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 (3)
다가오는 차는 덤프트럭이었다.
달려오는 덤프트럭을 멈춰 세우려고 하는 것처럼 느릿하게 다가서던 좀비가 거대한 덤프트럭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콰직
좀비의 몸통이 미더덕 터지는 소리를 내며 터져나갔다. 공포를 모르는 좀비들은 한탄스럽다는 탄식 소리를 내며 덤프트럭을 향해 몰려들었다.
쿠어어어
우어어어
그들의 탄식은 의미 없는 소리였을 뿐이었다.
‘적당히’라는 단어를 모르는 덤프트럭 운전사는 좀비들을 잘근잘근 다지며 RPM을 올렸다. 덤프트럭은 슬쩍봐도 일반적인 그냥 덤프트럭이 아니었다. 덕지덕지 철판을 덧붙여 만든 사제장갑차량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저렇게 많은 좀비들을 밀고 지나가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덤프트럭도 덤프트럭 운전사도 그런 일반적이라는 말을 애시당초 무시하는 족속이었다.
몰려든 좀비들이 볼링핀 쓰러지듯 우수수 쓸어졌다. 찢어지고 깨지고 으스러지는 소리와 무식한 디젤엔진의 굉음이 허공을 가득 채웠다.
덤프트럭이 지나간 자리엔 좀비들의 육편이 깔린 길이 생겼다. 주차된 차들로 복잡한 곳은 불도저처럼 밀어 붙여 새로 길을 뚫고 가는 덤프트럭이었다. 주인을 잃은 승용차들이 알루미늄 호일 구겨지는 소리를 내며 우그러들었다.
충돌음, 파쇄음 그리고 경적소리까지.
빠아아아앙.
좀비들을 끌어 모으는 무모한 행동처럼 보였다. 자신이 있으니까 저렇겠지만 조용히 움직일 수 있는 데 꼭 저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었다.
“왜 저렇게 시끄럽게 움직이죠? 위험하잖아요?”
유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유? 있겠지.”
잊고 있었다. 저들은 지금 공격을 받고 있는 자기 그룹을 지원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머리가 좋은 변이종을 유인하지 못하겠지만 소리에 민감한 일반 좀비라면 요란스럽게 다가오는 덤프트럭 쪽으로 몰릴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지금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포위한 좀비 포위망이 약해질 것이다.
다시 경적이 울렸다. 저 경적소리는 생존자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역할도 했다. 이제 우리가 곧 도착한다. 힘내라는 의미일 것이다.
빠아아아앙.
기차의 경적 소리만큼이나 큰 경적소리를 울리며 앞장선 덤프트럭의 뒤를 25인승 중형버스 3대와 승합차 2대가 따르고 있었다.
"저들이 저렇게 요란하게 소리를 내서 포위된 생존자들에게 몰려드는 좀비들을 반대로 유인하는 거라면... 효과적인 방법이네..."
나름대로 추측한 내용을 설명하자 유미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군요. 저 사람들... 좋은 사람들이네요.”
“뭐?”
내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 지 황당했다. 유미가 약간은 들뜬 목소리로 설명을 했다.
“위기에 빠진 같은 편을 구하려고 저런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자기들이 위험해 빠지더라도 동료들을 구하려는 행동이잖아요."
"그건...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럼 좋은 사람들 아니에요? 동료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내 말은 저들이 요란하게 하는 이유가 동료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소리였지. 그런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아.”
"무슨 말이에요? 방금 전까지 그렇다고 하셨잖아요."
"하아- 그래. 설령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우리와는 상관없다는 말이야. 좋은 사람이라는 말도 마찬가지고."
팔이 안으로 굽어도 착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써야 하나? 회의적인 나와는 달리, 유미의 표정은 밝았다. 심지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생존자들을 바라봤다.
“저렇게 큰 차까지 있으니까 분명 큰 그룹일거예요.”
“......”
"좋은 사람들이 분명해요..."
내 침묵에 유미는 트럭의 뒤를 따르는 차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련한 표정, 가고 싶다는 표정.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둘이 한 달 정도 생활했는데, 벌써 이런 표정이라니.
“좋은 사람들이 아니면 서로를 믿고 저렇게 하기 힘들잖아요? 그렇죠?”
“......”
“친구들도 있을지 몰라요.”
유미의 목소리가 어쩐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긴 친구들이 그리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그 친구들이 네가 알던 그 친구일까? 정신 차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다시 집어 삼켰다.
어찌됐든 유미와 난 서로 목숨을 구해준 사이였다. 앞으로도 함께 움직일 것이다. 괜히 서로 감정이 상할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자동차 소리가 가까워지자 유미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손을 흔들려고 했다. 올라가는 유미의 손을 붙잡았다.
“잊었니? 저쪽 사람들이 우리를 미끼로 쓰자고 했던 것. 들었잖아?”
“상황이 급했으니까 그렇죠. 막 진짜 나쁜 사람들이었으면 동료들이 저렇게 구하러 오지 않았을 걸요?”
“확실하지 않아.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저 사람들이 착한지 나쁜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모르잖아요.”
“모르니까 우선 피해야지.”
“언제까지요? 언제까지 피하기만 해야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유미가 내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나쁠지도 모른다고요? 그렇게 따지면 우리도 마찬가지잖아요. 아저씨도 마찬가지잖아요.”
유미의 눈동자는 그 때의 일을 말하고 있었다. 배다른 동생들과 굶주리고 있을 때, 집에 들어와 확인하고 간 나를, 굶어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던 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 하필. 이 상황에서 유미는 눈빛으로 나를 추궁하고 있었다.
"뭐라고? 마찬가지라고?"
"아니면요? 아저씨는 스스로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입이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서로 목숨을 구해주는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고작 생존자 무리들과 만나는 것 하나로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건가? 아니다. 너무 앞서 생각하는 것이다. 이 눈빛도 나를 추궁하는 게 아닐 수 있었다. 그래 괜히 스스로 제발저려하는 것이다.
“그래. 네 말대로 저들이 착하다고 하더라도 알잖아? 우리하곤 상관없다는 걸.”
“상관없으니까 상관있게 되면 되잖아요. 친해지면 되잖아요.”
“어떻게 처음 봤는데 친해져?”
“아까 저쪽에 있는 사람들이 변종하고 싸울 때 우리가 도와줬으면 친해질 수 있잖아요.”
"친해진다고? 저 사람들이 하는 말 잊었어? 우리를 미끼로 삼겠다고 하던 말 기억 안나?"
"미끼가 되면요? 왜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요?"
“우리가 미끼가 되자고? 미끼가 되는 게 긍정적이니?”
“우린 강하잖아요.”
한 번 자기주장을 시작한 유미는 둑이라도 터진 것처럼 말했다.
옥상 위에서 생존자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건가?
내가 단지 내의 다른 사람들이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마음에 걸렸나?
뭐라고 말해야 할까? 지금은 고등학교 학생들이 서로 티격태격 싸우다 말고 ‘우리 친구하자.’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유야 어떻든 저쪽과 싸우면 반드시 둘 가운데 하나는 죽었다.
좋은 사람들? 지금 이런 세상이 된지 삼개월이 지나 이제 100일이었다. 100일 동안 아비규환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가운데 죽이지 않고 죽이는 걸 암묵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고고하게 살아남은 자들이 몇이나 될까?
거대한 도시 서울에는 천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천만 가운데 몇 이나 살아남았을까? 거리를 채운 좀비들을 보면 열에 하나? 스물에 하나 꼴로는 살아남았을까 싶었다.
그렇게 살아남는 동안, 사람들끼리 얼마나 죽고 죽였을까? 나만 해도 직간접적으로 죽인 사람들의 숫자가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친해져? 이런 상황에서 강하다고 미끼를 자처해? 내 얼굴 표정이 묘하게 굳는 것을 본 유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저씨. 저기서 평생. 죽을 때까지 살 건가요?”
"......"
"전... 싫어요. 갇혀있기. 싫어요."
"뭐라고?"
그 눈동자는 자유를 갈구하는 눈동자였다. 어째서? 사람들과 만날 생각을 하는 거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선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지? 순간 깨달았다. 유미는 내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 죽고 죽이는 경험을 하지 않은 여고생일 뿐이었다.
그런 유미를 나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적응을 너무 잘해줬기에, 내 말을 잘 따라줬기에 잊고 있었다. 그녀는 떡볶이를 먹다 눈물을 흘리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저 계모 슬하에서 잠시 방황했었다는 소리에, 안주거리를 먹는 것을 보고 '아 좀 놀았나 보다. 세상 물정 알겠지.'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혼자 착각했어도 상관없었다. 거점에 있을 때는 문제가 생길 일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유미가 나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우리를 위협하는 사람들을 죽일 수 있다고, 우리와 상관없는 자들을 철저하게 무시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유미에게 생존자들을 관찰하라고 했을 때, 내 말대로 냉정하게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강한 힘을 갖고 생존자들을 왜 구하러 가지 않느냐 묻고 싶었던 것을 참고 있었을 뿐이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을 내리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이야기하고 우선 피하자. 저쪽은 트럭도 있고 인원도 많아서 좀비들이 몰려와도 괜찮겠지만, 우리는 방패도 부서졌잖아. 당장 좀비들만 몰려들어도 위험해.”
유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해도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좋았다.
“네 말대로 착한 사람들인지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자고. 정말 괜찮은 사람들이라면 그 때가서 만나도 늦지 않으니까...”
그제야 내가 잡아당기는 대로 발을 떼는 유미였다.
하-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육중한 소리를 내며 덤프트럭이 밀고 지나갔고 뒤를 따라 25인승 중형버스 2대와 승합차가 스치듯 지나갔다.
“일단 가자.”
“.......”
꼭 휴가 나왔던 군인이 자대에 복귀하는 것처럼 유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그래도 이게 옳았다. 비록 소소한 실수를 했지만 큰 실수 없이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을 조심하는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몸을 웅크리고 펜트하우스를 향해 몇 발자국 걸었을 때, 뒤에서 낮고 굵직한 목소리가 우릴 불렀다.
“거기. 둘. 멈춰!”
덤프트럭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동했기 때문에 뒤에서 접근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낭패였다. 유미는 다른 생존자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소를 띤 얼굴로 뒤돌아봤다.
낮은 목소리가 다시 묵직하게 외쳤다.
"움직이지 마!"
위기감응은 발동하지 않았다. 당장 죽일 생각은 없다는 소리였다. 일단 몸을 가리기 위해, 유미의 손을 잡아당기는 순간 뭔가 날아왔다.
팍!
석궁의 볼트가 유미의 머리통 바로 옆에 틀어박혀 부르르 떨었다. 언제든 헤드 샷을 할 수 있다는 경고사격. 움직이지 말라는 경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