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스트 DUST-40화 (40/261)

편의점 (2)

일반 생존자들은 밤을 두려워했다. 어두운 밤거리를 다니다 동면하고 있는 괴물 근처를 잘못 지나가면 그걸로 끝이었기 때문이다. 지뢰처럼 여기저기 있는 동면중인 괴물을 피하겠다고 랜턴을 켜면? 좀비와 괴물이 불빛에 반응해 몰려들었다. 그러니 생존자들은 되도록 낮에 움직였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어스름한 달빛이면 충분했다.

[정지]

수신호를 익혔기 때문에 유미는 내 신호를 보고 곧바로 반응했다. 유미가 끌고 오는 리어카는 지하2층 세대별 창고에 있던 아동용 자전거 바퀴를 이용해 만든 리어카였다. 리어카를 두 대 만들었지만 한 대만 가지고 움직이기로 했다.

[이동]

한 명이 끌고 다른 한 명이 방어 전담을 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기로 했었기 때문에 움직이는데 무리가 없었다. 작은 리어카 한 대라고 하더라도 리어카는 리어카였다. 물건을 운반할 수 있는 양이 달랐다.

뭐가 됐든 도구를 쓸 수 있다는 건 상당히 좋은 일이었다. 리어카와 지게, 이불을 찢어 만든 대형 주머니 조합이면 상당히 많은 양을 운반할 수 있었다.

[정지]

[대기]

잠시 멈춰 좀비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일반좀비는 후추에 후각이 마비됐는지 옆을 지나갔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였다. 시계를 보고 기다렸다. 정시가 되자 요란한 소리가 시작됐다.

따르르르르르릉.

까르르르르르릉.

어두운 밤거리를 깨우듯, 미리 숨겨둔 휴대폰에서 시끄러운 알람소리가 울렸다. 휴대폰이 울리자 그곳으로 주변의 좀비들이 조금씩 몰리기 시작했다. 좀비들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우리가 대기하고 있는 곳의 좀비들의 밀도가 조금씩 낮아졌다.

[대기]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좀비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린 뒤 조심스럽게 신호했다.

[전진]

낮에 미리 봐둔 은폐, 엄폐물을 이용해 조금씩 끊어가며 움직였다. 리어카에서 소리가 났지만 그 정도는 어쩔 수 없었다. 다행하게도 좀비들은 리어카를 끄는 소리보다 휴대폰 알람에 관심을 가졌다. 동면상태인 괴물들의 사정권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느라 이동거리가 늘어났지만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설치준비]

끄덕.(완료)

[이동]

이동루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휴대폰을 여기저기에 배치했다. 제한 시간은 10분, 100분, 120분 이렇게 3곳이었다. 10분 뒤에 다음 휴대폰이 울리면 편의점 근처에 있는 좀비들이 직접 반응할 것이다. 아직도 다수의 좀비들이 편의점 인근에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확실하게 유인할 필요가 있었다.

10분이 지나자. 루트 반대쪽에 숨겨둔 쓰레기통 속 휴대폰이 요란하게 소리를 냈다. 쓰레기통이 울림통이라도 된 것처럼 소리를 증폭시켰다.

데에에에엥~

뎅뎅뎅뎅뎅~

유미가 선택한 알람은 괴상했지만 확실히 시끄러웠다. 편의점 인근을 서성이던 좀비들이 어기적거리며 이동했다. 이제 좀비들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5분 이상 걸릴 것이다. 5분 안에 편의점 문을 따고 들어가면 됐다.

덜컥.

셔터는 내려가 있지 않았지만 예상했던 대로 문은 잠겨있었다. 치이익-가스용접절단기에 불을 붙여 잠금장치를 녹이기 시작했다. 쇠가 달궈지는 소리와 함께 잘리기 시작했다. 유미는 리어카를 세워두고 주변을 경계했다.

[이상무]

제법 수신호를 잘 쓰는 유미였다.

5분이면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10분이 넘게 걸려서야 문을 열 수 있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 내부는 깜깜했지만 우리에게는 별다른 장애가 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들어가 한쪽을 살폈다. 약탈의 흔적이 없는 깨끗한 진열대가 우리를 환영했다.

[수색]

안쪽에 있는 창고까지 전부 수색을 했지만 별다른 위험과 흔적이 없었다. 식료품이 상당히 많았다. 겉보기와는 달리 내부가 큰 편의점이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물량이 많았다.

"생각보다 많은데?"

"그렇기는 하네요."

유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아깝네요 정말 먹고 싶었는데."

"먹고 싶은 게 있었어?"

"여긴 비상발전기도 없었나 보네요.”

상한 냉동/냉장식품들을 바라보는 유미의 표정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비상발전기가 있었어도 3개월 넘게 돌릴 정도는 아니었겠지. 관리할 사람도 없었을 테고... 아이스크림 좋아하니?”

"네... 날도 더워지고 보니까 생각이 나네요."

유제품을 제외한 캔/병 음료수 주류는 그대로였다. 멀쩡하게 진열된 상품들을 보니, 세상이 망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고작 3개월이 조금 지났을 따름인데, 뭔가 아련한 느낌이었다.

안쪽에 있는 작은 창고 문을 열고 들어간 유미가 호들갑을 떨었다.

“여기도 있어요! 진짜 많은데요. 대박!"

개껌을 물고 기뻐하는 강아지 같았다.

"한 번에 옮기기는 불가능할 것 같아요.”

피식-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일단 캔과 레토르트 식품. 건조식품을 중심으로 챙기자. 포장지는 전부 버리고. 알맹이만 챙겨.”

“알겠어요.”

급조한 리어카에 한계까지 채웠다. 그것도 부족해 몸통 4배 정도는 될 법한 거대한 배낭에 꽉꽉 물건을 채웠다. 배낭의 무게는 족히 200kg은 나갈 정도였다.

“들 수 있겠어?”

“으잉차. 네.”

성인 남성이 80kg을 들고 움직일 수 있다면 그 3배인 240kg을 들고 움직일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한계까지 든다면 300kg도 들 수 있었지만 힘을 쓰는 것에 비례해 급속도로 에너지를 소모했다. 그러니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빵빵하게 등짐을 지고 일어났다.

“일단 그건 내려놓고 갔다 오자.”

“네...”

내가 지긋하게 노려보자 유미는 막 들었던 KG*칵테일을 내려놨다. 알콜도수 5%짜리 칵테일로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술도 먹을 줄 알아?"

"아니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고개를 도리도리 흔드는 유미였다.

"진짜?"

"아니라니까욧!"

*

"거기까지만 싣자."

"예? 그래도."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게 좋았다.

"움직이는데 둔해지면 위험해."

"아직 괜찮은데."

유미가 등에 진 짐을 들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확실히 힘이 세졌기 때문인지 커다란 가방에 꽉꽉 채워넣고도 가볍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도 안 돼. 밖에 리어카도 끌어야 하잖아."

"알겠어요."

욕심을 부리면 조금 더 가져갈 수도 있겠지만 혹시 몰랐기 때문에 적당히 끊었다.

돌아가는 길은 편의점으로 갈 때 보다 더 수월했다.

[정지]

따르르르르릉

애애애애애앵

미리 설정해 놓은 알람이 정시에 울리면서 따박따박 좀비들을 유인해줬다.

[이동]

천천히 이동하니 힘들지 않았다. 리어카를 밀고 가기 좀 불편해서 그렇지 큰 위험 없이 돌아올 수 있었다.

*

삑-

화물엘리베이터를 잠가둔 것을 풀고 안으로 들어가자 긴장이 훅 풀렸다.

“와- 생각보다 쉬웠어요.”

유미가 밝은 목소리로 쫑알거렸다.

“나 진짜 가슴 떨렸는데.”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하며 호들갑 떠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성공했어요!"

"그래."

내 피식-거리는 대답을 무시하고 유미는 가방에서 스파게티 소스병을 꺼내며 외쳤다.

"우리 스파게티 해먹어요."

전보다 확연히 밝아진 유미였다.

"나중에 해먹자. 일단 짐부터 풀어 놓고."

"네~"

"지금 정리하지 말고 일단 한 쪽에 전부 쌓아."

"또 가려고요?"

“그래. 휴대폰이 몇 개나 남았지?”

“에-그러니까... 4개를 썼으니까 17개 남았어요.”

최소한 4번은 더 왕복 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야 하니까 5개는 남겨두기로 했다.

“좋아 3번만 더 움직이자.”

“네-”

당분간 음식 걱정 없이, 넉넉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리어카 하나 더 있잖아요. 그거 제가 끌면 안 될까요?”

“위험하지 않겠어?”

“지금 갔다와보니까 괜찮은데요? 밤이라서 사람들도 없고, 좀비들도 휴대폰 소리에 확실히 끌렸고, 왔던 길만 잘 찾아서 움직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요, 힘을 이럴 때 쓰지 언제 쓰겠어요.”

그렇기는 했다. 작은 리어카라도 두 개면 나를 수 있는 분량이 확실히 차이 났다.

“좋아 위험하면 물건을 포기한다. 이건 약속이야.”

“그럼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유미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그렇게 두 번을 왕복했다.

"보세요. 엣헴."

유미가 자기가 끌고온 리어카에서 짐을 내리며 가슴을 폈다.

"그래 그래."

확실히 리어카를 두 개 사용했더니 한 번에 실어오는 양이 달라졌다.

"그래도 양이 많은데 어떻게 할까요? 컵라면이랑 음료수 같은 것도 가져와야 하지 않나요?"

"부피가 큰 건 일단 나중에 옮기자."

"히힛- 전부 다 챙기자고요."

이제는 넉살 좋게 물건 욕심을 내는 유미였다.

*

직선거리로는 고작 400~500m였지만 좀비를 피하고 리어카가 이동할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다 보니 상당히 멀리 돌아야 했다. 한 번 왕복하는데 최소 2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3번을 왕복하니 거의 7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밤 9시 30분경부터 움직였는데 벌써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6월의 새벽은 생각보다 부지런했다.

"이거 힘들겠는데?"

짐을 내리며 시간을 확인했더니 더 움직이는 것은 아슬아슬했다.

"네? 뭐가요?"

"조금 있으면 해가 뜨겠어."

"정말요? 아침 일찍이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전기가 나갔으니 사람들이 일찍자고 일찍 일어날 확률도 높고..."

리어카로 음식을 실어나르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면 골치아팠다. 내 말 뜻을 알아들은 유미의 표정이 침울하게 변했다.

“어쩌죠? 이번에 가면 꼭 가져오고 싶은 게 있었는데.”

“아. 미안.”

주저하는 유미의 표정을 보니 아차-싶었다.

사실 먹을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빈 집에서 찾은 여성용품들이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었다. 필요할 때마다 적당히 샀지, 미리 쟁여놓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4시 20분이라.”

시간이 애매했다. 아직 어둡기는 하지만 5시가 넘으면 금방 밝아질 것이다. 갈 때는 그래도 어둡겠지만 올 때는 확실히 밝다고 봐야 했다. 오늘 밤에 가는 건? 밤새도록 휴대폰이 울렸으니 오늘 낮에는 생존자들이 돌아다닐 것이 분명했다. 편의점 근처에서 휴대폰 알람이 울려 좀비들이 그쪽에 모였으니 생존자 그룹들이 편의점을 털 확률이 100%였다.

“최대한 빨리 갔다 오자.”

결정을 했으면 빨리 움직이는 것이 좋았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빠른 걸음으로 편의점으로 갔다. 벌써 3번째 왕복하는 중이라 익숙하게 리어카를 세워놓고 편의점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가슴이 갑갑해졌다.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감각.

가슴을 구둣발로 밟히는 것 같은 느낌.

그간 발동되지 않았던 위기감응이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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