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려워 하지마-22화 (22/290)
  • 0022 / 0290 ----------------------------------------------

    .

    인천 국제공항의 입구를 빠져나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성호가 있었다.

    성호는 러시아에서 친구인 진한에게 연락을 하여 마중을 나오라고 하였기에 지금 친구가 어디에 있는지 찾고 있는 중이었다.

    성호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저쪽에서 헐레벌떡거리며 뛰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저 자식은 어째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를 않냐?"

    성호는 진한이를 발견하고는 아직도 저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한은 원래 약속을 하면 이상하게도 딱 맞추어서 나오는 것을 즐기는 인간이었다.

    친구들에게도 그래서 욕을 먹기도 했지만 고쳐지지를 않았다.

    "야, 성호야!"

    "너는 어떻게 아직도 똑딱이가 되어 있냐?"

    "아마도 죽을 때가 아니면 고쳐지지 않을 거다. 나한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마라."

    "하하하, 알았다. 자식아."

    성호는 오랜만에 보는 진한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진한이도 성호를 보니 반가운지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둘은 빠르게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진한은 성호에게 연락을 받았을 땐 깜짝 놀랐다.

    러시아에 가서는 아예 통신이 되지 않았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으니 말이다.

    "야! 이 개자식아! 나는 너 죽었는지 알았는데 왜 연락을 하고 지랄이야!"

    진한은 마음에 없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솔직히 그렇게라도 욕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아 욕을 해버렸다.

    성호는 진한에게 처음으로 심하게 욕을 들어서 그런지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듣고만 있다가 거의 끝이 나자 다시 말을 했다.

    "어이, 친구. 삐졌냐?"

    성호의 한마디에 진한은 어이가 없어졌다.

    이 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락도 하지 않던 놈이 갑자기 연락을 해서는 하는 소리가 겨우 삐졌냐라는 말이었다.

    "성호야, 너 죽고 싶지?"

    "아니, 나는 아직 살고 싶다."

    "너 어디냐?"

    "이제 한국으로 가려고 연락했다."

    진한은 이제 돌아온다는 말에 얼굴이 환해졌다.

    "언제 도착해? 내가 마중 나갈게."

    "한국 시간으로 낮 12시에 도착 예정이야."

    그렇게 둘은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고 성호는 친구인 진한이 만나게 되었다.

    진한은 아직 성호가 집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했다.

    성호도 우선은 짐도 가지고 와야 하니 오랜만에 진한네 부모님에게 인사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알았다고 했다.

    둘은 그렇게 진한의 집으로 가게 되었고 연락을 받은 어머니는 부지런히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보, 오늘 성호가 온다고 하니 일찍 들어오세요."

    "성호가? 언제 귀국했대?"

    "오늘 귀국해서 바로 여기로 오고 있대요. 그러니 늦지 않게 오세요."

    "알았어요."

    진한의 아버지는 성호가 러시아로 일을 하러 갔다는 말에 놀랍기는 했지만 젊은 놈이 스스로 살고자 고생을 하겠다는 것을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고생을 해야 인생을 알 수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달기만 한 인생은 고비를 만나게 되면 바로 쓰러지지만 쓴 맛을 아는 인생은 쉽게 포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냥 두기로 했는데 그놈이 오늘 귀국을 했다고 하니 솔직히 기쁘기만 했다.

    성호에게는 정말 대단한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허어, 이제 어떻게 변했는지가 궁금해지네."

    진한의 아버지는 성호의 변한 모습이 궁금해졌다.

    진한의 집에는 갑자기 활기를 찾았는지 매우 분주해졌다.

    어머니인 최 여사는 지금 음식을 장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머니, 저희 왔습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진한이 먼저 인사를 했고 최 여사는 아들의 인사에 고개를 돌리니 성호가 함께 있었다.

    성호는 최 여사를 보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어머니,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성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호호호, 성호는 이제 장가를 가도 되겠다. 완전히 어른이 되어 돌아왔구나. 멋있어졌다, 성호야."

    최 여사는 아들은 본 척도 하지 않고 성호만 보며 칭찬을 하고 있었다.

    "쳇! 나는 성호만 오면 완전히 찬밥이네."

    진한의 삐진 얼굴은 성호에게 미소를 주었다.

    "하하하, 너도 인마, 나처럼 잘해야 대접을 받지."

    성호가 진한에게 농담을 던지자 진한은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진한이 아는 성호는 이런 농담을 할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러시아로 가기 전에는 성호도 농담을 하지 않았지만 러시아에서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현장에 일하는 분들은 한국에서도 거칠게 살아오신 분들이라 말하는 것도 그렇고, 실제로 생활도 그리 좋은 분은 없었기에 때로는 사회를 비판하기도 하며 때로는 좋게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다.

    성호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하니 배우는 것이 많아졌고 사회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성호는 귀국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고 가려는 마음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였고, 이제는 어느 정도는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아직은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을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다.

    많은 지식은 성호의 성격을 조금 변하게 하였고, 지금처럼 전과는 다르게 활기차게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성호야, 너 정말 변했다."

    진한은 놀란 얼굴을 하며 물었다.

    "변해야지. 변하지 않으면 아마도 나는 그곳에서 죽었을지도 몰라."

    성호의 대답에 진한은 섬뜩함을 느꼈다.

    죽음을 이야기 하는 친구의 담담한 태도에 러시아에서 무슨 일을 당했다는 것을 짐작했다.

    최 여사는 이야기가 이상하게 전개가 되는 것 같아 얼른 다른 이야기로 분위기를 바꾸었다.

    "아까 아버지가 오늘은 일찍 오신다고 했으니 너희들도 어서 씻어라. 오늘은 엄마가 소주를 쏜다."

    어머니의 말에 진한은 다시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를 했다.

    "칫! 정말 나는 주워온 아들인가 봐."

    진한이 투정을 부리자 성호는 자신 때문에 일부러 저러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저 웃기만 했다.

    진한과 성호는 이 층으로 올라가서 우선 씻으려고 했는데 성호가 간단하게 샤워를 하려고 하는 바람에 진한이 기다리게 되었다.

    함께해도 되지만 이 층의 샤워실은 안이 좁아 둘이 있기에는 조금 불편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성호는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어유, 시원하다. 너도 어서 씻어라."

    "나 참, 여기 우리 집이거든."

    진한은 성호의 행동에 마치 자신이 친구의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성호가 좋은 방향으로 변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웃으면서 살자. 앞으로도 말이야.‘

    진한은 성호가 군에 입대를 할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성호는 군에 입대하기 전에 완전히 공허한 눈빛을 하며 마치 자살을 하러 가는 사람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진한은 그 당시의 성호가 떠올라 지금과 대조되어 하는 생각이었다.

    성호와 진한이 씻고 다시 밑으로 내려오니 아버지가 이미 도착해 나와 계셨다.

    "아버님, 안녕하셨어요."

    성호는 아버지를 보고 바로 인사를 하였다.

    "그래, 그동안 고생 많았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예, 저야 건강하게 있다가 돌아왔습니다."

    성호는 밝은 얼굴을 하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웃음을 보여주었다.

    성호의 미소는 아버지인 정민이 보기에도 밝아 보여 안심이 되었다.

    "자, 오늘은 성호가 왔다고 너희들 엄마가 소주를 준다고 하는구나. 오늘 함께 마셔보자."

    "예, 아버님."

    "아버지, 그런데 오늘도 주다가 마는 거는 아니지요?"

    진한은 무언가 불만이 있는지 자신의 아버지를 보며 물었다.

    "하하하, 그래, 오늘은 그런 일이 없을 거다."

    아버지의 대답에 진한은 활짝 웃음을 지었다.

    성호는 한국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분들과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어 아주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보는 분과 술을 마시니 기분이 조금 색달랐다.

    "아버님, 몸은 좀 어떠세요?"

    성호가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물었다.

    "너의 치료 덕분에 이제는 아주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구나."

    "예? 문제라니요?"

    성호는 자신의 치료에 문제가 있다는 말로 들려서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침술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갑작스런 말에 긴장을 하게 되었다.

    그런 성호의 반응에 진한의 아버지는 크게 웃었다.

    "허허허, 녀석 걱정하지 마라. 너의 치료는 성공이었다. 다만, 주변의 지인들이 나의 몸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가 정상인과 같이 건강해지니 궁금한가 보더구나. 지겹도록 괴롭히는 바람에 결국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 부분은 미안하게 되었다."

    성호는 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미안한 생각은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아마도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데 아직은 말씀이 없는 것을 보니 아직은 기다려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할 수 없지요. 주변의 지인들이니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다만 제가 걱정이 되는 것은 아직 한국에서는 자격증 없이 침술을 하게 되면 불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한의 아버지도 그 부분에 대해 알아보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은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자격증이 없으면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말인데 너, 한의사 시험을 다시 보도록 해라."

    성호는 갑자기 한의사 시험을 보라는 말에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에게 한의사가 되라고요?"

    "그래, 너 정도면 충분히 이름과 명성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자면 자격증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내가 보기에는 이번에 시험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너의 생각은 어떠냐?"

    진한의 아버지는 성호가 러시아에 가 있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셨는지 한의사를 하라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호는 당장 시험을 볼 수는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침술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당장 시험을 보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았다.

    아직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서였다.

    솔직히 한의사 시험이 그냥 학교의 시험을 보는 것처럼 간단하지는 않았기에 성호라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합격을 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내에서 치료를 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하면 화 대인의 말대로 중국에서 개원을 하여 명성을 쌓아서 한국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되면 아마도 지금과는 상당히 대접이 달라질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으로 가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만약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성호였다.

    "아버님, 당장 시험을 볼 수는 없습니다. 우선 한의사 시험에 대비하여 공부도 다시 해야 하고 하니 일단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반드시 한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은 하겠습니다. 이것은 제가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사실 이번 러시아에 가서 자격증을 따가지고 와서 자랑을 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성호는 그렇게 대답을 하고는 중국 간부인 화 대인이 준 자격증을 보여주었다.

    진한의 가족들은 성호가 보여주는 자격증을 보며 모두 놀라고 있었다.

    침술 자격증을 따는 것이 어렵다고 했는데 성호는 이렇게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중국의 침술 자격증이 국내에서 통하지는 않았다.

    다만 법적인 문제는 되지 않을 정도였다.

    돈을 받지 않고 하였을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아니면 모두 불법이니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성호야, 침술 자격증을 따느라 고생은 했지만 이 자격증이 국내에서는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느냐?"

    "예, 저도 알아보았는데 중국의 자격증이 국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국내에서는 중국의 자격증을 허용하지를 않고 있지만 다른 지역, 즉 러시아나 다른 나라에서는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에 제가 한의사가 되지 못하게 된다면 이 자격증을 이용하여 외국에서라도 개업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호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하는 말이었다.

    정민은 성호의 말을 듣고 성호가 외국에서라도 개업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너의 말대로 한국에서 허용이 안 되는 것이라면 차라리 외국에서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국내에서 할 수 있도록 한의사 시험을 보았으면 한단다. 한의사가 되기만 하면 충분히 너의 능력을 알릴 수가 있으니 말이야. 이미 너는 중국의 자격증도 있으니 한의사 시험에 합격을 하게 되면 외국과 국내에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전천후 한의사가 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