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 the thing (1)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가녀린 소리가 들렸다. 조금씩 답답해지던 가슴이 펄떡펄떡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입안이 바싹 말랐다. 꽉 움켜쥔 망치자루가 힘을 이기지 못해 부르르 떨었다.
“분명히 있는데.”
“냄새가 났는데.”
“안 보이네요.”
뭔가 실망한 목소리?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아이라니? 갑자기 여자애가 어디서? 순간 당황했다.
‘아 그 녀석인가?’ 윗집에 있던 3녀석들 고등학교 여학생과 초등학생 둘이 있던 집이 떠올랐다. 그 가운데 초등학교 여학생으로 보이는 녀석이 타박타박 걸어 나왔다.
흰색 프릴 원피스를 입은 초등학생이 지나갔다. 숨을 참아 숨소리를 죽였다. 난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전신을 굳혔다. 흰 원피스를 나풀거리며 현관 앞으로 걸어가는 꼬마였다. 여아아이는 하얗고 가냘픈 손가락으로 인터폰을 눌렀다.
“도와주세요.”
띵동띵동
“흑-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띵동띵동
도와달라고 인터폰을 누른 녀석은 옆집으로 발걸음을 옮겨 다시 인터폰을 눌렀다. 몇 차례 인터폰을 눌러도 응답이 없자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 옆에 서 있던 나를 조막만한 얼굴이 봤다. 눈이 마주쳤는데, 꼬마의 눈이 이상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완전히 동공이 풀린 눈동자 같았다. 불가능했다. 저렇게 동공이 풀린다면 제대로 앞을 볼 수 있을 리 없었다.
킁. 킁.
냄새를 맡는 것처럼 코를 킁킁 거린 꼬마가 한 걸음 다가섰다. 타박- 한 걸음을 내딛자 몸서리가 쳐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스윽-소리를 죽인다고 죽였는데 발자국 소리가 들렸는지 꼬마의 표정이 삽시간에 변했다. 누군가를 발견했다는 기쁨에서 슬픔으로 변했다.
울먹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나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망치를 꾹 잡고 팔에 힘을 줬다. 내가 고슴도치처럼 경계하자 꼬맹이는 더 다가오지 않았다.
“아저씨... 도와주세요...”
이상하다. 그래 이상했다. 당연히 지금 상황에서 도와달라고 하는 여자아이의 말이 이해는 됐지만 이상했다.
“.......”
위험하다. 심장이 알람시계라도 된 것처럼 경고음을 울렸다.
“제발요.”
꼬마의 울먹이는 얼굴은 마치 사진 같았다. 얼굴은 표정일 따름. 그래 살가죽 하나 뒤집어 씌워진 껍데기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껍데기가 문제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의 얼굴이었다.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슬픔. 순수한 울먹임이라고? 그게 가능하다고? 감정이 없는 울음은 소름이 끼쳤다.
“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재갈이라도 물린 것처럼 콱 틀어 막힌 기분. 그제야 위화감의 정체가 눈에 들어왔다.
물을 제대로 마시지 못했을 테니 녀석의 입술은 하얗게 말라붙어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붉고 생기 있는 입술. 꼬맹이의 입술은 탐스럽게 윤기가 돌고 있었다. 심장이 갑갑했다. 척추를 타고 전기가 스믈거리며 올라왔다. 목 뒤에서부터 서늘한 감각이 들었다.
타박-꼬마의 가벼운 발걸음. 한 걸음 다가선 꼬마를 향해 전신이 쥐어짜지는 것처럼 소리 질렀다.
“거기 서!”
손에 든 망치를 치켜들며 외쳤다. 우뚝 멈춰선 꼬맹이가 고개를 들어 빤히 날 쳐다봤다. 이렇게 보면 멀쩡했다.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 예쁘고 가녀린 꼬마의 모습이었다. 저절로 무장해제를 불러일으키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게 이상했다.
전에 봤을 때는 분명히 불린 쌀만 먹어 초췌한 모습이었는데 그 때에 비해도 확연하게 혈색이 좋은 얼굴이었다. ‘어떻게?’ 불린 쌀과 김치 밖에 없었던 집이었는데 어떻게?
망치를 고쳐 쥐었다.
‘친다. 친다. 다가오면 친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살기를 느꼈는지 나에게 다가서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고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흐윽. 아저씨. 배가 고파요.”
“제발.. 도와주세요.”
안타까운 목소리와 표정을 총동원해 애원하기 시작한 꼬마였다.
“가까이 오지 마!”
대치가 이어졌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하자 전부 이상했다. 흰 옷이 너무 깨끗했다. 물이 없었으니 빨래를 했을 리 없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깨끗한 옷을 입고 있지? 그래 깨끗한 옷을 입은 것까지는 그렇다고 하자. 혈색이 좋은 이유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경고를 보내는 이유는?
도망치자. 엘리베이터에 탈 수 있을까? 이럴 줄 알았다면 비상계단을 틀어막지 않았을 것이다. 비상계단을 전부 틀어막고 용접까지 해버렸기 때문에 도망칠 수 있는 구멍은 엘리베이터 밖에 없었다.
아주 잠시 망설이는 순간 꼬마아이가 훌쩍이던 것이 뚝 끊겼다.
“.......”
“배가.”
“.......”
“배가 너무 고파요.”
잠시 끊겼던 소리가 이제는 스타카토를 찍듯 끊어져 나왔다.
“도.와.주.세.요.”
“.......”
퀭한 동공, 완전히 풀린 여자아이의 동공과 내 눈동자가 마주쳤다. 끊어졌던 음절이 찢어졌다. 꼬마의 입 꼬리가 길게 찢어지며 소리까지 찢어지기 시작했다.
“예? 아저씨이이이이”
가늘고 높은 소리가 고장 난 레코드 판 돌아가듯 길게 늘어졌다.
“아저씬... 나쁜 아저씨구나아아아아.”
꼬마의 목소리가 칠판을 긁는 소리처럼 복도를 울렸다.
“으아아아!”
망치를 휘둘렀다. 위잉! 기습적으로 휘둘러진 묵직한 망치를 초등학교 1~2학년으로 보이는 꼬마 여자아이가 팔로 막았다.
빡! 정상적이라면 꼬마의 가녀린 뼈가 부러졌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마치 철근콘크리트를 망치로 친 것처럼 반탄력이 느껴졌다. 다행히 꼬마의 체중은 가벼웠다. 망치가 뿜어내는 운동에너지를 완전히 흡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꼬마의 몸이 붕 떠서 벽으로 처박혔다. 쿵 소리가 나게 처박힌 꼬맹이가 짐승처럼 몸을 버둥거리며 발딱 뒤집었다.
“으왓!”
저절로 욕이 나왔다. 꼬마가 일어나기 전에 들어가야 했다.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문이 열립니다.]
‘닥치고 열어.’
엘리베이터로 몸을 구겨 넣으며 망치를 집어 던졌다. 빡! 두 다리로 일어서지도 않고 네 발(?)로 기어서 달려들던 꼬마의 머리통에 망치가 틀어 박혔다. 꼬마의 머리통이 뒤로 휙 돌아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힙니다.]
“빨리! 빨리!”
[내려갑니다.]
위이이이잉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저절로 욕이 나왔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방망이질 쳤다. 등에 맨 가방에서 콜트45권총을 꺼냈다. 달달달 손이 떨렸다. 사람과 똑같았다. 주둥이가 찢어지지 않았다면? 기괴하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아니 심장이 방망이질 치지 않았다면 당했을 것이다. 꼬맹이 얼굴로 훌쩍거리며 도와달라고 했던 것을 내치지 못했을 것이다. 무방비 상태였을 때 그게 다가왔다면?
“빌어먹을!”
“저. 저게... 씨발... 뭐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손가락이 떨렸음에도 삽탄은 제대로 됐다. 10초? 7발을 삽탄하고 탄창을 밀어 넣는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탄창을 밀어 넣자마자 슬라이드를 잡아당겨 장전했다. 철컥- 차가운 금속음과 함께 침이 꿀꺽 삼켜졌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차기 시작했다. 방아쇠에 걸고 있는 검지에 쥐가 날 것만 같았다. 엘리베이터가 거북이처럼 느리게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내려가라. 내려가.’
층수가 표시된 숫자가 변하는 것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빨리 내려가라고 속으로 주문을 외웠지만 속도는 변하지 않았다. 내 기원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저 멀리서 뭔가 소리가 들렸다.
쿵-
깡-
끼이이익-
멀리서 두들겨 대는 소리가 들렸다. 금속으로 된 문이 울리는 소리였다.
허공에서 들리는 소리.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어두운 엘리베이터 통로,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우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콰드드득!
‘설마?’
위우우웅!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분명했다.
“씨발!”
구석으로 몸을 바짝 붙이자마자 천장을 뚫고 스테인리스로 된 엘리베이터 문짝이 폭탄처럼 틀어 박혔다. 콰릉! 천장이 박살나며 엘리베이터가 출렁 흔들렸다. 엘리베이터를 지탱하는 강철 와이어가 팽팽하게 당겼다 풀어졌다. 끼기기기긱! 휘리리리릭! 끼기깅!
“fuck!”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멈추지는 않았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엘리베이터는 7층을 지나 6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1층이었다. 바로 나가서 펜트하우스로 넘어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도망칠 수 있었다.
쿵! 뭔가가 엘리베이터 천장으로 떨어졌다. 문짝은 아니었다. 양손으로 권총을 쥐고 천장을 겨냥했다. 보이지 않는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손가락을 필사적으로 멈췄다.
‘참아라!’
콰드드득!
‘아직!’
엘리베이터 천장 한 쪽이 조금씩 아주 서서히 뜯겨졌다.
[1층입니다.]
총구를 천장에 겨누고 엘리베이터 문짝에 등을 댔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천정이 뜯어진 구멍으로 그것이 떨어졌다.
“이야아아아!”
탕!
툭 떨어지는 하얀색 무엇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며 뒤로 몸을 던졌다. 몸뚱이를 내던지듯 자빠지자, 가녀린 손가락이 내 목덜미를 스쳤다. 백색 잔상을 남기는 것처럼 휘둘러진 가녀린 손. 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내 목줄기를 찢으려고 했던 하얀 손만 보였다.
퍽-등판이 대리석 바닥을 닦으며 뒤로 미끄러졌다. 죽- 미끄러지는 등판을 지지대 삼아, 1m10짜리 하얀 표적에 45구경 ACP탄을 때려 박았다.
탕!
끼이이이이이약!
맞았다! 그것이 비명을 질렀다. 닥치라는 것처럼 슬라이드가 금속음을 토하며 거칠게 왕복운동을 했다. 매콤한 연기와 함께 총구에선 불꽃과 탄환이 뿜어졌다. 탄피가 대리석 바닥에 키스하며 청명한 금속음을 냈다.
타앙! 철컥! 탕! 끼익! 탕!
뻐억! 팍! 턱!
머리. 머리. 어깨.
머리통이 뒤로 확 젖혀졌다. 그것이 반동으로 젖혀진 고개를 똑바로 하기 전, 두 번째 총탄이 눈을 터뜨렸다. 그럼에도 앞으로 기어오는 그것의 어깨에 총탄이 박았다. 그것의 균형이 무너져 뒤로 밀렸다. 엘리베이터 안은 성대한 오브제를 널어놓은 것 마냥 붉은색 장식으로 가득 찼다.
“썅!”
공포를 몰아내기 위해 화음을 넣듯 고함을 질렀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을 타고 전신의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죽어어어엇!”
타아아앙!
팔이 튕겨나갈 정도의 반동과 함께, 꿈틀 거리며 일어서려는 그것의 머리통에 45구경 ACP탄이 작열했다. 후들거리며 일어서려는 그것의 머리통이 뒤로 확 젖혀지며 엘리베이터 벽에 튕긴 뒤, 앞으로 꼬꾸라졌다. 피투성이가 된 그것의 정수리가 보였다. 비척거리며 사지를 부들부들 떠는 그것의 정수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죽어 죽으라고!!”
단지 방아쇠를 당겼을 뿐인데, 머리가 핑 돌았다.
탕!
정수리에 총탄이 틀어박히자 작은 머리통이 바람 빠진 농구공마냥 푸르르 떨었다.
철컥!
철컥!
[문이 닫힙니다.]
무심한 목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