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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DUST-5화 (5/261)

감염A (2)

지금은 밤이었다. 게다가 방 안에는 미약한 달빛만 있었다. 이렇게 어두운 방구석에 쌓아둔 박스에서 양초를 아무런 불편 없이 찾고 있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언제부터?

의식하지 않았지만 화장실에 들어가서 샤워를 했을 때도 불편하지 않았다.

‘어떻게... 왜? 볼 수 있지?’

정전이었다. 깜깜해서 볼 수 없어야 했다.

백번 양보해서 거실에 있던 것들은 달빛 때문에 볼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었다. 손에 들려있는 햄 깡통에 적혀있는 글씨가 보였다. 팸팸이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보였다. 난시가 있고 시력도 좋지 않아 안경을 끼고 다녔던 내가 이 어둠속에서 글씨를 읽을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

날이 밝는 것과 동시에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했다. 꼭 8일만에 나 혼자 사람들이 사라진 세계로 떨어진 것만 같았다.

‘8일 만에 사람들이 숨게 만들었다?’

그렇게 밖에 달리 생각할 것이 없었다. 밤에 촛불을 켰던 가구가 몇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있음에도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는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집안에서 언제까지고 농성을 할 수는 없었다.

멀리 단지 밖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불이 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소방차 소리도 경찰차나 구급차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절했던 사이 세상이 변해버린 것이다.

*

우선은 몸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 중요했다. 8일 동안 앓고 난 뒤, 앓았던 것이 꿈이라도 되는 것처럼 건강이 좋아졌다. 당장 쇠라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꾹 참고 보호식을 했다. 이틀 동안 스프와 죽을 먹으면서 속을 달랬다.

어제 저녁 가스가 끊기더니 오늘 아침에는 수도가 끊겼다. 언제부터 정전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수도와 가스가 전기보다 더 오래 공급된 것은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물을 담아두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3월 초이기 때문에 보일러 동파의 문제는 없었다. 날이 쌀쌀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춥게 느껴질 날씨는 아니었다. 꽃 샘 추위가 며칠 있겠지만 사는데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급하게 사람들을 찾는다든지 아니면 사건에 휘말려 죽을 고비를 넘기거나 죽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난 그럴 마음이 없었다. 이곳에서 영원히 있을 수는 없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싶은 호기심,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지극히 사회적인 욕구와 안전을 위해서는 이렇게 혼자 있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충돌했다.

물도 아껴서 마시면 몇 달은 마실 수 있었고 식량은 혼자 먹으면 1년도 넘게 먹을 분량이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떨어질 것이다. 결국에는 물도 식량도 떨어질 것이고 떨어진 뒤에 움직이는 것은 멍청한 생각이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 겨울이 닥치기 전 노숙을 할 수 있을 때 움직이는 것이 좋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돌아다닐 필요는 없지.”

정신을 차린 지 이틀 밖에 되지 않았다. 천천히 체력부터 제대로 갖추고 움직여도 늦지 않았다. 현재 상황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창밖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자연스러웠다. 봄기운이 살살 감도는 햇살.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줄다리기를 했다.

'확인부터.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확인부터.'

불길한 예감이 봄날의 싱그러움을 내리 눌렀다.

밖으로 나가려고만 하면 가슴이 벌렁벌렁했다. 불안하고 약을 잘못 먹은 것처럼 입이 바싹 말랐다. 꼭 밖으로 나갈 필요는 없었다. 정보를 얻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계엄이 선포가 되어 사람들이 집밖으로 다니지 않는 건지. 기절했던 시간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야 대응을 할 수 있었다.

아파트 단지 한 가운데 있는 동이었기 때문에 다른 곳이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거실에서 보이는 곳은 멀리 있는 다른 단지였다. 안방 쪽으로는 야트막한 산에 가로 막혀 있었다. 야트막하다고 하지만 산은 산이었다. 건너편이 보이지 않았다.

군부대가 출동했는지 출동했다면 왜 했는지 이대로 집에 언제까지 있어야 할지 궁금한 것이 많았다.

-띵동

“계세요?”

정보를 얻기 제일 좋은 방법은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에게 묻는 방법이었다. 내 경우는 바로 옆집이었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옆집에서는 소리가 없었다. 옆집에는 신혼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집을 보러 왔을 때 옆집 부부와 인사를 했던 것이 떠올랐다. 떠오르는 그녀의 얼굴, 고개를 흔들어 떠오르는 그녀의 모습을 재빨리 지워버렸다.

“쯧- 아무도 없나?”

위층이나 아래층으로 가봐야 하나 싶어 비상계단으로 향하는 문을 열려고 했다. 그 순간 보이는 불빛 엘리베이터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화물용 엘리베이터는 불이 나가있었다. 하지만 일반 엘리베이터는 불이 들어와 있었다. 어떻게? 분명히 정전인데 엘리베이터가 작동하고 있다고?

아파트를 얻었을 때가 떠올랐다. 에너지 절약기술이라고 했었나? 태양광 발전기가 옥상마다 설치되어 있어 공공전기를 태양광발전으로 일부 충당한다는 설명이 떠올랐다. 집으로 들어가 아파트 단지 안내서를 꺼내들었다.

‘있다.’

태양광패널에 의해 충전된 전력으로 엘리베이터와 지하주차장, 가로등과 경비실 cctv같은 것들을 작동시킨다고 나와 있었다. 정전사태로 인한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 보일러에 공급되는 전기도 정전사태가 발생하면 전기가 별도로 공급된다는 설명이었다. 냉장고를 살릴 수 있었다.

보일러실에서 전선을 따서 냉장고에 연결했다. 위잉-하는 모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냉장고가 작동됐다. 곧바로 노트북을 가져와 전원을 연결했다. 혹시나 기대했지만 인터넷이 잡히지 않았다.

‘뭐 어쩔 수 없지.’

컴퓨터가 돌아가 저장해둔 동영상으로 심심함을 때울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몸은 완전히 회복됐다. 의식을 잃기 전에는 평균적으로 망가진 몸이었다. 잦은 회식과 불규칙한 야식으로 망가졌던 몸이 군대를 갓 제대했을 때처럼 건강하고 탄력 있는 몸으로 변했다.

‘아팠는데 결과적으로는 심을 본 건가?’

단식 다이어트가 있다고 하더니 그것보다 더 좋았다. 단점은 먹는 양이 조금 많아졌고 상대적으로 소변이나 대변의 양은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 마치 음식물 속에 있는 양분을 쥐어짜 흡수하는 느낌이었다.

변종 감기가 보고된 것은 토요일이었다. 2월 22일에 처음으로 감기로 입원하는 환자들이 많아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리고 이상한 사람들이 생긴 것은 24일 월요일이었다.

월요일에 정신을 잃었다가 화재경보기의 경보음 때문에 잠시 의식을 차렸던 것이 27일 목요일. 다시 4일간 정신을 잃었다가 의식을 회복한 것이 3월 4일 토요일이었다. 지금은 3월 18일이었다. 첫 확산 이후로 따지자면 벌써 4주가 지났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조금씩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대부분 마트가 있는 곳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가정집에 먹을 수 있는 식료품은 얼마나 될까? 2~3주 정도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것도 전기와 가스 수도가 끊기면 쌀로 뭘 해먹기도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

나처럼 보일러실에서 전기를 따와 전기를 쓰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모른다면 생쌀을 물 없이 씹어야 할 상황이었다.

*

안 방 창문을 전부 신문지로 붙여 버렸다. 빛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안쪽에서 밖으로 볼 때 내 모습이 밖에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신문지를 붙이고 있는데, 틈사이로 사람이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배낭을 메고 있는 남자였다. 뭘 많이 넣었는지 불룩한 배낭 양 옆에 달려 있는 것은 2리터짜리 생수병이었다. 척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지고 사내는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사람 살려!”

사람 살리라는 고함 소리가 아파트 단지를 울렸다. 예상했던 대로 아파트 단지에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몇 명은 창문을 열고 반응했다. 사내도 그들의 시선을 확인했는지 재빨리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 사람이 있는 동으로 내달렸다.

“사람 살려!”

그 뒤를 일련의 사람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뭔가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비명소리도 내지 않았고 멈추라고 소리 지르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사내를 향해 소리 없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하나 둘씩 창문들 닫기 시작했다.

도망치던 사내가 다급하게 아직 열려있는 곳을 보고 외쳤다.

"도와주세요. 여기 문 좀 열어줘요."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던 사람이 재빨리 창문을 닫아 버렸다.

“문 열어! 문 좀 열어줘요!”

"사람살려! 씨발 문 열라고!"

필사적으로 정문 현관의 강화유리문을 두들겼지만 뒤따라오는 자들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여기까지 잡히지 않고 온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씨발 새끼들아!!! 사람 살려!”

사내는 다시 그 옆으로 도망쳤다. 옆도 마찬가지였다. 사내가 달려오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창문을 닫아버리는 사람들이었다. 창문 틈으로 보이는 광경은 마치 지하주차장에서 봤던 광경과 흡사했다. 죽어가는 사람과 그걸 구경하는 사람들.

빙글빙글 돌던 사내가 결국 잡히고 말았다. 배낭을 버렸으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건만 사내는 끝까지 배낭을 버리지 않았다.

'병신 같이.'

“사람 살려.. 아아아아악!”

사내의 절규가 아파트 단지를 흔들었다. 그 처절한 몸부림도 의미없었다. 사내는 뒤따라온 사람들에게 찢겨나갔다. 으지지지직- 길게 가죽이 찢어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을 뿐이었다.

끄아아악

사내는 말 그대로 산채로 찢겨졌다. 사방으로 튀는 핏방울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 것만 같았다.

좀비? 저들은 좀비라고 보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뭐지? 사람이 사람을 산채로 잡아먹는다고? 순식간에 성인 남성 하나를 찢어 먹은 무리들이 아쉬운지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모를 그것들은 사람의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좀비는 아니었다. 어쩌면 좀비인데 좀비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 것일 수도 있었다. 어찌됐든 그들은 잠을 자지 않았고 끊임없이 배회했다.

가만히 배회하고 있는 것들을 관찰했다. 영화에서 보던 좀비들이라면 살점이 떨어져 나간 부분이 있거나 팔다리가 썩어 들어갔거나 뭔가 그런 부분이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배회하고 있는 저들은 그렇지 않았다. 전부 멀쩡했다. 사지육신이 멀쩡한 상태로 움직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누구라도 이 상황을 속 시원히 알려줬으면 싶었다.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변해도 너무 변한 세상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젠장...”

한 사람의 죽음을 보는 자들은 많았지만 그 죽음에 대해 일말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들은 없어보였다. 어쩐지 씁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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