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스트 DUST-22화 (22/261)

계획과 실전의 차이 (2)

아래로 내려와 빈 집들을 돌아다니며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있을 텐데...”

찾고 있는 것은 무선조종 자동차나 헬리콥터였다. 어차피 휴대폰은 먹통이니 휴대폰의 동영상 촬영기능을 이용한 드론을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거창하게 드론이지 실상은 휴대폰 동영상촬영을 실행하고 한 바퀴 돌린 뒤, 재생을 해보려는 얄팍한 생각이었다.

운이 좋게도 무선조종 자동차가 하나 있었다. 제법 큼지막한 놈이었다. 휴대폰을 투명테이프로 몸체에 고정하고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예상대로 촬영이 되는지 확인한 결과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

바로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바닥에 무선조종 자동차를 내려놓고 난 위의 수리통로로 올라갔다. 직진으로 25m 뒤에 오른쪽으로 10m 가량 이동하면 다목적 홀의 입구였다. 입구가 뚫렸는지 아닌지만 확인하면 됐다.

[띵동-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긴장이 됐다. 구멍이 송송 뚫린 아래 얌전하게 놓여있는 무선조종 자동차를 출발시켰다.

찌이이이이이

엘리베이터가 자동으로 닫히지 않도록 조종을 해뒀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문은 활짝 열린 상태였다. 25m 직진 후, 우회전 10m 가량 이동해야 했다. 무선조종 자동차의 이동속도를 쟀기 때문에 대략적인 이동거리를 짐작 할 수 있었다.

‘3초 2초 1초. 우회전.’

‘됐다. 다시 돌아오면 된다.’

왔던 그대로 돌아오면 그만이었다. 낚싯대를 꺼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준비를 했다.

위이이이이이

무선조종 자동차가 엘리베이터에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낚싯대를 이용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힙니다.]

위이이잉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가는 소리와 함께 긴장이 쫙 풀렸다.

동영상 촬영은 성공적이었다. 그것들이 있던 다목적 홀의 방음문은 그대로였다. 도망치면서 빗장 대신으로 끼워둔 의자도 고스란히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놈들이 문을 부수고 뛰쳐나왔다는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대로네요.”

인아는 동영상을 보며 안도했다.

“일단은.”

그래 지금 당장은 괜찮다는 소리였다. 내 말투에 담겨진 부정적인 어감을 부정이라도 하듯 인아가 중얼거렸다.

“그냥 두면 안 될까요?”

사실 고민이 됐다. 그냥 둬도 안전할 것인가? 다목적 홀의 문짝은 방음문이었다. 두껍고 단단하고 무엇보다 바깥은 금속재질이었다. 용접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방화문도 있었다. 전부 그냥 통으로 용접해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능사는 아니었다.

환풍구도 있었고 환풍구가 아니더라도 천장은 비어있었다. 실질적으로 옆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벽도 문제였다. 다목적 홀의 특성상 안쪽에는 주방시설도 있었다. 주방은 다시 자재창고와 밖으로 나가는 복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놈들에게 들키지 않고 전부를 틀어막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마지막에 보여준 놈들의 행동도 껄끄러웠다. 이성을 잃고 마구 달려든다고 생각했는데 분명히 피했다. 인아가 내지르는 창을 처음에는 찔렸지만 그 다음에는 분명히 피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놈들이 완전히 본능만 남은 놈들이라면 모를까 야생동물 수준의 지능만 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밖으로 나올 것이 분명했다.

‘설마 개체 차이가 있는 건가? 그 한 놈만 그런 거라면 그래도 다행인데.’

혹시라도 그러지 않다면? 그런 놈들이 계속 생긴다면? 예를 들어 동면을 하고 나면 지능이 상승된다든지 그런 방식이라면? 비약적인 상상이지만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이미 이 상황자체가 비정상적이었다. 그러니 최악을 가정하고 움직이는 것이 옳았다.

“나도 그러고 싶기는 한데, 아무래도 껄끄러워서. 확실히 처리하지 않으면 영 불안할 것 같아.”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일단 거기를 제외한 다른 곳을 확인하도록 하자. 아직 확인하지 못한 곳이 많이 있으니까 다른 곳부터 정리를 하면서 생각해 보자.”

“알았어요.”

급조한 동영상 촬영용 무선조정 자동차는 효자 노릇을 했다. 수신 거리가 짧다는 것이 단점이기는 했지만 모퉁이 저쪽을 확인하는 데는 충분했다. 촬영하고 회수하고 확인하고 조금은 번거로웠지만 안전하게 정찰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확인한 결과, 지하 1층에는 다목적 홀에 있는 3~4마리가 전부였다.

“좋아. 지하 1층에는 다목적 홀에만 있어.”

곧바로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지하 2층도 예상대로 놈들의 숫자가 적었다. 기계실에 2마리 그리고 창고관리실에 1마리가 전부였다. 이렇게 1층과 2층을 합해 모두 6~7마리가 있었다. 충분히 처리 가능한 숫자였다.

우선 지하 2층에 있는 놈들부터 처리하는 것이 유리했다. 지하 1층 다목적 홀에는 3~4마리가 한 공간에 있는 반면, 2층은 2마리 1마리 이렇게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각개격파하기가 좋았다.

두 자매에게 새로 만든 방패를 주고 2층 지하로 내려가려고 했다. 방패를 받아든 큰 여자가 엘리베이터에 타지 않고 버텼다.

“우릴 죽일 속셈인가요?”

“죽일 생각이었으면 진작 죽였지.”

“그럼 우리가 별 도움이 안 되는 걸 알면서 끌고 내려가는 이유가 뭐죠?”

하? 이게 무슨 소리지? 순간 어이가 없어서 당황했다. 작은 여자도 눈을 부릅뜨고 날 노려보고 있었다. 이거 이렇게 내려갔다가는 폭탄을 지고 내려가는 꼴이었다. 인아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눈짓했다. 그것 보라는 표정이었다.

쯧-고작 하룻밤 사이에 자신들이 결정했던 것도 잊은 모양이었다.

“잊었나? 나를 도와 지하실을 정리하기로 하지 않았나? 지하실을 정리하면 풀어주기로 했잖아? 뭐가 문제지?”

“괴물들을 죽이는데 앞장세울 거라고는 하지 않았잖아요.”

작은 여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얘는 좋게 말하면 대찼고 나쁘게 말하면 학습능력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면 회복력이 빠르다고 해야 하나?

“그래? 그럼 계약을 깨자는 거지?”

“이 사기꾼! 처음부터 불가능한 조건을 내세워 놓고.”

“괴물들에게 앞장세우는 게 정리인가요?”

“우릴 죽일 생각이면 차라리 깨끗하게 죽여요.”

자매가 쌍으로 대들었다. 왜 이렇게 반항적이 됐을까?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냥 방패만 들고 버티라는 게 그렇게 힘들어? 내가 못할 짓을 시키는 건가?”

“거짓말 말아요.”

“어제도 우리가 들어가기 전에 문을 닫으려고 했잖아요. 다 봤어요.”

이거야 원.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있나? 그걸 봤다니. 좋게 말로 해서 협조를 얻기는 틀렸다. 목숨을 건 싸움에서 자발적인 협조가 없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골치가 지끈거렸다.

“그렇다는데 어떻게 할 거에요?”

인아가 샐쭉 웃으며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머리에 김이 오르는데 샐쭉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니 꼭지가 돌 지경이었다.

“후- 일단... 생각 좀 해보자.”

이대로 간다면 괴물을 잡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힘들었다. 두 자매들이 미친 짓을 한다면? 자신들을 죽이려고 한다고 믿는 상황인데 무슨 짓인들 못할까? 그냥 저들이 같이 죽자 식으로 나오면 손해 보는 것은 이쪽이었다.

내 얼굴표정이 심각한 것을 보고 인아는 두 여자들을 가두기 위해 끌고 갔다. 결정을 빨리해야 했다. 하루라도 빨리 정리하는 할수록 생존에 유리해졌다.

“잠깐. 같이 넣지 말고 따로 넣어.”

“예? 따로요? 어디에요?”

“아래층에 방 만들어 놨으니까 각자 넣으면 돼. 둘이 한꺼번에 데려가지 말고 하나씩 데려가 하나씩.”

혹시라도 두 자매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이곳에 남는다고 할 경우를 대비해서 밖에서 잠글 수 있는 각방을 만들어놨는데, 이렇게 쓰게 됐다. 입맛이 썼다.

“알았어요. 너... 그래 너부터 가자.”

작은 여자를 보며 인아가 식칼을 들고 다가섰다. 따로 가둔다는 말에 작은 여자는 무슨 상상을 하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입만 벙긋 해보라는 듯 인아의 눈빛은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작은 여자도 인아가 꼬투리만 잡으면 자기를 찌르려고 한다는 것을 느꼈는지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작은 여자를 먼저 데리고 나가자 거실에는 나와 큰 여자가 남았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풀어주겠다고 한 건 거짓말인가요? 왜 따로 가두는 거죠?”

“약속을 깬 건 그쪽이잖아. 안 그래도 복잡하니까 조용히 좀 해.”

“저희를 어쩌시려는 거예요?”

“.......후 그만해라. 이따 보자.”

따로 보자는 말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큰 여자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이러지 마세요. 푸. 풀어주세요.”

“아... 진짜.”

“동생은... 아직 고등학생이에요.”

“고등학생이면 다 컸잖아! 이런 세상에서 고등학생인 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고함을 지르자 큰 여자가 ‘너 같은 놈들이 뻔하지.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하- 진짜.”

이젠 화나지도 않았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렇게 자기가 보고 싶은 연극 무대가 만들어졌다. 그녀들 스스로 무대를 만들었고 스스로 주연이 됐다.

오히려 이렇게 알아서 어울려줘서 고마울 지경이었다. 내가 일그러진 얼굴로 웃자. 그 웃음에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큰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처량하게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꼭 내가 가만히 있는 여자를 핍박하는 모양새였다. 때로는 실제보다 상상이 더 무서운 법이었다. 착각한 실제는 어느새 현실이자 고정된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게 되기 마련이었다.

“.......”

인아가 작은 여자를 가두고 큰 여자를 데리러 위로 올라왔다. 묘한 분위기를 보고 인아는 샐쭉 미소를 지었다. 정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큰 여자가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흐느끼고 있음에도 인아는 속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큰 여자를 끌고 아래로 내려갔다.

어둠이 내려앉았다. 도시에 전기가 끊어진 지, 고작 두 달하고 반 밖에 지나지 않았다. 하늘은 고운 어둠속에 송송이 박힌 별들로 반질거렸다.

펜트하우스에는 전기가 들어왔기 때문에 충분히 불을 켤 수 있지만 항상 불을 껐다. 전등을 켤 일이 있으면 언제나 커튼을 치거나 블라인드를 내리고 켰다.

‘이미 늦은 거 아니에요? 다른 동에서는 여기 위층에 불이 켜지는 걸 봤을 거 아니에요.’

‘그랬겠지.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밤에 불을 꺼놓으면 어떻게 될까?’

‘아? 여기에 살던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겠군요.’

‘그래. 밤에 전기가 들어왔던 곳인데 갑자기 불이 들어오지 않으면 뭔가가 여기 살던 사람들을 죽였다고 생각하겠지.’

‘오. 아저씨~’

인아의 추임새가 언뜻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생생하게 떠오르던 장면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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