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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1)

며칠이 지나자 다른 동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와장창-거실 유리가 터지면서 식탁의자가 밖으로 떨어졌다. 배회하던 놈들이 떨어진 식탁 의자 아래로 모여들었다. 소리 없이 모여든 그것들은 멍하니 위를 올려다봤다. 유리창이 깨져서 인지 안에서 내지르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죽고 싶어 왜 빨리 안 열어!”

“이거 괜찮게 생겼는데?”

“사람 살려!”

“안 돼요.”

“그만해요.”

“전부 다 가져가도 되니까 그만 놔줘요!”

“제발!”

식량이 떨어질 때가 됐다. 4주가 지나 5주였다. 물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면 물이 떨어진 집도 제법 있을 것이다. 식량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동에서는 벌써부터 식량과 물 때문에 아귀다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가정은 맞벌이 가정이었다. 예전처럼 반찬을 쌓아두고 먹는 집은 많지 않았다. 쌓아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거의 대부분 일주일에서 열흘 치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쌀도 그랬다. 예전에는 40kg 가마가 일반적이었다면 요즘은 20kg나 그보다 더 적은 10kg, 5kg크기를 사먹는 경우도 허다했다.

외식을 자주하고 배달음식을 사먹고 인근 마트와 편의점에서 언제든지 먹을 걸사고 인터넷으로 주문해 택배를 받았던 세계가 무너졌다. 이 모든 것이 끝나버린 세상에서 한 달 넘게 먹을 식료품을 가진 가정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은 대충 먹고 점심은 회사나 학교에서 먹고 저녁은 외식을 하거나 치킨에 맥주를 먹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데 먹을거리가 얼마나 있겠는가? 있다고 한들 집에서 삼시 세끼를 먹어대면 순식간에 동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먹을 게 떨어진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그냥 굶을 까 아니면 먹을 걸 찾아 움직일까?

싸움은 피할 수 없었다. 예부터 배고픔은 투쟁의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곳도 곧 사람들이 밀어닥칠 것이 분명했다.

언제 사람들이 몰려와서 식량을 내놓으라고 할 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신경이 예민해졌다.

‘안 뺏겨.’

무기가 필요했다. 5kg짜리 아령에 진공청소기 가운데 파이프를 테이프로 묶어 망치처럼 만들었다. 중간에 빠지지 않게 철사로 엮었지만 휘두를 때 마다 흔들거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만들고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식인종을 잡기 위해 무기를 만든 게 아니라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 무기를 만든 꼴이었다. 식인종(?)보다 사람이 더 껄끄럽게 느껴지다니 저절로 욕이 나왔다.

“젠장.”

욕을 하면서도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주섬주섬 모을 수밖에 없었다. 2kg짜리 망치도 있었다. 붕붕 휘둘러봤지만 아무래도 리치가 너무 짧았다. 끈이라도 있으면 좋았겠지만 아파트 생활하는데 빨랫줄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내가 있는 동을 제외하고는 다른 동에서는 부서지고 싸우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소리에 반응하던 식인종들도 점차 반응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식인종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우선 물이었다. 어떤 생명체든 물을 마셔야 살았다. 식인종이라고 하더라도 며칠 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 배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말 좀비 같은 건가?’

빨리 달리던 모습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떠올려 보면 전혀 좀비 같지 않았다. 꾀죄죄한 모습을 제외하면 일반인으로 보일 정도로 멀쩡해 보였다. 외양으로 일반인과 식인종을 구별하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고립된 지 6주가 지났을 무렵 건장한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20명은 족히 될 법한 숫자였다. 사내들은 전부 장롱 문짝을 잘라 만든 방패를 들고 망치나 야구 방망이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공포를 이기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머리를 때려!”

“물리지 마라!”

“손톱에 긁히지 않게 조심해!”

“좀비라고 생각해.”

“거기 구경하지 말고 전부 나와!”

“겁쟁이들 같으니!”

“여기 좀비들 처리하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고 병신들아!”

사내들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몇 명이 창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것이 보였다. 아래 배회하는 식인종들은 모두 20마리 정도? 지금 내려간 사내들만으로도 1:1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내들의 외침에 반응했는지 아니면 굶어 죽는다는 협박에 반응했는지 모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20여명의 사내들이 손에 둔기를 들고 합류했다. 나중에 나온 사내들은 부분 갑옷 같은 것을 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페트병을 잘라 겹쳐서 만든 갑옷이었다. 보기에는 어설퍼 보였지만 훌륭한 방어구였다. 페트병을 잘라서 부분 갑옷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대단했다.

“야. 김상철이 살아있었네?”

“박광석이 너도.”

아는 사람이 있었는지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들렸다.

“좀비들 힘이 충분히 빠졌지?”

“달려들지 못하는 것 보면 알지.”

“가까이 가면 갑자기 달려들 테니까 포위해서 치자고.”

두 세력이 하나로 뭉치자 거의 40명에 가까웠다. 식인종들은 20여 마리 이제 2:1이었다. 식인종들을 처리하는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두 세력의 우두머리(?)들은 익숙하게 식인종들을 처리했다.

식인종들은 처음과 달랐다. 두 사내가 말했던 것처럼 굶은 기간이 오래됐기 때문인지 순발력이 사라진 상태였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식인종들은 말 그대로 샌드백이나 마찬가지였다.

퍽-퍽!

“조심해!”

“야 뒤로 빠져.”

“에이 형님~ 금방...”

“설레발이 치지 말고”

“어어어 이게!”

신나게 두들겨 패며 알짱거리던 한 명이 끌려 들어가자 몽둥이를 손에서 놨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옷이 찢기고 순식간에 그것들에게 둘러 싸였다.

“병신 새끼! 굴러!”

“엎드리라고 새끼야!”

“어? 아아악!”

몸을 숙이고 굴러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그것들은 한 번 잡은 사내를 결코 놓지 않았다. 느려졌어도 완력은 그대로인지 사내의 팔이 기형적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으아아아악 살려...”

콰직!

팔이 뜯겨지고 이윽고 머리가 통째로 뽑혀나갔다.

“씨발 전부 달려들어!”

“먹고 피 채우기 전에 죽여!”

두 사람이 망치와 소방도끼를 휘두르며 독려를 했지만 사지가 찢긴 사내가 먹히는 것이 더 빨랐다. 20여구의 식인종들 가운데 제대로 움직이는 것은 고작 5마리였지만 사내의 피와 살은 먹은 4마리는 순식간에 순발력을 회복했다.

“전부 둘러 싸!”

“방패로 막아!”

“놓치지 마!”

40대 4는 확실히 압도적이었다. 순발력과 완력이 있다고 하지만 이쪽은 숫자와 무장이 좋았다. 순식간에 2 마리의 사지가 꺾였고 나머지 2 마리도 두들겨 맞기 시작했다.

사내들은 승리의 흥분과 피를 본 것이 겹쳐 더 맹렬하게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그것들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끼에에에에에

끄래래래래래

고막이 떨어질 것 같은 소리. 인간이 내는 소리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한 소리였다. 그 기괴한 소리를 듣는 것과 동시에 가슴에 돌덩어리라도 내리 누른 것처럼 갑갑해졌다. 피해야 한다. 밖의 소리를 듣기 위해 열어놨던 창문을 닫고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내 불길한 느낌을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승리의 흥분에 취한 사내들이 최후의 일격을 그것들에게 먹였다.

뻐억!

소리와 함께 사지가 꺾여 꿈틀거리는 그것들의 머리통이 산산조각이 났다.

“아 씨발 것들.”

“전부 처리 한 건가?”

“근처에 돌아다니는 건 없었지?”

“전부 어디론가 가더라고.”

“그래?”

“마트부터 가자고!”

40명의 사내들이 한 마디씩 하며 마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내들의 승리가 확정되자 몇 몇 아파트 창에서는 사람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났다.

“아빠 최고!”

“그래 엄마랑 같이 내려와!”

“차는? 차로 실어 오는 게 낫지 않겠어?”

“지하 주차장에 그놈들이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야.”

승리한 40인의 사내들은 일부러 그러는지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자축했다. 안전하다고 생각됐는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내려왔다. 나중에 내려온 사람들에게 사내들이 으르렁 거렸다.

“쥐새끼처럼 숨어있다 이제 기어 나와?”

“우리가 목숨 걸고 싸울 때는 뭐하고 있다가?”

“꺼져!”

40명의 무장한 사내들이 나중에 온 사람들을 윽박질렀다. 마트로 간다는 말을 듣고 허겁지겁 내려온 사람들은 사내들에게 애원했다.

“먹지 못해서 힘이 없었습니다.”

“부인이 아파서.”

“웃기지 마.”

“닥쳐! 비겁한 새끼들.”

“우리가 아니었으면 굶어 죽었을 거 아니야? 앙?”

사내들이 둔기를 들고 겁박을 하자 나중에 내려온 자들도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식칼을 마포자루에 묶어 만든 창을 든 사람이 고함을 지르자 그에 동조한 사람들이 화답하듯 외쳤다.

“그래서? 마트가 너희 거냐? 너희 거야!”

“무슨 권리로 너희들이 마트를 차지한다는 거야!”

“이 새끼들이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이런 용기로 싸우지?”

“식칼 들고 악쓸 힘은 있고 나와서 싸울 힘은 없어?”

사람들이 서로 다투는 동안 아줌마들과 학생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마트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남자들끼리 서로 견제하고 있는 동안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트 마감세일에 반응하는 것처럼 아줌마들을 시작으로 하나 둘씩 사람들이 마트로 향했다.

“거기 멈춰!”

“누가 마음대로 가래?”

"거기 아줌마들 멈추라고!"

자기 부인에게 멈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한 남자가 고함을 버럭 질렀다.

“뭐야? 누구한테 명령이야 마트가 당신들 거야!”

"어디서 뭐하고 있다 기어 나와 엉?"

"뭐하고 있긴 누가 나서라고 했나?"

“다 같이 살아야지!"

"그래서 꼴 랑 좀비 몇 마리 때려잡고 유세야?”

“흥- 마트가 너희들 거냐?”

“빌어먹을 새끼들이!”

“우리가 싸울 때는 뭐하고 있다 이제서 지랄이야!”

두 세력이 정말 피를 볼 것처럼 달라붙는 순간 마트 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끼아아아악!

으아아아앗!

인근 좀비가 전부 소탕됐다고 생각해 먼저 간 아줌마들과 철없는 학생들의 비명소리였다.

살충제를 피하는 바퀴처럼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이었다. 서로 대치하고 있던 거의 100여명에 달하는 사내들 가운데 벌써 몇 명은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씨발 새끼들 이번에도 도망치는 새끼들은 사람 새끼도 아니다!”

“몇 놈인지 모르지만 지금 다시 기어 들어가면 굶어죽지 않겠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굶어죽는 것보다는 낫지!”

먼저 내려왔던 사람들의 독기어린 말에도 불구하고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슬금슬금 뒤로 빠졌다. 젊은 사람도 있었고 중년이 넘는 사람도 보였다. 그래도 남은 사람들은 90명에 육박했다.

“다들 영화 봤죠? 방패가 막고 창이 찌르고!”

“도끼나 망치 같은 둔기 든 사람들은 한 번에 풀스윙으로 머리를 깹니다.”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사내들은 진형을 만들었다.

“좀비들은 이성이 없습니다. 본능만 있는 놈들이에요.”

“악력이 강하니까 휘두르고 붙잡히지 않도록 바로 빼면 됩니다.”

“어차피 이기지 못하면 굶어죽습니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요!”

한마디씩 고함지르듯 외치며 사기를 북돋우기 시작했다. 전의가 불태우며 싸울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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