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죽이고 (2)
가슴에 칼을 박은 ‘지아’라는 여자는 입에서 피를 흘리며 멍한 표정으로 식칼녀를 쳐다봤다.
“어떡해... 어떡해...”
“흐으윽 지아야... 안 돼... 어떻게 좀 해봐.”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쾅쾅 거리며 심장이 뛸 때마다 머릿속 혈관이 같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아드레날린 때문인지 신경이 극도로 흥분됐다.
“옆으로 데려가서 뉘여.”
“하악... 나... 나... 가슴이..”
“말하지 마. 괜찮아 괜찮으니까.”
칼이 깊숙하게 박힌 여자가 힘겹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 폐가 찔린 것처럼 보였다. 폐를 찔리면 숨을 쉬기 힘들었다. 칼을 뽑아도 굵은 핏줄이 상했다면 폐에 피가 찰 것이다. 폐에 피가 차면 피 때문에 질식하게 될지도 몰랐다.
“칼 건드리지 마.”
“카...칼이.”
“지금 칼을 뽑으면 지혈을 못해!”
어디서 들었던 이야기지? 어디서인가 들었던 이야기 같은데 그냥 떠올랐다. 칼을 뽑으려고 했던 식칼녀가 두 손을 어떻게 할 줄 모르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게 놀라면 환자에게 좋지 않다고. 냉정하게 아무 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살 수 있다는 표정을 지어줘야지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주면 되겠나? 무엇보다 여자가 하도 난리를 쳐서 신경이 분산되고 있었다.
‘병신 같이 제대로 살펴야지.’
아이들이 있던 집에서 내가 강하게 나가지 않았더니 이런 사단이 벌어졌다. 마음 한쪽 구석에서 울컥하고 올라오는 감각. 아직도 심장이 격하게 뛰고 있었다. 위험이 끝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데 계속 꺅꺅 거리는 식칼녀 때문에 짜증이 났다. 가슴에 칼을 꽂은 여자는 중문에 반쯤 걸쳐 있었다.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문턱에 걸려 있는 상황.
"허으으윽 칼을 어떻게 해 그냥 이렇게 둬?"
“젠장. 시끄럽다고!”
“칼에... 지아가 칼에 찔렸는데 뭐라고?”
“조용히 해!”
“사람이 찔렸는데 지아가 찔렸는데.”
“에라이 미친.”
아직 적이 더 있을 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렇게 널뛰면 위험했다. 사람을 그렇게 죽여놓고도 내 지인은 소중하다인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렇게 앞뒤 없이 난동을 피우면 답이 없었다.
'그냥 내버려두고 갈까?'
아니, 위험했다. 이 집사람들은 애초부터 대화할 생각이 없는 자들이었다. 사람이 있다고 반응을 확실히 했으면 강제로 따고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없는 것처럼 기척을 죽이고 유인해?
내가 죽였던 남자들 같이 행동력이 강한 그룹이 이 펜트하우스에 있다면 최악이었다. 여기서 끝을 봐야 했다. 일단은 발광하는 식칼녀를 진정시켜 펜트하우스의 전력을 확인해야 했다. 전력이 강하면 피해야 했다.
“지아야!! 어떡해!!”
“칼에 손대지 말고 그냥 옆으로 가서 뉘여!”
내가 가슴에 칼을 꽂은 여자의 다리 쪽으로 가자 머리 부분에 있던 식칼녀가 어깨를 잡아 당겨 중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야 이 병신아.”
저절로 욕이 나왔다. 그대로 옮기던 다리를 놨다.
“뭐야 뭐냐고? 니가 뭔데 그래?”
“안으로 그냥 들어가면 어떻게 하냐고 미친년아!”
한 번 욕이 나오자 그냥 쌓아뒀던 감정이 터졌다. 대체 정신이 있는 년인가? 적이 있을 지도 모르는데? 말을 하기도 전에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빨리 옮겨야 하잖아! 지아를 땅바닥에 둘 거야?”
식칼녀의 몸통이 완전히 중문 안으로 들어갔다. 낑낑 거리며 가슴에 칼을 꽂은 여자의 상체를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움직였다.
"야이 미친..."
“너는 진짜 개새끼야. 니 사촌이 칼에 맞아도 그러고 있을 거야?”
식칼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칼 맞은 여자를 끌고 소파가 있는 쪽으로 가려고 낑낑거렸다.
식칼녀의 머리가 중문의 코너를 도는 것과 동시에 뻐걱!- 소리와 함께 식칼녀의 머리가 튕겨지듯 꺾였다. 골프채였다. 단 한 줌의 망설임도 없이 휘둘러진 골프채는 여자의 머리통을 함몰 시켰다.
“지...?”
멍청한 소리를 내뱉은 식칼녀가 칼이 가슴에 박힌 여자의 몸통위로 무너지듯 쓰러졌다. 푸우욱! 칼 손잡이가 식칼녀의 몸이 내리 누르자 그대로 더 깊숙하게 틀어박혔다.
졸지에 가슴에 칼이 박힌 여자가 식칼녀의 몸을 밀어내려고 양손을 버둥거렸지만 정신이 잠깐 나간 식칼녀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칼자루 위로 쓰러졌다.
“아으으-”
버둥거리던 양손이 서서히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칼 맞은 여자의 마지막 애처로운 몸짓이 멈추자 머리를 맞고 흐느적대던 식칼녀가 고개를 돌렸다.
“이.. 이...”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자기의 머리를 때린 놈을 찾는 식칼녀의 눈빛은 살기와 광기에 차있었다. 하지만 그 머리위로 다시 골프채가 틀어박혔다.
뻐억!
“으아아앗!”
식칼녀가 반사적으로 팔로 머리를 막았지만 여자의 가녀린 팔뚝은 골프채를 막을 수 없었다.
툭- 비스킷처럼 팔목이 부러지면서 본능적으로 팔을 내리는 식칼녀. 절망적인 눈동자 어쩌면, 살려달라는 간절함이 가득한 눈동자로 자신을 내리치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그녀의 머리 위로 골프채의 헤드가 폭음을 내며 떨어졌다.
우우우웅.
콰직!
부우우웅.
콰악!
쉬우우웅.
쿠작!
끝없이 맹폭하는 골프채는 순식간에 한 여자의 머리통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사방으로 피와 뇌수가 튀는 그로테스크한 장면. 도망치고 싶은 생각을 아드레날린으로 희석시키고 코너로 달려들었다.
골프채가 휘둘러진 것과 동시에 망치를 휘둘렀다. 망치로 사내의 머리를 내리치자 사내가 피했다. 머리를 내려친 망치를 피했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내 망치가 사내의 광대뼈를 스치듯 두들기고 지나갔다 쿠지직- 얼굴을 맞았음에도 사내는 나를 밀어냈다. 바닥에 흥건한 뇌수와 피에 미끄러져 몸이 뒤로 밀렸다.
몸의 균형을 잡으려고 반사적으로 눈이 바닥을 향했다. 그 짧은 순간, 눈동자가 바닥을 잠시 살피고 다시 정면의 사내를 바라본 그 찰나의 순간. 사내는 이미 내 정수리를 향해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었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 골프채에 달린 주먹만 한 해드가 사신의 낫처럼 보였다.
수직으로 강림하는 죽음. 죽음의 공포로 인해 심장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염통을 맨손으로 쥐어짜는 것 같은 감각. 심장이 수축하며 호흡이 길게 끊어지듯 늘어났다. 0.001초로 분절되는 시간. 뒤로 피하는 것은 무리다.
뒤로 물러서는 순간 죽는다. 심장이 옥죄이며 앞으로 움직이라고 다그쳤다.
피하지 말아라. 도망치지 말아라. 나가라.
분절된 시간 속으로 궤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노려지는 것은 내 정수리. 후퇴는 없다. 발이 미끄럽다. 물러서는 순간 2격 3격이 계속 휘몰아칠 것이다.
죽는다.
죽인다.
죽여 버린다.
“으아아아아!”
고함소리가 늘어진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났다. 앞으로. 앞으로 가야 했다. 전신의 힘을 다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 한 걸음이 삶과 죽음을 뒤바꿨다.
퍽!
골프채의 헤드를 피했다. 헤드가 아닌 손잡이 부분으로 맞은 것이다. 어깨를 맞았다. 통증 때문에 아찔했지만 찢어지지도 않았고 깨거나 금이 가지도 않았다. 타격거리가 사라진 골프채는 무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거리를 좁힌 것은 유효한 대응이었다. 내 어깨를 한 번 찍은 것으로 사내의 공격이 멈췄다. 반격했다.
“이야아아아앗!”
내 고함소리에 화답하듯 사내가 외쳤다.
“죽어!”
나는 앞으로 달려들어 사내의 몸에 붙었다.
퍽! 퍽!
골프채 손잡이로 내 등을 찍어대기 시작하는 사내였다. 망치는 이 상황에서 소용없었다. 양손에 들고 있던 망치 가운데 왼손에 들고 있던 5kg짜리 아령으로 만든 망치를 버렸다. 망치를 버리고 허리춤에 꽂아 놓은 식칼을 빼들었다. 그 순간 뒤통수가 화끈했다. 보답하듯 사내의 옆구리에 식칼을 박았다.
푹! 식칼이 들어가지 않았다.
‘잡지?’
사내는 복부에 책을 꽃아 넣고 있었다. 등에 가해지는 충격 때문에 몸이 점점 앞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빠각! 등판에 화끈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퍽! 뒤통수에 충격이 오는 것과 동시에 눈앞이 잠시 아찔해졌다.
“죽어!”
퍽! 퍽!
몸통을 꼼꼼하게 책과 잡지로 두르고 있기 때문에 식칼이 들어가지 않았다. 퍽! 퍽! 몸통 전체를 감쌌는지 찌르는 곳마다 식칼이 들어가지 않았다. 사내는 내가 칼을 들고 찌르자 더욱 발광을 했다. 두들겨 대는 충격이 점차 몸에 누적되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죽어버려 새끼야!”
사내가 달라붙은 나를 계속해서 두들겨 댔다. 엉켜 붙었던 몸이 위에서 두들겨 내릴수록 점차 아래로 내려갔다. 잡지가 없는 곳을 찾아야 했다. 보호되지 않는 곳을...... 퍽! 다시 뒤통수에 뜨거운 감각이 돌며 정신이 핑 돌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사내의 허리춤 아래. 허벅지였다.
“너나 죽어!”
사내의 허벅지에 식칼을 박고는 그대로 내리 그었다. 푹! 식칼이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박혔다. 사내의 허벅지에 박힌 식칼에 내 체중을 싣고 아래로 밀어버렸다. 부우우욱! 식칼은 그대로 바지를 찢고 아래로 내리 그어졌다.
살이 갈라지고 옷이 찢기며 피가 튀었다.
“끄아아아악!”
식칼이 종착역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종착역에는 사내의 양말 신은 발이 있었다. 긁고 내려간 식칼을 그대로 발등에 박아 넣었다.
“아아아아악!”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새우처럼 몸을 구부렸다. 그러자 위에서 내리 눌러졌던 나와 사내가 껴안는 모습처럼 됐다.
어깨로 달라붙은 사내를 밀치자, 사내의 머리통이 망치를 쥔 내 오른손의 사정거리에 들어왔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내의 눈동자와 내 눈이 마주쳤다.
사내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 내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일그러져 있었다. 움찔 몸이 굳는 것을 억지로 움직였다. 휘익- 사내의 입이 필사적으로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끝내 말을 내 뱉지 못했다.
“아... 안....”
오른손에 쥔 망치가 사내의 관자놀이를 타격했다.
퍼어억!
얼굴과 관자놀이 중간을 박살내고 들어간 망치로 인해 얼굴뼈가 부서지면서 안구가 터져나갔다. 사내의 머리가 획 돌아가더니 풀썩 쓰러졌다. 몸을 비틀어 굴렀다. 다른 놈이 있다면 노려질 수 있었다.
데굴 몸을 구르며 사내의 발등에 박혀있는 식칼을 뽑아 들었다.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꾸욱 심장이 쥐어짜졌다. 순간적으로 감각이 확장된 기분. 살의가 손에 잡힐 것처럼 느껴졌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앞으로 던졌다.
“영호야 안 돼.”
여자의 고함소리가 에코처럼 울렸다. 고함소리와 함께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앞구르기로 구르고 있었다. 뻐걱! 내 머리가 있던 장소에 틀어박히는 야구방망이.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녀석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죽어!!”
윙!윙!
야구방망이를 사정없이 휘두르는 고등학생이었다. 와장창! 장식장이 야구방망이에 깨져나가며 안에 있던 그릇들이 박살났다.
“죽어버려!! 죽으라고!!”
부웅!
휘이이익!
단단한 나무로 된 야구방망이를 풀 스윙으로 휘두르는 학생이었다. 좌우로 휘두르는 야구방망이를 피하면서 망치를 꼭 쥐었다.
심장을 쥐어짜는 감각이 조금 느슨해졌다. 심장이 노곤하게 풀어지는 느낌과는 별개로 급격하게 분비된 아드레날린은 내 감각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