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 (1)
꼬르륵
마치 아귀가 울부짖는 소리 같았다. 텅 빈 내장이 꿈틀거리는 소리에 전신에 식은땀이 났다. ‘설마? 머리가 완전히 박살이 났는데도 안 죽었다고?’ 전신이 빳빳하게 긴장을 했다.
고개를 돌려 그것의 시체가 있는 곳을 확인했다. 그것의 시체는 그대로 널브러져있었다. 그럼 이건 어디서 난 소리? 내 배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꼬르륵
여고생의 뱃속에서 나는 소리였다. 흐느끼며 울고 있으면서도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
“조용히 해.”
“......”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고함치듯 말하자 여고생이 줄줄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슥 닦았다. 처량하고 안쓰럽고 위로해주고 싶은 모습이었지만 그걸 보고 있는 나는 죽을 맛이었다.
여고생이 손을 올려 눈물을 닦을 때마다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여고생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아저씨 너무 배고파요 그러니까 먹어도 되죠?’ 이렇게 말할 것만 같았다.
‘탄을 넣어놨어야 하는데.’
반사적으로 총을 생각했다. 총으로 쏴 죽이겠다고? 심호흡을 하며 진정했다. 여고생을 죽여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여고생이 그것으로 변했다면 물린 나도 곧 변한다는 소리였다. 괜히 긴장해서 과잉대응 할 필요가 없었다.
여고생의 뱃속에서 위장이 비었다며 재촉하는 소리가 울렸다. 여기저기 뜯어 먹힌 부분이 채워지면서 여고생의 다른 부분이 눈에 띄게 야위고 있었다. 일단 꼬르륵거리며 협박하는 소리부터 조용히 시켜야 했다.
가방에 넣어온 단백질보충제를 꺼냈다. 넉넉하게 진하게 탄 단백질 보충제를 입에 넣어주자. 여고생은 울면서도 잘 받아먹었다. 거의 2리터에 달하는 양을 먹고 나서야 꼬르륵 소리가 조용해졌다. 창백하게 질렸던 혈색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밝아졌다.
“기분은 어때?”
“좋아졌어요.”
“뭔가 이상한 건 없고.”
“네.”
상처는 거의 다 나았다. 고작 10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고생은 아직도 자기 다리가 나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걸 보면 자기가 괴물이 됐다며 난리를 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단 가지고 내려온 모포로 하체를 덮어 가렸다.
“지혈은 됐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뭔가 이상이 있으면 바로 말해.”
“예.”
“내 등 좀 봐줘.”
“등이요?”
“옷이 찢어졌지? 거기 상처가 얼마나 심각한지 봐주고 여기 물로 상처부위를 씻어줘.”
“알겠어요."
시원한 느낌과 함께 등판을 타고 물이 흘렀다.
“어? 상처가 없어요. 이게?”
여고생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설마 했지만 결국 예상대로였다. 여고생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변했다는 소리였다. 상처가 있던 자리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약간 간질거린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조금 있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빨리 상처가 아물다니 역시 정상은 아니었다.
여고생은 부들부들 떨었다. 마치 내가 괴물이라도 된 것처럼 사색이 됐다. ‘네 다리를 보고 그래.’ 쏘아주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금방 사라졌다. 여고생의 두려워하는 모습은 오히려 안도감을 줬기 때문이다.
여고생이 두려워하는 모습은 그것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반증처럼 보였다. 나보다 더 급속도로 재생한 여고생의 감정이 그것들처럼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히 위안이 됐다.
“왜? 왜 그렇게 보세요.”
여고생이 가슴을 가리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안 잡아먹으니까 조용히 좀 있어.”
“........”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음 상태로 굳어버린 여고생이었다. 잡아먹는다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무서운가보다.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감염은 확실했다. 여고생은 물렸고 나는 상처를 입었다. 거기에 그것에게서 나온 체액(침-혈액)과 접촉했으니 감염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변했는가? 감염의 결과가 변이인지는 불확실했다.
일단 감염의 결과가 변이라면 괴물로 변해야 했다. 재생력의 속도로 보아 괴물로 변하는 속도도 그만큼 빠를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괴물이 가진 특성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급속도록 재생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신체적 변화가 없었다. 심리적 변화도 마찬가지였다. 막 여고생이 스테이크로 보인다든지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음으로는 면역.
감염되지 않고 면역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가설도 가능했다.
‘면역인가?’
아니면 뭔가 다른 영향이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앓고 난 뒤에 근력도 상당히 강해졌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잠복기일 가능성도 있고.’
급속도로 변하지 않고 천천히 변해가는 도중일 가능성도 있었다. 이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기 때문에 방심하기는 일렀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물려서 재생능력을 얻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 아닐 가능성도 충분했다. 예를 들어, 재생능력이 본래 있던 능력이라면? 그러니까 앓고 나서 생긴 능력이라면?
여고생은 바싹 마른 상태에서 고작 반나절 만에 정상으로 회복됐다. 본래 회복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지금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이제야 그 능력을 안 것일 수 있었다.
꼼꼼하게 살펴야 했다.
“자세히 본 거 맞아? 어두워서 잘못 본거 아니야?”
무심하게 말하자 와들와들 떨던 여고생이 ‘어? 정말 내가 잘못 봤나?’하는 표정으로 다시 내 등판을 살폈다.
“피가 많이 묻었는데. 옷도 찢어졌는데... 상처가.”
다시 봐도 상처가 없는 게 당연했다. 여고생은 울먹거렸다.
“상처가 확실히 없어?”
여고생은 내 질문에 반쯤은 두려움과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했다.
“어업. 없어요. 아저씨?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내 상처를 봤으니 여고생도 치료된 자신을 보고 발작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네 상처부터 확인해봐.”
주저주저 모포들 들추고 자기 다리를 확인한 여고생이 비명을 질렀다.
“네? 상처요? 꺄아아악-”
여고생은 자기 다리를 보고 바동바동 몸부림을 쳤다. 다리가 멀쩡하게 움직였다. 바이크 슈트가 찢어져 허연 다리가 매끈하게 드러났다.
“이게. 이게 뭐에요? 아저씨.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나도 모르겠다. 상처가 재생됐다고 해야 하나?”
“아저씨. 우리. 우리 어떡해요. 우리 괴물이 된 거죠?”
“조용히 좀 해봐.”
대답을 하지 않자 여고생은 뭐가 그리 서러운지 대성통곡을 했다.
“흐으으윽.... 어떡해 괴물이야. 괴물이 됐어.”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까. 울지 마.”
“흐끅. 흐윽.. 무슨 소리에요?”
“우리가 면역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단 말이야.”
“뜯어진 다리가 아물었는데요? 사람이면 죽었어야 한다고요.”
“안 죽으면 괴물인가? 생각해 보라고. 네가 10인분을 한 끼에 먹었을 때부터 정상은 아니었어.”
“예? 여기서 먹는 게 왜 나와요!”
여고생의 울먹거리던 표정이 변했다. 웃음이 나왔다. 픽- 웃고 대꾸해줬다.
“성인 남성 10명이 먹어도 다 못 먹을 분량을 먹는 것도 일반인은 아니라는 소리야. 방금 전에 네가 마신 초코믹스도 그냥 초코믹스가 아니라 헬스 할 때 먹는 단백질보충제다. 거의 20일 치를 한 번에 먹었어. 그게 정상은 아니지, 하지만 정상이 아니라고 괴물은 아니잖아?”
울다가 먹는 이야기로 넘어가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여고생이었다.
“너 혹시 날 보면 입맛이 도니?”
화들짝 놀라며 아니라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여고생이었다.
“나도 그래. 그럼 일단 그 괴물이 되는 않았다는 소린데. 이게 잠복기가 있을 수도 있고 우리 몸이 일반인과는 좀 다르니까 말이지... 어떻게 변할지는 확실히 모른다고 봐야 해.”
“그런가요?”
“그래. 괴물이 됐다고 넋 놓고 운다고 다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상황에서 일반인이라고 생각해봐. 너 본래 힘이라면 20kg이 넘는 방패를 자유롭게 들 수 있었어? 없었잖아? 방패를 들지 못했다고 생각해봐? 저것에게 죽었지.”
“......”
“재생도 마찬가지야. 일반인이었으면 넌 확실히 과다출혈로 죽었다. 과다출혈로 죽지 않고 살아도 2차 감염으로 죽었어. 죽지 않은 게 불만이니? 아니잖아. 오히려 좋아해야 할 일이지.”
여고생은 ‘그. 그런가? 좋은 건가?’하는 표정을 지었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일어나.”
“예. 옛.”
“그런 의미에서 뒷정리는 네가 좀 해봐.”
그것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고생이 높은음자리표를 찍었다.
“예에에엣?”
“바닥도 대충은 닦아라.”
“.......”
*
시체를 치우라고 해서 발악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 치우는 여고생이었다.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나도 상당히 허기가 졌다. 그것과 싸우고 신경을 예민하게 했을 때는 몰랐지만 내 움직임은 정상이 아니었다.
하긴 여고생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여고생의 머리를 공격했던 첫 일격도 일반인의 반응속도라면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치면서 헬멧이 깨져 살았지 직격했다면 머리통이 통째로 날아갔을 것이다.
힘이 강해지고 순발력이 좋아졌다고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그 만큼 칼로리 소모가 되는 것이 확실했다.
꼬르륵
허기는 순식간에 밀려왔다. 내장이 텅 비는 것 같은 느낌. 심하게 말하자면 내장만 텅 비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도 텅 비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여고생도 괴물이 됐니 아니니 울며불며 난리를 쳤던 것도 까먹고 눈앞에 던져준 음식에 정신이 쏙 팔린 것이다. 단백질보충제를 진하게 타서 마시고 종합비타민제를 삼키자, 등가죽이 오그라드는 허기가 가라앉았다.
‘운동능력. 재생력. 허기. 괴물.’
뭔가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뚜렷하게 잡히지 않았다. 허기를 채우지 못하면 괴물처럼 변해 버릴까? 가능성은 있지만 실험해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단순한 가정이지만, 굶으면 괴물이 된다는 가정은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했다.
“아저씨 어디 가세요.”
“요 앞에. 대충 치웠으면 복도에 불 좀 켜봐.”
“아... 스위치 전부 박살났는데요?”
“.......”
어둠이 깔린 복도를 걸어가는 내 모습을 여고생이 봤다. 랜턴으로 비추지 않았음에도 봤다는 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봤다. 랜턴을 들고 있던 여고생이 습격당하면서 랜턴을 떨어뜨렸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그것과 싸운 것이다.
지금 걷고 있는 복도도 마찬가지였다.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볼 수 없어야 하는데. 보였다. 어둠속에서도 볼 수 있었다. 어둠을 꿰뚫어 볼 정도는 아니었지만 형광등 불빛 아래서 보는 것의 70~80%가량 유사할 정도로 보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처음 앓고 났을 때는 더 잘 보였던 것 같았다. 며칠 동안 펜트하우스에서 전기걱정 없이 살다보니 어둠에서도 잘 보이는 눈은 자연스럽게 잊고 있었다.
‘볼 수 있었는데 보지 못했던 건가?’
볼 수 있는데, 어두워 볼 수 없다고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소리였다. 그것과 싸우면서 무의식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는 소리였다.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가위, 바위, 보로 시체 들고 갈 사람 정하자.”
“예?에?”
“안내면 술래. 가위~ 바위~ 보!”
“에잇~! 헤헤헤 가위다! 제가 이겼어요.”
여고생이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었다. 그녀도 나처럼 이 어둠속을 볼 수 있었다. 확실히 변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