 위한 계엄 발령이었지만 곧이어 이성을 잃고 날뛰는 사람들을 토벌하는 것으로 변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좀비사태였다면 이렇게까지 순식간에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분노에 휩싸여 폭력적으로 변했다. 그렇게 변한 사람들이 날뛰었고 그들이 죽으면 좀비로 되살아났다.
사살 명령이 좀비를 더 양산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일반좀비들도 처음에는 살아생전처럼 빨리 움직였다. 영양상태가 부실해져 느릿느릿 움직일 뿐이었다.
[사람들이 괴물로 변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제보 영상을 보시지요.]
인간의 형상을 한 무엇인가가 순간적으로 사람을 덮치는 장면이 흐릿하게 찍혀있었다. 습격당한 사람은 곧이어 습격한 자와 마찬가지로 변해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 움직였다.
난리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장면들을 넘기자 궁금했던 부분이 하나 나왔다. 외국방송이었다.
[더 큰 문제는 변이율입니다. 현재까지 변이율은 50%가 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감염률이 80~90%에 변이율이 40~50%라면 100명이라고 가정했을 때, 80~90명이 걸리고 병에 걸린 사람들 가운데 40~45명가량 변이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사태 발생 10일 정도 뒤에야, 죽은 사람들이 좀비로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따라서 감염자들을 사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방법입니다.]
[변이되기 때문입니까?]
변이가 된다는 말은 좀비가 된다는 의미였다.
[그렇습니다]
[대처방법은 없습니까?]
[현재까지는 치료방법도 대처방법이 없습니다. 사람에 따라 이성을 잃는 정도와 행동양식이 다른 것으로 보아 전두엽 기능장애도 정도가 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전두엽 기능장애라고요? 자세히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바이러스에 감염이 됐어도 가벼운 감기 정도로 끝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각한 장애를 동반한 후유증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보입니다.]
[어떤 후유증입니까?]
[대표적인 후유증이 전두엽 이상인데요. 전두엽에 이상이 생기면 감정조절이 힘들어지고 성격이 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극도의 폭력성을 동반하게 됩니다.]
화면에서는 뇌 자료가 올라왔다. 정상인의 뇌와 감염자의 뇌를 단층 촬영한 부분이었다.
[여기 이 부분이 전두엽입니다. 감염자들을 보면 이 부분의 형태가 변형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변형이 일어나면 회복이 불가능한가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80~90%가 감염됐다는 소리는 거의 전부 감염됐다고 봐야 했다. 감염된 자들 가운데 절반이 뇌변이가 일어나 미쳐 날뛰었고 그들을 죽일 경우 좀비로 변형되어 되살아난다는 소리였다. 계속해서 외국방송이었다.
[고열을 동반한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은 구속조치를 해야 합니다.]
[고열과 혼수상태 두 증세가 동시에 보이는 사람입니까?]
[둘 가운데 하나라도 격리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구속-격리 조치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두 증상이 뚜렷하다는 것은 단순한 감염자가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변이체로 변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무조건 격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외국방송에서는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폭력사태를 일으킨 자들을 사살하지 말고 제압했어야 했고 고열과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일단 구속 -격리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는 소리였다.
쯧- 나도 그렇고 유미도 고열을 동반했었다. 이들 말대로라면 무조건 격리시켜야 할 사람들이었다는 소리였다. 혹시나 싶어 다른 영상을 확인했지만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영상모음을 끄고 옆에 있는 세계영상이라는 하위폴더를 더블클릭했다. 일본방송과 미국, 영국방송들이 들어있었다.
[한국에서 괴질발생.]
[전두엽에 이상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판명]
[비행기는 전부 회항조치.]
[한국에 자위대 파병해야.]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달랐다. 분명히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사건이라고 했었는데 일본뉴스에서는 한국에서 처음 발병된 것처럼 보도하고 있었다. 일본은 한국 치안 유지와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자위대를 파병해야 한다고 핏발을 세웠다.
[한국, 일본에서 괴질 발생.]
[주한 미군과 주일 미군에 비상 경계령]
[괴질의 확산을 대비해 주방위군 비상대기]
미국 방송이었다. 미국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괴질이 발생한 것으로 방송이 됐다. 이상한 점은 한국과 일본에서 발생한 괴질에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주방위군 비상대기를 실시했다는 점이었다.
[일본에서 괴질 발생.]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지역 국가 여행금지]
[해외주재원들 귀국. 방역대책 시급]
영국 방송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괴질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뒤로 갈수록 보도 내용도 뭔가 이상했다. 한국에서 계엄령이 떨어지기 전에 미국과 일본의 뉴스에서는 한국에서 계엄령이 발표 될 것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출발한 항공기, 선박들은 연료를 보급 받고 다시 한국과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마치 이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각국 정부가 대응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괴질이 확산됐다. 그 뒤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계엄령에 대한 시간도 각국 정부가 대응한 것도 진행 양상도 조금씩 달랐지만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영 찝찝한 내용들이 많았다. 정보를 통제하고 있는 부분도 그랬고 사태가 확산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
파일명이 숫자로 된 것을 클릭했다. 화질은 그렇다 치고 옆에 촬영 날짜까지 나오는 것을 보니 핸드폰으로 찍은 동영상 같았다.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끌려나왔다. 버둥거리며 끌려나온 여자를 서양남자들이 희롱하면서 시작되는 영상이었다. 전형적인 강간포르노와 비슷한 전개였다. 울면서 뭐라고 하는 여자를 남자들이 강제로 옷을 벗기는 장면이 묘하게 현실적이었다. 상당히 하드한 영상이었다.
여자의 몸 위에서 신나게 허리를 흔들어대던 사내의 목이 갑자기 뒤로 꺾였다. 강간포르노가 순식간에 스너프-고어물로 변했다.
통째로 뽑히는 팔다리, 찢겨지는 몸통, 아우성치는 남자들. 핸드폰으로 촬영하던 사람이 욕을 하며 허겁지겁 도망치다 핸드폰을 떨어뜨리는 것을 끝으로 영상이 끝났다. 순식간에 3명의 남자가 고깃덩어리로 변하면서 끝나버린 영상이었다.
이게 뭐지? 세계 각국 뉴스 모음 다음에 갑자기 이런 영상이라니 순간 멍했다. 다음 파일을 클릭했다. 배경은 일종의 실험실 같은 느낌이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외국인이 설명을 하고 있었다. 처음 봤던 스너프 필름에 기록된 영상이 처음으로 빗치라는 존재가 밝혀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그래 날짜가 이상했다. 다시 먼저 봤던 살육영상을 살폈다. 핸드폰 영상으로 찍은 그 영상에 적힌 날짜. JULY / 12라고 표시되어있었다. 7월 12일이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오늘은 7월 6일이었다. 7월 12일에 빗치가 등장하는 영상을 찍었다고? 올해 영상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빗치의 존재를 그 전에 알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다른 파일을 보면 볼수록 현실감을 잃는 것 같았다. 처음 나왔던 동영상에 있던 여자를 빗치가 아니라고 가정하면 그 여자는 뭘까? 그 여자가 빗치라면 동영상을 찍은 놈들은 어쩌다가 빗치를 만나게 된 걸까? 빗치가 그 전부터 있었는데 올해 봄에 갑자기 괴질이 확산됐다고?
이어지는 동영상들 속에는 일반좀비들의 약점인 시력이 약하다는 설명과 후각과 청각이 발달됐으니 그걸 이용하는 방법이 자세히 설명되어있었다. 설명하는 사람들의 국적은 다양해 보였다. 다양한 억양을 가진 사람들이 무슨 학회에서 발표하는 것처럼 다양한 자료를 펼쳐 설명하고 있었다.
[스펙은 새로운 형식의 전투자극제입니다. 전반적인 신체능력을 30~40%까지 향상시켜줍니다. 진통효과와 각성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작전 능력을 획기적으로 강화시켜줍니다.]
나와 싸웠던 신입이 스펙의 약효를 낮춰서 이야기한 것이다. 스펙은 신체적인 능력을 무려 40%나 강화시킬 수 있었다. 엄청난 효과였다.
[약효의 지속시간은 8~12 시간가량으로 두 번까지 중첩해서 맞을 수 있습니다. 중첩해서 맞을 경우 단순하게 생각하면 현재의 근력보다 2배가량 강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그래프를 보면, 단련을 할수록 스펙의 효과가 강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0kg을 드는 사람보다 120kg을 들 수 있는 사람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약효가 떨어지기 전, 세 번 이상 중첩해서 맞을 경우 장기나 근육, 신경계가 괴사하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습니다.]
연구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스펙의 특징과 사용방법, 유의사항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동영상을 보니 확실했다. 이놈들은 사전에 알고 대비하고 있었다. 아니, 이놈들이 이 사태의 원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