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1) ●
놈은 분명히 시간을 끌었다. 그건 추격조가 이곳을 찾아온다는 확신이 있기에 한 행동이었다. 뭐로 신호를 보냈지? 담배연기? 담배연기가 봉화도 아니고 보일 가능성은 없었다.
사무실 안에는 짙은 담배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냄새? 담배냄새라면? 가능했다. 너구리를 잡을 정도로 자욱한 양을 창문을 열어 환기시킨다고 했으니 냄새를 통해 놈들에게 신호를 보냈을 가능성이 제일 컸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지라 놈이 했던 말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유미를 보면 껄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유미를 똑바로 보기 힘들었다.
“주변엔 아무 이상 없었지?”
“네 조용했어요.”
놈은 전문가였다. 특수부대? 아마도 그쪽 출신이거나 따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전투자극제의 보조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실력은 진짜배기였다. 스펙이 조금 더 강했거나 아니면 내가 힘이 조금 더 약했다면 순식간에 죽었을 것이다.
이런 놈이 신입이라니,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10명이나 뭉쳐서 잡으려고 달려든 변종은 더 끔찍하게 느껴졌다.
“후- 이것 참.”
그 개고생을 하고 얻은 것은 유미가 빗치거나 잘해야 변종 바이러스의 숙주일지 모른다는 것 밖에 없었다. 놈이 가지고 있던 주사기를 다시 봤다. 확실히 낯익은 기업마크가 박혀있는 주사기였다. 주사기뿐만 아니라 주사제가 들어있는 엠플에도 동일한 마크가 찍혀있었다. 분명히 이 회사와 연관됐을 것이다.
3개월이 조금 넘는 시점에 약이 풀리려면 배후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런 약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전기가 끊기고 수도와 가스도 끊긴 상황에서? 약을 미리 생산해 뒀든지 아니면 이런 상황에서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무력을 담당한 자들도 범상치 않았다. 식량수색조는 그렇다고 칠 수 있었다. 한국 남성이라면 거의 대부분 군대를 다녀왔으니 1~2달 정도 구르면 적당히 반응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 적당히 반응하는 것을 넘어섰다는 게 문제였다.
방금 전에 죽인 놈도 그렇고 변종을 추격하러 움직인 자들도 그랬다. 거의 특수부대원급의 실력으로 보였다. 그런 자들이 군복을 입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은 상황을 더욱 이해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체계였다. 식량조가 식량을 체계적으로 확보하고 수색조와 추격조는 변종과 빗치를 배제한다. 여기에 함정조는 감당하기 힘든 빗치와 변종 바이러스를 보유한 사람을 유인해 말살한다. 상당히 체계적으로 분담해서 처리를 하고 있었다.
마치 이런 상황에 대해 대비를 한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여기서 변종과 빗치만 잡는데 성공한다면 일반 좀비들을 밀어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아 보였다.
“아무래도 이상해.”
“네?”
생각할 거리가 많았지만, 지금 집중해야 할 문제는 탈출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특수부대가 오고 있었다. 어쩌면 이미 인근에 왔을 가능성도 있었다. 무력시위는 불가능했다. 신입이라는 놈이 이렇다면 다른 놈들은 더하면 더 할 것이다.
생각의 방향을 바꿨다. 다행인 것은 변종 두 마리가 설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변종을 전부 처리하기 전까지는 우리를 잡는데 전력을 기울이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까 저들이 변종 둘을 처리하거나 물리치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아저씨!”
생각에 빠져있던 나를 유미가 깨웠다.
“응? 어. 전부 챙겼어?"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하면 본능적으로 꺼려질 것이다. 하물며 변종바이러스 보균자거나 빗치일지 모르는 유미였다. 내가 아무리 태연하게 대하려고 마음 먹었어도 내 무의식까지 통제하기는 힘들었다.
언제든 도주할 수 있게 식료품을 비롯한 무기들을 챙겨 놨다. 특히 식량은 1순위였다. 유미가 천으로 대충 만든 보따리를 질끈 몸에 묶으며 말했다.
“전부 챙겼어요. 어디로 가요?”
“한강 있는 쪽. 강변으로!”
"네?"
"확인할 것이 있어."
이왕에 도망치는 것. 확인하고 싶었다. 한강을 향해 북쪽으로 움직인 뒤, 마크에 찍혀있는 기업 건물 근처로 가보기로 했다. 그 건물이 살아서 돌아가고 있으면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어쩌면 그 기업이 있을지 몰랐다.
멀리서 건물이 살아있는지만 확인하면 그만이었다. 공권력이 무너졌는데도 일반 사기업체 본사가 돌아가고 있다면 그건 빼도 박도 못할 증거라고 생각됐다. 배후가 회사 같은 기업이라면 뭔가 이익이 있으니까 스펙도 만들고 무장 세력도 운영할 것이 분명했다.
회사와 접선이 가능하다면 상황은 좋게 풀릴 것이다. 내가 죽인 사내의 증오에 찬 눈빛이 떠올랐다. 접선이 불가능 하다면? 애초에 무장 세력에게 스펙과 보급품을 지원하고 있는 게 회사라면?
일단 도망쳐야 했다. 멀리서 본사 건물이 운영되는 것을 보고 접근할 지 말지 결정해도 그만이었다. 계단을 타고 올라 옥상으로 나가는 비상문을 열려는 순간 묵직한 느낌이 가슴을 압박했다.
벌써 자리를 잡았단 말인가? 유미가 아래로 내려오고 짐을 챙겨 나온 지 5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접근했다는 소리였다. 내가 문을 열지 않고 버티고 서 있자, 유미가 나를 쳐다봤다.
“밖에 놈들이 있다.”
“예?”
문을 여는 순간 저쪽에서 사용할 패가 너무 많았다. 싸움이 시작되면 끈질기게 달라붙을 것이 분명했다.
어쩐 일인지 일반 좀비들이 하나 둘 씩 모이더니 이제는 확연하게 많이 몰려든 상황이었다. 나쁜 점은 일반 좀비들 때문에 돌아다니기 힘들다는 점. 좋은 점은 일반 좀비들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추적하는 자들도 힘들다는 것이었다.
펜트하우스에만 있을 때는 몰랐는데 유미가 인근의 일반 좀비들을 꼬이는 것일 가능성이 확실히 높았다. 빗치든 아니면 변종이든 일반 좀비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뭔가 느껴지거나 그런 건 없니?”
“뭐가요?”
“그러니까 글쎄다. 뭐라고 말하기 힘든데... 일반 좀비들을 보면 뭔가가 떠오른다거나.”
“징그럽다? 싫다?”
“아니... 됐다. 일반 좀비들을 뚫고 골목사이로 가자.”
“어떻게요?”
파랗던 하늘이 점차 하늘색으로 물들었다. 태양이 환하게 비추기 전에 움직이는 게 유리했다. 칼로리 소모가 극심해서 그렇지 순간적으로 내달리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에 전력으로 도주한다면, 우리가 빨랐다. 일단 이쪽을 면밀하게 감시하고 있는 감시망을 흔들어야 했다.
"방법은..."
대답 대신 사무실에 있는 시체를 전선줄로 꽁꽁 묶었다.
“뭐 하시게요?”
시체의 허리를 전선으로 묶고, 철제 의자를 전선으로 꽁꽁 묶었다. 유미에게 철제의자를 묶은 전선을 주며 말했다.
“저기 옆 건물 보이지?”
“빨간 건물이요?”
“그래. 내가 이 시체를 반대쪽 건물 중간으로 집어 던지는 순간. 그 의자를 빨간 건물에 집어 던져. 전깃줄이 걸리면 그걸 타고 그쪽으로 넘어간다.”
“알겠어요.”
윙윙- 시체의 허리를 묶은 것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내의 몸무게는 족히 75kg은 나가 보였다. 투포환 던지듯 빙빙 돌린 시체를 멀리 떨어진 건물 옥상을 향해 내던졌다. 콰장창-소리와 함께 통유리가 터지며 시체가 하늘을 날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유미가 던진 철제의자도 멀리 떨어진 빨간 건물 4층 유리창을 뚫고 들어갔다.
“걸렸어요.”
“빨리 가!”
전선을 기둥에 묶자마자 유미가 몸을 던졌고 뒤이어 바로 내가 따랐다. 발각됐을까? 처음 시선을 잡아두는 것은 성공했겠지만 금방 걸릴 것이다.
“1층으로!”
“예?”
유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유미는 옥상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생각한 듯 싶었다. 옥상으로 이동한다? 그건 저쪽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변종들도 길바닥에 널려있는 일반좀비들이 거치적거릴 때는 옥상으로 움직였다. 그러니 시체가 미끼라는 것을 알았다면 바로 옥상을 타고 움직이는 것을 찾을 가능성이 컸다. 역발상이 필요했다.
“1층!”
“네.”
“따라와!”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거의 점프하다시피 계단을 뛰어 내렸다. 빨간 건물 뒤쪽은 예상대로 일반좀비들이 별로 없었다.
“여기서 바로 저쪽으로 움직인 뒤, 골목길로 들어가 끝까지 뛴다. 일반좀비가 있어도 싸우지 말고 뛰어."
"네?"
"그러니까 일반좀비를 무시하고 달린다. 저쪽 벽을 이용해, 일반좀비를 뛰어 넘어 계속 달리자는 소리야. 할 수 있지?”
“예.”
“나가면 소리 내지 말고 수신호만 한다. 그럼 간다. 바짝 따라와라!”
“잠깐 만요...”
유미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내달렸다. 시간 싸움이었다. 건물 뒷문을 박차고 내달렸다. 뒷골목에는 일반좀비 몇 마리가 멍하게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싸울 필요가 없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게 피한다. 후추가 있었다면 좀비들의 후각을 마비시켜 조금 더 쉽게 움직였을 텐데... 아쉽지만 없었다.
우어어어어
굶은 지 오래 됐는지 비쩍 마른 좀비들은 확실히 느려져있었다. 가볍게 피해 계속 달렸다. 순간적으로 속도를 내는 것은 가능했지만 그 만큼 칼로리 소모가 극심했다. 농담으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슈퍼카에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아 부르릉 한 번에 천원, 부릉부릉 두 번에 2천원이라고 하며 낄낄 거렸던 이야기였다. 마치 슈퍼카가 기름을 잡아먹는 것처럼 몸에서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일반좀비가 별로 없는 길로 내달렸다.
[정지]
수신호에 뒤따라오던 유미가 재깍 멈췄다. 골목길은 이제 거의 지나쳤다. 높은 곳에서 관찰하기 어려워 보이는 쪽으로 달렸더니 아직까지 추격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시체로 만든 미끼가 제대로 먹혔다는 소리였다.
꼬르륵
4분? 5분? 정도 전속력으로 뛰었을 뿐인데 칼로리 소모가 극심했다. 나보다 유미의 칼로리 소모가 심했다. 꼬르륵 소리를 내곤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는 유미였다. 어제 늦은 점심 겸 저녁이 마지막 식사였으니 배고플 만하기는 했다.
[확인-진입]
5층짜리 건물에 들어서자 좁은 로비 안쪽에 쫄쫄 굶은 일반좀비와 동면상태로 먹이를 기다리는 괴물좀비가 있었다.
[동시에 공격]
끄덕.
동면좀비를 향해 동시에 석궁을 쐈다. 팍-퍽!- 석궁 한 발은 두개골을 제대로 뚫지 못했지만 유미가 쏜 한 발이 동면좀비의 눈을 꿰뚫었다. 따다다닥- 턱뼈를 떨며 소리를 내려는 동면좀비였지만 해동이 덜됐기 때문인지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발사]
석궁을 연사한 끝에 동면좀비가 해동되기 전에 끝장이 났다. 바짝 마른 일반좀비는 둔기 한 방으로 머리를 깨버렸다. 콰직!- 뇌수를 뿌리며 머리통이 박살나는 일반좀비였다. 건물 1층 로비에 생긴 두 구의 좀비 시체에서 큼큼한 냄새가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밖의 셔터를 내리고 문을 닫았다. 드드득-셔터 소리에 일반 좀비들이 반응을 했다.
“박스 테이프 가져왔지?”
“네 있어요.”
“그걸로 문틈 막고 모기약이나 스프레이 파스 있으면 뿌려.”
“네.”
테이프로 문틈을 봉한 뒤, 그 놈이 가지고 있던 가방에 들어있는 작은 스프레이 파스로 그 주변을 뿌리는 유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