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인 (2) ●
어설픈 바리 케이트를 내려치자, 바리 케이트가 박살이 나며 뚫렸다.
“히앗!”
계단에 빼곡하게 널려있는 시체들을 훌쩍 뛰어넘어, 고개를 처박고 시체를 뜯어먹는 좀비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무거운 둔기가 고개 숙인 좀비의 머리통을 계란처럼 작살내면서 동시에 뜯어 먹히고 있던 시체의 몸통까지 뭉개버렸다.
퍼직-쿵!
뼈와 가죽 터지는 묵직한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그 소리에 고개를 처박고 시체를 뜯던 좀비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두리번거리던 좀비의 머리통이 땡!-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확 꺾였다. 때앵~! 종을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며 머리통이 납작하게 함몰된 좀비가 쓰러졌다.
유미가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을 두 손으로 잡고 활짝 웃었다.
“잘했어!”
저절로 추임새가 넣어졌다. 유미에게 질세라 앞에 겹쳐있는 두 마리를 향해 둔기를 휘둘렀다. 무식하게 휘둘러진 둔기가 한 번에 두 마리를 으깼다. 삶은 감자가 으깨지듯 머리통과 몸통이 으깨지며 널브러졌다.
남은 건 2마리! 유미는 야구 방망이를 잡는 것처럼 프라이팬을 두 손으로 들고 휘두르고 있었다. 일반좀비 주제에 팔로 프라이팬을 막고 있었다. 깡! 까득! 프라이팬의 손잡이가 휘어지는가 싶더니 동그란 팬 부분이 똑 떨어져 나갔다.
동시에 일반좀비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유미에게 달려드는 좀비였다. 놈은 부러진 팔을 휘두르며 입을 벌렸다. 크어어어! 어떻게든 물어 보겠다고 유미를 향해 달려드는 좀비였다.
뻑! 입을 벌리고 달려들던 좀비의 턱이 박살나며 옆으로 확 돌아갔다. 유미가 달려드는 좀비의 턱을 제대로 후려갈긴 것이다. 어설픈 자세였지만 제대로 힘이 실려 있는 카운터펀치였다.
“좋았어!”
저절로 칭찬이 쏟아졌다. 칭찬에 화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유미가 좀비의 머리통에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었다. 일반 성인남성 3배에 육박하는 완력으로 두들겨 댄 주먹이 좀비의 머리통에 적중됐다. 턱이 박살 난 채 꼴사납게 뒤로 벌렁 자빠지는 좀비였다.
신경 쓰지 않아도 잘하고 있었다. 역시 마음가짐을 고쳐먹었는지 너무도 잘해주고 있었다. 저절로 신바람이 났다.
우커커어어.
내 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한 마리를 깔끔하게 박살내고 유미를 돕기 위해 고개를 돌려보니 이미 상황은 끝나 있었다. 언제 들었는지 유미의 손에는 프라이팬이 들려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손잡이 없는 프라이팬으로 좀비의 머리통을 기계적으로 내려치고 있었다.
퍽!
팍!
콰득!
좀비의 머리통이 마늘이라도 되는 것처럼 찧고 있었다. 사방으로 뇌수와 건더기들이 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내리치고 있었다. 종치는 시계탑 인형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좀비의 머리통 부분을 다지는 유미였다.
“그만해!”
머리통 다지던 소리가 뚝 끊기며 유미가 고개를 돌렸다.
내려치기 위해 머리 위로 치켜들었던 프라이팬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툭. 다져진 좀비 머리통 위로 떨어진 팬이 둔탁한 소리를 냈다.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보는 유미의 시선은 텅 비어 보였다.
“......”
“......”
그 공허한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눈을 돌릴 수 없었다. 그 생기 있던 눈동자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둔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잠깐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유미의 얼굴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볼을 타고 흐르고 있는 눈물이 그제야 보였다.
뭐라 형용하기 힘든 얼굴로 울고 있었다. 그 하얀 얼굴이 좀비의 검붉은 핏방울이 튀어 문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번져있었다. 툭! 쥐고 있던 둔기를 던지고 두 팔을 벌리자, 눈물을 흘리며 날 쳐다보던 유미가 내 품에 뛰어들듯 안겼다.
토닥토닥
어두침침한 모텔 복도에 흐느끼는 소리와 등을 토닥이는 소리가 섞여들었다.
*
유미를 어느 정도 진정을 시켰으니 빨리 움직여야 했다.
“헬기가 다시 올 거다.”
무장 세력이 그냥 포기할 가능성은 없었다. 유미가 어떻게 아냐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안아주고 진정시켜 준 것이 효과가 있었다.
“옥상 밖에 변종인지 저격수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우리를 노리는 게 있어.”
“......”
“모텔에 돌아다니던 좀비들은 헬기 소리와 기관총 소리를 듣고 계단으로 몰렸으니까, 혹시라도 방안에 있는 놈들만 주의하면 옆 건물로 넘어갈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옆에는 전부 빌딩이었잖아요. 유리도 두껍고 거리도 제법 먼데요?”
“어떻게든 이쪽에서 뚫고 들어가야지.”
건물을 뚫고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유미가 리볼버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거로 깨려고요?”
“헬기가 그렇게 난장판을 쳤으니 주변에 올 놈들은 다 왔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총은 쓰지 않는 게 좋겠지.”
일반좀비들이야 물량이 쌓일 대로 쌓였으니 여기서 더 쌓인다고 해서 변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변종이나 빗치가 문제였다. 총소리에 반응해 그 놈들이 움직인다면 위험했다.
“총을 쓰는 건 최악의 상황에서다.”
모텔과 가까운 빌딩 사이의 거리가 제법 멀었기 때문에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저쪽으로 어떻게 갈 생각이에요?”
“이걸 써봐야지.”
둔기를 전선으로 꽁꽁 묶은 것을 흔들어 보였다. 25kg이 넘는 둔기라면 15~17m 가량 날아가더라도 충분히 힘을 받을 것이다.
“일단 수색부터 하고.”
뒤에 위험을 남겨두는 건 모자란 짓이었다.
*
수색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사태가 발생한 뒤에도 모텔에 숙박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모텔에 사람이 있었네요.”
유미가 당혹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뭐 각자 취향이 있으니까 말이지.”
슈팍! 유미가 쏜 석궁 볼트가 침대 옆에서 나체로 골골거리고 있던 좀비의 머리통을 관통했다. 좀비의 몸이었지만 나체는 나체였다. 유미의 인상이 살짝 찡그려졌다. 어쨌든 모텔 방에 혼자 있었을 리 없었다.
“장전해. 아마 하나 더 있을 거야.”
“예.”
끼익-약간 뻑뻑하기까지 한 석궁을 간단하게 재장전 한 유미가 화장실을 열어보려고 했다. 위기감응이 발동하지 않는 것을 보니 딱히 위험한 게 들어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쾅! 문짝이 부서지도록 화장실 문을 연 유미가 정면을 향해 석궁을 겨누고 즉시 방아쇠를 당겼다. 푹- 수박에 젓가락 박히는 소리와 함께 좀비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숙련된 사수처럼 보였다.
“와- 정말 늘었는데? 한 방에 잡은 거야?”
“네-”
내 칭찬에 부끄러워하면서도 기뻐하는 유미였다.
*
객실은 모텔 특유의 폐쇄적인 구조였다. 소방법 때문에 창문을 완전히 폐쇄하는 것은 불법이었지만 도심 속에 있는 모텔이었기 때문인지 슬라이딩도어로 창문을 막아놓은 구조였다. 게다가 창문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두꺼운 암막커튼을 옆으로 걷어내고 슬라이딩 도어를 열자, 작은 창문이 나왔다.
“여기도 먼데요?”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유미가 창문 밖을 살피며 말했다.
“그러게. 그래도 이쪽이 제일 가까운 것 같은데?”
“저쪽 빌딩에서 내려다 봤을 때랑 많이 달라 보여요.”
저쪽 빌딩에서 주변을 살폈었던 것을 떠올려봤다. 대충 기억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대충이었다. 갑자기 헬기가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저 빌딩 뒤쪽에 뭐가 있었는지 기억나니?”
“음- 그러니까 빌딩이었던 것 같은데요?”
“낮은 건물들이 있지 않았고?”
유미가 고개를 갸웃 했다.
“그런가요?”
“뭐 상관없겠지.”
어쨌든 당장 이동해야 할 판이었다. 일단 안전하게 저쪽으로 넘어간 뒤, 다시 방향을 잡는 게 나았다.
“앞으로는 근방 약도라도 그려놓자.”
“네.”
전선을 들고 붕붕 돌리는 것보다 투창을 던지듯 던지는 것이 더 힘을 받는 것 같았다.
“이야야아아앗!”
콰득!
묵직한 둔기가 전선을 매단채로 17m 가량 떨어진 빌딩의 통유리를 깨고 안으로 들어갔다. 전선을 살살 잡아당기고 흔들면서 둔기가 사무실 집기에 걸리도록 했다.
덜컥-손에 느껴지는 감각. 나쁘지는 않았지만 내 몸무게를 버틸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몸무게가 가벼운 사람이 먼저 건너가야겠다.”
“알겠어요.”
7층 높이에서 떨어지면 치명상을 입을 텐데 유미는 내 말에 즉답했다. 길거리에 바글거리는 좀비들을 감안했을 때 떨어지면 그걸로 끝이었다.
“이거 허리에 묶자.”
“예?”
전선을 유미 허리에 따로 묶으며 말했다. 허리가 정말 가늘었다.
“위험하지 않게 말이지.”
“고마워요.”
유미의 허리를 묶은 전선 반대쪽을 내 허리에 묶었다. 유미는 그걸 물끄러미 바라봤다.
“들어가면 묶을 생각부터 하지 말고 안에 있는 좀비들부터 잡을 생각을 해.”
“네.”
“안전이 최선이다. 알았지? 굵은 전선을 기둥이나 튼튼한데 묶고 나면 이걸 두 번 당겨. 그럼 바로 건너갈게.”
유미의 허리에 따로 묶은 얇은 전선을 두 번 잡아당기며 말하자 유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어머니처럼 잔소리를 해댔는데, 내 잔소리가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유기가 건너편으로 넘어가기 위해 막 전선위로 몸을 싣는 순간, 낮은 프로펠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헬리콥터 소리가 확실했다.
“빨리 가.”
“예.”
그나마 7층에서 6층을 향해 연결된 전선이라 경사가 있었다. 경사를 이용해 스르륵 하고 미끄러져 내려가는 유미였다. 건너편에 도착하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작게 뚫린 유리창 구멍으로 석궁을 쏘기 시작했다.
유미가 부지런히 석궁을 재장전 해서 안쪽을 정리하는 것이 보였지만 내 마음은 다급해졌다. ‘빨리. 빨리.’
전선에 매달려 둔기가 뚫고 들어간 구멍으로 석궁을 쏘아대던 유미가 리볼버를 거꾸로 쥐고 유리창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좁은 구멍을 넓히는 것이었다. 이윽고 그녀의 모습이 안으로 쏙 들어갔다.
두두두두- 근처까지 왔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헬기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빨리 건너편으로 넘어가 다시 다른 곳으로 도망쳐야 하는데 시간을 끌면 무장 세력이 다시 따라 붙을 가능성도 있었다. 건물과 건물을 타고 도망쳐야 하는 데 꼬리를 잡히면 그걸로 끝이었다. 전선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헬기에서 쏘는 기관총탄에 벌집이 될 것이다.
유미의 허리를 묶은 가느다란 전선이 당겨지기만을 기다렸다. 손에 식은땀이 났다. 유미가 짐을 전부 내려놓고 무기만 들고 갔기 때문에 식량과 같은 짐들을 내가 전부 챙겨가야 했다. 커튼을 찢어 만든 보자기에 유미가 들고 다녔던 짐까지 전부 묶어 어깨춤에 꾹 묶은 채로 대기했다.
‘당겨라. 당겨.’
헬리콥터는 잠시 주변을 한 바퀴 돌더니 이윽고 옥상 위에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다시 강습을 할 요량으로 보였다. 이 상황에서 스펙의 보조를 받는 특수부대급과 싸운다면 이길 자신이 없었다.
“빌어먹을.”
옥탑방을 수색하고 이곳까지 내려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15분? 그 동안 저쪽으로 건너 간 뒤 다시 도망을 쳐야 했다. 끼등- 찌그러진 금속 문짝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진입한 것이었다.
“당겨라. 빨리 당겨.”
손에 꼭 쥐고 있는 가느다란 전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혼자 도망친 건가?
아니면
유미가 감당하지 못할 뭔가가 저쪽에 있다는 건가?
넘어가는 걸 포기하고 싸워야 하나?
“젠장!”
가슴 언저리에서 시작된 묵직한 기운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내려와서 객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석궁? 아니 지금은 권총이 더 나았다. 어차피 시작하면 서로 쏴댈 것이 분명했다.
사박-가벼운 발걸음 소리. 소리를 확연하게 죽인 발걸음 소리가 반쯤 열린 문 밖에서 들렸다. 끼이이익- 옆방의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은 여기였다. 양손에 리볼버를 들고 문을 향해 겨눴다. 위기감응이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쑤욱-하고 가느다란 전선이 잡아당겨졌다. 두 번 당기라는 했던 것을 떠올 릴 새도 없이 그대로 창문 밖으로 내달렸다. 굵은 전선이 휘청하며 아래로 축 쳐졌다가 팽팽해지며 몸이 죽 미끄러졌다.
“어?”
유미의 허리를 감았던 전선 반대쪽을 내 허리에 묶어뒀었다. 유미가 중간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전선이 마치 낚싯줄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물고기를 낚는 것 마냥 날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쑤우우우욱-
쭉 내려가자 무거운 짐 때문에 중간쯤 살짝 멈췄던 몸이 빌딩 안쪽으로 끌려들어갔다.
“어? 어?”
유미는? 창문 쪽에 유미가 보이지 않았다.
위기감응이 발동됐다. 심장이 너무 짓눌리는 것 같아 온 전신이 마비될 것만 같았다. 고개를 들자 헬기가 이쪽으로 서서히 방향을 돌리고 있었다.
중기관총의 총구가 겨눠지는 순간 벌집이 될 것이다.
“잡아당겨!”
보이지 않는 유미에게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