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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하지마-38화 (38/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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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와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지연이었다.

    성호는 지연과 그렇게 진척이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답답한 맘에 용기를 내어 제의하였다.

    "지연 씨?"

    "예?"

    "나는 지연 씨가 마음에 드는데 우리 사귀어볼래요?"

    성호는 자신이 남자이니 먼저 사귀자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지연을 보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지연은 성호가 자신과 사귀자는 말을 하니 가슴이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저도 좋아요."

    지연은 대답을 하면서 고개를 푸욱 숙이고 말았다.

    이상하게 성호에게는 부끄러운 생각이 자꾸 들어서다.

    그렇게 두 남녀는 서로를 확인하는 관계가 될 수 있었다.

    참 힘들게 이루어지는 사이였지만 말이다.

    성호는 지연과 그 뒤로 아주 친하게 대하게 되었고, 둘은 젊은 사람이라 그런지 바로 오빠와 동생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연의 나이가 성호보다 세 살이 어려서 바로 오빠라고 하였고, 성호는 그런 지연이 마음에 들었다.

    "오빠, 그런데 진짜 한의사야?"

    "아니, 한의사가 가짜도 있어?"

    "나는 오빠가 한의사라고 해서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지."

    "하하하, 다음 달에 우리 병원 오픈하니 그때 오면 알 수 있잖아."

    지연은 성호에 대해 많은 것을 물었고, 성호에게 가족이 없다는 것도 알아냈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대목에서는 미안함에 얼굴을 들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성호에 대한 것들을 모두 알게 되어 기분은 좋았다.

    "나중에 내가 아파 병원 찾아가면 안 아프게 해줘야 해."

    "글쎄, 안 아프게 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거지?"

    성호는 딴청을 부리며 지연의 애를 태웠고, 지연도 그런 성호에게 아양을 떨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둘은 급속하게 친하게 되었고, 성호와 지연은 자연스럽게 전화번호를 주고받게 되었다.

    "매일 전화해 줘야 해?"

    "매일은 힘들고 일주일에 두 번은 할게. 나도 이제 한의사가 되어서 눈치가 보이니 말이야."

    성호의 대답에 지연은 삐치기는 했지만 성호의 말대로 이제 막 한의사가 되어 눈치를 보아야 한다는 말에는 이해하였기에 기분 좋게 성호의 말에 허락해 주었다.

    "내가 오빠가 의사라 이번만은 용서해 준다. 헤헤."

    "고맙습니다, 우리 공주님."

    지연과 성호는 그렇게 친해지게 되었고, 성호는 시간이 지나자 지연을 집까지 바래다주게 되었다.

    성호는 지금까지 여자라는 존재를 사귀어본 적이 없지만 평생을 혼자 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적당한 여자가 있으면 결혼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연을 만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연의 집은 성호의 집과는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여서 나중에 만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어서 들어가. 나중에 연락할게."

    "오빠 고마워. 잘 가고."

    "그래, 나중에 보자."

    성호는 지연과 헤어지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성호는 지연과 있을 때 진한의 전화가 왔는데 받지 않았기에 가장 먼저 진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르릉.

    "여보세요. 너 왜 전화를 안 받아?"

    "미안하다. 일이 생겨서 받을 상황이 아니었어."

    "일은 무슨 일이 있어? 지금 너 놀고 있는 것 다 알고 있는데."

    진한은 성호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것에 짜증을 내고 있었다.

    사실 진한이 오늘 전화를 한 이유는 조금 일찍 마치는 바람에 시간이 남아 술이나 한잔할까 하고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 열이 받은 것이다.

    "아이고, 미안하다, 친구야. 다음부터는 절대 그런 일 없도록 할게."

    "진짜냐?"

    "그래, 약속하마."

    "그럼 이번 한 번만 내 용서해 주마. 에헴."

    둘은 다시 만날 약속 장소를 정했다.

    "나와. 오늘은 아직 시간이 있으니 나하고 한잔하자."

    "어디로 갈까?"

    "우리 집으로 오는 길에 보면 골목에 있는 두부집으로 와라."

    "알았다. 금방 갈게."

    성호는 진한과 만나기로 하고 바로 집을 나섰다.

    진한이 이야기한 골목길을 들어서려고 하는데 한쪽으로 할머니 한 분이 몸이 불편한지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어 성호는 빠르게 달려갔다.

    "할머니, 어디가 편찮으세요?"

    성호는 할머니를 보니 몸이 아주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아구, 청년, 나 좀 부축해서 집까지만 바래다줄 수 있나?"

    할머니 걷는 것조차 힘이 드는지 성호에게 부탁했다.

    "예, 그렇게 할게요. 집이 어디세요?"

    "응, 저기로 가면 되는데……."

    할머니가 가리키는 곳으로 성호는 할머니를 부축하여 갔다.

    진한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말이다.

    성호는 할머니 집에 도착하자 안으로 모셔드리기 위해 물었다.

    "할머니, 안에 들어가려면 열쇠가 있어야 하는데요?"

    대문이 잠겨 있으니 하는 말이었다.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작은 열쇠를 꺼내 바로 대문을 열었고, 성호는 할머니를 모시고 방에까지 부축을 해주고는 바로 할머니의 맥을 잡으려고 하였다.

    "할머니, 제가 여기 사거리에서 한의원 하는데요, 우선 진맥을 한번 해볼게요. 몸이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아서요."

    할머니는 아직 정신이 있어서 성호가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듣고 있었다.

    "아이구, 의사 선생님이셨구랴."

    "예, 할머니. 손을 줘보세요."

    성호는 할머니의 맥을 잡아보았다.

    그런데 할머니의 맥은 생기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성호가 보기에 오늘 밤을 넘기기가 힘들 것 같았다.

    사람의 몸에 있는 생기가 사라지는 것은 병이 걸려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이 때문에 노환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할머니의 경우는 살 만큼 살아 이제는 약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였다.

    성호는 자신이 배운 침술과 반지의 힘으로도 죽어가는 사람은 살릴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니, 사실 알고 있지만 자신이 직접 경험을 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성호는 할머니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게 되었고, 할머니는 그런 성호를 보고 있었는데 그 눈에는 걱정 말라는 눈빛을 담고 있었다.

    "할머니, 오늘은 그냥 편안하게 누워 쉬세요."

    성호는 할머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편히 쉬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대단한 반지를 가지고 있어도 지금 할머니의 생명을 구할 수는 없으니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말이다.

    성호의 말에 할머니는 이미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는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성호에게 어서 가보라고 하였다.

    "의사 선생도 바쁠 텐데 어서 가보시구랴."

    성호는 할머니의 말에 이미 죽음에 대해서는 초월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죽음에 초월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성호는 자신도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

    고대의 성인이라면 몰라도 지금 시대의 사람은 자신의 죽음이 대해서는 아마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성호는 자신도 모르게 할머니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할머니, 좋은 꿈꾸세요."

    성호는 말을 하고는 조용히 집을 빠져나왔다.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그냥 그 자리에 있기에는 마음이 불편해서였다.

    성호는 할머니의 집을 나와 진한과 만나기로 한 곳으로 가면서 그동안 자신이 치료를 한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나는 환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정말 병을 치료하고는 있는 것일까?‘

    성호는 아직도 자신은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부족한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원을 차리고 나면 많은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하였지, 그들이 오지 못하는 사정을 생각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무언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자신은 돈을 받고 치료할 생각이 없었기에 가질 수 있는 생각일지도 몰랐다.

    처음의 생각과는 다르게 점점 자신이 편안하게 돈을 버는 방법으로 이 힘을 사용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자 성호는 머릿속에 번쩍이는 느낌이 들었다.

    ‘아, 타인을 위해 반지의 힘을 무상으로 사용하려고 하였는데 지금의 나는 그렇지가 않게 변하고 있구나.‘

    성호는 그렇게 생각이 들자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금전이라는 것이 없으면 치료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성호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돈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성호는 지금 자신이 하려고 하는 병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차피 시작한 병원이기에 그대로 유지를 하는 것은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고, 단지 병원을 관리하는 사람만 있다면 자신은 조금 더 많은 곳을 다니며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병원에만 매어 있지 말고 나는 나대로 치료를 하면서 더욱 수련에 매진하도록 하자. 아직은 내가 보기에도 많은 부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성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진한이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진한이 잔득 골이 나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야! 왜 이렇게 늦어?"

    "아이고, 울 친구 삐쳐 있네."

    "그래, 삐쳤다, 왜! 그러는 너는 나를 왜 자꾸 삐치게 하는데?"

    진한의 진짜로 삐쳤다는 말에 성호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그러지 마. 넌 그런 모습이 안 어울린다."

    성호가 웃으면서 화를 풀어주자 진한도 금방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진한이 유일하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바로 성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진짜 늦은 이유가 뭐야?"

    "응, 오다가 할머니 한 분이 몸이 불편하시다고 해서 모셔다 드리고 오느라 늦었어."

    진한은 성호의 대답에 참 오지랖도 넓다고 생각했다.

    "너는 나중에 크게 성공할 거야. 그렇게 오지랖이 넓어서 말이야."

    진한은 농담과 진담이 섞인 말을 하였다.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진한아."

    성호의 대답 또한 가관이었다.

    진한은 그런 성호의 대답에 어이가 없는 표정이 되어버렸다.

    "아유, 저게 이제는 말도 잘하고. 정말 예전의 성호가 그립다."

    "흐흐흐, 진한아, 나도 성장하고 있으니 그런 소리는 하지 마라."

    성호는 진한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술을 마시고 있었지만 마음 한쪽에는 할머니의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성호는 병원 공사에 최대한 신경을 썼고, 최대한 빠르게 오픈할 준비를 서둘렀다.

    돈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이 없었지만 문제는 하루라도 빨리 개원하여 성호가 원하는 수준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성호는 자신의 일에 집중하며 보내고, 유일하게 그 짐을 내려놓는 시간이 지연을 만나는 날이었다.

    지연은 선천적으로 활달한 성격인지 성호를 항상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지연은 서서히 성호의 가슴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지연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나서 두 사람은 수영장에 가지 않았다.

    성호는 수영장에서 만난 건달들이 생각나서 불쾌해서 그랬고, 지연은 성호와 만나고 있으니 수영에 대한 생각은 나지도 않아서였다.

    하지만 이들은 모르고 있지만 지금도 수영장에서는 성호를 기다리는 여자가 있었는데 바로 미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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