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월요일 아침 가장 활기차야 할 시간, 세상엔 힘겨운 기침소리만 가득했다.
사무실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오는 기침소리는 억눌러진 탄성 같았다.
쿨럭쿨럭!
큭. 쿡!
입을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오는 소리.
“김대리 기침이 심한데 뜨거운 물이라도 마시지.”
“괘... 괜찮습니다.”
한 사람의 기침소리에 호응이라도 하는 것처럼 사방에서 쿨럭이는 소리가 터졌다. 한쪽에 켜진 TV에서는 기침소리 사이에 끼인 앵커의 목소리가 힘겹게 앵앵거렸다.
[외출 후에는 손을 깨끗이 씻고...]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와 어린 아이들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폐를 긁어내리듯 터지는 기침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렇게 직장인의 하루가 시작됐다.
*
“이거 장난이 아닌데?”
처음에는 김대리 한 명이 기침을 했는데,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여기저기서 기침소리와 컥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사무실 전체가 기침소리에 점령당한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그냥 단순한 기침소리였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소름이 돋았다. 사방에서 속닥거리는 기침소리를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마치 기침을 타고 무엇인가가 전파되는 느낌. 뭔가 음습한 기운이 퍼지는 것만 같았다.
‘찝찝하게.’
고개를 흔들고 기침을 간신히 멈춘 신입에게 한마디 했다.
"괜찮아요?"
"아- 팀장님 괜찮습니다."
하도 기침을 해서 기운이 빠졌는지 신입의 얼굴이 누더기처럼 늘어져 있었다.
“괜찮기는 얼굴이 썩었구먼.”
대놓고 썩었다고 할 줄은 몰랐는지 신입이 웃다가 사래가 걸린 것처럼 손으로 입을 가렸다. 신입의 손이 입을 가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단순한 기침일 뿐인데, 근처에서 기침이라도 할 참이면 나도 모르게 자리를 피하게 됐다.
"오늘 외근은..."
“큽. 쿡. 아. 죄송합니다. 팀장님. 콜록. 카아악...”
“물 좀 마시고 쉬어요. 외근은 다른 사람을 알아 볼 테니.”
빨리 떨어지고 싶었다. 불쾌한 느낌을 넘어 전신을 개미가 갉아먹는 기분이었다. 자리를 피하려는 순간 여직원하나가 서류철을 가져왔다.
“콜록 여기 이번 거래처 납... 큣! 서류...”
하얀 손이 입을 틀어막고 기침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손가락 사이로 침이 새 나왔다. 속절없이 흘러버린 침 때문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신입여직원이 안절부절 못했다.
옆에 있던 티슈 상자를 내밀자, 여직원이 티슈를 하나 뽑다 말고 기침을 했다. 길게 늘어지는 투명한 타액에 흰 티슈가 녹기 시작했다. 여직원의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침. 나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한 것을 보곤 여직원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큣!”
후다닥 화장실을 향해 달려가는 여직원의 뒷모습이 귀엽다고 느껴질 법도 했지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소름이 돋을 뿐이었다.
"큼- 이거."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아니었는지 멋쩍은 기분에 혼잣말을 하고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여직원이 건네준 서류철이 꼭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 같은 느낌이었다. 엄지와 검지로 끝을 조심스럽게 잡고 책상에 내려놓았다. 서류철 여기저기 미세하게 튄 침방울이 지뢰처럼 붙어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싶지만 가슴이 답답한 것이 산소호흡기라도 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 오늘은 외근이다!’
불길하고 갑갑한 느낌에 외근을 돈다고 하고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주차장으로 나왔다. 밖으로 벗어나면 좀 좋아질 것 같았는데 세상이 감옥으로 변한 것처럼 꽉 막힌 기분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래.”
알 수 없는 기분에 인상을 쓰고 주차된 차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차를 이따위로 주차... 콜록... 이런 씨... 콜록!
“어린놈의 색키이취-가!”
기침소리와 함께 욕설을 하자 발음이 뭉개졌다. 저 정도로 심하게 기침이 나온다면 싸울 정신도 없을 텐데, 두 사람을 투견처럼 엉겨 붙기 시작했다.
“컥! 콜록 잡았어? 칵!”
“캬아아악 퉷! 그래 잡았다!”
“지금 잡은 거지? 잡았지?”
“귓구멍이 막혀엇취!”
하필 회사차를 주차해 놓은 곳 근처였다. 기침을 하다 말고 상대방의 멱살을 틀어잡는 모습. 멱살이 잡힌 채로 상대방의 얼굴에 침이 튀도록 기침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기침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면서도 둘은 불구대천의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처럼 격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CCTV가 우두커니 그 장면을 녹화하고 있었다.
‘CCTV가 있는데 저렇게 싸워도 되나?’
멱살에서 시작한 싸움은 주먹다짐으로 변했고 곧 이종격투기를 연상시키는 난타전으로 변했다. 어지간하면 두 사람을 말렸겠지만, 내 팔에서 돋아난 소름은 두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을 거절했다.
띵동.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다른 회사 사람들이 나오면서 두 사람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구경하거나 말거다 달라붙은 두 사람의 싸움은 점점 심해졌다.
뻑!
카아아악 퉷!
피가 흘렀다. 한 사람은 얼굴이 찢어졌는지 피를 펑펑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기침을 하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많이 이상했지만 외근을 하겠다고 나온 이상 어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피가 튀는 혈전을 뒤로 하고 차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부르르릉-가벼운 엔진소리와 함께 차가 서서히 지하주차장 출구를 향해 움직였다.
엎어진 사람을 걷어차려는 모습이 슬쩍 보였지만 무시했다. 바로 옆에 10명 가까이 있는데 운전하고 있던 내가 내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설마 진짜 걷어차겠어?’
아무리 피가 머리끝에 몰렸다고 하지만 사람머리를 축구공마냥 걷어차겠는가? 이 건물에 입주한 회사들은 나름 괜찮은 회사들이었다. 군대도 갔다 왔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회사원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죽이겠다고 패지는 않을 것이다.
‘위협이겠지.’
그냥 지나치기 위해 엑셀에 발을 올리는 순간. 뻑! 소리가 들렸다. 오른쪽 차창에 핏방울이 툭 튀면서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갔다. 발에 걷어 차여 목뼈가 기형적으로 꺾인 사람이 보였다.
끈 떨어진 연처럼 풀썩 쓰러지는 모습이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보였다. 목이 완전히 뒤로 꺾인 모습. 얼굴은 완전히 피투성이가 된 상태였다. 그 공허하고 텅 빈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숨이 콱 막혔다.
‘이런 미친- 목이 부러지도록 걷어찼다고?’
사람의 목을 단 번에 부러뜨릴 정도의 각력이 가능한가? 축구 선수도 아니고 앉아서 일하던 회사원이?
엑셀에 놓여있던 발이 너무 놀라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익!
‘119. 씨발 119!’
목이 부러져 축 늘어진 사람이 피거품을 물며, 사지를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전화기 비상버튼을 눌렀다.
[통화량이 많아 연결이 되지 않고 있사...]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열자 분위기 자체가 이상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을 보는 순간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아무도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말리지 않았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사람의 목이 부러졌는데도 말리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의 손을 봤다. 스마트 폰으로 영상을 촬영하고 있었지 119 구조대에 신고하는 사람도 없었고 112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구경을 하다 낄낄거리며 기침을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저 두 사람이 다니고 있는 회사 사람들도 있을 텐데?
아무도 말리지 않고 있다고?
정신이 없었다. 멍한 마음에 서서히 차를 운전했다.
차가 현상을 벗어날 동안 목이 부러져 죽어가는 사람을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백미러가 반짝거렸다. 너무 놀라 멈춰 세운 시간이 5초는 됐을까? 차창에 핏방울이 튀면서 잠시 멈췄고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이상해 잠시 서행을 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뒤에서 따라오던 차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시 천천히 차를 몰았다. 하지만 앞에서 서행하는 게 짜증이 났는지 뒤에서 난리를 쳤다.
번쩍! 번쩍!
빵! 빵!
급기야 경적을 울리더니 급가속을 하기 시작했다.
쿠와아아아앙!
뒤에서 경적을 울리던 차가 갑자기 옆으로 튀어나왔다.
지하주차장에서 타이어 자국이 나도록 엑셀을 밟고 급가속한 것이다.
끼익! 너무 놀라 브레이크를 밟고 창문을 열었다.
상대방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더니 욕부터 했다.
“쿨럭! 야 이 **새끼야. 카아악 퉷!”
“......”
“똑바로 운전 못해! 콜록콜록!”
“......”
이게 무슨 황당한. 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운전자를 보자 운전자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이런 씨....”
쿠왕!
콰직!
옆차가 갑자기 핸들을 꺾고 엑셀을 밟아, 내가 탄 차 옆을 들이 받았다.
쿵!
끼이이이이잉!
타이어 타는 냄새와 엔진소리 마찰음이 뒤섞이며 고무 타는 냄새가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왔다. '이게 무슨 미친-' 멍하니 상대방 운전자를 쳐다보자 그 남자가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으르렁 거렸다.
“카악 퉷! 날 무시 콜록-하냐? 엉 커어억!”
“콜록!? 날 무시-퉷-하냐고!”
붉게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날 쏘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