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 (2)
여고생은 가위바위보에 이긴 것이 기분이 좋았는지 헤실 거렸다.
“헤헤헤. 이제 올라가는 거죠?”
작은 것에 기뻐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 기쁨을 그대로 둘 상황은 아니었다.
“아니.”
단호하게 끊어낸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여기서 더 뭘.’하는 표정이었다.
“예? 그럼?”
“지하에 있는 것들... 모조리 정리해야지.”
“저. 저는.”
물음표를 동동 떠올렸던 여고생의 얼굴이 삽시간에 노랗게 떴다.
아무래도 목숨이 오락가락했으니 정신적으로 많이 피곤할 것이다. 짐작은 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올라갔다 또 하루를 보내고 내려오고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건 좋지 않았다.
“기계실에 있는 놈들은 저거랑 달라. 설마 저것 같은 놈들인데 싸우자고 하겠어?”
사실이 그랬다. ‘그것’과 같이 무시무시한 것과 다시 싸운다면 암담했다. 하지만 기계실에 있는 놈들은 동면(?)을 하고 있는 미라 같은 놈들이었다. 싸워본 경험에 의하면 그것에 비해 확실히 해볼 만한 상대였다.
“놈들이 일반 성인 남성보다 힘이 세지만 우리도 힘에서는 밀리지 않아.”
“우으...”
“내 말대로 내려오지 않았으면 어땠을 거 같아? 우리가 자고 있는데 저것이 난입해 들어왔다고 생각해보라고 잠결에 소리가 나서 나왔더니 똿-하고 저게 쳐들어왔으면?”
검은 비닐에 둘둘 말린 시체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노랗게 뜬 여고생의 얼굴에 갈등이 어렸다. 싫어도 어쩔 수 없었다. 강제로 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유지된 관계는 오래가기 힘들었다. 속이는 것도 마찬가지, 사람의 심리를 어느 정도 파악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참사를 불러일으켰다. 두 번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정공법이었다.
“나도 올라가서 쉬고 싶어. 하지만 너도 알잖아. 잠깐의 여유를 찾다가 영원한 지옥을 경험하게 될지 모르는 게 지금 세상이다.”
면역이 됐는지 서서히 변할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피하는 게 맞았다. 혹시라도 증세가 나중에 생긴다면? 며칠 동안 의식을 잃었던 것처럼 그렇게 의식을 잃게 된다면? 그동안 기계실에 있던 놈들이든 다목적 홀에 있던 놈들이든 문을 부수고 올라온다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볼 때, 지금 처리하는 것이 좋았다.
“우리가 충분히 잡을 수 있어. 저것이 공격을 했어도 막았잖아. 저기를 봐.”
싸움의 흔적은 요란했다. 바닥과 벽의 대리석 타일이 깨지고 속의 철근콘크리트가 노출됐다. 말 그대로 공사용 해머로 두들겨댄 것 같은 흔적이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했으면 심정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이성적으로는 납득했을 것이다. 탄창에 탄을 삽입하며 말했다.
“방패 들어.”
“...우... 조금만 더 쉬었다 가면 안 돼요?”
“시간 끌었다가 컨디션이 나빠지면 어떡하게? 혹시라도 모르니까 멀쩡할 때 처리해야지.”
“그래도...”
“그리고 우리 몸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야.”
“예? 몸이라뇨? 막 재생되고 힘도 세지고 그거 아닌가요?”
“그래? 정말 그것뿐이야?”
“뭐가요? 또 다른 게 있어요?”
복도에 불이 꺼져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은 비상등마저 깨져있어 상당히 어두웠다. 랜턴에서 한 가닥 빛줄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마주보고 얼굴 혈색까지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피식-아주 살짝 썩은 미소를 지었다.
“왜 웃으세요?”
“웃는 거 봤어?”
“그렇게 이상하게 웃는데 당연하죠. 왜 웃은 거예요?”
피식-다시 웃자 여고생의 볼이 살짝 부풀어졌다.
“지금 복도엔 불이 꺼져있지?”
“불이요?”
무슨 소린가 싶어 물음표를 동동 떠올렸던 여고생이 천장을 보더니 소리를 버럭 질렀다.
“....... 으에에에엑! 뭐. 뭐죠?”
눈을 비비고 다시 뜨고를 반복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뭉텅이로 떨어져 나간 살이 고속재생을 하더니, 이제는 눈도 이상해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푹- 부비부비 눈을 계속 비벼대기 시작했다.
“그만 비벼. 말했지? 우리가 좀 변했다고. 물리기 전부터 그랬으니까 너무 걱정 마.”
“그. 그래도.”
“아무래도 전반적으로 전부 좋아진 것 같다. 의식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청각도 좋아졌을 거야.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겠지. 이만하면 괴물들과 싸울 수 있지 않겠어?”
여고생의 머리를 헝클고 툭툭-어깨를 쳐줬다.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하는 행동의 의미를 알아들었을 것이다.
“우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데요?”
“두 마리는 간단하지. 한 마리를 네가 붙잡고 있는 동안 다른 하나를 내가 때려잡는다.”
“총도 있으니까 총으로 그냥 쏘면 되잖아요.”
“총알이 많지 않아. 게다가 군인들도 교전을 피하는 놈들이다. ‘그것’ 만큼은 아니더라도 총기로 죽이기는 쉽지 않을 거야.”
“.......”
“알았지? 방패로 막고 휘둘러. 나머지는 내가 할 테니까.”
“으... 알겠어요.”
끝까지 빼지 않을까 걱정이었는데 애를 먹이기는 해도 결국엔 따라줬다.
“후딱 해치우고 올라가서 떡볶이 해먹자.”
“진짜요? 아저씨 사는데 가는 거예요?”
“그래. 초대하지.”
“히히힛.”
죽다 살아난 뒤로 녀석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나사가 하나 빠진 기분이었다. ‘후딱 해치우고 밥 먹자니 이 무슨 깡패 같은 발언인가?’ 피식-웃음이 나왔다.
*
끼이이익! 기계실 문이 열렸다. 깜깜한 기계실 안쪽에 외로운 비상등이 녹색의 불빛을 빛내고 있었다. 여고생이 반사적으로 불을 키려고 했지만 말렸다. 어둠에 익숙했기 때문에 불을 켤 필요가 없었다. 이것도 익숙해져야 했다.
[저놈]
한 놈을 지목하자 여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이 켜지지 않아서인지, 움직이는 소리가 크지 않아서인지, 놈들은 동면(?)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놈에게 낚싯줄을 엮어 만든 그물을 던졌다.
꿈틀.
그물이 닿자 놈이 움직였다. 한 놈이 움직이자 다른 놈도 동면에서 풀리기 시작했다. 그물을 던진 놈을 향해 다가서자, 특유의 첫 움직임으로 튀어 오르는 괴물이었다.
크어어어어!
괴성을 지르며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느렸다. 게다가 그물에 두 팔이 봉쇄된 상태.
“으랴차!”
홈런을 때리듯 달려오는 타이밍에 맞춰 둔기를 휘둘렀다.
뻐어어억!
그대로 머리통이 터져버리는 괴물이었다. 나에게 달려든 놈의 머리통이 한 방에 산산조각 나는 동안 여고생은 방패로 다른 놈을 견제했다. 콰직!- 첫 돌격을 차분하게 막아낸 여고생은 두껍고 무거운 방패를 휘둘러 놈의 공격을 착실하게 차단했다.
“잘했어! 내 쪽으로 밀어 버려!”
“네!”
뻑!
묵직하고 두툼한 방패에 밀린 녀석이 내 쪽으로 발라당 넘어졌다. 발라당 넘어진 놈이 버둥거리며 일어서려는 것을 골프채를 휘두르는 것처럼 휘둘렀다. 콰직- 소리와 함께 그대로 머리통이 앞으로 꺾여버리는 놈이었다. 머리통이 완전히 박살나지 않았기 때문에 비쩍 마른 팔다리를 꿈틀거리며 조금씩 움직이는 놈이었다. 지금이 좋은 기회였다.
“마무리는 네가 해봐.”
“예?”
“해봐. 언제고 해야 할 일이야.”
“그. 그래도.”
“내가 없을 때 이런 놈들과 만나면?”
“후으...”
둔기를 건네주자 여고생이 주저주저했다. 내가 단호한 표정을 짓자 여고생이 둔기를 치켜들었다. 5kg이 넘는 둔기를 젓가락 마냥 가볍게 휙 들었다.
“이놈은 사람처럼 생기지도 않았잖아. 딱 봐도 괴물인데 이것도 못 처리하면 어쩌려고?”
“으... 알았어요!”
여고생은 눈을 질끈 감고 둔기를 내려쳤다.
팍! 빡!
눈을 감고 휘두르자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어깨가 박살나고 머리에 빗겨 미끄러졌다. 힘은 확실히 좋았다.
“눈뜨고!”
“으으으. 으아앙.”
“머리가 약점이다. 머리통을 노려야지. 다시!”
퍼어억! 빠아악!
괴물의 머리통이 완전히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대도록 시킨 뒤 ‘참 잘했어요.’를 외쳐줬다.
“아주 잘했어. 앞으로 방패&둔기로 가도 될 것 같아.”
“예?”
처음에는 좀 그렇더니 나중에는 제법 찰 지게 휘두르는 여고생이었다.
“방패랑 같이 들어도 무겁지 않지? 방패로 막고 둔기로 내려치는 거야. 여차하면 방패도 휘두르고 둔기도 휘두르고.”
‘참 간단하지요?’ 하는 표정으로 말하자 여고생의 표정이 암담해졌다.
“이 기세로 지하 1층에 있는 놈들까지 후딱 정리하자.”
“우....”
“좋아. 기분이다. 치즈떡볶이로 해먹자.”
“치즈가 있어요?”
유통기한이 매우 의심스러운 치즈가 떠올랐던 것은 일단 비밀이었다.
“어때 해보니까? 두려워할 거 없잖아.”
"네... 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동의해주는 여고생이었다.
“지하 1층 다목적 홀에는 4마리가 있지만 우리 둘이면 충분히 잡을 수 있어.”
"우으..."
우물거리는 여고생에게 힘을 팍팍 넣어줬다.
“간단하게 생각하자.”
치즈떡볶이를 먹기 위해 괴물들을 죽이러 가는 길은 가벼웠다.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믿었다. 강해졌기 때문에, 가냘픈 여고생이 20kg이 넘는 금속덩어리 방패를 자유자재로 휘두르고 5kg이 넘는 둔기를 지푸라기 흔들듯 흔들 수 있었을 때부터 자신감은 방심으로, 방심은 교만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하 2층의 괴물 두 구를 순식간에 처리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강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하 1층의 네 마리도 금방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가벼웠을 뿐이다.
“시작부터 그물로 하나 묶고 네가 둘을 견제하는 동안 그물로 하나 더 묶으면 2:2가 되는 거야.”
“네엣!”
여고생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두려워했지만 금방 두 마리를 정리했기 때문인지 빨리 끝내고 치즈떡볶이를 먹을 생각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들떠 보였다. ‘떡볶이 먹고 갈래인 거지? 우으...’ ‘그...그거 맞지? 어떡하지?’ 여고생은 살짝 붉어진 톤으로 뭔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을 때부터 뭔가 어긋났다.
상황이 급변하거나 스트레스가 높으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봤다. 경험도 했다. 하지만 이겨내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냉정하지 못했다. 바비가 변한 그것에게 죽을 뻔 했었다. 죽음을 경험할 뻔 했던 경험은 긴장감을 동반했다.
활시위마냥 당겨졌던 긴장감이 괴물 둘을 쉽게 죽이면서 극단적으로 흐트러졌다. 긴장에 긴장을 더한 팽팽했던 정신이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처럼 풀어졌다. 긴장을 풀어보겠다고 했던 말이 정말 긴장을 풀었을 때, 현실은 급변했다.
“알았지? 후딱 정리하고 떡볶이 먹으러가자.”
“후읏. 넷..”
“무슨 생각하는 거냐? 설마?”
“아. 아니에욧!”
간단하게 생각했다. 4마리라고 하더라도 동면한 놈들에게 그물 던지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물로 두 마리 묶고 남은 두 마리 하나씩 맡아서 처리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이 없었다. 공포를 희석시켜 용기로 착각한 만용을 타먹었다.
“자 용감한 방패! 전진!”
“넷!”
여고생이 방패를 앞세우고 지하 1층 다목적 홀의 문을 열기위해 문고리를 잡았다. 손을 문고리에 대는 순간.
두근!
가슴이 옥죈다. 묵직하게 무거워지는 가슴. 어?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