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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10화 (10/261)

약탈하는 세상에서 (3)

지하주차장에서 목격했던 사건이 반복해서 떠올랐다. 사람의 머리통을 발로 차 목을 부러뜨린 광경. 분노와 광기에 찬 사람들의 얼굴이 반복됐다. 그냥 모든 게 정상이 아니었다. 멍하니 처참한 현장에서 서 있었다. 갑자기 들리는 여자들 목소리.

“끄. 끝났어?”

밖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촉촉한 목소리로 유혹했던 여자였다.

‘끝났데?’

‘또 죽인거야?’

‘아 진짜 꼭 피를 봐요.’

‘이번에는 피 좀 적게 뿌렸으면 좋겠는데.’

‘물도 별로 없는데 피까지 튀면 정말.’

‘그러게 씻지도 못했는데.’

‘아 찝찝해.’

‘꼬. 꼭. 죽여야 해?’

‘그럼 죽여야지. 좆 달린 것들 하나 더 늘면? 대줄래?’

‘히끅-아. 아니야.’

잠시 흔들렸던 마음이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당장 심장이 옥죄는 반응은 없었다.

여자가 2명인 줄 알았는데 더 많았다. 여자가 3명? 아니 4명인가? 대화를 함에 위화감이 없었다. 괴물이 날뛰는 세계에서 두 달을 살아남는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목소리를 들어보니 전부 나이가 많아보이지는 않았다.

저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사람을 죽이면서도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야 나도 가슴아파할 이유가 없었다. 커튼을 걷었다. 촥-소리와 함께 커튼이 걷히자 참혹한 장면이 그대로 드러났다. 깜깜하면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위화감과 공포심을 느껴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잡으러 돌아다니는 것은 사양이었다. 전부 끌어들여 한 번에 치워야 했다.

널브러진 시체를 식탁이 있는 곳까지 끌어 놨다. 핏자국이 길게 늘어졌다. 스그극-깨진 유리조각이 원목마루바닥을 살짝 긁는 소리가 신경을 거슬렸다. 3명의 시체를 한쪽으로 대충 밀어 넣고 기울어진 중문을 한쪽으로 세웠다.

순식간에 대충 정리한 뒤 입을 가리고 목소리를 걸걸하게 했다. 약간은 쉰 것 같은 목소리. 힘이 조금 빠진 것 같은 목소리를 냈다.

“끝났어.”

“문 닫고 빨리 들어와.”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이번엔 좀 쎘나 보네?’

‘두 명? 한 명?’

“먹을 건 많아?”

여자가 현관을 지나 거실로 들어오며 물었다. 거실 벽에 몸을 숨긴 채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어 거실에 먹을 게 쌓였네.”

“문 안 열고 버티는 놈들이 챙겨 놓은 게 많다니까”

‘후 오늘도 굶는 줄 알았어.’

‘다이어트 할 때는 잘도 굶었으면서’

재잘재잘 거리며 들어오는 여자들이었다. 농담을 하면서 들어오는 계집들 이것들은 사람을 여럿 죽여 본 년들이 분명했다. 침착하게 리모컨으로 현관문을 잠금으로 설정했다. 토치에 달궈져 자동 해제가 됐던 전자식도어가 리모컨으로 인해 다시 잠금 상태로 변했다.

[띠리리릭]

“어맛!”

“어라? 문이 잠겼는데?”

“대식아! 장난치지 마.”

“놀라기는.”

여자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현관도어를 제어했기 때문에 문을 열려면 버튼을 돌려 수동으로 해제를 하거나 리모컨으로 해제를 해야 했다. 급박하게 현관을 열고 도망치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들어온 여자들은 모두 4명이었다.

4명이 잠긴 현관이 장난이라고 생각했는지 먹을 것이 쌓여 있다는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커튼이 걷혀 환한 거실 한쪽에는 먹을 것이 박스로 쌓여있었다. 생수도 가득 쌓여 있었다. 그것을 본 여자들은 바닥에 길게 늘여진 핏자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꺅꺅 거리며 좋아했다.

후다다닥- 먹을 것을 향해 달려간 여자들이 과일 통조림을 까서 허겁지겁 먹었다. 몸만 조금 돌리면 내가 서 있는 것을 봤을 텐데 먹을 것에 정신이 팔려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있었다. 아까 남자들을 죽이면서 봤었다. 전신에 잡지책을 감싸고 있었다. 여자들도 그렇게 몸을 보호하고 있을지 몰랐다. 5kg짜리 아령을 매달아 만든 망치와 2kg짜리 망치를 양 손에 각각 쥐었다.

‘한 방이다.’

여자들은 4명. 한 손에 한 명씩 두 명을 동시에 전투 불능으로 만들면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첫 살인과는 달리 뜨거운 감각이 전신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숨어서 기다리는 것이 꼭 사냥꾼이 때를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먹이라는 미끼를 물고 즐거워하는 사냥감을 기다리는 사냥꾼이 된 기분이었다.

미친거다. 그래 이 세상은 미쳤다.

호흡을 고르고 망치를 쥔 두 팔에 힘을 줬다. 앞으로 달려나가려는 순간 한 여자가 들고 있던 과일 통조림을 팽개치며 벌떡 일어났다.

“꺄아아아악! 대... 대식?”

“민철아! 안 돼!”

“대식아!”

여자 2명이 다리가 풀렸는지 시체들이 있는 식탁 쪽으로 기어오다시피 다가섰다.

‘기회!’

기어오는 여자들을 망치로 때리려면 중심이 무너졌다. 망치로 때리는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발을 썼다. 퍼억! 사커킥으로 시체를 붙잡고 흔들고 있는 년의 배를 걷어찬 뒤, 망치로 옆에 있는 년의 머리통을 향해 집어 던졌다. 하지만 여자는 재빨리 몸을 뒤집었다. 머리통을 한 방에 날려 버리려고 했는데 여자가 몸을 비틀며 피하는 바람에 망치는 여자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커으앗!”

순식간에 두 여자를 전투불능 상태로 만들고 몸을 돌이켰다. 시체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기어가는 두 여자를 본체만체 먹는데 집중하고 있던 한 여자가 어느새 내 품으로 달려들었다. 몸을 뒤로 도는 순간 여자는 이미 내 품에 안기듯 달려들어 있었다.

'흡.'

그 년은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과도로 내 배를 쑤셨다. 길고 뾰족하게 갈린 과도는 사시미처럼 날렵하게 갈려있었다. -푸각-푸각- 짧게 2번을 찌르고는 팔을 뒤로 빼면서 깊게 찔러 들어왔다. 과도에 체중을 실어 깊게 쑤시는 여자였다.

푸우우우욱- 하지만 그게 패착이었다. 두툼한 잡지를 배에 넣어놨을 뿐 아니라 패딩을 입고 있었다. 칼이 들어갈 리 없었다. 체중을 실어 찌른다고 했던 것이 오히려 역으로 작용했다. 칼 날이 잡지에 가로 막혀 들어가지 않자 손이 미끄러지며 칼날에 자기 손이 벤 것이다.

칼날에 손을 베자 여자는 반사적으로 칼을 쥐고 있던 손을 폈다. 툭-과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자가 내 품에 안기듯 달라 붙어있었기 때문에 망치를 휘두를 거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대로 몸을 뒤틀면서 팔꿈치로 여자의 얼굴을 찍었다.

부욱-

몸에 달라붙은 취객을 떨치듯 몸을 뒤틀며 백스핀 엘보우를 날리자 여자는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내 배를 예술적으로 쑤시던 여자는 동물 같은 감각으로 허리를 비틀었다. 그녀의 안면으로 날아가는 내 팔꿈치를 피했지만 대신 그녀의 옆머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뻐억! 성인 남성이 전신을 뒤틀며 휘두른 팔꿈치를 머리에 맞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털썩! 완전히 다리가 풀려 쓰러지면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여자가 기절해버렸다.

“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한 명 남은 여자가 두 손으로 과일 통조림을 꼭 쥐고 비명을 질렀다. 동그랗게 큰 눈과 조막만한 얼굴. 꼭 어딘가의 광고모델로 나올 법한 얼굴이었다.

'말하는 얼굴'이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대략적으로 이런 내용이었다. 돼지가 살려달라고 말을 하면 돼지를 잡아먹을 수 있을까? 아무런 문제없이 잡아먹는 사람이 있고 차마 잡아먹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눠진다고 했다. 그 내용이 갑자기 떠올랐다.

살려달라고 중얼거리기 전에 싸우다 죽거나 죽였으면 처리하기가 쉬웠을 텐데. 이렇게 무장해제가 된 상태에서 살려 달라 하니, 어떻게 손을 쓰기 애매했다. 죽여야 하나? 살려둬야 하나?

피를 본 내 심장은 미약하게 부들부들 떨었다. 싸움에서 이겼다는 흥분과 갈등이 뒤섞여 묘한 고양감에 취한 기분이었다. 어째서인지 죄책감이나 안타까움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죽일 수 없었다.

*

고민과 갈등은 서서히 사라졌다. 아스팔트 정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생존감. 혼자 이긴 것이다. 7명. 남자 셋에 여자 넷이라는 숫자를 혼자 잡은 것이다. 짜증과 분노가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꾹 내리 누르고 살려달라는 바비인형에게 경고했다.

“후우- 닥쳐!”

낮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에 비명을 지르던 여자가 히끅-하며 입을 다물었다. 5kg짜리 아령을 묶어 만든 망치를 들어봤다. 묵직한 무게감은 언제든 생명을 취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팔꿈치로 관자놀이를 맞은 여자는 손바닥에서 피를 질질 흘리는 채로 꼬꾸라져있었다. 무릎을 꿇고 마지막 처형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고개를 내밀고 있는 여자의 머리통을 보자 저절로 망치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커으으으읏!

쿨럭!

상념을 깨우듯 사커킥에 맞은 년과 망치에 가슴을 맞은 년이 거칠게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눈물이 흐르면서 땟물이 지나간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한참을 씻지 못해 꼬질꼬질한 모습을 하고 있어도 이 여자들 생김새나 몸매 모두 상위권이었다. 나이도 어려 보였다.

이겼다는 승리감과 흥분은 피 냄새와 결합해 묘한 욕구로 치환됐다. 마음 속 깊은 구석 음습한 욕망이 고개를 들었다. 어쩐지 본능이 이성을 누르는 것 같았다. 열이 후끈 달아오르며 정신이 핑 돌았다.

‘이년들은 날 죽이려고 한 년들이야.’

이성과 감정이 따로 노는 느낌이었지만 승리감 때문인지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마약을 하면 이런 느낌일까?

후- 작게 숨을 몰아쉬고, 짝- 내 따귀를 때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 차리자.'

내 이상한 행동에 동그랗고 순한 눈을 가진 여자가 히끅-히끅-거리며 딸꾹질을 시작했다. 그 두려워하는 모습이 어쩐지 죽이고 싶어졌다. 고개를 흔들었다. 분노와 살의가 뒤섞힌 흥분을 진정시켰다.

“하- 미치겠군”

웃음이 나왔다.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세상이 망해있더라. 어딘가의 영화도 아니고 게다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나오나 했더니 이제는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겼다.

"빌어먹을..."

내 중얼거림에 여자는 눈치만 봤다.

"뭐 좋아."

그래도 세상은 돌아갈 것이다.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 채 뒹굴고 있는 두 여자의 사지를 케이블 타이로 묶었다. 케이블 타이 두 개를 고리처럼 연결했더니 훌륭한 수갑과 족쇄가 됐다. 여자들은 반항을 하지 못했다. 가슴을 망치로 맞은 여자는 갈비에 금이 갔는지 팔을 뒤로 묶자 뾰족한 비명을 질렀다. 무시하고 팔다리를 묶었다.

“까아아으윽 아파. 아파요.”

“후- 아파? 그럼 영원히 안 아프게 해줄까?”

“크읏. 으으.”

재갈을 물리자. 고통을 씹는 것처럼 일그러지는 표정을 지었다. 사커킥을 맞은 여자는 내장이 흔들렸는지 작게 헛구역질을 했다. 강한 충격을 받으면 장이 파열 된다고 했다. 먹은 것도 없을 텐데 작게 헛구역질을 하는 것을 보니 영 좋지 않아 보였다.

“적당히 토했으면 물어라.”

자비 없이 재갈을 물렸다. 재갈을 물리면서도 죽일까? 계속 죽이는 쪽으로만 생각이 기울었다. 그나마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충동은 많이 약해졌다.

내가 본래 이런 성격이었나? 내가 죽인 사내들의 시체를 보자 잠시 약해졌던 마음속에서 분노가 끓기 시작했다. 이것들은 나를 죽이고 내 식량을 약탈하러온 놈들의 계집이었다. 케이블 타이를 묶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으윽-”

조금 살살 묶어 달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지만 그 딴 건 없었다. 끼릭-하는 소리와 함께 케이블 타이가 부드러운 피부에 붉은 자국을 남기며 죄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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