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과 실전의 차이 (1)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아야 했다. 발소리를 죽이며 들어갔는데도 놈들은 낌새를 눈치 챈 것처럼 반응하기 시작했다.
크르륵.
그것이 기이한 소리를 냈다. 에너지절약 모드처럼 보이는 저 상태에서 풀리기 전에 처치해야 했다.
[전진!]
[전진하라고!]
두 자매는 우두커니 서서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처음으로 가까이서 괴물을 보니 몸이 굳은 것이었다. 그래서 격동을 시키고 그래서 자유를 미끼로 줬건만 이 모양이었다.
[정신 차려. 앞으로 가라고!]
인아가 말없이 두 여자의 어깨를 밀자. 두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끼아아아악!”
“꺄아아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서서히 몸을 뒤틀던 한 마리 말고 멀리 있던 놈들까지 움직임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이런 썅! 전진해!”
“방패로 앞을 막고 접근하라고!”
최악이다. 발바닥에 접착제라도 바른 것처럼 제자리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여자들의 등을 밀쳤다.
“빨리 앞으로 안가면 버리고 간다!”
공포 때문인지 그녀들은 눈물 콧물을 줄줄-흘리고 있었다. 두 자매가 꼭 달라붙어 자신들의 몸통보다 더 큰 방패를 앞으로 향하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한 2m가량 근처로 다가서자 몸을 비틀던 그것이 갑자기 스프링 튕기듯 달려들었다.
크략!
“으아앗!”
“꺄아악!”
방패가 없었다면 최초의 저 근거리 돌진을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두 여자가 앞에서 방패로 막았지만 제대로 막을 리는 만무했다. 애초에 제대로 막을 것을 상정한 것도 아니었다. 방패를 붙잡은 채로 단 한 방에 엎어져 버둥거리는 두 여자 사이로 인아가 창을 내질렀다. 창끝은 그대로 녀석의 한쪽 눈을 파고들었다.
푹!
첫 돌격이 방패에 막혀 멈칫한 사이 찔러진 창을 막지 못한 그것이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악!
놈의 고통 어린 괴성에 화답하듯 기합을 모았다.
“으싸아아아!”
5kg짜리 바벨을 용접해 만든 둔기가 풀 스윙으로 휘둘러졌다. 콰작! 기괴한 소리와 함께 머리통이 완전히 뭉개져 무너지는 그것이었다.
“빨리 일어나서 자리 잡아! 잡아먹히고 싶어!”
두 여자가 엉거주춤 일어나 몸을 비틀기 시작하는 다른 녀석에게로 접근했다. 인아와 1층 로비에서 밖을 살피면서 확인했었다. 녀석들이 에너지절약 상태에서 본래 움직임을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분 30~40초가량. 그 도중이라고 하더라도 근처에 먹이가 있으면 일순간 폭발적으로 움직였다.
놈들이 동면을 하고 있다고 마음을 놓다가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근거리에서 아무런 방비 없이 지나가려고 했다가는 스프링처럼 튀는 첫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갈기갈기 찢겼다. 그래서 방패로 첫 공격을 막아 줄 사람이 필요했다.
첫 공격을 막고 창으로 움직임을 봉쇄한 뒤, 일격으로 마무리하면 확실했는데, 내 생각처럼 움직여준 사람은 인아 하나 밖에 없었다.
첫 녀석에게 40초가 넘게 걸렸다. 남은 놈들은 넷. 녀석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잘해야 1분 남짓. 저절로 욕이 나왔다. 계획대로 만 했으면 금방 죽일 수 있었는데. 이런 병신 같은!
비척거리며 전진한 두 여자가 접근하자 처음 놈과 마찬가지로 펄쩍 뛰어오르듯 달려들었다. 이미 한 번 경험해 봤음에도 두 여자는 꺅! 하는 비명소리를 내며 방패와 함께 굴렀다.
“에잇!”
인아의 창이 놈의 머리를 향해 찔러졌다. 조금 더 많이 해동 된 만큼, 놈은 고개를 틀어 창을 피했다.
“머리가 힘들면 목을 찔러.”
휙! 휙! 두 번이나 목과 눈을 향해 찔렀지만 그걸 피하는 놈이었다.
‘제대로 피하고 있다?’
이건 이상했다. 놈들은 이성을 잃고 달려든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피하고 있었다.
“일단 움직임만 막아!”
“이이잇!”
푹!
창이 놈의 명치에 박혔다. 그 순간 갑자기 묵직한 돌을 얹은 것처럼 가슴이 옥죄는 기분이 들었다.
흉부를 압박하는 특유의 기분. 척추를 타고 전류가 흘러올라왔다. 소름이 팔뚝에서 돋아나는 것 같았다.
‘죽는다.’
5kg짜리 둔기를 내팽개치고 뒤돌아서서 도망치고 싶었다. 환하게 켜진 조명 아래 검은색 죽음이 뭉클 솟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창 버려!”
“이이익!”
인아는 놈의 명치에 박은 창을 뽑아 다시 찌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명치에 틀어박힌 창은 무엇에라도 콱 잡힌 것처럼 빠지지 않았다.
“창 놔! 놓으라고!”
인아가 창을 놓는 것과 동시에 창대 뒤를 때려 박았다.
콱!
다시 한 번.
“이야얏!”
못질을 하듯 창을 때려 넣었다.
콰드드득
창대가 놈을 관통하는 것과 동시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며 소리 질렀다.
“도망쳐!”
인아가 재빨리 도망을 쳤고 버둥거리던 두 여자도 방패를 내던진 채 밖으로 나왔다. 고작 15m도 안 돼는 거리가 50m도 넘게 느껴졌다. 스위치로 불을 끄고 밖으로 나오자, 곧 인아가 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인아는 문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문을 그냥 닫으려고 했다.
손을 내밀어 문을 닫으려는 것을 막았다. 1초 차이로 두 자매가 문 밖으로 허겁지겁 나왔다. 인아는 내 손을 보고 나를 봤다. ‘어째서?’라는 의문이 담긴 눈빛이었다.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는 두 자매를 노려봤다.
“의자 가져와!”
두 자매는 진이 빠진 것처럼 부들부들 떨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인아가 옆에서 강철로 된 의자를 가져왔다. 열쇠로 문을 잠그고 손잡이 부분에 의자를 밀어 넣어 빗장처럼 고정했다. 그렇게 막은 뒤, 위로 올라갔다.
*
그 짧은 시간 전신에 진이 빠졌다. 놈들에 대해서 너무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멀리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결코 만만한 놈들이 아니었다. 종류도 다른 것 같았고 여러모로 싸잡아서 대충 좀비라고 취급할 문제가 아니었다.
내 방에 들어가 생각에 잠겨있는데 인아가 들어왔다.
“왜 막았어요?”
인아가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지하실을 정리하려면 사람이 필요해.”
“그년들 때문에 죽을 뻔 했는데요?”
“아. 내 실수다.”
인아를 기준으로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두 여자를 밖으로 내보내 주는 조건이 지하실 정리였다. 그러니 그녀들은 밖으로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내게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는 여자들이라면 최소한 어느 정도는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비명을 지르다니 답이 없었다. 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자 인아가 한숨을 폭 쉬며 말했다.
“아저씨 솔직하게 말해 봐요. 누구에요?”
“무슨 소리냐?”
인아는 뭔가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큰 쪽? 작은 쪽?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온 쪽이 있으면 그냥 후딱 해치워 버려요. 몸 주고 마음 주고 그런 생각이면 꿈 깨세요.”
하-어이가 없었다. 내가 입을 반쯤 벌리고 있자 인아는 내 표정이 ‘너 그걸 어떻게 알고?’ 이런 표정으로 착각을 했는지 어깨를 으쓱하고는 열을 올렸다.
“걔들 살려준다고 눈곱만큼도 고마워하지 않는다고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요. 아저씨 친인척 죽인 년이 아저씨 살려준다고 하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아저씨가 순정파인 건 알겠는데요. 후-그냥 잊어요.”
이정도면 오해도 중증이었다.
“인아야. 내가 진지하게 말하는데. 그런 거 아니다. 그걸 떠나서 어찌됐든 그 둘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둘이 필요하다는 소리에 인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설마. 또 지하에 내려갈 생각이에요?”
“그래.”
“아 아저씨!!! 그년들하고 또 내려가자고요? 그러다 진짜 죽어요!”
“그냥 뒀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 줄 몰라.”
“무슨 일이요. 그냥 내버려 두면 되잖아요.”
“위험해.”
“그놈들이 여기까지 올라오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냉정하게 찌르고 꽂고 하더니 내심으로는 그러지 않았나 보다. 하긴 지금도 놈들 생각만 하면 등골이 서늘한데 내가 너무 무심했다.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
“후우- 네 말해 보세요.”
“그 놈들이 동면? 뭔지 모르지만 일단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 언제까지 그럴까? 3개월 4개월?”
“글쎄요.”
“사람도 굶어죽게 되면 서로 잡아먹어. 놈들이라고 안 그럴까?”
“에엣? 좀비가 좀비를 잡아먹는다고요?”
편의에 따라서 좀비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가까이서 본 바로는 좀비라고 불리기 뭐한 것이었다. 감염자? 변이된 사람? 일단 흔히 알고 있던 좀비는 확실히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것을 자세히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 좀비든 뭐든 그것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 이유는 먹이가 없기 때문이야. 근데 계속 먹이가 없다고 생각해 봐. 서로 잡아먹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지?”
“설마요.”
“설마? 그 설마가 문제다. 세상이 이렇게 변할 것이라고 누가 예측했겠어. 그러니까 놈들을 처리하는 게,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동면에서 깨어난 녀석들이 인기척이 없는 것을 알고 다시 재 동면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우선 사체가 남아있었다. 처음 죽인 놈의 사체가 있었고 가슴이 관통당한 놈도 있었다.
순전히 추측이지만 나중에 해동이 된 놈들이 그 둘을 공격해 잡아먹었다고 하면? 남은 것은 세 마리였고 만약 사채만 파먹는다면 넷이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었다. 겪어봐야 알겠지만 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아는 인상을 푹 썼다. 바비인형도 그렇고 두 자매도 그렇고 빨리 처리해 버리고 싶다는 분위기를 팍팍 풍겼다. 전에 있던 놈들에게 좋지 못한 일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면 위험하지 않을까 싶었다. 자세히 물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이 거리가 딱 좋았다. 더 가까워지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후- 알았어요. 언제 내려갈 건데요?”
“일단 방법을 생각해 보고.”
이번에 놈들이 동료의 사체를 먹고 힘을 내서 잠가둔 문짝을 뜯고 나왔다면 문제였다. 놈들이 시체를 먹고 힘을 회복한 상황이라면 사람보다 월등한 악력에 달리기 속도도 빨랐다. 성인 남성들의 힘으로도 막기 벅찬 놈들을 여자들이 막고 버틴다는 것은 무리였다.
‘우선 나왔는지 아닌지 확인부터 해야겠는데.’
놈들이 밖으로 나왔다면 내려가는 순간 순식간에 잡힐 것이 분명했다. 내가 내려가 보면 특유의 감각으로 놈들이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건 일단 보류였다.
두 여자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인아는 식칼을 매단 창을 들고 그 둘을 감시하고 있었다. 여분으로 만들어둔 창이었다. 인아는 여차하면 두 여자를 찔러 버릴 것처럼 흉흉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하면 그 핑계로 찌를 것이 분명했다. 두 여자도 인아의 그런 흉흉함을 아는지 말도 붙이지 않고 묵묵히 청소를 했다.
바비는 방에 가둬둔 상태였다. 2:1이라면 무기를 든 인아가 유리했지만 3:1이라면 확실히 무리였다. 게다가 인아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을 아는데, 풀어놓고 가면 송장 치울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어디가요?”
“한 바퀴 다녀보게. 쓸 만한 게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야.”
“늦어요?”
“많이 늦지는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