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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하지마-3화 (3/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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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호와 진한은 중학교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이지만 신기하게도 부모님들도 서로를 아는 사이였다.

    성호의 아버님과 진한의 아버님은 바로 학교 선후배였는데, 서로의 생활 때문에 한동안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우연히 성호네가 이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다시 만나게 된 사이였다.

    "아버님은 아직 건강하시지요?"

    "그럼, 그 사람이야 아직 정정하지."

    어머니는 대답을 하면서 안타까운 눈빛을 흘리고 있었다.

    성호네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가지는 안쓰러운 감정이었다.

    성호도 그런 어머니의 눈빛에 마음이 심란했지만 이내 강하게 마음을 먹었다.

    "저기, 어머니. 제가 맡겨놓은 짐을 찾으려고 왔습니다."

    "짐이야 여기 있지만 당분간은 우리 집에서 지내는 것은 어떠니?"

    어머니는 진심으로 성호에게 하는 말이었다.

    어머니의 진심이 담긴 눈빛을 보고 성호는 마음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군대에 입대를 한 원인이 바로 자신이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였고, 이제는 정신도 차렸고 하니 더 이상은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스스로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기 때문에 진한과 진한의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면 더 이상 자신은 스스로 일을 해결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이번만큼은 모질게 마음을 먹고 온 것이다.

    짐을 먼저 가지고 가려는 이유도 진한을 보게 되면 마음이 다시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무너지면 자신은 더 이상 발전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아닙니다. 오늘은 저도 일이 있어서 짐만 가지고 가려고 합니다. 다음에 제가 조금 정리가 되면 그때 오겠습니다."

    성호가 맡겨놓은 짐은 사실 그리 많은 것이 아니었다.

    겨우 라면 박스 정도의 양이었기에 혼자서도 충분히 가지고 갈 수 있는 부피였다.

    자신에게는 이제 자신만의 터전을 마련해야 했으니 오늘은 바쁘게 움직이려고 하였다.

    성호가 가지고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작은 보금자리 정도는 마련할 정도의 자금은 남아 있었다.

    부모가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성호네가 살고 있던 전세금까지 털어 사고를 수습하게 되었고, 이후 남은 금액이 모두 천오백만 원 정도 되었다.

    성호는 이 금액을 모두 은행에 두고 군대에 입대를 하여 지금 남아 있는 돈으로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려고 하고 있었다.

    적은 돈이지만 오피스텔 정도는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라 봉천동이 아니라도 충분히 자신이 쉴 수 있는 공간은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성호야, 이제 군대를 제대했으니 당장 갈 곳도 없는 것으로 아는데 어디를 간다고 그러느냐? 차라리 우리와 함께 살도록 하자."

    "죄송합니다, 어머니."

    성호의 말에 어머니는 안타까운 눈빛만 보내고 있었다.

    아들의 친구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자식과도 같은 성호였기에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정말 짐만 가지고 그냥 가려고 하는 것이냐?"

    "예, 오늘은 짐만 가지고 갈 생각입니다. 다음에 자리를 잡으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어머님."

    진한의 어머니인 최 여사는 성호가 이번에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는 것을 성호의 눈빛을 보고 알 수가 있었다.

    당장은 잡고 싶었지만 성호가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려고 한다는 생각에 더 이상 잡을 수는 없었다.

    성호에게는 지금 당장 가족의 사랑도 필요하지만 스스로 커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휴우, 그래 알았으니 우선 진한이하고 전화는 해보도록 해라, 나는 모르지만 진한은 너의 친구이니 서로 연락은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니."

    "알겠습니다, 어머니."

    성호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외면하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눈빛이 결국 성호를 허락하게 만들었다.

    "자, 안으로 들어가자. 가서 전화도 하고 짐도 가지고 가야 하지 않겠니."

    "예, 어머니."

    두 사람은 그렇게 안으로 들어갔고 어머니는 성호에게 과일이라도 주기 위해 주방으로 가셨고, 거실에는 성호만 남아 전화를 걸고 있었다.

    따르릉―

    ‘자식, 여전히 꾸미는 걸 싫어하는군. 컬러링도 없이 이게 뭐냐.‘

    성호는 자신의 친구인 진한이 조금 구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진한은 예전부터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친구였지만 가장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진국이기도 했다.

    "여보세요?"

    "나다. 그동안 잘 지내고 있냐?"

    "어? 너 성호야?"

    "그래, 네 베프 성호. 오늘 제대했잖아. 짐 찾으러 왔다가 전화했어."

    성호의 말에 돌아온 진한의 목소리는 반가움이 잔뜩 묻어나고 있었다.

    "야! 너 어디 가지 말고 나 기다려! 최대한 빨리 들어갈게."

    진한은 성호가 집에 왔다고 하니 당연한 것처럼 빨리 온다고 했다.

    "진한아, 오늘은 미안하지만 내가 일이 있어 시간 낼 수가 없을 것 같으니까 나중에 만나자."

    "일은 무슨 일! 군소리하지 말고 기다려."

    진한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성호는 진한의 행동에 황당하기는 했지만 원래 성격이 그렇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자식이 하나도 안 변했네. 성격도 그대로고.‘

    성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진한의 어머니는 과일을 가지고 와 성호에게 하나를 찍어 권했다.

    "성호야, 여기 이것 좀 먹어봐라."

    "아닙니다. 우선 짐을 챙기고 먹겠습니다. 어머니."

    성호는 어머니의 권유를 조용히 사양하며 바로 진한의 방으로 갔다.

    군에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냥 아프기만 한 기억이라 입대하면서 진한의 방에 모두 봉인해 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 슬프고 외면하고 싶던 기억들이 모두 보고 싶은 추억으로 변해 있었다.

    방으로 가는 성호를 보는 어머니의 눈에는 안쓰러움만 가득했다.

    오랜만에 들어가는 친구의 방이었지만 예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성호는 과거의 추억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가장 행복하고 활기차게 움직이던 시기에 친구인 진한과 함께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깔끔한 거는 여전하네. 내 짐이 아직도 저기에 있으려나?"

    진한의 방은 붙박이장이 있었고 성호의 짐은 가장 안쪽에 보관이 되어 있었다.

    문을 여니 자신이 놓아두었던 그 상태 그대로 물건이 있는 것을 본 성호의 눈에는 잠시 아픔의 빛이 지나갔지만 한편으로는 아련한 빛도 보였다.

    성호의 손길에 라면 상자의 크기인 박스가 이끌려 나왔다.

    테이프로 전체를 봉인해 놓은 상자였지만 성호의 기억에는 한 가지도 봉인이 되지 않고 그대로 기억에 남아 있는 물건들이었다.

    "휴우, 이제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이것과 통장에 남아 있는 천오백만 원이 전부구나."

    성호는 가지고 있는 돈으로 우선 이 근방에 방을 얻으려고 하였다.

    봉천동은 서울대가 근처에 있어 원룸이 발달이 되어 있는 곳이었기에 그리 크지 않는 자금으로 혼자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가 있었다.

    성호도 보증금 오백에 월 삼십만 원 정도의 방을 마련하려고 하고 있었다.

    작지만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다음을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은 성호였기에 지금 가장 필요한 방을 먼저 준비하려고 하고 있었다.

    친구인 진한에게 말을 하면 이곳에서 지낼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마음이 무너지게 될 것을 염려하여 모질게 마음을 먹은 성호였다.

    아직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한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신도 성인이었고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그 누구에게도 신세를 지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을 염려하여 모질게 마음을 먹은 성호였다.

    운 좋게도 봉천동에서 원룸을 구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하는 조건의 방을 성호는 구할 수 있었고, 방도 비어 있어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 성호는 자신의 작은 방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휴우, 방은 얻었지만 이제부터가 걱정이네."

    성호는 방을 얻기는 했지만 이제부터는 생활을 하려면 고심해야 할 것들이 많아 고민이 되었다.

    가장 시급한 문제가 바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제 군대를 제대한 성호가 배운 것이라고는 한의대를 졸업하면서 배운 것들이라 당장은 성호에게 도움을 주는 것들이 아니었다.

    우웅웅―

    "여보세요."

    성호는 이번에 집을 구하면서 핸드폰을 마련하였고 전화번호를 몇몇 지인들에게 알려주었다.

    자신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는 친구들이 걱정할 것을 알고는 미리 준비를 한 것이다.

    "야! 지금 뭐하냐?"

    진한이었다.

    "이제 방 정리 마치고 쉬고 있다."

    "너도 참 대단하다. 그냥 우리 집에서 살면 될 것을, 왜 그리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네."

    "인마, 내 집하고 남의 집이 같냐."

    "너 우리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이른다. 아마도 상당히 섭섭하다고 하실걸?"

    진한의 말에 성호는 바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야, 너 절대 어머니에게는 비밀이야. 알았지."

    "크크크, 자식. 알았다. 그러니 오늘은 친구들하고 만나야겠다. 아니면 알지?"

    진한은 성호를 만나기 위해 이미 많은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였고 오늘로 만날 약속을 잡아놓은 상태였다.

    성호에게 연락을 하면서도 혹시나 이놈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마침 꼬투리를 잡은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해결이 되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성호는 진한이의 말에 마지못해 대답을 하고 있었다.

    "알았어. 어디로 가면 돼?"

    "오늘 저녁 8시에 신림동 순대골목으로 모이기로 했으니 그리로 와. 예전에 갔던 어머니 순대집 알지?"

    "알았다. 그렇게 할게."

    성호는 약속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방은 이미 정리를 마쳤지만 자신이 고민을 하고 있는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당장 내일부터는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어 고민이었다.

    알바를 하려니 돈이 그리 많지 않았고 직장을 다니려니 하류 한의대를 나와 갈 곳이라고는 한의원인데 자격증도 없는 성호는 갈 수조차 없었다. 대학 성적도 특별히 내세울 것 없으니 다른 직장 또한 매한가지리라.

    "그냥 확 노가다나 할까?"

    노가다는 그리 아는 것이 없어도 처음부터 시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신은 아직 나이도 젊고 힘도 있으니 충분히 노가다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였다.

    성호는 생각을 하다가 책상에 앉았고 바로 앞으로 책 두 권이 눈에 들어왔다.

    "흠, 이거는 군에서 이미 읽은 것이지만 황당한 것들이 많았던 건데 말이야."

    성호의 눈앞에 놓인 책은 군대에 있을 때 더덕을 캐다 발견한 그것이었다.

    이미 개괄적인 부분은 알고 있지만 아직 확실하게 정리가 되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고민을 하며 보내기엔 아직 여유가 있다 생각한 성호는 책의 내용이나 확실하게 정리해서 알아보자는 생각이 들어 무심코 컴퓨터를 켜게 되었다.

    자신이 이번에 구입한 컴퓨터는 복합기와 함께 세일을 하던 것으로 책의 내용을 스캔하여 텍스트로 보관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

    성호는 가장 먼저 책을 스캔하여 그 내용을 저장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려 하였다.

    지잉지잉―

    한참의 시간이 지나 스캔을 마쳤고 그 내용에 대한 재해석에 들어가는 성호였다.

    군에 있을 때에는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해서 대강 정리만 했지 정확하게 해석을 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천천히 확실하게 해석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서 차분하고 정확하게 하려고 하였다.

    성호가 재해석을 들어가면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이 바로 자신이 지금 끼고 있는 반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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