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스트 DUST-8화 (8/261)

약탈하는 세상에서 (1)

화르르륵- 불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연기가 뭉클뭉클 하늘 위로 올라가며 화재경보음을 울려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소방차도 오지 않고 불길을 구경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 사람도 없는 황량한 풍경이 현실이었다.

간혹 들리는 식량 쟁탈전과 불을 질러 자살을 하는 사람들의 방화 그리고 투신자살이 반복되면서 흉흉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굶주림과 절망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들을 보자 저절로 거실을 힐끔 쳐다보게 됐다.

거실 한 쪽을 가득 채울 정도로 넉넉한 식량과 식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앞에서 식량과 식수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고 누군가는 자살을 하고 있었다. 그런 현실과는 상관없다는 것처럼 그득하게 쌓여있는 식료품들을 보니, 기분이 미묘했다.

"하-"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언제가 됐든 약탈자들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봐야 했다. 벌써부터 각 라인 마다 터는 놈들이 생겼으니니 조금 있으면 본격적으로 약탈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 나에게 식량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물을 달라고 하면 줄 것인가? 활활 타오르는 한 집을 바라보고 되물었다. ‘줄 수 없다.’ 힘으로 뺏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혼자였다.

며칠 동안 밖을 관찰하면서 알 수 있었다. 좀비나 괴물에게는 약하고 같은 사람들에게는 강한 자들이 살아남았다. 우리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미끼가 됐다. 착한 자들은 죽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살아남는 세상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미친 세상.

그래 이런 세상에서 타인을 믿을 수 있을까? 믿을 수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싸운다.’

싸워야 했다.

어떤 각오로 싸울 것인가?

제압하는 것과 일격에 죽일 각오로 때리는 것 둘 가운데 무엇이 더 안전할까? 당연히 후자였다. 죽일 각오로 싸워야 했다.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행동 방침을 정하고 나니,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에도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낯설었다. 죽인다고 다짐해 놓고는 편히 잘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봤으면서도 구토를 하거나 입맛이 없거나 하지 않았다. ‘뭐 이것도 적응력이라는 거겠지.’ 물을 담아둔 김장 비닐이 일종의 볼록 거울 역할을 해 초점이 잡혔다. 생존카페에서 봤던 내용이었다.

초점이 잡힌 곳에 물을 담은 스텐 그릇을 뒀다. 한 나절 태양열로 달궈지면 그래도 40~60도 정도로 데워졌다. 즉석 밥을 담가 놓으면 먹을 만하게 데워졌다. 레토르트 식품과 즉석 밥이라는 호화스런 식사를 끝내고 운동을 시작했다.

망치와 식칼을 들고 휘두르는 연습은 벌써 두 달째 하고 있었다. 몸이 아프고 나은 뒤 묘하게 체력이 좋아지고 유연성도 좋아졌기 때문에 어설프게 휘두르는 망치나 식칼에도 힘이 들어갔다.

휙-휙-

부우웅-부웅

망치와 식칼이 공기를 찢으며 내는 소리가 사뭇 살벌했다. ‘죽인다.’ 다수를 상정하고 휘두르는 무기는 한줌 망설임이 없었다. 픽-헛웃음이 나왔다. 주적이 괴물이나 좀비가 아니라 같은 인간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씁쓸했다.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살아남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생존자들끼리 벌이는 싸움이 점차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싸움이 심해진다는 소리는 약탈이 심해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내가 있는 이곳도 안전하지 않았다. 약탈자로 변한 사람들이 현관을 따고 들어올지 몰랐다.

하루하루 얼굴을 모르는 가상의 누군가를 죽이는 상상을 하며 둔기를 휘두르는 연습을 반복하게 됐다. 저절로 욕이 나왔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싸우는 연습을 하다니, 헛웃음이 나왔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

밖에서 트럭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며칠 만에 처음으로 듣는 소리였다.

부우우웅

‘트럭이 움직인다면 도로가 완전히 막히지는 않았다는 소린데.’

도로가 완전히 막혔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닐지도 몰랐다.

크와아아앙

끼이이익!

“빨리 내려 빨리!”

“지원화기 자리 잡아!”

“마트는 어디야?”

트럭 두 대에서 군인들이 내렸다. 군용 트럭이 내는 디젤 엔진의 소음은 확실히 컸다. 고요한 단지가 외부에서 들어온 군용 차량이 내는 소음으로 인해 시끌시끌해졌다. 사방으로 흩어졌던 좀비들이 자극을 받았는지 트럭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좀비들도 별로 없습니다.”

“후딱 쓸어버리고 마트로 가자!”

군인들이 트럭에서 내리자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한 아주머니가 파리한 얼굴로 도움을 요청했다.

“여기요. 여기 좀 도와주세요.”

“거 아줌마 조용히 해요.”

중위로 보이는 사내가 병력을 인솔하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엔진소리에 이끌려 모였던 좀비들이 군인들을 봤는지 다다다닥 소리를 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좋아 몰려온다!”

“조준! 발포!”

“쏴!”

“머리를 조준해서 쏴!”

투다다다닥!

다다다다닥!

총소리가 가벼웠다. 제대로 된 점사가 아닌 말 그대로 마구 쏘는 느낌. 병장과 이병이 없는 부대였다. 거의 대부분 일병이었다. 그나마 하사 하나가 있어 중위의 지휘를 보조하고 있었다.

“한중위님 이것들 빠른데요?”

“그냥 갈겨.”

“조준해서 갈겨!”

두두두두둑!

팔다리를 맞은 좀비들은 무시하고 달려들었다. 5.56mm가 저지력이 약하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몸통이나 팔다리를 맞은 놈들이 달려들자 수류탄과 유탄이 발사됐다. 쾅!하는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비산해야 할 살덩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뭐야 이 새끼들!”

“멀쩡하다고?”

“맙소사!”

수류탄에 찢기고 유탄에 박살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좀비들이 팔다리에 상처가 좀 나고 옷이 찢어진 정도의 피해 밖에 입지 않고 그대로 달려들자 전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쏴! 탄약 아끼지 말고 쏴!”

“k-6은 뭐해?”

“자리 잡았으면 빨리 쏴!”

“다 죽고 나서 쏠 생각이야!”

트럭에 거치된 중기관총이 총탄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12.7mm의 굵은 총탄은 확실히 먹혔다. 달려들던 놈들도 중기관총의 저지력을 뚫지 못하고 비척거리기 시작했다.

“중기관총을 근거리에서 맞고도 움직인다고?”

“빠르고 단단합니다. 아무래도 변이체로 보입니다.”

“나도 봤다. 철수한다.”

“옛!”

중기관총이 견제사격을 하는 동안 군인들은 다시 트럭에 올랐다. 들어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밖으로 나가는 트럭이었다. 다행히 인근에 있던 변이체들은 트럭을 맹추격했다. 졸지에 단지 공터가 한산해 졌다.

군인들의 등장은 충격을 줬다. 군인들이 민간인을 구조하지 않고 마트를 털러 왔다는 것도 그렇고 제대로 싸우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는 것도 그랬다. 사람들은 각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나마 미약하게 남아있던 질서 의식이나 도덕심도 빠르게 붕괴되기 시작했다. 혹시나 군대가 오면 이 상황이 해결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믿음이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단지 이곳저곳에서는 고성을 동반한 싸움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사람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쪽과 저쪽에서 거울을 반사시켜 뭔가 신호를 주고받기 시작하더니 화이트보드에 글씨를 써서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성인 남성 4명무기 있음.]

[30분 뒤에 공터에서!]

도망쳤던 자들이라고 하더라도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굶어죽거나 아니면 사람을 잡아먹거나 그게 싫다면 괴물과 싸워야 할 판이었다.

굶주림은 사람을 움직일 힘이 있었다. 괴물이 눈에 보이지 않자 어떻게든 마트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날 수 밖에 없었다. 군인들의 난입은 사람들에게 조바심을 불러일으켰다.

군인들이 성공을 해서 마트를 털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보다 군인들이 여기까지 와서 마트를 털다니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사람들은 깨달았다. 무장을 한 군인들이 마트를 털러 올 정도로 현재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 버린 것이다.

군인들은 생존자를 구조하기보다 식료품을 털려고 하고 있었다.

군인들이 더 몰려와 마트를 털어간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었다.

좋든 싫든 마트를 가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군인들을 뒤쫓기 위해 변이체들이 전부 밖으로 나간 상황이었다. 모험을 한다면 지금 밖에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제는 다른 집을 털더라도 먹을 것이 얼마나 있을지 모를 시기였다. 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마트를 확보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거울로 반사를 하며 나갈 시간을 맞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서로 싸우면서 인원이 줄었는지 나온 사람들은 33명밖에 되지 않았다. 아파트 3개 동에서 고작 33명이 나온 것이다. 한 동에 2~3라인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라인당 3~4명씩 밖에 없었다는 소리였다.

‘어쩌면 3~4명만 살아남았는지도 모르지.’

사람들이 모이자 서른 명이 넘었고 모두 둔기를 가지고 있었다. 양팔은 잡지를 테이프로 감아 붙였고 오토바이 헬멧을 쓴 사람도 있었다. 서른셋이나 되는 사내들이 우루루 마트를 향해 움직였다.

“확실히 이쪽에서 보이는 놈은 하나 였지?”

“한 마리야.”

“머리다.”

“머리를 내려치는 거야.”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시력도 그렇고 청력도 놀라울 정도로 민감해져 있었다. 다들 겁나는 것을 떨치려는 것처럼 말했다. 조용한 단지였기 때문에 걸걸한 목소리가 울렸다.

‘병신들 죽으려고 작정을 했군.’

저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정말 없었을까? 나라면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 군인들이 차를 타고 나갔으니 도로가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일단 인구밀도가 낮은 곳으로 이동하면서 식량을 구할 생각을 하는 게 맞았다.

‘굶어서 정신이 나간건가?’

한 마리가 그 근육질 괴물이나 마찬가지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90명이 있었을 때도 학살당했는데 고작 33명으로 그 괴물을 잡는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그 괴물에게 물려서 변한 변이체들은 수류탄으로도 사지가 찢어지지 않았다.

k6 중기관총으로 간신히 저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근육괴물이 아닌 변이체만 하더라도 짧은 식칼을 단 창이나 야구방망이 식탁 다리로 만든 둔기를 든 일반인이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뭐야 한 마리라고 했잖아!”

“씨발 매복이다!”

“5마리다! 숨어있었어!”

“도망쳐!”

“끄아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33명이 5마리의 변이체에게 몰살되는 시간은 2분도 걸리지 않았다. 매복이라니 그 정도로 머리가 좋은 놈들이 아직까지 집단행동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마도 운 좋게 인근에 있던 놈들이 몰렸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만에 하나 정말 매복이라도 했다면?

최악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는데 벨소리가 울렸다.

띵동-띵동-

홈시스템을 보니 밖에 사람이 있었다. 빈집을 털려고 하나?

“누구세요.”

무뚝뚝하게 말했다. 대응을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지만 빈집처럼 가만히 있으면 현관을 부수고 들어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냥 저들이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여차하면 싸우겠다는 각오를 다잡았다.

‘야 여기 사람 있다.’

‘몇 명이야?’

‘이 라인에는 더 없다며?’

‘있어봐야 하나 아니면 둘이겠지.’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띵동-띵동-

“아 뭔데 계속 눌러요?”

“옆집입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

거짓말이었다. 옆집은 신혼부부 집이었다. 내가 눌렀을 때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여러 명이 몰려와놓고 다짜고짜 문을 열어 달라? 웃기지도 않았다.

“무슨 일인데요.”

“문 좀 열어주시면 안 될 까요?”

“다친 사람이 있어서요.”

“구급약이 필요합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방금 보셨잖아요. 지금 일행 가운데 다친 사람이 있어요.”

“부탁해요.”

남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여자들도 있었다. 여자들이 울먹이는 소리와 애원어린 촉촉한 목소리가 심금을 울렸다.

‘여자를 이용하는 건가?’

하긴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여자는 괜찮은 방법이었다. 의식주가 해결되면 다음은 성욕이니까.

“약 없습니다. 의학적 지식도 없고요. 죄송합니다.”

촉촉한 목소리를 내는 여자의 애원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