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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하지마-2화 (2/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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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았다. 내일 부를 테니 오늘은 수고했다.".

    "예, 내일 뵙겠습니다."

    김 병장은 그렇게 자기가 있는 소대로 갔다.

    이제 잠시만 있으면 다시 부대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중대원이 모두 부대로 복귀를 하고 나니 김 병장도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까 가지고 온 책의 내용이 궁금하기는 한데 어떻게 해석을 하지?‘

    김 병장은 혼자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행정반에 있는 컴퓨터가 생각이 났다.

    "그렇지. 컴퓨터가 있으니 인터넷이 안 되도 한문을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혼자 그렇게 생각을 하였지만 행정반은 자신이 하루 종일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그리고 자신이 설사 행정반에 있다고 해도 책의 내용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독차지해야 하는데 이것도 문제가 되었다.

    한참을 그렇게 무슨 좋은 방법이 없는지를 고민해 보아도 달리 좋은 방법이 없는 김 병장은 그냥 나중에 해석을 하기로 하고 포기를 해버렸다.

    되지도 않는 일을 가지고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에이 몰라, 그냥 넘어가자.‘

    김 병장은 그냥 속 편하게 살자고 생각하고는 바로 누워버렸다.

    몸을 누웠지만 책이 궁금해서 결국 다시 일어나게 된 김 병장은 책을 꺼내 확인을 하게 되었다.

    아직 애들이 없으니 혼자서 구경만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혹시나 자신이 모르는 보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자세히 살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진품명품에서 종종 보았던 고서들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김 병장이었다.

    "이거 아무리 보아도 오십 년이 지난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안에 있는 내용이 무언지를 알아야 읽기라도 하지. 제기랄."

    김 병장은 한의대를 졸업한 덕에 한문에 대해서는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 보고 있는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는 글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들고 있는 책의 표지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깨끗한 것이 그리 많은 세월이 지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그냥 버려, 말아?"

    김 병장은 고민이 되었다.

    책을 얻기는 했지만 자신에게는 그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내린 결론은 책의 내용이라도 알아보자는 것으로 났다.

    어차피 보름 정도밖에 남지 않은 말년에 시간을 보내기도 심심했는데 모르는 한문이나 공부하자는 생각에서였다.

    "행정보급관이 내일부터는 쉬운 일로 준다고 했으니 전역 날까지 한문 공부나 하고 나가지 뭐."

    그렇게 김 병장은 단순하게 공부나 하고 나가자는 생각에 책의 내용을 알아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다음날, 김 병장의 그런 마음이 통했는지 행정보급관의 지시는 김 병장을 놀라게 하였다.

    "말년, 너는 이제 행정반에서 서류 점검이나 하고 있어라. 어제 가지고 온 더덕 덕분인 줄 알아라."

    "예? 서류를 점검하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번 훈련이 끝나고 얼마 안 있어 전투 장비 지휘 검열이 있으니 노는 시간에 계원을 도와 서류나 점검하라는 말이다."

    행정보급관의 말에 김 병장은 마침 자신이 필요한 컴퓨터가 있는 행정반에 남아 있으라고 하니 속으로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앗싸! 웬일이냐? 행정보급관이 오늘은 아주 마음에 드는 말만 하고 있네.‘

    김 병장이 어제 한문을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행정보급관이 오늘 자신을 도와주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알겠습니다, 행정보급관님."

    김 병장은 즐거운 얼굴을 하며 행정보급관에게 대답을 하였다.

    김 병장의 그런 모습에 행정보급관이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김 병장님, 이제부터 확실한 말년을 보내게 되셨지 말입니다."

    행정반에 있는 정 상병이 김 병장을 보고 웃었다.

    "하하하, 그러게. 나도 이제야 군 생활이 조금 풀리려고 하는 것 같다. 하하하."

    김 병장의 밝은 웃음처럼 여유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제대를 하려면 두 주나 남았기에 그날부터 김 병장은 행정반에 있으면서 컴퓨터를 통해 틈틈이 책의 내용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흠, 여기 적혀 있는 글들은 모두 초서로 쓰여 있었구나. 그러니 내가 아는 글자가 없었지."

    김 병장이 무엇을 찾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열심히 컴퓨터를 하고 있는 모습에 정 상병은 조금 호기심이 들었지만 군대 고참이 하는 행동에 자신이 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조용히 보고만 있었다.

    아무리 갈참이라고 해도 조심을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반면 김 병장은 한문을 번역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지겹지가 않고 오히려 집중이 더 잘 돼서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상하네? 이 정도 하면 슬슬 지겨워져야 정상인데 말이야."

    김 병장은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하게 요즘은 집중이 잘되었고 몸도 이상하게 컨디션이 좋아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 한 권은 어느 정도 풀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한 권이 있기 때문에 김 병장은 열심히 해석을 하였다.

    김 병장이 풀어낸 한 권의 내용은 일기 형식의 글이었는데 아직 정확하게 해석을 한 것은 아닌지 중간 중간 내용이 조금 이상하게 변해 있어 김 병장도 온전한 내용을 이해하기에 애를 먹고 있었다.

    "흠, 이게 도대체 무슨 내용이야? 옛날에도 일기를 써서 이렇게 남겨두었나?"

    김 병장은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정말 맞는 것인지 몰랐지만 대충 풀이한 내용을 보면 조선시대의 사람이 남겨놓은 일기라는 점을 알 수가 있었다.

    그 내용도 조금 해괴하여 이해를 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이거 내가 쓸데없는 것을 해석한다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네."

    김 병장은 자신이 해석한 책의 내용에 대해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 병장이 해석한 두 권의 책 중에 한 권에는 저자의 가문 내력과 관련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다른 부분은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기를 사용하여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글에는 김 병장의 얼굴이 일그러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현대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김 병장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 책도 허풍이 상당히 심한 사람이 남겨둔 내용 같네?"

    김 병장은 해석을 하면서 점점 무협지와 같이 변해가는 내용에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현대에는 기를 수련하기는 하지만 건강을 위해 배우는 정도에 불과해 실제로 기를 느끼는 사람은 없다고 보아야 했다.

    김 병장 친구 중에도 기를 배우겠다던 친구가 있었지만, 결국 기를 느껴보지도 못한 채 포기하고 다른 것을 익힌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내용들이 황당한 허구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하물며 한의학을 익히며 기에 대하여 배운 자신이지만 확인된 내용만 두고 봤을 때 터무니없는 점이 많았다.

    "이거 누가 쓴 것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거짓말을 진짜인 것처럼 써놓았네."

    김 병장이 읽고 있는 내용은 마치 사실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아주 묘사가 잘되어 있었기 때문에 깜빡하면 넘어갈 수가 있을 정도였다.

    김 병장은 책의 내용을 알아갈수록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거를 그냥 버려야 하는지, 아니면 계속해서 해석을 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한참의 고민 끝에 끝내 김 병장이 내린 결론은 계속 해석을 해나가는 것으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어차피 자신은 말년이라 할 일도 없기 때문에 이런 거라도 해서 시간을 때워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이 한문을 해석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집중도가 상당히 올라간 것을 인정해서기도 했다.

    "에라, 하자, 해. 내가 언제 이렇게 공부를 해보겠냐. 이번에 한문이라도 확실히 배우고 나가면 도움이 되겠지."

    김 병장은 편하게 생각하기로 하고 더욱 열심히 해석하기 시작했다.

    김 병장이 이렇게 해석을 하게 된 이유는 한문을 배우는 재미도 있었지만 비록 허구일지라도 내용이 제법 재미가 있어서였다.

    그리고 이상하게 책을 해석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자신의 집중도가 높아져서 더욱 책의 해석을 그만둘 수가 없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똑똑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김 병장도 그런 사람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에 해석을 하고 있게 되었다.

    김 병장의 이런 행동을 며칠 동안 보았던 정 상병은 김 병장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보고 있었다.

    ‘저거 아무리 말년이라지만 이제는 별 지랄을 다하고 있네.‘

    정 상병은 김 병장이 한문을 해석하는 것을 알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김 병장이 정상인처럼 보이지가 않기에 가진 생각이었다.

    그런 정 상병의 눈빛을 모르는 김 병장은 더욱 열심히 해석에 매달렸고 마침내 책의 내용에 대해서 큰 맥락들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야호! 이제 다했다."

    김 병장은 해석을 마치자 만세를 부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 이렇게 했으면 얼마나 좋아."

    입대하기 전에 공부를 이 정도로 열심히 했으면 아마도 한의사 국가고시를 통과하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비록 완전한 해석은 아니었지만 대강 책의 내용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게 된 김 병장은 다른 사람들이 책을 볼 수 없도록 관리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해석한 책의 내용을 보면 정말 황당한 것들이 많았기에 말년이 나가서 먹고살 생각은 하지 않고 애들처럼 무협지나 보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일단 책은 제대하는 날까지는 잘 관리를 하자. 누가 보면 내용이 신기하다고 가지고 가면 나만 손해니 말이야."

    해석을 마친 책과 내용을 토대로 조금씩 몸을 움직여 보는 김 병장의 말년은 조금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면이 생겼지만, 그런 김 병장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대원들은 아무도 없었다.

    갈참에게 신경을 쓰는 군인은 없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김 병장이 제대를 하는 날이 되자 부대의 앞에는 김 병장을 전송하는 부대원들이 모여 있었다.

    "김 병장님, 잘 사십시오."

    "나중에 나가면 소주나 한잔 사주십시오."

    "그래, 잘들 있어라. 나중에 휴가를 나오면 연락해라."

    김 병장은 부대원들과 인사를 하고 바로 제대 신고를 하기 위해 가고 있었다.

    이제 가서 신고만 하면 자신은 사회의 일원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상봉동 터미널이 있는 곳에는 전역 마크를 단 예비군들이 대거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이들은 김성호 병장의 동기들이었다.

    "드디어 사회로 돌아왔다아!"

    "유후후― 민간인이다! 이제 다 끝났어!"

    "헛소리 말고 우리 소주나 한잔하고 헤어지자."

    동기들은 저마다 한 소리 하면서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이제 제대를 했으니 이들이 서로 만나게 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군대의 동기들은 군에 있는 동안은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지만 제대를 하면 사회의 일원이 되기 때문에 이전만큼 상호 유대감을 가지기는 힘들었다.

    김성호도 동기들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리 헤어지는 것이 섭섭하기는 해도 각자 해야 할 일들이 있을 테니 여기서 그만 헤어지자."

    성호의 말에 동기들도 인정을 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지 않은 동기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 어차피 갈 사람은 가고 남아 있을 사람은 남아서 한잔하면 되지."

    "그래, 그게 딱이네. 갈 사람은 인사하고 그만 흩어지자."

    동기들의 말에 성호도 아쉬움을 두고 군 동기들과 헤어지기로 했다.

    당장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도 있었고,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나는 일이 있어 먼저 가볼게. 나중에 연락할게."

    "그래, 성호도 바쁘면 나중에 연락하자."

    동기들과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성호는 예전에 자신이 살았던 동네를 향해 버스를 탔다.

    성호가 살던 곳은 서울의 관악구 봉천동이었다.

    비록 산동네에 속한다는 곳이었지만 가족들의 그리움이 남아 있던 장소였기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그곳에 가보려고 하였다.

    자신은 이제 고아였다.

    앞으로 홀로 이 세상을 살아야 했지만 가족들과의 추억을 버리면서까지 독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짐을 가지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성호가 군에 가면서 가장 친한 친구의 집에 짐을 보관하였기에 지금 그 짐을 찾으려고 가는 중이었다.

    성호의 가족은 부모님과 여동생이 전부였다.

    성호가 입대하기 전 여행을 간다고 하여 떠났는데 그만 교통사고로 인하여 모두 죽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하여 성호가 고통을 잊기 위하여 선택한 곳이 바로 군대였다.

    군대의 생활은 성호에게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많은 성장을 하게 해주어서 지금은 사고 당시와 다르게 방황을 하지 않고 아픔을 조금씩 잊고 살 수가 있게 되었다.

    딩동, 딩동.

    단독 주택의 대문에는 성호가 벨을 누르고 있었다.

    "누구세요?"

    "예, 진한이 친구 성호라고 합니다."

    "응? 진짜 성호냐?"

    "예, 어머니 저 성호 맞습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초인종의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친구의 어머니 목소리가 맞았기에 성호는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지잉!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성호는 문이 열리자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모습에 조금은 감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어서 와. 오늘 제대한 거니?"

    성호가 감격을 하고 있는 동안 친구의 어머니는 나와서 성호를 보며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예, 어머니. 오늘 제대했습니다. 진한이는 안에 있습니까?"

    "진한이는 지금 없지만 저녁에는 들어올 거다. 우선 안으로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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