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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7화 (7/261)

생존(2)

집단으로 모여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좀비라고 불린 변이체들을 죽였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의외로 진형을 유지하고 침착했다.

하긴,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성인남성이 군대에 갔다 왔다. 맹탕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이미 실전을 경험한 자들과 실전을 근거리에서 구경한 자들이 만든 진형은 여자들의 비명소리에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다.

곧 비명소리를 만든 원흉이 보였다. 그것은 고작 한 마리였다.

웃통을 훌떡 벗고 달려드는 것은 꼭 헬스트레이너처럼 매끈한 근육질이었다. 근육질의 그놈은 엄청나게 빨랐다. 두다다닥-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내달렸다.

근육질 인간형 괴물은 순식간에 내달려 도망치는 중년 아줌마의 목에 이빨을 박아 넣어 한 입 씹고는 휙- 뒤로 던져버렸다. 목이 물어뜯긴 중년 아줌마는 전신을 벌벌 떨며 입에서 피거품을 물다 축 늘어졌다.

“한 마리다!”

“고작 한 마리야!”

“포위해서 한 번에 조지면 된다!”

사내들이 포위 진형을 짜기 위해 뜸을 들이는 동안, 그놈은 양떼 한 가운데 떨어진 늑대 마냥 날뛰기 시작했다. 여자들과 아이들을 시식이라도 하는 것처럼 한 입씩 물고 버렸던 놈이 사내들의 포위진형을 보자 행동을 바꿨다. 이제까지 비교적 점잖게 시식을 하던 놈이 흉포함을 표출했다.

“꺄아아악”

“도망쳐!”

“끄아아악! 살려...”

끔찍했다. 고작 한 마리, 근육질 한 마리가 달려들자 3명이 순식간에 찢어졌다. 말 그대로 찢겼다. 머리가 뽑히면서 척수까지 같이 뽑혀졌고 도망가면서 엎어져 비척거리던 아줌마는 양팔이 뽑히고 허리가 반으로 접혔다.

아줌마 아들로 보이던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던 남학생은 반 토막이 나면서 내장이 쏟아졌다. 불과 10초? 20초 정도에 벌어진 일이다.

뒤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나자, 여자들과 학생들은 더 악착같이 달렸지만 괴물의 달리기는 엄청났다. 100m에 9~10초 정도 되는 속도로 순식간에 한 사람을 잡아 머리를 터뜨려 버린 뒤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기 시작하는 놈이었다.

“씨발 저거 이상한데?”

몇 사람이 다시 슬금슬금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하나다!”

“100명이서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면 어떻게 살아!”

“지금 도망치면 다시 기회가 없다!”

“벌써 다가왔다. 도망치면 뒤를 잡힌다.”

“한대라도 때려!”

“너 도망치는 놈 너 얼굴 확인했어!”

“이 다음에 기어 나오면 내 손에 죽는다.”

“더러운 새끼들 기어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기만 해봐!”

도망치는 사람들 뒤로 사내들의 폭언이 쏟아졌다. 그 순간에도 근육질의 괴인은 여자 다섯을 순식간에 찢어 죽였다. 5명을 찢어 죽이는데 걸린 시간은 30초 아니 20초도 걸리지 않았다.

식인종인지 좀비인지 비척비척 걷는다든지 뛴다고 하더라도 사람과 비슷한 육체능력을 가진 시체였는데, 저건 아니었다. 직접 봤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비정상적인 완력이었다. 산채로 사람의 양팔을 뽑거나 반 토막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최소한 성인남자의 4~5배? 아니 6배는 되는 힘이라고 봐야 했다. 단순하지만 빠르고 강하다. 이성이 없다면 당장 잡힌 먹이를 먹느라 도망가는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아야 하는데 저 놈은 사냥을 했다. 분명히 사냥한 것이다.

둔기와 날붙이로 무장한 남자들이 90명에 가까웠지만 근육질 괴물 하나를 이길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

‘전부 죽는다.’

닫았던 창문을 열고 도망치라고 소리 지르려는 순간. 사내들이 먼저 움직였다.

“방패 앞으로!”

“견제해. 창 창으로 찔러!”

“우신 엄마! 죽어어어어어!!!”

막 도망치던 여자들 가운데 부인이 있었는지, 한 사내가 망치를 들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여자의 머리통을 잡아 뽑은 놈은 달려드는 사내를 힐끗 보더니 씨익- 웃었다. 좋아진 시력은 분명히 그 놈이 웃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웃었다.’

그 놈은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으아아아 죽어어어어엇!”

휘둘러지는 망치를 가볍게 피한 놈이 달려든 사내의 가슴에 손을 박아 넣었다. 쿠확!하고 등판을 뚫고 나온 손. 부들부들 떠는 시체를 감흥 없이 바닥에 던져버린 놈이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토끼들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냈다.

“한 번에 쳐!”

“죽어랏! 괴물!”

90명이 한 번에 공격할 수 있을까? 없었다 한 번에 공격할 수 있는 숫자는 많아야 10명 남짓이었다. 그리고 그 놈은 잔인하고 단호하게 숫자를 줄였다. 처음 희생자가 가슴이 뚫렸을 때부터 뒷부분에 있던 사람들은 슬금슬금 도망치고 있었다.

차륜전을 하기 위해서라도 빠진 자리를 재빨리 다음 사람이 채워야 했는데 10여명 죽고 나자 나머지는 그저 그 놈이 자기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허공에 무기를 휘두르고 있을 뿐이었다.

“으아아악!”

“으억!”

놈이 작심하고 죽이려고 한다면 1초에 두 명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놈은 최대한 잔혹하게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지 시간을 끄는 경향이 있었다. 그걸 노려 한 사람이 죽는 동안 다른 사람이 악착같이 달려들었다면 피해를 입힐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생각할 경황이 없어 보였다.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의 팔이 뜯기고 머리가 터지고 가슴과 배가 뚫려 창자가 나오는 상황이 벌어지자 전부 패닉에 빠져버렸다. 방금 전에 20여 마리의 좀비들을 처리했던 자신감은 어디로 녹아버리고 그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안 돼.”

“살려줘!”

“죽기 싫어!”

몇 사람이 등을 돌리고 도망치는 것을 시작으로 진형이 무너졌다. 그리고 등을 보인 토끼들은 더 이상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 놈은 도망치는 사람들을 하나씩 순식간에 잡아 죽였다. 90여명이 있던 자리는 순식간에 40여구가 넘는 시체들로 변했다. 시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맙소사.’

목이 물리고 팔이 물렸던 여자들과 학생들이 몸을 일으켜 찢어진 시체를 파먹고 있었다.

시체를 파먹던 희생자들 근처로 도망치는 사내들은 되살아난 여자들 학생들에 의해 고기조각으로 변했다.

‘좀비라더니 정말 좀비였나?’

의식을 잃었던 동안 무슨 일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아파트 단지 공터는 아비규환이었다. 살아남은 남자들은 무기를 내팽개치고 본래 있던 아파트 현관을 열려고 달려갔고 먼저 도망친 자들은 현관을 수동으로 조작해 문을 잠갔다.

“문열어!”

“문열라고 개새끼야!”

“1402호 너 씨발 놈아 문 안 열어?”

“으아아악!”

괴물이 따라 들어올 것이라는 공포는 문을 열라고 악을 쓰는 사람들의 절규보다 강했다. 내가 있는 동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대학생으로 보였던 녀석들이 두 명이 시작부터 도망치더니 문을 잠근 것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자기 집과 부인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도망쳐야 했다. 그리고 도망치는 사람들 뒤로 되살아난 자들이 추격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시체가 늘어났고 또 그만큼 순식간에 좀비들도 늘어났다. 고작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근육질의 놈은 자기가 해체한 고깃덩어리를 가지고 어디론가 떠났다. 이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놈이 강화유리문으로 된 아파트 중앙 현관을 부수고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놈은 시체 몇을 챙겨 자리를 옮겼다. 여기저기서 먼저 도망쳐 중앙현관을 잠근 남자들에게 달려드는 여자들이 있었다.

“이 악마들. 우식이 아빠가!”

“당신들만 살면 다야?”

“왜 문을 안 열었어? 왜?”

“이런 씨발!”

“개년들이. 어디다 대고.”

짝!

“끼약!”

“죽여라 죽여!”

“아이고 재식아!”

아들을 잃고 오열하는 할머니 어린 자식을 두고 죽은 남편을 애타게 부르던 젊은 부인들은 먼저 도망친 자들에게 구타를 당했다. 도망쳤다는 감정 그 더러운 감정을 씻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은 여자들을 모질게 대했다.

따지고 보면 처음 20여 마리의 좀비인지 변이체들을 죽인 것이 용했던 것이다. 냉병기로 쉽게 죽일 수 있는 놈들이었다면 군대나 경찰이 충분히 제압했을 것이다. 전기가 끊기고 수도와 가스가 끊기는 상황에서 통신까지 차단됐다.

이 말은 국가의 행정능력이 마비됐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행정력이 마비될 정도의 사태가 벌어졌다는 소리는 뭔가 쉽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반증이었다. 처음 죽인 놈들처럼 죽일 수 있는 놈들이었다면 상황이 이지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야 했다.

굶주림과 조바심 그리고 작은 승리로 인한 자신감이 냉정한 판단을 막은 것이었다.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었다. 만용의 결과 눈치가 빠른 자들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사실 다른 사람을 괴물의 먹이로 던져주고 자기만 살아남는데 주력한 자들이었다.

‘후- 앞으로 엉망이 되겠군.’

얻은 정보를 정리했다.

1) 국가권력이 붕괴됐다.

-군대, 경찰과 같은 공권력이 없다.

2) 인간보다 월등하게 강한 괴물이 있다.

-괴물에게 물려 비교적 온전하게 죽은 시체는 되살아난다. (물리는 것 조심)

-일종의 좀비

3) 좀비들은 먹지 못하면 느려진다.

-처음 20여 마리도 며칠 굶자 느려졌다.

-강한 괴물이 먹지 못해 약해진 것이었다면?

아니면 사람을 먹음으로 더 강해진다면?

상황은 좋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도망쳐야 하나?’

이 많은 식료품을 가지고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주차장까지 나가는 거야 문제없었지만 이미 밖에는 되살아난 자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이제 막 먹이를 먹은 놈들이라 달리기도 빠르고 악력도 강할 것이다.

국산 자동차의 내수용 철판이라는 특성상 좀비들의 악력을 견디기는 힘들어 보였다. 나가려고 생각하면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나간다고 하더라도 기회를 잘 잡아야 했다.

*

며칠이 지나자 역시 예상대로 전개가 됐다. 여러 동에서는 악을 쓰는 사람들의 소리가 더 커졌다. 이전에는 먹고 힘을 내서 좀비를 몰아내려는 세력이 기득권을 잡았다면 지금은 도망쳐서 살아남은 자들이 기득권을 장악한 것이다.

문을 열려는 자들과 문을 잠그고 저항하는 자들로 나눠진 형국이었다. 식량과 물은 곧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봄 가뭄과 겹쳐진 상황이라 빗물도 없었고 비가 내린다고 하더라도 중국발 중금속 황사로 인해 마시기 힘든 물이었다.

마신다고 하면 마실수야 있겠지만 현대인의 몸은 생각보다 유약했다. 마시고 탈이라로 난다면? 지금처럼 의료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는 배탈도 치명적인 탈수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니 생수나 정수된 물은 굉장히 중요했다.

빼앗는 자도 빼앗기는 자도 모두 절박한 상황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안전한 거주 공간은 이제 없었다. 좀비들에게서는 안전했을지 모르지만 인간에게서는 안전하지 못한 것이 아파트였다.

화르르르륵-

남편을 잃은 한 여자가 같이 죽자고 불을 질렀다. 스프링클러가 작동됐다면 금방 진화가 됐겠지만 물이 없는 지금 한 집에서 피어오른 불길은 순식간에 번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불이 양옆으로는 번지지 않고 위로만 번졌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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