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2) ●
근방에 다른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이곳에 잠시 머물면 일반좀비가 꼬일 가능성이 있었다. 꼬이는 이유가 유미의 페로몬 때문이든 아니면 인간이 가진 특유의 체취이든 무엇이든 간에 일반좀비가 꼬이면 이곳에 누군가 있다는 것이 들통 날 것이다. 그건 피해야 했다.
박스 테이프로 틈을 막고 스프레이 파스로 좀비들의 후각을 교란시키고자 했다. 지하 1층 다목적 홀에서 동면 좀비들이 시체를 뜯어 먹고 해동됐던 것을 떠올려 보면 이렇게 하는 것이 맞았다.
유미가 냄새를 지우는 동안, 계단으로 위를 올라갔다. 아쉽게도 계단의 비상구가 잠겨있었다. 꼭 문을 뜯고 들어가 안쪽에서 먹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계단에 앉아 먹기로 했다.
우걱우걱
씹는 소리가 텅 빈 계단을 울렸다. 유미는 먹으면서도 뭔가를 묻고 싶은 게 있는지 내 눈치를 살폈다.
“눈치 보지 말고 말해.”
“......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그 놈에게 유미가 뭔가를 묻고 싶어 했었다. 유미의 부보님 문제일까? 그러고 보니 유미 두 동생이 배다른 동생이라는 것만 알고 있지 부모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혹시라도 부모나 친척에 대해 묻고 싶었던 것이라면 미안했다.
어찌됐든 생존자 그룹에 그런 전투전문가들이 있다는 건 나름 안전한 피난처가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기절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그 사내는 날 경계하고 나보다 먼저 선수를 쳐 연기를 했다. 피난처의 위치를 묻는다고 대답해 줄 리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너도 봤다시피 우리처럼 일반인이었던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훈련 받은 사람이었어. 죽이지 않았으면 죽었을 거다.”
“...... 예.”
“그 사람에게 뭘 묻고 싶었는데?”
“아니에요.”
유미는 묵묵하게 자기 몫의 즉석식품을 입에 밀어 넣었다. 더 이상 대화는 없었다. 그저 유통기한이 지난 즉석식품을 경쟁하듯 쓸어 담았다. 뭔가 미묘한 맛이 혀끝에 감돌았다.
“생존자들과 접촉하는 것은 피하자.”
“네? 예...”
유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생존자들에게 겁탈 당할 뻔했으니 생존자들과 만나지 않도록 하자는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리고 전투원으로 보이는 사람과 만나 싸워야 할 상황이라면 최대한 거리를 두고 싸운다. 근접전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살을 주고 뼈를 꺾을 각오로 일격에 끝내야 해.”
비장한 목소리에 유미가 놀란 목소리를 냈다.
“예?”
“우리는 완력과 민첩성만 좋아졌지 전문적인 격투기를 배우지는 않았어. 힘이나 민첩만으로 본다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변종보다 훨씬 약하지만, 전투자극제의 보조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아까 같은 직업군인들이 변종보다 더 무섭다. 무기를 이용하고 완력과 속도를 이용해 싸우는 싸움이 아니라면 당하는 건 우리다. 게다가 그 약물도 허투루 만든 게 아니야.”
유미에게 전투자극제, 스펙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
"효과도 중첩되는 것 같았고 완력도 강해지고 통증도 느끼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스펙을 맞고 싸우는 자들을 어설프게 제압하려고 하면 위험해. 우리도 통증을 느끼고 상처를 입으면 순간적으로 위축되는데 약먹은 놈은 전혀 그런게 없었다."
한 명도 짜증났는데 제대로 무장한 집단과 싸운다면 최악이었다. 성인 남성 3배 가량의 완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그 뿐이었다. 전투 경험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방어력이 턱없이 약했다. 재생능력이 있었지만 애초에 상처를 입고 고통을 느끼는 것은 일반인과 비교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변종처럼 피부 자체가 단단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총알이나 날붙이에 대한 방어능력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재생능력이 좋지만 제한된 식량에 의존한다는 측면으로 본다면 결코 만능은 아니었다.
급속도로 재생을 하려면 에너지 소모가 컸다. 싸우면서 상처를 입으면 입는 만큼 식량소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치명상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전신에 구멍이 뚫리고 그걸 재생시킨다고 에너지를 소모하면?
원활한 재생과 전투력 유지를 위해 적절하게 에너지를 섭취해 줘야 하는데 싸우는 도중 에너지 보충을 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에너지 보충 시기를 놓친다면 공복으로 미쳐 버릴지 몰랐다.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이성을 잃는 순간이 최후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알았지? 절대 방심하지 말고 거리를 두고 일격에 끝내야 해.”
“......네.”
이게 현실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전투전문가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는 게 위안이면 위안이랄까? 그런 자들로 구성된 팀이 수십이 넘었다면 서울에 있는 변종들이 토벌됐을 것이다. 그들을 압도할 수 있을 전력이라면 이렇게 좀비들이 활개를 치지 못했을 것이다.
문득 함정에서 만났던 빗치가 떠올랐다. 존재감만으로 공포를 느끼게 했던 그 빗치라면 그 타격조를 몰살시키는 것도 가능할 지 몰랐다.
“더 이상 생포할 필요는 없는 건가요?”
“그래. 저쪽 사람들을 생포해도 제대로 된 정보를 듣기 위해서는 고문을 해야 할지 몰라. 설령 고문을 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정보를 말한다는 보장도 없고. 전투원들로 보이는 자들과는 엮이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정보는... 다른 방법으로 찾아보든지 해야지.”
그 사내의 목에 걸려있던 USB목걸이를 들어올렸다. 모양만 USB가 아니라 확실히 USB로 보였다. 이게 USB고 안에 뭔가가 담겨져 있다면 생존자 그룹에 대한 정보일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 가는 데 까지 가보고, 거점으로 돌아가 USB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하자. 사람에게 정보를 얻는 건, 일단 일반인...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로 보이는 자들과 만났을 때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리고...”
이 말을 해야 할지 어째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나는 멀쩡한데 다른 사람들은 유미에게 발정을 느낀다면?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죽은 놈이 내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해 헛소리를 지껄였을 수도 있지만 사실일 가능성도 있었다.
유미가 변종바이러스의 숙주라면? 바비도 변종바이러스의 숙주였다면? 바비가 죽을 정도로 몰리자 변종바이러스가 바비를 완전히 잠식해 빗치로 변형시켰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니면 좀비처럼 바비는 죽고 빗치로 되살아 난 것일 수도 있었다.
바비야 죽었으니 그렇다지만 유미가 변종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보균자라면? 그래서 페로몬을 뿌리고 있는 것이라면? 일반인들 특히 스펙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유미는 최악이었다. 유미가 자기도 모르게 사람들의 음욕을 자극한다면 상황이 꼬일 것이다. 그건 피하는 것이 좋았다.
“사람들과 만나면 유미는 무조건 거리를 둬. 멀리 떨어져서 원거리에서 석궁으로 견제를 해주면 좋겠어.”
“알겠어요.”
유미는 선선히 대답했다. 아직은 확실하지 않으니 미리 말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에 만나는 사람들도 상황에 걸맞지 않게 성적인 반응을 일으킨다면?
'말 해줘야 할까?'
자신이 빗치일지 모른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유미가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다. 그렇지 않아도 괴물이 됐다며 울먹였던 유미였다. 쯧- 지금 당장 말 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은 확인하고 돌아가는 것이 더 중요했다.
“바로 출발하자.”
“밤에 움직이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밤에는 우리가 더 유리하잖아요.”
밤눈이 밝은 것을 따지자면 그렇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 아침 7시였다. 지금부터 저녁 7시까지 12시간을 한 자리에 있는 것은 위험했다. 저쪽이 특수한 추적 기술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추격조의 능력이나 장비를 모르기 때문에 안 돼. 내일 오전 중으로 펜트하우스로 돌아간다.”
USB의 내용을 확인하려면 컴퓨터가 필요했다. 전력이 들어오는 곳은 펜트하우스, 거점이었다. 직선거리로 움직이면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추격을 피하려면 되도록 사방으로 돌아다니다 들어가는 것이 좋았다.
*
여러 기업들의 본사가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자, 점점 일반좀비들의 밀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뒷골목으로 이동하는데도 이정도 밀도라면 넓은 주요 도로는 일반좀비들로 가득하다는 소리였다.
[정지]
높은 곳으로 올라 주변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근방에서 제일 높은 빌딩은 대략 20층 정도로 보였다. 저 정도 높이라면 주변을 정찰하는데 충분한 높이였다. 유미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이동]
쿵-소리와 함께 비상구를 밖에서 막아둔 자물쇠가 박살났다. 문 안쪽에 딱히 위협적인 느낌은 들지 않았다. 문을 안쪽에서 잠그고 테이프로 틈을 막은 뒤, 다시 스프레이 파스를 뿌렸다.
“아저씨 좀비들이 점점 많아지는데요?”
“확실히 그렇네. 좀비들이 많다는 건 좀비들을 유인하는 뭔가가 있다는 소리겠지.”
그게 생존자들 때문이든 아니면 좀비들을 어느 정도 통제하는 것으로 보이는 변종이나 빗치 때문이든 뭔가가 있다는 소리였다. 빗치도 일반 좀비들을 꼬일까? 변종은 분명히 일반좀비들을 통제했었다. 빗치도 통제할 수 있다면... 나도 모르게 유미를 노려봤다. 내가 노려보자 유미가 동그렇게 눈을 뜨고 대답했다.
"예?"
"아니다."
내가 바보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감정도 제대로 조절 못하다니.
“좀비들이 몰린 곳은 우리와 충돌했던 자들이 있는 장소는 아닐 거다.”
그들과 무선으로 연락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이곳에서 나왔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어째서요?”
“덤프트럭을 개조했다고 하더라도 좀비로 만들어진 장벽을 밀고 움직이는 건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까.”
“아! 그럼 혹시...여기를 공격하기 위해 변종들이 좀비들을 조종한 거는 아닐까요?”
편의점을 공격했던 변종을 떠올리면 가능성이 있는 생각이었다. 분명히 그 때 일반좀비들을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었다. 마찬가지 상황이라면 이 근처를 변종이 노리고 있다는 소리였다.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그렇다면 더욱 뜨는 게 좋았다.
“우리야 무리해서 이곳을 뚫고 갈 이유가 없으니까. 올라가서 우회할 길을 찾아보자.”
“네.”
계단을 올라 맨 위층까지 올라왔다. 덜컥- 역시 문이 잠겨있었다.
문이 잠겨있어?
이렇게 문을 잠글 정도의 여유가 있었을까?
사태가 어떻게 확산됐는지 모르겠지만 좀비들이 날뛰기 시작했다면 문을 꼭꼭 잠그고 다닐 정도로 여유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지만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넘어갔다.
“유미야 아래층 비상구 잠겼는지 확인해 봐.”
유미에게 아래층을 확인하라고 시키고 곧바로 옥상으로 연결되는 비상구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덜컥.
“잠겨있어요.”
웅웅-울리며 유미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모두 잠겨있다면 뜯고 들어가는 방법 밖에 없었다. 옥상보다는 최상층을 뜯고 들어가기로 했다. 콰직- 문고리를 박살내 안으로 들어갔다.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사방이 엉망이었다.
끔찍했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여기저기 부서진 집기와 피로 얼룩진 벽이 보였다. 유미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유미도 알아들었다.
[정면 코너 확인.]
[이상 없음.]
없었다. 있는 것은 오직 부서지고 찢긴 가구와 집기들이었다.
[내부 확인.]
[이상 없음.]
아무 것도 없었다. 소리도 없었고 흔적도, 냄새도 없었다. 바싹 긴장했던 유미의 표정이 조금 풀어지기 시작했다. 수신호에도 장난이 섞였다.
[없음~]
[없어요~]
없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었다.
다만 이렇게 난리가 났다면,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라면 이곳에 꼭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일반좀비가 없다면 반드시 있어야 할 중요한 것이 흔적도 없었다.
시체.
시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