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포 (1)
외관을 강화유리로 만든 건물은 예전이라면 반짝이는 광채를 유지했을 것이다. 무너진 세계를 대변하듯, 광채를 잃은 유리는 뿌연 먼지와 피딱지 그리고 새들이 싼 똥으로 얼룩져있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순간 덧없이 변하기 마련이었다.
건물 옥상에 올라 유미가 오기를 기다렸다. 딱히 다른 문제가 없다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저 멀리서 검은 연기가 위로 치솟고 있었다. 주변은 흩어진 연기로 인해 새벽안개라도 낀 것처럼 뿌옇게 변해있었다. 200m가 넘는 거리라면 짧은 거리가 아니었는데 매콤한 매연이 숨을 답답하게 했다.
비록 함정에 빠지기는 했지만 거하게 먹기는 했다. 하지만 유미는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걱정됐다. 유미는 육포나 조금 먹었을 뿐이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공복감이 돌 것이 분명했다.
공복감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그걸 공복감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마치 내가 변해버리는 느낌? 이성이 사라지고 식욕과 본능만 남은 짐승으로 변할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하도 진저리가 날 것 같았다. 고개만 위로 들었어도 볼 수 있는 올무를 무시하고 먹기만 했다니, 그 상황에서 살아남은 게 용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보면 ‘그것’ 덕분에 생존자들에게 살해당하지 않고 벗어날 수 있었다. 여자의 얼굴을 했지만 그건 확실히 일반적인 생명체가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건 재앙이었다. 내 눈앞에서 사람의 머리통을 뽑아 피를 마시는 그것의 행동 때문에 적대를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실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은 날 단 번에 죽일 수 있음에도 죽이지 않았다. 이성을 가지고 있었고 내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보가 궁금했다면 그것과 대화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었다.
‘아니다. 정신 차리자.’
그것과 대화를 하다니,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었다. 그건 사람을 산채로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그런 것과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그것이 죽었을까? 죽었어야 했다. 그 폭발과 불길에서도 살아남았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런 괴물에게 둔기를 휘두르고 석궁을 쐈다는 소리였다. 그게 살아남았다면? 답이 없었다.
따그락
“아저씨 저에요.”
갑자기 들린 소리에 석궁을 겨눴더니 유미였다. 유리파편이 박혔던 흔적을 보니 제때 폭파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기다릴 경황이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상처였다. 그나마 유미든 나든 이렇게 변한 몸뚱이라 다행이었다. 일반인이었다면 3층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동시에 다리가 부러지든 어쩌든 살기 틀렸을 것이다.
“상처는?”
“예... 아물었어요.”
말없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줬다. 상황을 구경하다 도망치는 선택지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고 와준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나저나 상처를 입고 다시 급속재생이 됐으니 에너지 소모가 문제였다. 이대로 가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어나지 싶었다.
내가 눈이 돌아간 것처럼 유미도 눈이 돌아간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최대한 빨리 먹을 것을 찾고, 추격자들을 생포해야 했다. 빗치가 뭔지, 변종은 어떻게 생겼는지 대체 지금 이 동네에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정보를 캐야 했다.
“일단 먹을 것을 찾자. 대충 어디에 먹을 게 있을 지. 감 잡았다.”
“예?”
“똑똑한 물고기는 미끼만 빼먹는 법이니까.”
유미가 머리위에 물음표를 동동 띄웠다. 가볍게 내가 있던 곳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해줬다.
“네에? 그럼 함정으로 가자고요?”
“그래.”
“그런... 함정이라면서요.”
“한 번 걸려봤으니 이제 안 걸릴 수 있어. 대충 어디쯤 함정을 팠을지 감도 잡히고 말이야.”
“위험하지 않을까요? 함정을 팠으면 뭔가 무서운 게 있으니까 잡으려고 팠을 거 아니에요.”
제법 똘똘한 소리를 하는 유미였다. 마주보고 웃어줬다.
“그래 아까 나와 엉켜있던 ‘그걸’ 잡으려고 함정을 파고 그 난리를 쳤었던 것 같다.”
“그... 아까 그 여자는 지하실에서 그 언니 같이 변한 건가요?”
언니라고 불러야 할 건 아니었지만 따로 지적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자 유미의 얼굴 표정이 하얗게 떴다.
“잘했다.”
“네?”
“내가 쏘라고 했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잘 쐈다는 거야.”
“예...”
약간 빨개지는 유미였다.
이성을 가진 빗치를 유인하기 위해 함정을 판 것이 확실했다. 만에 하나 그 빗치라고 하는 변종이 일반인 여자가 변해서 되는 것이라면? 감염됐다가 회복한 사람이 에너지 소모를 감당하지 못하고 신체과부하가 일어나 순간적으로 변형이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러고 보니 뇌신경조직이 변했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분명히 뇌신경계가 변한다고 했었다. 그렇게 따진다면 앓다가 회복된 유미도 안전하지 않다는 소리였다. 유미뿐만 아니라 어쩌면 나도 그 범주 안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었다.
어찌됐든 유미는 면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을 죽이고 충격을 받았던 것이 고작 반나절 전이었다.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여자라면 외상후스트레스로 인해 장애가 일어났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즉각 반응한다? 너무 적응이 빨랐다.
“후- 너무 잘 적응해도 걱정이군.”
“예?”
“아니다.”
내 예상대로라면, 함정은 빗치와 빗치가 될 인자를 보유한 여자를 잡기 위해 만들 것이었다. 빗치라면 피 냄새에 반응할 것이고 빗치가 될 인자를 보유한 여자라면, 그러니까 아직 변이가 일어나지 않은 여자라면 칼로리를 보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먹을 것을 찾아다닐 것을 노린 것이었다.
그걸 이용해 함정을 팠다면? 함정을 뺀, 나머지는 빈 집이라는 소리였다. 그럼 함정은 어디를 선택할까? 내가 들어갔던 곳을 떠올리면 됐다. 로프를 타고 빨리 진입할 수 있는 집. 함정조가 탈출하기 쉽고 반대로 일반 좀비들과 동면 좀비들의 접근은 어려운 위지에 있는 집을 함정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낮아서 높은 곳에서 감시하기 편하고, 일반 좀비들은 오기 힘들고.”
유미가 웅얼거리며 내가 한 말을 반복하며 주변을 살폈다.
“그럼 저 집은 어떨까요?”
“나쁘지는 않지만 저건 그 옆의 건물과 너무 딱 달라붙어있어.”
“달라붙어있어서 아니라고요... 아... 불?”
“그래 여차하면 폭파시키거나 불을 지를 텐데 딱 붙어있는 집이 있으면 화재가 번질 가능성도 있으니까 말이야.”
내가 함정에 빠졌던 집도 그런 위치였다. 최소한 7m이상 다른 건물과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집과 유사한 입지 조건을 가진 건물이 보였다.
“저 건물일 확률이 높겠네요?”
“처음에 바로 빙고일 가능성은 적겠지만 확인을 해 볼 필요는 있겠지.”
4층짜리 원룸 건물이었다. 내가 함정에 빠졌던 건물보다 더 작았다. 어차피 옥상을 타고 이동했기 때문에 바로 4층부터 아래로 내려갔다. 마찬가지로 3층에 함정이 설치되어 있었다.
“와~ 한 번에 찾았어요.”
“너는 바로 나가서 옆 건물에 옥상에 올라가 있어.”
“예? 왜요?”
유미는 배가 고픈지 주섬주섬 꺼내놓은 캔을 보고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우리 둘 다 안에 있으면 그냥 폭파시켜 버릴 가능성도 있으니까 말이야.”
“우...”
“바로 챙기자마자 나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까 여기 오면서 봤던 건물 있지? 튼튼하게 생겼다고 한 빌딩.”
“그 시멘트 덩어리처럼 생겨서 창문 별로 없는 빌딩이요?”
“그래 그거. 5분 뒤에 멀리 빙 돌아서 그리로 와.”
“5분이라고 했어요.”
유미는 안절부절 못했다.
“5분! 빨 리 움직여.”
유미는 통조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나갔다. 지금 먹기 시작하면 눈이 돌아가 뭘 어떻게 할 지 몰랐다. 안전한 곳에 가서 먹는 게 맞았다. 허기에 눈이 돌아가 먹었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살펴보니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하거나 지난 것들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함정에 제대로 된 걸 넣어둘 리 없었다. 쥐를 잡겠다고 먹다 남은 치즈를 꽂는 경우는 있어도 치즈를 사다가 덫에 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게 당연했다.
그나마 양은 제법 있었다. 빗치로 변이되기 전의 여자라면 이곳에서 며칠을 묵을 생각이 들 정도로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이곳에서 발을 묶어둘 이유가 생길지 모를 경우를 대비한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머리를 쓴 기색이 역력했다.
함정팀이 했던 말을 떠올려보면 일종의 무선감시카메라 같은 것이 있다는 소린데, 위치를 찾지는 못했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피 냄새는 빗치로 변한 것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싹싹 챙겨 유미와 만나기로 한 빌딩으로 이동했다.
유미는 이제나 저제나 오매불망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나를 보자마자 내가 매고 있는 보따리에 눈이 틀어박혀 떨어질 줄 몰랐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헤헤헤. 오셨어요.”
“그래 일단 먹고 움직이자.”
“집으로 돌아가요?”
“아니, 이거면 한 이틀은 버티니까...”
보따리를 여는 순간, 유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
배를 채우고 나자 유미의 얼굴은 확실히 고와졌다. 그냥 혈색이 좋아졌다는 수준을 넘었다. 고민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추격조든, 함정조든 생존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생포를 해야겠어.”
유미도 문제지만 내 스스로도 불안했다. 유미는 그렇다고 치지만 내가 문제였다. 함정팀의 사람들은 나를 그냥 죽이려고 했다? 어째서 그랬을까? 이유가 있을 것이다.
“...꼭 잡아야 해요?”
"그래."
다른 사람들과 싸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유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야. 세상이 망했다고 해도 납득하기 힘들어. 어제는 너무 급박해서 이상해도 그냥 넘어갔는데... 뭐가 뭔지를 알려면 정보가 필요해."
"......"
"싸우는 건 나중문제다. 일단 찾자.”
이제부터는 우리가 추격자였다.
*
폭발이 일어난 지, 거의 한 시간이 지났지만 불길은 꺼지지 않고 있었다.
“그쪽에는?”
“없어요.”
예상이 잘못됐을까? 분명히 모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이 조용했다. 일반 좀비만 있을 뿐 추격조나 변종, 빗치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예상 밖이었다. 한 참 치고받고 싸울 때 한 명 슬쩍 생포하려고 했었는데.
“이동하자.”
“예? 감시한다고 하셨잖아요.”
경험은 결과다. 편의점을 털기 위해 알람을 설치했었다.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났었나? 내 설명에 유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군요.”
“그래, 그러니까 좀 더 멀리 떨어져서 기다리자. 인내심이 없는 쪽이 먼저 움직일 거다.”
인내심이 없거나 조금 더 급하거나. 아마도 변종이나 빗치가 있다면 그쪽이 먼저 움직일 것이다. 편의점에서도 그랬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