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스트 DUST-53화 (53/261)

현실 (2)

전신마비가 됐다고 하지만 혹시나 몰랐다.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도와주는 척하면서 살짝 정강이 부분을 눌러 밟으면서 모르는 척 물었다.

“사지에 감각이 전혀 없는 건가?”

“그래.”

담배를 빨면서 긴장이 풀렸을 때 불시에 밟은 것이니, 감각이 있다면 표정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내는 담배에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예민했나? 기절을 한 뒤, 전신마비라니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확인을 슬쩍 확인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았다.

전신마비라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일단 따로 구속을 할 필요가 없으니 편했다. 게다가 사지가 멀쩡한 상태에서 대화를 했다면 이렇게 조용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전신마비였기 때문에 묻는 대로 서로 부드럽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문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일단 담배 한 개비로 말문을 열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사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불게 하고 싶었지만 서서히 풀어나가야 했다.

“그 주사는 뭐지? 전투자극제겠지? 그것부터 말해주면 좋겠어.”

“그게 궁금했나? 하긴, 처음 보면 대부분 궁금해 하더군. 정식명칭은 씨발. 복잡하고 그냥 우리들은 스펙이라고 불러. 전투에 도움이 될 만한, 이러저러한 것을 섞은 약이지.”

“스펙? 스펙 업? 그런 의미인가? 효과는 좋나?”

“하하- 스펙 업? 농담인가? 후- 효과는 집중력, 운동능력, 반응속도 그런 신체능력 향상. 진통효과와 약간의 안티바이러스효과 그리고 제일 중요한....쿨럭... 빗치의 페로몬에 저항하는 효과가 있지.”

눈이 번쩍 뜨였다. 빗치에 대한 이야기라면 자세히 알 필요가 있었다.

“빗치의 페로몬이라고?”

“그래. 빗치와 마주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발정이 나서 환장하게 되는 거지. 뒤지게 정줄 놓고 껄떡대다 죽는 거야. 아직까지 운이 좋아서 만나지 않았나본데... 뭐? 설마 빗치도 모르는 건가?”

“......”

내 모른다는 표정에 사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 정말 어이가 없군.”

후흡- 빨간 불꽃이 깜박였다. 담배를 입에서 떼 주자 후우우우- 천천히 연기를 내뿜고는 눈을 깜박인 사내가 작게 기침을 했다. 완전히 줄담배였다.

“그럼... 감염 경로나 변종들의 특징 같은 것도 모르겠군.”

어깨를 으쓱 할 수밖에 없었다. 사내는 할 수만 있다면 손으로 이마를 탁-치고 싶은 기분이었는지 막막한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었다. 전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후- 그러니까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미쳐 날뛰는 사태가 벌어졌어. 그건 알지?”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가 계속 이야기를 꺼냈다. 담배 연기가 입에서 증기기관차에서 연기 뿜어내듯 흘러나왔다. 손을 떼려고 하자 사내는 입을 삐죽 내밀어 담배를 붙잡았다. 포기하고 그냥 담배를 물려줬다.

“처음에는 그저 일종의 병이라고 생각했지, 금방 치료제가 나올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전두엽에 이상이 생긴다는 게 발견됐어. 전두엽이 변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바이러스가 내 뿜는 독성 때문인지 감염된 사람들은 폭력적으로 변했어."

"....."

"뭐 의사들인지 전문가들이라는 작자들이 나와서 분노조절장애라고 하기도 하고 감정조절장애를 동반한 이상행동이라고 하기도 했는데 그게 뭐든 사람들이 미쳐 날뛰는 거였다는 말이야. 확실한 것은 말로 해도 될 일을 주먹으로 해결하고 심지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때려 죽고 죽이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어났어.”

“그래서?”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다. 직접 경험하기도 했고.

“경찰력을 총동원했지만 치안유지에 실패했고 이어서 계엄이 선포됐어. 군을 동원해 치안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문제는 군대도 마찬가지였다는 소리지.”

“군대도 마찬가지였다고?”

“바이러스가 군대라고 안 들어갈까? 실탄으로 무장한 군대가 동원됐지만 상황은 더 개판이 됐지. 감염자들이 일으킨 폭동을 막기는커녕 서로 총질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말이야. 졸지에 시가전이 벌어졌고 그대로 정부는 행정능력을 상실하게 됐다.”

쿨럭-쿨럭- 담배를 빨다 말고 기침을 하는 사내에게 물을 조금 줬다. 내가 물을 주자, 사내가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아-거기까지 일주일이 걸렸어. 고작 일주일. 그런데도 일반인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지. 방송국에서는 전기가 끊기기 전까지 안전하다 괜찮다. 군대가 폭도들을 제압하고 있으니 걱정마라. 시가전이 벌어져 총알이 날아다니고 폭탄이 터지는데도 그랬다는 거야.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 방송을 철썩 같이 믿었지. 방송에서는 2차 대전 영국의 사례를 들고 질서를 강조했어, 군대와 경찰이 이상사태를 해결하고 있다고 그렇게 앵무새처럼 재방송되는 것을 믿고 집에 틀어 박혀서 나오지 않았어. 이미 고위급 인사들은 전부 제주도로 떠났다는 소문이 돌았는데도 설마 그럴까? 정말 그럴까? 다들 그렇게 생각했지.”

“.......”

“도망갈 놈은 다 뜨고, 챙길 놈들은 다 챙기고 난 뒤에야 조금씩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했지. 서서히 이상 현상을 목격했다는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서 흘러나왔어. 캬아악- 퉷- 그냥 분노하고 발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들이 되살아난다는 소문이었지.”

“전기가 끊기지 않았나? 어떻게 소문이 떠돌았지? 설마 사이렌이라도 울리고 확성기로 떠들고 다녔단 말인가?”

“그래 누군가 용감한 사람이 시작했지. 군대가 서로 상잔해 거의 궤멸 됐다는 소식과 좀비가 나타났다는 소리를 구청 비상사이렌으로 한 거야. 확성기가 달린 오토바이를 타고 떠들고 지나가는 사람도 생겼고 말이지... 쿨럭... 그 전까지는 알음알음 지나갔던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는 것과 동시에 이제까지 집에 틀어박혀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뛰쳐나가자, 거리가 주차장이 됐지.”

사내는 지옥을 회상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좀비들은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 건가?”

“그래. 길바닥에 갇힌 사람들 사이로 좀비가 퍼진 뒤로 확산은 순식간이었다.”

“뭔가 좀 이상한데?”

“이상하지... 상황이 마치... 뭐 그랬으니까 말이야.”

사내가 웅얼거렸다. 그래도 뚜렷하게 뭔가 잡히는 정보는 아니었다. 조금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죽으면 일반 좀비가 된다는 건가?”

“뭐-확실하지는 않았어. 감염된 사람이 서서히 좀비처럼 변한다는 소리도 있고, 감염된 사람이 죽어야 좀비가 된다는 사람이 있고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진 건 없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연구소가 운영되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아직도 제대로 된 원인을 모른다는 건가?”

“그래. 원인은 고사하고 상황을 이해하는 것도 보름이 넘어서야. 감염된 사람들도 그래, 분노로 날뛰는 사람들을 처음에는 감염체라고 불렀지만 나중에는 다들 좀비라고 불렀지. 그들이 죽고, 변해서 쿨럭-일반 좀비가 등장한 뒤로, 이 도시는 거대한 무덤이 됐... 쿨럭-후읍-후- 무덤이 된 거야.”

“......”

“사실.... 바이러스에 일부 저항력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고 애초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상황은 끝난 뒤였어. 감염되서 분노에 사로잡혔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자들도 제법 많았으니까 처음부터 힘을 합했으면 어떻게든 해볼 여지가 있었지만... 후- 이제는 너무 늦었어."

"늦다니?"

"이미 국가는 무너졌거든. 공권력이 무너졌다는 소리야. 좀비는 나날이 늘어갔고, 남은 자들은 너도 나도 각자 살 궁리를 하기 시작했지. 쿨럭- 쿨럭-카아아윽- 허으-- 담배 좀.”

기침을 요란하게 하던 사내가 간신히 진정을 했다.

“괜찮은가?”

기침을 해가며 담배를 빨아대는 사내가 걱정스러웠다. 이 사람이 덜컥 죽기라도 한다면 막막했다. 어지간하면 그만 피라고 하고 싶었지만 실랑이를 벌이느라 시간을 버리는 것보다, 원하는 대로 주는 게 나았다.

“쿨럭- 아... 어디까지 했더라. 그래 좀비. 본격적으로 좀비가 나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어. 전기가 끊기고 곧이어 라디오도 끊기고 군대의 지휘계통이 무너져 약탈자 무리로 변하고 순식간에 난리가 났지.”

“......”

“제일 먼저 털린 장소는 쿨럭... 마트를 제외하면 경찰서, 예비군 훈련 장비를 보관하는 창고 같은 곳이었어. 대부분 군대에 갔다 왔으니 무리를 해서라도 총기를 얻으려고 했지. 그게 문제였어. 그렇게 무기가 있는 곳에서, 무기를 찾으러 간 사람들이 평화롭게 헤어진다? 큭-쿨럭쿨럭-”

말하는 방향이 헛도는 것 같았다. 약까지 맞았으니 정신은 말짱할 텐데... 일단 끊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들도 세상도 개판인 건 충분히 아니까. 빗치에 대해서 말해보지, 그 굶으면 동면하는 놈들도 그렇고.”

“쿨럭- 큭- 그래. 빗치부터 말하는 게 낫겠군. 무장한 남자들이 좋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잖아. 조폭도 있고 아직 바이러스의 폭력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들 앞에 예쁜 여자가 걸렸다고 생각해 보라고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래서?”

“그 하필 그 여자가 변이된 바이러스를 품고 있던 숙주였던 거야.”

“간단히 말하면 변형된 바이러스를 가진 존재가 빗치다?”

“쿨럭쿨럭-짧게 말하면 맞아.”

“여자만 걸리는 건가?”

“후후후- 쿨럭-쿨럭- 그렇지 현재까지로 알려진 바대로라면... 그래. 여자들만 빗치로 변하지, 남자들은... 큭큭큭.”

사내의 웃음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빗치가 중요했다.

“특징은? 빗치로 변하는 여자들의 전조증상이나 그런 건 없나?”

유미가 갑자기 바비처럼 된다거나 어제 만났던 그런 괴물로 변한다면 감당하기 힘들었다. 최소한 전조증상이라도 알아야 했다.

“크으윽-가슴이 답답한데, 창문 좀 열어주지 않겠나?”

사무실은 너구리라도 잡을 것처럼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그만 피지?”

“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좀 봐줘.”

블라인드 틈 사이로 지나치는 달빛은 고요했다. 끼익- 창문을 열자 폐부로 들어오는 맑은 공기. 6월초 한 밤중의 공기는 시원했다. 담배연기가 창문 밖으로 빨려나가면서 공기가 맑아졌다.

“빗치의 특징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강하고 영악하지.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일 때의 기억도 온전히 가지고 있다고 해.”

이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 그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일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의외였다. 바비가 변했을 때, 인간이었을 당시의 기억이 있었다면? 정체성은? 전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것들에게 기억이 있다는 것은...

사내는 내 혼란스러운 표정을 보며 비틀린 소리를 냈다.

“큭..... 크흐흐... 왜? 그 년들에게 기억이 있다고 하니까 이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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