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스트 DUST-60화 (60/261)

각인 (1) ●

내 품에 안긴 유미는 그저 떨고만 있었다. 유미가 느끼는 공포가 마치 떨림으로 변한 것 같았다. 이 경련에서는 확실히 공포의 냄새가 났다.

자신이 괴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냉정하게 쳐다봤던 내 눈빛을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다. 그 놈을 죽인 뒤 자신을 쳐다봤던, 내 시선과 목소리를 회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버릴까? 죽여야 하나? 어떻게 할까? 내 생각을 유미는 본능적으로 직감해 버렸는지도 몰랐다. 같이 있던 사람이 자신을 버리거나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그녀에게 남은 것이 무엇일까? 아마도 공포일 것이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혼란스러움. 나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 모든 것이 뒤범벅된 채, 늪지에 조금씩 삼켜지는 사람 같았다. 그렇게 유미는 자신이 느끼는 절망적인 감정을 온몸으로, 떨림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하아-”

“흐흐흐흑...”

놈의 말을 믿는다면, 조금이라도 위험의 기미를 없애버리려면 버리거나, 죽이는 게 맞았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혼자 살아.’ 버리고 죽이기만 한다면 남는 것은 나 혼자 밖에 없을 것이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흐으으으윽. 흐으윽...”

유미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울었다. 두려움과 자기혐오, 거기에 원망이 뒤섞인 채 유미는 그저 눈물을 흘렸다. 나는 가늘게 흐느껴 떠는 유미를 꼭 끌어안았다. 그 진동을 멈추게 하려고 했던 행동이 유미를 안정시키기보다 소용돌이치던 내 상념을 가라앉혔다.

복잡한 심사 때문인지 자연스러운 행동인지 모르겠지만 유미를 안았던 팔에서 힘이 빠졌다. 그녀를 꽉 끌어안았던 팔을 느슨하게 풀리자, 그녀가 와락 나를 끌어안았다.

마치 내가 자신의 정체성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 나를 껴안았다. 얼굴을 내 가슴에 파묻은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기울였다.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눈동자에 내 얼굴이 반사됐다.

그녀 눈동자에 반사된 모습이 보기 싫어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차가운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내 차가운 심장이 덜컥거리는 것과는 달리 유미의 심장소리는 무언가에 불타오르는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뜨겁고 열이 났다. 그 열기가 얇은 천을 뚫고 그대로 전해졌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목소리를 부정하는 것처럼 내 품에서 흔들리고 있는 불꽃에 입을 맞췄다.

뜨겁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불이 붙었던 입술을 떼자, 저절로 탄식 같은 한숨이 나왔다. 꼬옥-허리에 느껴지는 감각 유미의 두 팔이 내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아직 안전하지 않았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투두두두두

헬리콥터가 주변을 배회하며 주변을 두들겨 대고 있었다. 놈들이 그냥 추격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었다. 그렇다면? 곧 이쪽으로 넘어올 것이 분명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뜨겁게 데워지던 공기가 싸늘하게 식어갔다. 후-깊게 심호흡을 하고 허리를 감은 얇은 팔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유미의 팔은 포승줄이라도 된 것처럼 나를 꽁꽁 엮어 들어왔다.

“놈들이든 변종이든 곧 이곳으로 올 거다. 벗어나야 해.”

“......”

크워어어어.

허름한 바리 케이트 건너편에서는 좀비들의 공허한 울음소리가 들렸고 뜯겨진 문짝 바깥에서는 헬리콥터 소리와 중기관총이 불을 뿜는 소리가 뒤섞여 공기를 울리고 있었다.

*

투두두두두

낮은 프로펠러 소음이 조금씩 작아졌다. 헬리콥터의 소리가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20분 넘게 중기관총을 쏴댔으니, 탄약 문제든 아니면 강하한 팀들에게 문제가 생겼든 더 버티지 못할 이유가 생겼을 것이다.

변종이든 빗치든 그것들과 무장 세력이 충돌했고 무장 세력이 떠났다. 운이 좋다면 둘 모두 이곳에서 사라졌겠지만 운이 나쁘다면 변종이나 빗치를 뚫고 가야했다. 가만히 상황을 파악해 보고자 정신을 집중했다.

서서히 멀어지는 총소리와 헬리콥터 소리는 어느덧 나를 과거로 인도했다.

정신과 의사는 고등학교 시절 내가 겪었던 그 사건을 과대망상의 일종이라고 평가했었다. 군복무를 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신과 진료상담기록과 편모가정이라는 딱지로 면제를 받고 싶지 않았다. 건강한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당연히 가야한다는 생각에 군대에 갔다.

그렇게 들어간 군대. 국방부 시계는 순조롭게 움직였다. 그 녀석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 녀석은 소심했다. 어딘가 주눅이 든 것 같은 표정. 부자연스러운 행동. 손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라는 신병이었다. 어차피 나는 말년이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신병은 남은 부대원들에게 스트레스를 줬다.

‘이번에 들어온 고문관 새끼 빠져가지고.’

‘요즘 군대 참 좋아졌어.’

‘내가 이등병 때는 각 잡고 살았었는데...’

‘군기 좀 잡아라.’

‘보이 스카우트 캠핑장이냐?’

스트레스는 해소할 곳이 필요해지기 마련이다. 신병으로 인한 스트레스인지, 갑자기 갈구는 간부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인지. 군대라는 폐쇄된 세계가 주는 압박감 때문인지 모를 그 스트레스는 자연스럽게 약자를 향해 분출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서히 부대에서 신병은 고립됐고 침묵이라는 암묵적 동의 속에서 곪아가기 시작했다. 서서히 죽음의 감각이 나를 짓눌렀다. 간부들에게 후임들에게 말을 했지만 내일 모레 전역하는 말년의 말은 그저 애들 갈구지 말라는 덕담 정도로 취급됐다.

그 결과 남은 것은 참사였을 뿐이었다.

끼이이익--

크워어어어-

바리 케이트를 흔들며 계단 아래에 있는 좀비들이 소리를 냈다. 재생되던 회상이 툭 끊기며 현실로 돌아왔다. 그 때 누군가 끝까지 믿어주고 힘이 돼 줬었다면, 말을 들어줬었다면. 조금 더 관심을 보였더라면 참사는 피할 수 있을지 몰랐다.

후- 작게 심호흡을 하며 슬쩍 유미를 바라봤다.

머릿속에서는 그 놈과 대화했던 말이 떠올랐다.

유미가 빗치거나 빗치가 될 보균자라면 지금 내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방향이 결정될 수 있었다.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거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빗치를 척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으니, 헬리콥터는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이 분명했다. ‘정말 척살하기 위한 걸까?’ 의심 가는 부분이 여럿 있었지만 일단은 돌아가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앞으로 살아남으려면 유미 정도로 힘이 센 인력은 필수였다. 맨홀뚜껑을 막아섰던 그 모습, 간혹 흔들리는 모습도 보였지만 결국엔 내 말을 믿고 따라온 유미였다. 믿으려면 끝까지 믿어야 했다. 믿음에 대한 책임은 오롯하게 나에게 있었다. 믿자-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확신을 줘야 했다. 믿음을 보여줘야 했다.

“밖을 확인할 테니까 바리 케이트 쪽을 살펴.”

“네.....”

유미는 눈물을 소매로 슥 닦으며 대답했다.

옥상으로 올라가 비상구 앞에서 밖을 관찰했다. 중기관총이 휩쓸고 간 옥상은 여기저기 구멍이 뻥뻥 뚫려있었다.

언제 나가는 게 좋지? 지금? 아니면 조금 있다?

감각은 침묵하고 있었다. 세상이 엉망이 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몇 시간에서 며칠 뒤에 벌어질 위험 사태를 경고하던 감각이, 변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멀쩡히 잘 느껴지다가 왜?’

펜트하우스에서 나온 뒤로 거의 매일 죽음과 맞닿아 있는 상황이다 보니, 내 능력이랄까? 감각도 변하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더 변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다시 집중했다. 비상구 밖은 고요했다.

옥상으로 나가 인근 빌딩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 제일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만 방금 전까지 헬기가 떠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에 중기관총을 쉼 없이 거의 20분 가까이 쏴댔기 때문에 엄청나게 시끄러웠다.

그 소음에 이끌린 좀비들로 길거리가 북적거릴 것이 뻔했다. 그러니 빌딩에서 관찰했던 탈출루트는 엉망이 됐을 것이다.

몰려든 좀비들을 감안하면 도로를 이용해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 미리 봐뒀던 탈출로도 무용지물. ‘어쩐다?’ 밖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서라도 일단 옥상으로 나가야 했다. 옥상으로 나가려고 하는 순간, 가슴에 돌덩어리라도 올린 것처럼 묵직한 압박이 느껴졌다.

막 밖으로 내딛었던 발걸음을 돌려 안쪽 어둠으로 몸을 숨겼다. 헬기는 확실히 떠났다. 그럼에도 감각은 분명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변종인가? 아니면 저격? 입구를 노리고 있는 건가?

상황이 미묘해졌다. 옥상으로 나가야 주변을 살필 수 있었고 옥상을 통해 이동을 하려고 했는데 밖에는 뭔가가 있었다. 우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무장 세력이든 변종이든 간에 위기감응이 발동된 것을 보면 피하는 것이 좋았다.

‘감각이 변한 건가?’

위험을 감지하던 감각이 살기에 반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필이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계단을 막아 놓은 바리 케이트 건너편을 가만히 살폈다. 위기감응이 발동되지 않았다. 좁아터진 계단에 몰려있는 좀비만도 40마리는 넘어 보였다. 그런데도 위기감응이 발동되지 않고 있다니 이 능력도 제대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옥탑방으로 돌아가자 유미가 바리 케이트를 보고 앉아 있었다. 멍하니 건너편을 쳐다보고 있던 유미가 고개를 들어 날 쳐다봤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분위기가 변한 것 같았다.

“마음은? 좀 정리됐어?”

“아? 예... 네...”

분위기가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인가? 유미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도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마음을 어느 정도 정리한 것처럼 보였다. 강한 아이였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나라도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이라고 믿었던 자신이 괴물이거나 괴물로 변할지 모른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럼에도 유미는 뭔가를 다짐한 것처럼 보였다.

고개를 끄덕여 잘했다고 대견하다고 말없이 칭찬해줬다.

그러자 유미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돌았다. 단순히 눈을 마주치는 것을 넘어 다시 달라붙을 것만 같았다. 처음 들었던 느낌은 아니었지만 변하기는 한 것 같았다. 생기로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건 조금 무안했다. 목이 칼칼해졌다.

“큼- 옥상으로 가려고 했는데 위험하네. 어쩔 수 없이 계단에 있는 좀비들을 처리하고 7층으로 내려가야겠어. 일단 7층으로 내려간 뒤, 옆 건물로 이동하자.”

“알겠어요.”

그래도 석궁이 있으니 볼트를 아까지 않고 쏴댄다면 일반좀비를 정리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였다. 역시 시간이 문제였다. 석궁을 장전하며 말했다.

“그럼 바로 처리하자.”

“네.”

*

계단에 밀집된 붕어빵처럼 끼여 버둥거리는 좀비들의 머리통에 석궁의 볼트가 틀어박혔다.

팍!

크워어어어

볼트 한 방에 무력화 되는 놈이 있는가 하면 한 방으로는 끄떡없는 놈도 있었다. 볼트의 숫자가 70~80발 사이였기 때문에 한 마리당 두 발 이상 소모하면 밖으로 뛰쳐나가야 했다.

“다 쐈어요.”

볼트를 다 쐈음에도 7마리가 멀쩡했다. 게다가 계단 아랫부분에 있는 놈들은 쓰러진 다른 좀비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별로 좋지 않았다.

좀비가 다른 좀비를 뜯어먹는다니, 동면 좀비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일반좀비들도 다른 좀비를 뜯어먹는 것 같았다. 동면좀비들이 다른 좀비를 먹고 빨라졌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냥 두기 찜찜했다.

“어차피 내려가려면 저것들 처리해야 해. 저것들이 시체를 먹고 팔팔해지기 전에 처리하는 게 좋겠어.”

“화살이 없는데요?”

“내려가서 두들겨 패야지. 당장 근거리 무기가 없다는 게 문제네.”

리볼버가 있었지만 그걸 쓰면 모텔 안쪽에 있는 좀비들을 전부 유인하는 꼴이 됐다. 그러니 소리가 작은 무기를 써야 했다. 둔기처럼 묵직한 것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여자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옥탑방에는 무기로 쓸 만한 것이 없었다.

언제 만들었는지 유미가 대걸레 자루에 부엌칼을 테이프로 감아 붙인 창을 들었다. 일반좀비라고 하더라도 인간과는 달리 살도 질기고 제법 단단했다. 어설프게 만든 걸로는 위험했다.

“위험해, 내가 가서 처리할 테니 너는 촉이 상하지 않은 볼트를 챙겨서 지원해줘.”

좀비들의 머리통에 박힌 볼트를 재활용해서 쓰라고 했다.

“이거 프라이팬으로 안 될까요?”

유미가 급조한 창을 내려놓고 통짜 스테인리스로 된 프라이팬을 들며 말했다. 단단하고 묵직해 보였다. 나쁘지 않았다.

“창보다는 차라리 그게 좋겠다. 다행히도 저 놈들이 먹는데 정신이 팔렸으니까, 한 번에 치고 나간다. 잡히지 않게 조심해.”

“네.”

일반좀비는 전체적으로 보면 느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었다. 우선 동면괴물좀비와 마찬가지로 먹이가 가까이 있으면 순간적으로 움직임이 빨라지는 경향이 있었다.

동면좀비가 해동되어 팔팔하게 변했을 때보다는 전반적으로 느리고 약했지만 좀비특유의 완력이 있었고 무엇보다 숫자가 많았다. 성인남성보다 강한 완력의 좀비들이 숫자까지 많다면? 결코 만만하게 볼게 아니었다. 일반좀비들은 조금 느린 움직임을 숫자로 커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포위당하지 않게 조심하고.”

끄덕-

“좋아 간다. 3. 2. 1. 지금!”

우지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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