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 (3)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인연은 그런 것이고 정 붙이면 힘들어지는 세상이었기에 장난으로 나를 포장했다.
“뭐랄까 그냥 내가 대인 공포증이 있다고 생각해라. 따지지 말고.”
“아~ 대인 공포증이 있어서 그런 거구나~ 혹시 그 대인이 여자? 여성공포증?”
인아는 조금씩 대담해졌다. 내가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인지 며칠 동안 사이가 좋아졌다고 생각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과하게.
“아유... 이걸...”
“헤헤헷.”
내가 장난으로 포장하듯 인아는 발랄함으로 포장했다. 그렇게 우리는 인력과 척력으로 균형이 잡힌 공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발랄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건 겉보기 등급일 따름. 이 세상에서 인아는 찢기고 상처를 입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로......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의 발달함을 발랄함이라고 해야 할까? 모르겠다.
딴에는 발랄함이 부담스럽기보다, 사람이 인간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어째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아마 이 사태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 그 때의 경험 때문일지도 몰랐다. 기침하는 사람들. 전염 될 것만 같은 공포. 분노를 이기지 못해 서로 죽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내 무의식이 사람들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사람들에게 공포를 느끼면서도 위안을 받는 모순적인 감각.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혼자 있었기 때문에 그 모순적인 감각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사실은 축복이자 족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실험이 생각났다. 밀폐된 공간에서 인터넷, 전화기가 완벽히 차단된 공간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혼자 있는 사람에게 어떤 변화가 오는지 관찰하는 실험이 떠올랐다.
*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나를 많이 흔들었다. 직장생활을 하고 사회생활을 했을 때에는 몰랐는데, 고작 두 달이라는 단절된 시간 뒤에 이렇게 변하다니. 영화에서 독방에 가둔다는 말을 듣고 그게 무슨 처벌이냐고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작 두 달 사이에 야수가 됐고 다시 말을 섞은 지 며칠 만에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가 됐다. 냉정하게 돌아갔던 생각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보일까? 내가 하고 있는 게 맞을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물러졌다. 이렇게 무너진 세상임에도.
입맛이 썼다.
방화격벽을 한 층마다 차단하고 내려갔다. 차단하고 잠가 버렸다. 그것도 부족해 용접을 하기로 했다. 1층 관리실에서 용접기와 탄소용접봉을 구한 게 일이었다. 아마도 밖에 공사를 하면서 보관했던 것으로 보였다. 어찌됐든 용접기도 있겠다, 이왕 하는 것 튼튼하게 했다.
치지지지직.
용접기에서 강렬한 빛과 뾰족한 소리가 났다. 근처에서 주변을 살피던 인아가 신기하다는 것처럼 말했다.
“와. 용접도 할 줄 알아요?”
“군대에서 대민지원 나갔을 때 한 번 해보고 지금 처음 하는 거다.”
“아저씨 은근히 능력 있나 보네요.”
“갑자기 무슨 소리냐?”
“여기 국내에서 제일 비싼 신축 아파트로 뉴스에도 나왔잖아요.”
“능력은 무슨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진 집이었지.”
“풉- 그게 뭐죠? 폼 잡으려고 집을 샀다는 건가요?”
“사긴. 전세다. 그것도 대출까지 낀 전세. 그러니까 가랑이가 찢어졌지.”
“혼자 사셨던 것 같던데 뭐 이렇게 넓은 집이 필요했어요. 혹시 집덕후?”
“허어. 통탄스럽도다.”
“말투 오그라드네.”
내 영혼 없는 장난에 인아도 영혼 없는 반응을 해줬다.
*
하루 종일 작업을 해서 간신히 4개 층을 차단했다. 아무래도 1층부터 위로 올라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이렇게 내려가다 혹시라도 중간에 사람들이 들어오면 그게 더 위험하지 않을까? 사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 어떻게 작업을 할까 고민했는데 아래로 4층을 작업하고 보니 시간이 의외로 많이 걸렸다. 그러다 보니 혹시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대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요?”
“왜?”
“1층을 걸어 잠그면 이쪽에 사람이 있다는 걸 광고하는 꼴이잖아요.”
“사람은 다른 동에도 있는데 뭘.”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냥 아래로 내려가기로 했다. 1층을 완전히 차단하는 셔터를 내리고 자물쇠로 안쪽에서 잠근 뒤, 방화격벽까지 내려버리면 요새나 마찬가지였다. 뚫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절단기나 가스용접기로 자르고 뚫는다면 못 뚫을 것도 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뚫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인데 투구철갑을 하면 아 여기에는 뭔가 많이 있으니 이렇게 꽁꽁 대비를 했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막으려고 한 행동이 오히려 관심 집중을 집중시키는 꼴이 될지도 몰랐다. 그게 무서워서 차단을 하지 않으면 강화유리를 박살내고 들어올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늦든 빠르든 사람들이 이곳으로 오기는 할 거다. 고민하지 말고 그냥 요새화를 시키자.’
일주일이 걸려 계획대로 나름 요새화를 마쳤다. 그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사람들 가운데 이쪽 동으로 오려는 자들도 있었지만 단지 내부에 있는 광장을 건너지 못하고 죽었다. 좀비인지 감염체인지 모르겠지만 그 놈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오래 먹지 않으면 꼭 짐승들이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동작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움직이지 않다가 자극을 받거나 주변에서 소리가 들리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폭발적으로 기동력을 회복했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그냥 지나치다가는 포위되겠는데요?”
“그렇다고 하나씩 처리하고 가기도 쉽지 않지. 소리를 듣고 몰릴 테니까.”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지나치는 것이 제일 좋았고 그게 어렵다면 저것들이 제 움직임을 되찾기 전에 단 번에 죽일 수 있는 압도적인 강함이 필요했다. 무작정 오래 버티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절전모드?처럼 있는 좀비들을 보니, 버텨야 하는 기간이 길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층에서 보는 풍경은 낯설었다. 여기저기 아직도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뒤쫓는 좀비들. 그러다 한 명이라도 좀비들에게 잡히면 더 많은 좀비들이 몰렸다. 두꺼운 강화유리벽 너머 소리 없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살육의 현장을 보며, 나와 인아는 여러모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숨기고 침묵했다.
“장비 챙겨라.”
“예? 다 했잖아요.”
“지하까지 마저 정리하자.”
“엑. 지하요?”
“그래.”
“아저씨 이거 영화 같은데서 보면 데드플래그? 그런 거 같은데요? 잘 있던 사람들이 지하실에 뭘 가지러 간다고 내려갔다가...”
“그래도 가야 해, 지하실에 비상발전기도 있고 그쪽을 통해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지. 이왕에 하는 김이 완벽하게 하는 게 나아.”
1층과 지하는 생활편의시설이 있었다. 1층에는 피트니스 센터와 어린이 실내 놀이터, 다목적 홀이 있었고 지하 1층에는 대형 수영장과 소형 극장, 주로 파티장으로 쓰이는 홀이 있었다. 그리고 지하 2층은 기계실과 비상발전기와 유류보관실 각 가구당 할당된 창고 공간이 있었다. 창고를 털면 또 쓸 만한 것이 나올지도 몰랐다. 그러니 지하를 안전하게 만들면 1석2조였다.
“분명히 있다고요. 그 새끼들도 지하로는 안 내려갔는데.”
“시끄러워.”
지하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어에 특유한 느낌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러니까 지하라는 말이 가진 어감 자체에 뭔가 묵직하고 어두운 힘이 감도 느낌이랄까. 다행하게도 지하실로 내려간다는 생각에 압박감이 생기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러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정말. 꼭. 진짜. 내려가야겠어요?”
“그래.”
내 분위기가 변하자 인아가 입을 다물었다. 지하를 정리하자는 것은 위험하긴 했지만 생각 없이 무작정 내려가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지하에 있는 시설들이 그랬다. 지하에 있는 시설들은 사람들이 있지 않을 확률이 높은 곳이었다. 좀비 사태인지 변종 바이러스 사태인지 터졌는데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거의 없을 것이다.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위험에 비해, 혹시나 생길 사태로 발생하는 위험은 컸다. 특히 지하주차장을 통해 사람들이 들어온다면 상당히 위험했다.
“지하에 있는 기계실을 외부인들이 장악하면 펜트하우스에 꼼짝 없이 갇힐지도 몰라.”
“어차피 완전히 차단했잖아요. 식량도 넉넉하고 물도 넉넉한데...”
“침입자들이 기계실을 장악해 전기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그래도 괜찮을까?”
“전기요?”
“그래.”
기계실도 그렇고 비상발전기도 마찬가지였다. 태양광발전이 있지만 따로 기름발전기까지 있었다. 침입자들이 기름발전기를 이용해 용접기와 절단기를 쓴다면 기껏 막아놓은 것이 무용지물이 됐다. 그러니 지하실은 꼭 장악해야 했다.
“우리 둘만 내려가는 것은 무리에요.”
“알아. 두 자매를 데리고 내려간다.”
차갑게 번뜩이는 속내를 숨기고 담담하게 말했다.
*
작은 여자가 말했다.
“언니는 빼주세요.”
큰 여자는 정신을 차렸지만 충격이 컸는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조금씩 야위었다. 펜트하우스에서 죽은 3명은 아빠, 남동생, 그리고 큰 여자의 남자친구라고 했다. 사태가 발생해 큰 여자의 남자친구가 여자가 걱정 되서 왔다가 발이 묶였다고 했다. 그 남자가 제일 처음 야구방망이를 들고 앞장섰던 ‘지아’라는 여자를 단숨에 죽인 남자였다. 졸지에 가족이 죽고 남자친구까지 죽어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언니를 빼달라는 소리였다.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말하는 이유가 뭐지? 이 중에 사연 없는 사람도 있나?”
작은 여자가 내 사늘한 말에 부르르 떨었다. 작게 ‘사이코.’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싸이코? 안에 사람있냐고 벨을 눌렀는데도 소리 죽이고 습격한 건?"
"이이익... 당신들이 집을 따고 들어왔잖아!"
"사람이 있는지 좀비가 있는지 확인하는 게 당연하지 않아? 몇 번을 말했어? 근데 어떻게 했지? 들어가자 마자 죽였지?"
"...아니야! 아니라고!"
“씨발 뭐가 아니야? 남자가 앞장 섰을 거라 생각하고 처음 들어온 사람 그냥 찔러 죽인 거잖아? 그리고 남동생, 아빠, 남자친구 셋 전부 무장하고 몸에 잡지와 책을 두르고 있던 이유가 뭔데? 설마 그렇게 중무장으로 한 건 폼인가? 그냥 심심해서 중무장하고 있었어?”
“그건 당....”
작은 여자의 말을 자르고 목소리를 높였다.
"뭘? 그럼 거기서 내가 죽었어야 하나?"
"......"
“아래층 습격하려고 했잖아? 아니야?"
"......."
"왜 대답을 못해? 그래 놓고 뭐라고?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 내가 죽느냐? 너희가 죽느냐? 거기서 내가 살았을 뿐이다. 원망하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그리고 네 언니 이런 세상에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면 오래 살기는 틀렸다고 봐야지.”
큰 여자가 내 말을 듣고는 살짝 반응했다.
‘이... 악마 같은... 살인자.’
작은 여자는 흐르려는 눈물을 꾹 참으며 날 노려봤다. 아주 작게.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소리지만 난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