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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42화 (42/261)

조우 (2)

찌그러진 자동차에서 울리는 경보음이 들리지 않았다.

오직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맨홀 뚜껑만 눈에 보였다.

우우웅

30~50kg을 오가는 맨홀 뚜껑이 원반던지기 할 때 쓰는 원반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공기가 떨리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 있었던 일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피해야 해.'

어떻게?

머리가 울릴 정도로 충격을 받은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죽는다.

시간이 느리게 갔다. 눈 깜박할 사이가 몇 초처럼 느껴졌지만 물먹은 솜처럼 팔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피해야 하는데, 움직여야 하는데, 눈에 뻔히 보이는 궤적을 봤음에도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호흡이 흐트러진 몸뚱이는 절박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허우적 거릴 뿐이었다.

‘씨발......’

저절로 눈이 질끈 감겼다.

콰아아아앙!

“꺄아아아악!”

우직.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높은 소프라노 고함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내 눈앞에 보인 것은 작고 가냘픈 등이었다. 유미가 날아오는 맨홀 뚜껑을 중간에서 끊은 것이었다.

두 팔로 방패를 잡아 날아오는 맨홀 뚜껑을 흘리듯 빗겨냈지만 완벽하게 비껴내지 못했다. 그 대가는 두 팔이었다. 유미의 얇은 두 팔이 수수깡처럼 부러지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아으으윽!"

고통에 찬 신음 소리와 함께 우둑-두둑- 소리를 내며 재생하기 시작한 유미의 두 팔이었다.

"고개 숙여! 앉아!"

두 팔이 부러져 엉거주춤하고 서 있는 유미에게 외쳤다. 유미는 내 소리를 듣고 제자리에 앉았다.

"팔은?"

"으으. 부러졌어요."

"회복하는데 얼마나 걸리겠어?"

"모르겠어요."

나보다 유미의 재생속도가 월등하게 빨랐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두 팔이 다시 붙는데 몇 분은 걸릴 것이다. 어서 일어나야 했다. 크흡-충격을 받아 끊어진 호흡을 억지로 이었다.

최대한 빨리 회복해야 했다. 머리통이 흔들렸는지 어지러웠지만 재생력이 발동되면서 서서히 회복됐다. 일반인이었다면 여파만으로도 즉사했을 것이다. 발을 움직여봤다. 움직인다. 다행히 척추는 괜찮았다. 척추가 다쳤다면 재생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이다.

“다른 곳은? 팔 말고 다른 곳은 괜찮아?”

“예. 괜찮아요. 으으윽! 아저씨는요?”

“움직일 수 있어. 엎으려 있어.”

유미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맨홀 뚜껑 던진 놈을 찾아야 했다. 날아온 방향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주변에도 없었다.

"던진 놈이 어디있는지 살펴봐."

"안 보여요."

유미도 찾지 못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찾을 수 없다면 던지고 바로 은폐를 했다는 소리였다. 빌어먹을 정도로 영악했다. 급속재생 덕분에 부러진 두 팔은 금방 나았다. 힘을 줄 수 있는지 주먹을 폈다 쥐었다 확인 해보는 유미였다.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지만 움직이는데 불편하지는 않아요."

"아직 힘을 주긴 힘들고?"

"네..."

"어쩔 수 없지. 일단 자리를 피하자."

최대한 빨리 전역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팔이 완벽하게 재생되고 체력이 회복될 때까지는 피하는 것이 좋았다. 일반좀비도 완력이 약한 편은 아니었다.

*

"그쪽 공격해."

"움직이라고 병신 새끼야. 움직여."

"던지라고. 다리를 엮어!"

코너에서는 아직도 생존자들과 변이종이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협동하는 인간은 초인적인 능력이 없이도 대단했다.

“됐다! 다른 한 쪽 눈도 찔러!”

드디어 눈을 찌르는데 성공한 것 같았다. 눈을 찔러 뇌까지 충격을 줬다면 변이종의 강력한 방어력도 약해졌을 것이다. 확실히 저들은 100일 동안 살아남은 베테랑들이었다.

“씨발 새끼 도망 못 치게 다리 묶어!”

“체인! 체인으로 감아!”

크아아아아아!

분노어린 변종의 울부짖음이 들렸다.

이윽고 쏴아아악! 뭔가가 쓸리는 소리와 함께 질펀하게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이 변종의 발악에 휘말린 것 같았다.

“김씨!"

"이런 썅 김씨!”

“죽어! 이 지겨운 새끼!”

포위망을 구성하던 사람이 죽자 변종이 다시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

*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이동하면서 생존자들과 변종의 사투를 살폈다. 변종은 끈질겼다. 생존자들이 변종을 몰아붙이고 있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없어 끝장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에 났던 소리가 많이 줄어들은 것으로 보아, 생존자 인원 가운데 절반은 죽은 것 같았다. 그래도 변종을 몰아 붙이고 심지어 거의 다 잡았다는 건 대단했다. 군대도 포기한 놈을 민간인들이 잡은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 민간인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사냥꾼이라는 단어만 살아남은 것일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이기는 것 같아요.”

편의점 방향을 바라보던 유미가 말했다. 자기 것을 강탈당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으면서 그 감정이 사라졌는지, 유미는 다른 생존자들에게 관심이 많아 보였다.

"그래. 솔직히 대단하네."

“우리가 도와주면 금방 이길 수 있지 않을까요?”

"뭐라고?"

"아저씨랑 제가 도와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유미도 생존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강한 한 방이라는 것을 짐작한 것 같았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유미야. 저들은 우리를 포위하고 있었어. 지금 도와준다고 좋아할 것 같아?”

"그치만."

"그치만은 무슨 그치만. 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 줄 알고?"

"우린 힘이 있잖아요."

생존자들이 이긴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었다. 저기에 우리 편은 없었다. 그러니 저들이 이기고 있다고 해서 좋을 것도 없었고, 여기서 구경하고 있을 이유도 없었다.오히려 저 상황이 해결되면 우리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

"팔은 다 아물었어?"

"네."

"제대로 힘을 쓸 수 있냐고."

"예."

유미가 주먹을 불끈 쥐며 대답했다. 그 불타오르는 의욕에 찬물을 뿌렸다.

"그래? 근데 난 아직 덜 회복됐어."

"예? 아직도요?"

"회복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그러니까 저쪽은 신경끄고 가자."

유미는 조금 주저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었다. 단 둘이 있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신경이 쓰이는 건 당연할지도 몰랐다. 생존자들과 조우하면 이렇게 반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아차 싶었다.

“정신 차려! 저쪽 도와줄 상황이 아니야. 나도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리고 우리를 공격한 변종이 근처에 있을 지도 몰라.”

“예? 진짜요?”

맨홀 뚜껑을 던진 놈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자 화들짝 놀라, 발걸음을 옮기는 유미였다.

"정말 변종이 또 있을까요?"

"그래. 영악한 놈이라면 어디를 공격할까 재고 있을 지도 몰라."

확실하지 않지만 유미를 설득하려면 변종핑계가 제일 좋았다.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저쪽에서 요란스럽게 싸우고 있으니 변종이 더 꼬일 지도 몰랐다. 새로 꼬이는 놈을 차제하더라도 우리를 공격한 놈은 분명히 어디엔가 몸을 숨기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건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소리였다. 놈의 목표가 우리일 가능성도 있었다. 처음 보는 타입이었다. 30~60kg사이의 맨홀 뚜껑을 원반 던지듯 던질 수 있는 놈이라면 나보다도 강한 놈이라는 소리인데, 그런 놈이 우릴 노린다면 목숨이 위험했다.

방패가 단 한 방에 박살났으니, 이제는 막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방패도 없이 싸운다면 필패였다. 일단 돌아가야 했다. 맨홀뚜겅을 가지고 원거리 공격을 하다니 상상도 못한 짓을 하는 놈이었다. 두 달 전? 거의 50일 전쯤 봤었던 근육질 변이종도 이정도로 강했을까? 만약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이라면 답이 없었다.

생존자들과 변이종의 사투는 거의 종극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생존자들이 승기를 완전히 잡은 것으로 보였다. 마무리 한 방이 없으면서도 끈질기게 달라 붙어 결국 변종을 무력화 시킨 것이었다. 변종이 힘없이 발버둥 쳤지만 처음 같은 위력은 없었다. 말 그대로 사람들의 성난 공격을 막기에 급급해 보였다. 변종과 싸우지 않는 사람들은 접근하는 일반좀비들을 제법 잘 막아내고 있었다.

"그 새끼 빨리 죽이라고!"

"좀비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어!"

잘 막아내고 있지만 숫자의 폭력은 무시하기 힘들었다. 변종과의 사투가 길어진 대가로 일반좀비들은 빼곡하게 편의점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 어떡해요? 다 이겼는데...”

“시간을 오래 끌었으니 어쩔 수 없지”

"진짜 그냥 갈 거에요?"

"그래."

내 냉정한 목소리에 유미의 얼굴빛이 변했다. 도와주지는 않더라도 생존자들 가운데 저런 집단이 있다는 건 놀라웠다.

"그런 표정 짓지마. 우리가 돕지 않는다고 저들이 몰살할 것도 아니고."

"그래도."

"봐... 일반좀비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나름 잘 막고 있잖아. 우리가 가면 오히려 방해가 될 지 몰라."

"......"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꼭 레이드를 하는 것처럼 착실하게 변이종을 공략하고 몰려드는 일반좀비를 제거했다. 저들이 총화기로 무장까지 했다면 정말 대단했을 것이다. 석궁과 활, 창과 정글도만으로도 저렇게 싸우는데 제대로 된 장비가 있다면 훨씬 잘 싸울 것 같았다. 생존자들의 싸움에서 신경을 끄고 계속 이동하는데, 갑자기 커다란 비명과 굉음이 들렸다. 발걸음을 옮기던 유미가 뒤돌아봤다.

"아저씨!"

"돌아보지 말고 고개 숙여! 고개 숙이고 계속 가."

“끄아아악!”

“커어어억!”

콰드드등.

뭔가 박살나는 소리가 생존자들이 사투를 벌이는 곳에서 들렸다. 폭탄이 터진 것 같은 소리. 그러니까 묵직한 무엇인가가 날아가면서 쓸어버리는 소리였다.

“아저씨? 저 소리?”

“그래 그 소리다.”

맨홀 뚜껑이 벽에 틀어박히는 소리였다. 날아가는 궤도에 있던 사람은 몇 명이든 곤죽이 됐을 것이다.

“씨발 변이종이다!

“개 새끼들 또 있었어!”

“두 마리가 같이 다닌다고?”

“한 놈이라도 잡아!”

“다 잡은 새끼부터 조져!”

우리를 공격했던 변이종은 먹이를 바꿨다. 더 덩어리가 큰 먹이를 덮친 것이다. 천만 다행이었다. 맨홀 뚜겅에 당한 충격이 조금씩 사라졌다. 회복이 다됐기 때문에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생존자들과 맨홀 변이체가 격돌하면서 비명소리와 폭음이 들렸다. 그래서인지 일반 좀비들이 꾸역꾸역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최대한 마주치지 않고 가기 위해 돌고 돌다보니 직선거리로 400~500m 떨어진 거리가 줄지 않았다.

“아저씨 아까 저 사람들이 우릴 노렸다고 했죠? 그게 무슨 말이죠? 어떻게 된 거죠?”

예상이었지만 확실했다. 위기감응이 발동했으니까 말이다.

“음 그러니까 우리가...”

설명을 하려는데 자동차 소리가 났다.

“어? 차 소리에요.”

유미가 자동차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 두 대가 아니었다. 최소한 4대? 그 이상이 달리는 소리였다.

콰직.

콰등.

일반 좀비들을 치고 갈아버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방향은 이쪽이었다.

“변이종과 싸우던 사람들과 같은 그룹 같다.”

무전기로 차량 지원 이야기를 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마 확실할 것이다. 이 방향으로 간다면 편의점으로 향하는 교차로 방향이었다. 편의점이 있는 안쪽은 도로가 주차장처럼 꽉 막혔지만 이쪽은 단선이지만 차로가 뚫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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