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4) ●
파파파파팍!
가죽을 찢고 뼈를 부술 것만 같은 총소리가 다가왔다. 중기관총에 들어간 12.7mm짜리 탄환이 묵직하게 소리를 내며 옥상을 곰보로 만들었다.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옥상이 마치 비스킷으로 된 것처럼 바스러지며 먼지를 풀풀 날렸다.
서서히 다가오는 살의를 피하기 위해 그저 내달렸다.
“뛰어!”
앞에 보이는 옥상 출입구를 향해 몸을 던졌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문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우그러들며 버텼지만 결국엔 원터치 캔의 뚜껑이 따지는 것처럼 열렸다. 밝은 밖에 있다 빛이 없는 공간으로 들어가니 일순간 앞이 흐릿해 졌다. 눈이 좋아진 만큼 민감해졌기 때문인지 이럴 때는 난감했다.
뜯겨진 문짝 밖에서는 밝은 태양빛이 들어오고 비상구 안쪽은 창문하나 없이 어두운 공간이었다. 급변하는 밝기에 적응하기 위해 동공이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앞에 있는 사물이 일그러져 보였다. 초점이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눈이 적응하고 제대로 반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5초? 3초? 짧은 순간이었지만 좀비들이 공격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워어어어
“젠장!”
25kg짜리 둔기를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휘둘렀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 걸렸다! 진흙으로 만든 토기가 깨지면서 만든 감각이 두툼한 철근 손잡이를 타고 올라왔다. 기세를 살려 사방으로 둔기를 휘둘렀다.
뼈가 뭉개지고 으깨지는 소리, 훅-풍기는 역한 피 냄새가 피어올랐다. 동시에 사방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엉성한 바리 케이트가 앞쪽에 만들어져 있었다. 바리 케이트 건너편에서 좀비들 소리가 들렸지만 일단은 괜찮아 보였다.
투두두두둑!
타다다다닥!
등 뒤에서는 요란한 북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뜯겨진 문짝 옆으로 다가가 밖을 보니 눈이 시렸다. 밝은 태양광 아래 유미가 필사적으로 뛰고 있었다.
“빨리 들어와!”
유미가 낙법을 하듯 몸을 앞으로 굴러 중기관총의 사선에서 벗어난 뒤 이쪽으로 오려하자 중기관총과 다른 총소리가 유미의 진로를 막았다.
중기관총으로는 타격을 입히고 소총으로는 중기관총의 사선에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몰이 사냥이나 마찬가지였다.
유미가 이리저리 몸을 틀며 피했지만, 비상구까지 다가오는 데 실패하고 있었다. 적들이 끈질기게 견제했기 때문이었다.
견제사격 때문에 이쪽으로 오지 못하고 다시 옆으로 돌자, 잠시 과녁을 놓쳤던 중기관총이 다시 유미를 노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위험했다. 벌써 유미의 전신은 땀과 시멘트가루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저렇게 뛰어다니다 중기관총에 한 방이라도 걸리면 그걸로 끝이었다.
“중기관총만 피해! 큰 것만 피하고 작은 것은 그냥 맞아!”
“......!”
파파팍- 소총탄이 유미의 몸을 두들겼다. 유미는 이를 악 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 소총은 그냥 맞아! 맞아도 무시해! 들어와!”
유미도 감각이 발달했으니 큰 것과 작은 것을 구별할 수는 있을 것이다. 피부가 변종이나 빗치처럼 질기지 않았기 때문에 소총도 위험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소총은 회피하는 유미를 노리지 않고 오직 이쪽만 겨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곳으로 들어오려면 총에 맞을 것은 확실했다. 그저 탄이 깨끗하게 관통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총열을 가는지 잠시 사격이 끊긴 순간 유미가 이쪽을 향해 내달렸다. 소총은 유미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악착같이 불을 뿜어댔다. 내달리던 유미의 몸이 순간 경직됐다.
잠시 경직됐던 몸뚱이를 전기가 흐르는 채찍으로 때린 것처럼 펄떡이며 유미가 몸을 날렸다. 타다다닥!- 타깃을 놓친 소총소리가 짜증스럽게 입구 주변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괜찮아?”
“아-으-아...”
이쪽 방향만 노리고 있었던 소총이었기 때문에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유미는 3발이나 맞았다. 허벅지 바깥 부분을 맞은 것은 깨끗하게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등에 맞은 두 발이 문제였다. 두 발 모두 척추와 갈비뼈가 연결된 부분을 때린 것 같았다.
일반인이라고 하더라도 5.56mm 탄이 뼈를 때리면 뼈와 부러뜨리면서 탄이 깨진다고 들었다. 뼈에 맞지 않고 살에 맞아도 마찬가지, 배에 맞으면 뱃속을 휘젓거나(tumbling) 탄이 깨진다고 했다. 말로만 들었던 일이었는데 정말 탄이 깨진 것 같았다.
짐작은 됐지만 상처를 제대로 살펴야 했다. 파편은 빼주는 것이 좋았다. 지속적으로 칼로리를 소모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학...학... 아저씨...”
유미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고작 몇 분 동안 옥상을 이리저리 뛰며 총탄을 피했을 뿐이었지만 목숨을 걸고 움직였기 때문에 에너지소모가 극심했던 것 같았다. 마지막 뛰어들면서 맞은 것은 소총탄 3방이었지만 그 전에도 12.7mm탄이 스치거나 소총탄을 맞기도 한 것 같았다.
“일단 상처를 살피자. 탄환은 모르지만 눈에 보이는 파편은 뽑아내야겠어.”
“......”
넝마가 된 윗도리를 벗고 눕게 했다. 급속재생 때문인지 외부로 보이는 상처는 아물어 버렸다. 유미의 척추 근처를 때린 탄환이 깨져나가면서 척추 주변에 검은 멍처럼 퍼져있었다. 죽은 놈이 가지고 있던 가방에서 구급함을 꺼냈다. 손톱손질하게 생긴 작은 상자에 이것저것 들어있었다.
‘메스가 이렇게 생겼었나?’
개별포장이 된 메스의 날과 플라스틱으로 보이는 대가 들어있었다. 포장을 뜯어 날을 끼우자 나무젓가락에 옛날 구형 면도기 면도칼을 달은 것만 같았다. 메스를 들고 한쪽에는 작은 일회용 주사기를 들었다.
“진통제가 있는데, 모르핀(morphine)이다.”
급속재생능력이 있는 것이지 통각은 그대로기 때문에 진통제가 필요하기는 했지만 이게 자살용 모르핀일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사용하기가 꺼려졌다. 스펙이 있는데 모르핀이 따로 있으니 그쪽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잠깐 흔들린 마음을 추스르고 담담하게 말했다.
“모르핀이라고 적혀있지만 뭐가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모르는 것을 쓰기는 위험하니까. 그냥 꺼내는 게 좋겠다.”
칼로리 소모가 극심했는지 유미의 뱃속은 꼬르륵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공허한 울림을 들을 때마다 신경이 예민해졌다. 나도 모르게 이를 꽉 깨물었는지 턱에서 찡한 느낌이 들었다. 후-가볍게 숨을 쉬고 집중했다. 생수를 유미의 환부에 붓자,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 속에 박힌 파편 조각들이 드러났다.
“시간이 없으니까 참아.”
건조한 목소리로 유미에게 말했다.
“읏-!”
스윽-다행히도 메스는 엄청나게 날카로웠다. 수십 조각으로 깨졌으면 포기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다행히도 조각이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꺼낼 수 있었다. 척추와 갈비뼈 사이에 탄을 맞은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아프다고 몸부림 칠 줄 알았는데 유미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잘 참았다.
꼬르륵.
꼬르르륵
유미의 뱃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이거 입고, 먹도록 해.”
파편을 빼는데 7분에서 10분 정도 소모를 했다. 그 정도라면 우릴 추격하던 놈들이 헬리콥터로 돌아가 다시 이쪽으로 올 시간이었다. 그런데 오지 않고 있었다. 밖에서는 계속 총소리가 들리고 있는 것을 보니, 변종이든 빗치든 무엇인가와 교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다행인가?’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다행이 아닐 수도 있었다. 변종이든 빗치든 저들끼리 싸우는 동안 어찌됐든 빨리 벗어나는 것이 좋았다. 옷을 제대로 입지도 않고 허겁지겁 먹고 있는 유미를 보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유미와 내가 들어온 좁은 복도에는 엉성한 바리 케이트가 쳐져 있었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이쪽에 있는 좀비들은 3마리였다. 내가 뛰어들면서 셋 모두 작살을 냈었다. 좀비로 변하기 전에 이 셋이 엉성한 바리 케이트를 친 것으로 보였다.
‘모텔에 있던 사람들이 좀비로 변했고 이들은 옥상으로 도주하다 근처에 있는 집기를 가져와 바리 케이트를 쳤다?’
구조가 특이하기는 했다. 옥상으로 연결된 문 바로 양 옆은 옥탑방으로 향하는 문이 있었다. 그러니까 옥탑방에 있는 집기들로 계단을 막아 바리 케이트를 친 것이었다. 유미가 먹고 회복을 하는 동안 나도 육포를 입에 넣고 씹은 채, 옥탑방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안쪽에는 식량도 없었고 커다란 원룸처럼 생긴 구조였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상한 음식이 들어있었다. 찬장 안에는 라면과 컵라면 류가 제법 남아있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라면들이었지만 박스채로 가득 있는 라면과 컵라면이라니 식량이 남아있는데 이걸 다 먹지도 못하고 일반좀비가 됐다는 소리였다. 아마도 감염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당한 것 같았다.
“아저씨...”
허기를 면한 유미가 컵라면을 상자 째 묶고 있는 나를 불렀다. 그녀의 눈동자는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군인이라고 말한 자들이 총을 쐈다는 것에 유미는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큰 정신적 충격보다 허기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정신없이 먹었지만 허기가 어느 정도 채워지고 나자 방금 전에 있었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밖에서는 중기관총의 총성이 끝없이 울리고 있었다. 바리 케이트 밖 계단에 바글바글한 일반좀비를 뚫고 나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저들도 이곳으로 오기란 쉽지 않았다. 말을 하려면, 더 늦추는 건 좋지 않았다. 유미는 꾹 참고 내가 하는 말을 기다렸다.
“놈이 말한 게 사실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다.”
“......”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보다는 유미를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유미와 나는 거의 동시에 모텔 옥상으로 뛰어내렸다. 하지만 몸을 날리는 순간 소총과 중기관총은 나보다 유미를 견제했다. 옥상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나를 노리기보다, 유미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데 주력했다.
“확실한 것은 저들이 너를 노리고 있다는 거야.”
“예? 어째서요?”
“놈의 말대로라면 너는 변종바이러스의 숙주이거나 아니면 빗치라는 괴물이 될 위험인자이기 때문이지.”
“......”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함정도 그렇고 질긴 추적도 그렇고...”
“그게 무슨 말이죠? 나... 전... 사람이잖아요. 예?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우... 우리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유미의 눈동자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이래서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인외에 대해 꿈을 꾸는 몽상가적인 기질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치명적이었다. 나도 내 상황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미의 마음을 추슬러주기란 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었는지 몰랐다.
“그래. 하지만 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무슨 소리에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죠?”
말주변이 이렇게 없었나? 상처 받지 않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군인이라는 말에 잠시 흔들렸던 유미가 떠오르자 지쳤다. 어쩐지 조금 지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했으니 어떻게든 일단락을 져야 했다.
“빗치는 여자들이 변해서 된 특수한 변이체를 말하는데, 빗치가 많아지면 변종이 늘어나기 때문에 빗치를 반드시 죽이려고 한다고 해.”
“그... 그럼... 제가... 아니죠? 그건 아니죠?”
빗치가 아닐 거라고, 아직은 위험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속였었지만 입 밖으로 내뱉는 것과 동시에 유미가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랬구나. 나는 유미를 약간이나마 꺼려하고 있었다. 쓴 웃음이 나왔다.
내 앞에 있는 것은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여고생이었다. 그 여고생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어떤 시선일까? 차가운 시선? 두려운 시선? 순간 바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은 일순 처연한 표정으로 변한 인아의 모습으로 변했다.
유미가 빗치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혐오감 어쩌면 빗치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우리라는 말에서 나는 너 같은 빗치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감정이 마음속을 헤집는 느낌이었다. 내 눈동자는 어떤 모양일까? 나는 어떻게 유미를 바라보고 있을까?
와락-
유미가 나를 보지 못하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내 가슴에 유미의 얼굴을 파묻을 기세로 끌어 안았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괜찮아. 괜찮아.”
내 품에 안긴 유미가 파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