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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중이 성호를 좋게 생각하는 이유는 철중도 사업을 하면서 사람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철중의 눈에 보통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저런 인물은 나중에 사고를 쳐도 아주 크게 친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철중이 성호를 인정한 것이다.
문제는 그 사고가 다른 말이 아니고 크게 성공한다는 말이라 문제지만 말이다.
철중은 딸인 지연이 어디서 저런 거물을 물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번에 아주 대박을 쳤다고 생각되었고, 성호만 없으면 아주 잘했다고 안아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성호도 지연의 아버지가 자신과 지연의 교제를 정식으로 허락해 주어서 솔직히 기분이 좋았지만 남자가 너무 티를 내면 지연이 또 기어오를 것을 생각하여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지만 정중하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부족한 저를 따님과 만남을 가질 수 있게 허락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호의 말에 철중은 확실히 난놈이라는 생각이 확고하게 머리에 박혀 버렸다.
하지만 지연은 아버지가 자신과의 교제를 허락했는데 저런 표정을 짓고 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기분 나빴다.
자신이 아버지에게 성호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겨우 저런 표정을 지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오빠, 나하고 사귀는 것이 별로 반갑지 않은가 봐."
지연의 갑작스런 말에 철중은 얼굴이 변했고, 성호는 그런 지연을 가만히 보았다.
"지연아, 너는 나와 만나는 것이 오락이라고 생각하고 만나는 거냐?"
성호의 물음에 지연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생각하니? 요즘은 만난 지 하루 만에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고 들었지만 나는 그런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만약에 너도 그런 사람이라면 우리 지금 좋은 얼굴로 있을 때 그만 만나도록 하자."
성호는 단호하게 지연을 보며 말하였다.
성호의 말에 철중도 놀란 얼굴을 하며 성호를 보았다,
남자라면 강단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보는 성호는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지만 지연이 조금 철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철중은 그런 지연을 보고 있었다.
지금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지연이었는데, 지연은 자신이 항상 느끼는 대로 말을 하고 자랐기에 아빠가 있는 자리라 아까의 상황을 잊고 성호에게 기분 나쁘다는 것을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바로 나온 대답이 그만 만나자는 말이니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성호가 미웠다.
"흐아앙! 나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오빠는 내 맘도 몰라주고. 흑흑흑."
갑자기 터진 지연의 울음소리에 사방에서 지연과 성호가 있는 곳을 보게 되었고, 여자를 울리는 성호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성호는 지연이 이런 곳에서 저렇게 울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저런 행동을 하니 황당하기만 했다.
성호도 놀랐지만 철중은 더 놀라고 말았다.
자신의 딸이 남자 때문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울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연아, 그만 그쳐라."
철중이 먼저 지연을 달래고 있었고, 성호는 지금 지연을 달래주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지연이는 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인데 이것을 받아주어야 하나?‘
성호가 고민하고 있을 때 지연은 울면서 성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오빠는 왜 나를 달래주지 않는 거지? 이렇게 사람들이 많으면 창피해서라도 달래주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는 건가? 아니면 관심이 없는 거야?‘
지연은 성호가 자신이 울면 사람이 많으니 달래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은 창피를 무릅쓰고 열심히 울고 있는데 그렇지 않으니 이제 그만 울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철중은 지금 지연이 하는 행동에 달래다가 그만두고는 조용히 보고만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지연을 달래려고 하였는데 성호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는 지연을 다시 보게 되었고, 지금 지연은 하나의 연극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가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지연은 더 이상 울 수가 없게 되었고, 결국 울음을 그쳤다.
아무도 말리지 않으니 도저히 창피해서 혼자 울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다 울었어?"
성호가 지연이 울음을 그치자 하는 말이다.
지연은 그런 성호에게 할 말이 잃었다.
철중은 지금 둘이 주도권을 가지고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허허허, 벌써 상대를 잡으려고 하는 거냐?‘
철중은 자신의 딸인 지연이 제법 머리를 썼지만 성호에게 완패를 당했다고 판단내렸다.
누가 보아도 이번 싸움은 성호의 승리로 보였으니 말이다.
"오빠, 어쩌면 그럴 수가 있어요?"
"내가 뭘?"
"아니, 여자가 우는데 어떻게 달래줄 생각도 하지 않고 보고만 있을 수가 있어요?"
"울어? 누가 울어? 나는 우는 여자는 보지 못했고, 연극하는 여자만 보이던데?"
성호의 대답에 지연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으드득! 오빠, 나중에 두고 봐요.‘
지연은 자기가 불리하면 존댓말을 쓰고 그렇지 않으면 편하게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성호는 이미 지연이 그렇게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지금은 지연이 불리한 상황이다.
‘크크크, 지연아, 너는 내 손바닥 안에 있으니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소용없다.‘
성호는 지연과 있으면 왠지 재미있는 일만 생길 것 같았다.
철중은 성호가 지연을 다루는 것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연에게는 미안하지만 남자가 여자에게 너무 끌려 다니는 모습도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성호는 적절하게 지연을 통제하고 있었고, 지연이 반발하고 있지만 그래도 성호의 통제 안에 있다는 사실이 철중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철중이 이런 마음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철중 스스로가 아내의 통제 속에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애처가의 표본이 아마도 철중이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그만하고 나가도록 하지."
철중이 두 사람을 보며 말하자 성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철중의 말을 따르려고 했다.
"아빠, 가기는 어디를 간다고 그러세요?"
"나도 가기 싫지만 너 때문에 가는 거다. 창피해서 말이다."
철중의 대답에 지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미안하고 창피해서다.
성호는 부녀가 하는 대화를 들으며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가 있었다.
저들은 남이 보기에는 싸우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실질적으로는 따스한 정이 넘치는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성호와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서는 성호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시선이 있었다.
바로 성호의 도움으로 방을 찾은 중국인이었다.
"거참, 대화 한번 하기가 이렇게 힘이 드는 일인 줄은 오늘 처음 알게 되었네."
자신이 중국에 있었다면 아마도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중국인은 중국에서 나름 성공한 사업가였고, 제법 탄탄한 인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 이렇게 무시를 당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여기는 타국이기 때문에 자신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평소에는 자신을 따르는 수행원들이 있었지만 오늘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 혼자 해결한다고 하여 한국에 왔다가 호텔 예약이 자신의 이름이 아닌 직원의 이름으로 예약되어 있는 바람에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성호가 도움을 주어 은혜를 입게 되었다.
성호의 중국어가 상당히 유창하여 대화나 한번 나누고 싶어 불렀지만 지금 보니 개인적인 일로 바쁜 모양이라 더 이상 초대를 하기에도 곤란한 상황이다.
"이거 수행원들과 함께 왔으면 이렇게 따분하지 않고 대화라도 나누고 있으면 되는데 말이야."
남자는 중국의 사업가로 이름이 왕 웨이난이었다.
중국에서는 그냥 왕 사장이라고 불리고 있었지만 대단한 사업 수단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왕 사장은 성호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성호가 있는 자리로 가기 위해 일어서고 있었다.
예의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유일하게 도움을 받은 인물이기에 그냥 지나치기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직성이 풀린 것 같아서 성호가 있는 곳으로 갔다.
"반갑습니다. 아까는 고맙다는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죄송합니다."
왕 사장은 중국어로 성호에게 정중하게 사과하였다.
"아닙니다. 어려운 상황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일인데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허허허, 저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왕 웨이난이라고 합니다. 그냥 편하게 왕 사장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시간이 되시면 잠시 대화를 나누었으면 하는데 어떠신지요?"
왕 사장은 성호에게 오늘 입은 은혜를 갚고 싶어서 하는 말이었다.
성호는 왕 사장이 자신에게 시간을 달라고 하는 이유가 아마도 아까의 일에 대한 보답을 해주려고 하는 것으로 보였기에 거절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왕 사장의 핸드폰이 울려 말을 하는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드드드.
"아,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여보세요?"
왕 사장이 전화를 하고 있으니 성호도 기다려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철중은 성호가 중국인과 대화를 하는 것을 보고는 유창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현지인 수준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네 혹시 중국에 있었는가?"
"아닙니다. 중국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중국어를 그렇게 잘하는가?"
"중국어는 제가 학교 다닐 때부터 배워온 것이고, 러시아에 잠시 갔을 때 만난 사람이 중국 사람이라 본격적으로 익히게 되었습니다."
성호는 철중의 관심이 조금은 부담이 되어 약간 다르게 말하였다.
하지만 철중은 성호의 말을 들으면서 러시아에서 중국인에게 배웠다는 것과 성호가 러시아에 갔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아니, 러시아에는 무슨 일로 가게 되었는가?"
"사실은 제가 러시아로 가게 된 이유는……."
성호는 철중에게 러시아로 가게 된 사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있다가 왕 사장이 통화를 마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 이거 미안합니다. 우리 직원이 지금 올라오겠다고 해서 통화가 길어졌습니다."
"나중에 제가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성호는 철중에게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하며 빠르게 왕 사장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
"아닙니다. 일을 하시는 분이니 당연하지요."
"허허허, 젊은 분이 아량이 대단이 넓으십니다."
왕 사장은 성호의 대인 같은 마음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왕 사장은 성호와 대화를 하고 싶어 잠시 자기 자리로 초대하려고 하였다.
"저기 시간이 급하지 않으시면 저와 잠시 차를 한 잔 하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왕 사장의 말에 성호는 옆에 있는 철중을 보며 물었다.
"저기… 저분이 잠시 차나 한 잔 하자고 하시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철중은 중국인과 대화를 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앞으로 자신도 중국인과 만남을 가지게 된다는 생각에 바로 허락하였다.
"나는 자네만 좋다면 상관없네."
하지만 지연은 철중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는 중국인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우리끼리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지연이 반대하자 철중은 인상을 썼다.
남자가 일을 하는데 저렇게 반대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지연아, 너는 남자가 하는 일을 그렇게 걸고 넘어가야 하냐?"
철중의 한마디에 지연은 삐친 얼굴이 되었지만 더 이상 반대하지는 않았다.
성호는 지연의 그런 모습이 아주 신선해 보였는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왕 사장님, 그럼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성호의 허락에 왕 사장은 아주 기쁜 얼굴을 하며 성호와 일행을 자신의 테이블로 안내하였다.
성호와 왕 사장이 주로 대화를 하였고, 간간이 철중이 중간에 참여하여 대화를 하고 있으니 성호는 통역을 하느라 매우 바빴다.
철중은 성호의 통역 덕분에 왕 사장이 중국에서 나름 파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는 최대한 좋은 관계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때 왕 사장의 직원이 도착하였는지 왕 사장이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직원이라는 남자는 왕 사장에게 정중하게 인사하였다.
"왕 사장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성호는 왕 사장에게 인사를 하는 직원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는데 이미 아는 남자였기에 조금 놀랐다.
직원이라는 남자도 성호를 보게 되었고, 바로 놀란 얼굴을 하며 정중하게 성호에게 인사를 하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신의님."
직원이라는 남자는 바로 화 대인의 경호원으로 있던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