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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30화 (30/261)

여고생(1)

철컥!

곧바로 누워있는 여고생을 향해 총을 겨눴다. 집중된 감각.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으로 쓰러져 있는 여고생을 확인했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방아쇠를 당길 생각이었다. 잠시 기다렸지만 괜찮았다. 별다른 위기감이 발동하지도 않았다. 위험하지 않다는 소리였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여고생의 이마에 손을 대보니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굶고 약해진 상황에서 병에 걸린 건가?’

정상이었다면 동생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 무슨 일 때문에 변했는지 하다못해 그것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웠다. 무슨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 여자를 데려가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포기하자.’

이럴 때는 깨끗하게 포기하는 것이 좋았다. 의학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그저 그랬다. 인터넷이라도 됐다면 증세를 검색해 무슨 병인지 대충이라도 짐작했겠지만 인터넷도 끊긴 상황 혹시라도 전염병이라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최악이었다.

안타까운 마음도 잠시 쓰러진 책장을 건너기 위해 바퀴달린 의자위로 올라섰다. 바퀴가 밀리며 중심이 살짝 무너졌다. 휘청하는 것과 동시에 눈앞에 떠오른 것은 의자위에 얹어진 시체였다. 가슴이 창에 꿰여 중심을 잃고 흔들리던 인아의 시체가 떠올랐다.

‘크호호호홋. 당신을 그렇게 혼자 살 거야.’

‘이기적인.’

‘겁쟁이.’

비웃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젠장.”

끙끙 앓는 여고생의 옆에 앉아 가방을 열었다. 생수를 하나 따 입에 물을 흘려 넣자, 제대로 마시지 못해 옆으로 흘러내렸다. 그래도 조금은 정신이 드는지 눈을 반쯤 떠서 초점 없는 눈을 껌벅거렸다.

“힘들어도 조금씩 마셔.”

생수를 얼굴과 상반신 뿌린 뒤 대충 닦아냈다. 체온을 조금이라도 낮추려고 했다. 체온을 낮춘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여고생의 퀭했던 눈동자에 조금 힘이 돌아왔다.

“구... 구조대이신가요?”

“아니, 동네 아저씨.”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과일통조림을 하나 따서 국물을 먹였다. 간신히 국물을 넘기는 여고생이었다.

*

이 녀석은 비상식적으로 빨리 회복되고 있었다. 회복이 되면서 점차 먹는 양이 많아졌다.

꼬르르륵

“너? 아직도 배가 안찼냐?”

“......네.”

목덜미부터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이 좀 애처롭게 보였지만 정상은 아니었다. 고작 한 시간 전 만하더라도 간신히 통조림 국물이나 마셨으면서 이건 뭔가 이상했다.

이틀을 굶었다면 위장에 무리가 가서 소화가 힘들어야 하는데, 여고생은 그딴 건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것처럼 먹어대기 시작했다. 이제는 배낭에 넣어둔 통조림을 전부 먹고도 공복을 호소하는 여고생이었다.

‘대체?’

황당한 나머지 쳐다봤지만 그저 배가 고플 뿐이에요. 하는 눈빛으로 껌벅거리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가방에 넣어둔 초코바를 박스 채 던져줬다. 한 상자 24개 들어있던 땅콩 초코바가 순식간에 입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니 구경만 했는데도 입안에서 단내가 풍길 것만 같았다.

‘나도 이렇게 먹어 댔을까?’

내가 정신을 잃고 나서 체력이 좋아진 것과 마찬가지 변화일까? 아니면 힘을 쓰고 난 뒤 허기가 졌던 것과는 관련 있는 걸까? 내가 많이 먹었을 때는 그다지 위화감이 들지 않았는데 막상 제3자가 엄청난 양을 먹어치우는 것을 보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땅콩초코바 한 박스를 개 눈 감추듯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물 1리터를 벌컥벌컥 마신 뒤에야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표정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지?”

“예?”

“안방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거냐?”

“.......”

입술을 달싹거리던 여고생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여기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죽은 아이들과의 관계는 누나는 누나인데, ‘배다른 누나?’ 라고 했다. 새엄마가 낳은 아이들이 그것으로 변한 여동생과 잡아먹힌 남동생이라고 했다. 어쩐지 나이차이가 많이 난다고 했었다.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나?”

“여동생이 가렵다고 했어요.”

“가려워?”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이상 없었어요. 뭔가에 물린 자국도 없었고.”

전신이 가렵다고 버둥거리던 여동생을 달래고 달래 잠자리에 들게 했다고 했다. 잠이 들지 못하고 칭얼거리던 여동생이 어느 순간 숨이 멎었다고 했다.

“확실히 숨이 멎었어? 잠든 게 아니고?”

“........”

“맥박은? 맥이 뛰는지 확인은 했고?”

“아. 아니요. 너무 무서워서. 밤이기도 했고.”

“그런데?”

“그렇게 쓰러졌었는데. 분명히 죽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고생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여동생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옆에 누워있던 남동생의 목을 물어뜯었다고 했다.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여고생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눈꺼풀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언제까지 시간을 잡아먹을 수는 없었다.

“진정하고.”

“.......”

“좀 괜찮아 졌어? 여동생이 변했다는 거지?”

“.......네.”

여동생이 남동생을 산채로 잡아먹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자다가 갑자기 생살이 씹히는 고통에 남동생이 비명을 질렀고 여고생도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여동생은 신경도 쓰지 않고 먹는 것에만 집중했다고 했다. 여고생은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도망쳐 방문을 걸어 잠그고 책장을 쓰러뜨린 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고 했다.

“그게 이틀 전이라고?”

“그저께 밤이었어요.”

멀쩡했던 아이가 그것으로 변했다는 소리였다. 남동생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을 텐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옆에 달고 있던 5kg짜리 둔기를 건네 줬다. 5kg짜리 두툼한 바벨을 철근에 용접해 만든 둔기는 족히 6kg은 나가는 무게였다.

한 손으로 가볍게 들기에는 버거운 무게였지만 나는 가정용 망치를 건네주듯 가볍게 여고생에게 건네줬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줘서인지 여고생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둔기를 받았다. 한 손으로.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여고생이 5kg이 넘는 둔기를 젓가락, 숟가락 들듯 가볍게 드는 게 정상인가? 정상은 아니었다. 그럼? 이성이 있는 괴물이 되어 날 농락하고 있는 건가? 위기감응은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

둔기를 건네 준 것은 두 가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엄청난 양을 먹어대면서 체력을 회복하는 것은 나와 비슷해 보였다. 혹시 힘이 강해진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두 번째로는 무기를 건네주는 것이었다. 무기를 건네받고 살기를 일으킨다면? 내 위기감응이 반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겁지는 않고?”

“예? 이거 무거운 건가요?”

“한 번 휘둘러 봐라.”

붕-붕- 젓가락 휘두르듯 휘두르는 여고생이었다. 위기감응능력은 잠잠했다.

‘그건 아니라는 소린가?’

그렇다면 나와 비슷한 케이스 일지도 몰랐다. 내가 열흘 가까이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에 반해 이 여고생은 이틀이었다. 어쩌면 앓아눕고 살아나면 신체능력이 강화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왜 앓게 되는지, 어떤 조건에서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여고생을 놓고 보면 그랬다.

앓는 것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들이 그것으로 변하는 건가? 알 수 없었다. 인간 같은 모습을 유지하면서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로 변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겠지만 전문적인 지식도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추론하기란 불가능했다. 그저, 여고생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과 여고생이 나에게 살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그것만이 지금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만 휘둘러.”

“!”

무식한 둔기를 방방 신나게 휘두르던 여고생이 앗-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잠정적으로 일종의 감염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판단하고 접기로 했다. 일반인이라고 하더라도 모종의 계기가 있다면, 가려움을 동반한 발작 이후 숨이 끊어지고 그것으로 변이된다는 것. 그 정도 정보였다.

처음 했던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그것으로 족했다. 삼남매 가운데 그것으로 변한 것은 내가 죽였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잡아먹었고, 살아남은 여고생은 완력이 강해진 상황이었다.

‘나쁘지 않다.’

지하에 있는 놈들과 가둬둔 상처 입은 바비만 해결하면 큰 문제는 끝난다고 봐야 했다.

방방 휘둘렀던 둔기를 내려놓고 눈치를 보고 있는 여고생을 보니 여러 가지로 복잡해졌다.

‘어떻게 한다?’

성인 남성을 훌쩍 뛰어넘는 완력을 갖게 된 녀석이니 즉시 전력으로 괜찮았다. 하지만 인아와 바비를 생각하면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첫 인상은 최악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녀석을 만났을 때, 약탈녀들의 손을 빌려 처리하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이 녀석은 울면서 살려달라고 했었고, 기억을 하는지 못하는지 모르겠지만 따지고 보면 과히 좋은 인연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이런 세상에서 믿음을 주고받기란 상당히 힘들었다. 그렇다고 끝까지 나 혼자 살아갈 것인가? 솔직히 그럴 자신은 없었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꺼내 먹으라고 했더니 언제 눈치를 봤냐는 것처럼 가방에 있는 음식을 꺼내는 녀석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먹어대는 여고생을 보니 여러모로 심란했다.

‘그나마 다행인가?’

온실에서 자라난 화초 같은 스타일이었다면 지금 이런 세계에서 살아가기 힘들었을 텐데 화사한 겉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털털한 녀석이었다. 친모가 죽고 난 뒤, 재혼한 부친 그리고 새엄마와 어린 동생들 때문에 방황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스트리트(?) 생활을 했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녀석은 육포를 보자마자 한 봉지 뜯어 씹어댔다. ‘이거 안주로 좋은데.’ 소주가 있다면 ‘캬-’라고 추임새를 넣고도 남을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재잘재잘 잘도 떠들어 댔다.

“그러니까 중학교 시절에 껌 좀 씹어 봤다는 소리네?”

“예? 그게 왜 그렇게 되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 여고생이었다.

“방황했었다며? 비행 청소녀(?) 생활을 했으니 쓸고 닦는 것은 잘하겠다만.”

“아아악- 안 들려요. 안 들려요.”

이번에는 잘 지낼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피식-웃었다.

*

빈사상태였던 여고생은 고작 하룻밤 만에 회복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 대가로 한 이삼일은 먹을 식량을 담아왔던 빵빵한 가방은 속이 텅 빈 상태로 전사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바비였다. 초등학교 여자아이가 죽은 뒤, 그것으로 부활했다는 것이 껄끄러웠다. 생각해 보면 여고생이 살아난 것도 나 때문이었다. 내가 없었다면? 여고생이 그렇게 앓다가 죽었다면? 그것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바비는 상처를 입은 상황이었다. 면역력도 떨어졌을 것이다. 바비가 앓기 시작했다면? 그것으로 변하는 조건은 모르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상처 입은 바비가 죽은 뒤, 그것으로 부활한다면? 골치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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