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려워 하지마-12화 (12/290)
  • 0012 / 0290 ----------------------------------------------

    .

    성호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진짜로 자기가 할 줄 아는 일은 없었기도 하고, 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였다.

    노인은 그런 성호를 보며 혀를 찼다.

    "쯔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이런 곳에 팔려 오나."

    성호는 계속되는 노인의 팔려 온다는 말에 상당히 기분이 나빴지만, 보통 외국에 일을 하러 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는지는 몰라도 이해하려고 하였다.

    "할 줄 모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기 위해 여기로 왔습니다."

    성호는 노인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자신은 그냥 팔려 온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 왔다고 말이다.

    노인도 그런 성호의 반응을 보고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호오, 자신이 재주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말인가?"

    "예, 제가 재주가 없기는 하지만 아직은 젊으니 금방 배울 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열심히 하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성호는 노인의 말에 진심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이상하게도 노인에게는 거짓을 담아 말하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그런 성호를 노인은 야릇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자네, 바쁘지 않으면 나하고 더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나?"

    성호는 자신도 아직 한가하다는 생각에 노인의 말에 바로 허락을 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저도 한가하니 말입니다."

    성호의 대답에 노인은 아주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성호가 머물고 있는 숙소는 한국인들과 러시아인들이 현장으로 가기 전에 머무는 숙소였는데 아직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 이렇게 비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숙소에는 성호와 노인이 유일한 손님이기도 했고 말이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노인은 이번 현장에 기술자로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르신은 무슨 일을 하시는 것입니까?"

    "나는 토목 일을 하고 있다네. 이번에 토목 파트를 맡게 되었지."

    토목이라고?

    성호는 노인의 말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자신은 벌목을 하기 위해 사람을 모은다고 알고 있었는데 토목을 하시는 분이 왜 이곳에 온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성호의 눈빛을 보곤 노인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바로 성호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허허. 자네는 벌목을 한다고 알고 있겠지만 벌목을 하는 사람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동시에 고용한 것이니 이상하게 생각지 말게. 현장에 공사를 하기 전에 벌목을 해주어야 공사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라네. 토목은 이번에 파이프라인을 묻기 전에 하는 일이라네. 벌목을 하면서 작은 건물은 바로 시작을 한다고 하여 온 것이니 말일세."

    성호는 노인의 말을 듣고야 이해를 하게 되었다.

    현장의 일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두 가지의 일을 동시에 한다는 말은 알아들은 것이다.

    "그러면 한국에서 건설 인력이 많이 오겠네요?"

    "그렇지. 여기에는 기술자들만 오게 될 것이네. 내가 가장 먼저 온 이유는 현장을 보기 위해서라네. 자네는 벌목을 하러 왔겠지?"

    "예, 제가 할 줄 아는 것은 없지만 힘은 있으니 그런 일이라도 해야 먹고살 수가 있거든요."

    노인은 그런 성호를 보며 무언가 생각을 하는 모습이었다.

    성호도 노인의 상념에 빠진 모습에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섰다.

    노인을 방해를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노인은 성호를 보며 물었다.

    "자네 나하고 일을 해보지는 않겠는가?"

    "예? 저는 진짜 할 줄 아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토목 일을 해요?"

    성호는 이번 공사에는 기술자만이 일을 한다고 금방 이해를 했기에 가지는 의문이었다.

    "허허허, 기술자만 가지고 어떻게 일을 하겠는가. 당연히 기술자를 보조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일을 하지. 벌목을 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더 일하기는 편할 걸세."

    노인은 성호의 인상과 말하는 태도를 보곤 자신이 데려다 기술을 가르치려는 마음에서 하는 소리였다.

    요즘 젊은 놈들은 대부분 싸가지가 없었는데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젊은 놈은 그래도 자신을 노인이라고 공경을 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어 기분이 좋아 내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성호는 모르지만 노인에게는 그만한 결정권이 있었다.

    이번 토목 파트의 모든 인원을 통제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바로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성호는 노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현재 할 줄 아는 일이라곤 힘을 쓰는 일이었지만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도 벌목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벌목은 한국에 있지도 않을 것이니 배워도 필요가 없는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노인이 말한 토목은 한국에 가서도 충분히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마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하였다.

    "감사합니다. 저에게 그런 기회를 주시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어르신."

    노인은 성호가 허락하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허허허, 기회는 자주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기회를 잡을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네. 자네는 오늘 그런 기회를 잡은 것이네."

    노인은 성호의 인사에 웃으면서 대답을 해주었다.

    기회를 잡을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은 성호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주었다.

    자신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잡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정말 저에게는 천금 같은 조언을 들었습니다, 어르신."

    성호는 작은 깨우침이지만 정말 가슴에 남는 말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무공과 반지를 얻은 것도 기회였고, 그 무공을 익히고 사용하게 된 것도 일종의 기회였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제 그 기회를 어떻게 이용할 것이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정말 오늘은 자신이 너무 귀한 말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노인은 성호가 진심으로 무언가 얻은 것 같아 보이자 왠지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허허허, 인생을 살면서 깨우침을 얻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인데 저 아이는 벌써 사는 방법을 깨우쳤구나.‘

    노인은 성호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말에 성호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래, 그러면 이제 나하고 같이 일을 한다는 말인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르신."

    "허허허, 그러면 어르신이라고 하지 말고 앞으로는 반장님이라고 부르게."

    "반장님이요?"

    성호는 아직 반장이라는 이름이 낯설기만 했다.

    현장에서 반장은 한 파트의 장이라고 할 수 있는 직책이었다.

    단지 성호가 아직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노인도 그런 성호를 보고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아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게 되면 저절로 알게 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게 될 걸세. 그리고 나하고 현장에 가려면 우선 자네가 한국에서 작성한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게 해야겠네. 건설현장에 근무하겠다고 하면 벌목공으로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바로 바꾸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지금 사람이 부족하거든. 여기 지사에 근무하는 직원에게 이야기를 하면 되니 자네는 걱정 말고 안에 가서 쉬고 있게. 내가 가서 정리를 하고 오겠네."

    성호는 반장이 왜 자신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해주는지를 몰랐지만 상대의 호의를 무시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저 감사하다는 인사만 남발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반장님."

    반장은 성호의 인사에 빙그레 미소만 짓고는 어디론가 걸어갔다.

    성호는 아직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초보라 주변을 구경한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기에 이내 다시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성호는 자신이 가지고 온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 책엔 성호가 익히고 있는 침술과 혈도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반지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진한의 아버님을 침술로 치료하고 더욱 침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성호는 틈만 나면 침술에 대한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비행기에서는 읽고 싶어도 짐이 따로 있으니 읽을 수가 없었지만 말이다.

    "책의 내용을 모두 암기는 했지만 아직도 다시 보면 신기하게 새로운 부분을 알게 되네."

    성호는 책의 내용을 모두 암기를 했는데도 다시 보면 전과는 다르게 새로운 부분이 보이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성호가 그동안 머리로만 기억하고 있던 것들이 침구학을 더욱 익히면서 새로운 영역을 향해 구축되는 중이었다.

    무엇보다도 친구의 아버지를 치료하면서 그 실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배우는 것과 경험을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고 성호는 한 번의 경험으로 인해 침술의 새로운 경지에 들어가고 있었기에 책의 내용은 같지만 달라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이 부분은 이렇게 하는 것이 좋구나, 그때 아버지에게 침술을 할 때 알았다면 그렇게 고생을 하지 않았어도 되는데."

    성호는 책 속의 내용에 완전히 매료가 되어 지금 누가 와도 알지 못할 정도로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때마침 찾아온 반장은 성호가 완전히 독서에 심취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조용히 문을 소리 나지 않게 닫아주었다.

    성호가 어느 방에 있는지 일일이 문을 열면서 확인하려고 하였는데 다행히 성호는 반장이 처음 여는 방에 독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 말을 걸기가 곤란해 보여 그대로 조용히 있도록 해주고 싶어 문을 닫아주었다.

    "허허허, 이곳에 와서도 공부를 저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니 내 자식보다 어린 친구가 대단하네."

    성호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반장에게 아주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었다.

    러시아에 와서 성호에게 왠지 행운이 따르고 있는지 좋은 일만 생겼다.

    반장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도 모른 채 성호는 책의 내용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반장과 함께 현장으로 향하고 있던 성호는 자신이 이렇게 벌목공이 아닌 현장 기술자가 되어 가는 상황이 신기하기만 했다.

    원래는 반장이 기술자가 아닌 일반 노무자로 하려고 하였는데 회사 직원이 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기술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반장이 처음 사무실에 갔을 때 직원에게 벌목공으로 온 성호를 자신이 일하는 현장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하니 무조건 반대를 하는 바람에 반장도 열이 받아버린 것이다.

    "성호는 내가 국내에 있을 때 데리고 있던 놈인데 무슨 자격이 필요한가? 이미 검증이 되어 있는 사람에게 말일세. 그런 소리 할 거면 나도 돌아갈 것이니 마음대로 하게."

    현장 반장이 기술자라고 하는데 무슨 소리가 필요하겠는가 말이다.

    반장은 화를 내며 지사의 사무실을 나가 버렸고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지사장이 반장을 찾아와서 사과를 하는 바람에 성호의 문제는 일사천리로 해결이 되어 버렸다.

    반장은 그룹에서도 인정을 하는 인물로 현장의 일개 반장이지만 현장 소장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반장이 말한 대로 성호는 현장 기술자가 되었고 직원은 어쩔 수 없이 성호를 기술자가 되게 해주고 말았다.

    본사에 보고를 해야겠지만 현장에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현장 사무실에서 올라오는 보고는 거의 처리되는 데 문제가 없었다.

    회사 직원의 문제도 아니고 일개 현장 기술자의 문제라 그리 어렵지 않게 처리가 될 수 있었다.

    차가 멈추고 반장과 성호는 내리면서 주변을 살피게 되었다.

    시베리아에서도 상당히 깊은 곳이라 주변에 도시와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시골의 분위기가 나는 그런 장소였다.

    중간 중간에 일하는 사람들이 먹고 마실 수 있는 술집이 보였고, 식당과 다른 유흥을 즐길 수 있는 가게들이 보였다.

    "여기가 현장 사무실인가?"

    반장은 운전을 한 남자를 보며 물었다.

    "예, 저기 보이는 건물이 현장 사무실입니다. 한 반장님."

    노인의 이름은 한민수였고 이런 일에 대한 경험이 상당히 오래되어 이번에 특별히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남자가 지목한 건물은 다른 곳보다는 커다란 조립식 건물이었는데 신기한 것은 원래 현장 사무실이 있는 주변으로 현장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는 현장 사무실의 주변이 모두 유흥업소만 있는 것 같았다.

    한 반장은 현장 사무실이라는 건물로 갔고 성호는 그런 반장의 뒤를 졸졸 따라가게 되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