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편
<-- 최후 결전 -->
웃고 있다.
제 모든 것이던 `악의 심장`이 파괴되는 중이고, 자신 또한 죽어가는 와중에 루시퍼는 웃고 있다.
뭘까. 상식적으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설마 루시퍼가 자포자기라도 한 걸까. 실성이라도 해서 웃고 있는 걸까 싶었지만, 놈의 웃음은 아무리 봐도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뭐랄까.
마치 기다리던 때가 왔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놈은 대천사들에 의해 오염된 마력을 담아두던 그릇 `심장`이 박살 났고, 더불어 팔다리까지 잘려나가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운 상태다.
오염된 마력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면 모를까.
[ 의형살상 - 일점(一点) ]
.
다만.
나는 `죽음`을 끌어모았다. 루시퍼가 짓고 있는 웃음의 의미는 알 수 없으니 왠지 모를 불안감 때문에라도 놈을 완전히 죽여야 할 것 같았다. 대천사들이야 놈의 `심장`이 파괴되었고 곧 죽을 상태까지 만들어두었으니 이참에 루시퍼의 오만한 성격까지 완전히 부숴보고자 일부러 살려둔 것 같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확실하게 놈을 죽이는 게 좋았다.
퉁-
그래서 가차 없이 `죽음`으로 만든 거대한 화살을 날려보냈다. 아무런 힘조차 발휘할 수 없는 상태의 루시퍼라면, 이 화살을 맞는 즉시 소멸당해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파삭-
"..막혀?"
막혔다.
밀도 높은 `죽음`으로 만들어낸 화살이. 아무런 힘조차 쓸 수 없는 루시퍼의 눈앞에서 막혀버렸다.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당황했다. 살아 숨 쉬는 게 고작인 놈에게 `죽음`이 막혔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아니 솔직히 내가 뭘 잘못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뭐에 막힌 걸까.
이유를 알 수 없어 당황한 순간 나는 더욱 충격적인 상황을 마주했다.
우우우우우우웅-
분명 `심장`이란 그릇이 완전히 파괴된 루시퍼의 몸에서 거대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던 것이다. 그것도, 본래 가지고 있던 오염된 마력이 아닌 언데드 팔라딘 크리스나 언데드 프리스트 셀이 사용하는 `그릇된 신성력`이었다.
"어떻게?"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의문에 답해준 건 `그릇된 신성력`을 퍼뜨리고 있던 루시퍼였다.
[ 어리석도다! 어리석어! 내게 두 개의 권능이 있다는 건 몰랐을 것이다. 큭큭 이것이 신의 자리를 탐낸 자의 힘이다! ]
[ `오만의 대장군 루시퍼`가 `두 번째 권능 - 신의 자리를 탐내던 오만한 천사`를 발동합니다. ]
[ `오만의 대장군 루시퍼`가 `자기희생주문`을 발동합니다. ]
"아."
나는 급히 출력된 메시지를 보며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본디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제나 성기사들은 그 신성력을 자신의 영혼을 매개체로 하여 순간 증폭시킬 수 있다. 이를 `자기희생주문` 혹은 `세크리파이스`라 부르며 정말 어찌하지 못할 강력한 상대를 자리 떼길 하기 위해 이 주문을 발동시키곤 한다.
이 힘의 최종형태가 `성녀의 기도`. 인간의 몸으로 신의 권속을 부르는 힘.
지금 루시퍼는 그 힘을 발동한 것이다.
``그릇된 신성력`은 신성력이 변질된 형태. 이 주문을 발동시키기엔 충분하다. 거기에 놈의 고유 권능이 더해져 이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게다가 누구도 알지 못했던 '두 번째 권능'까지 이어졌으니... 만약 애초에 대천사들이 놈의 오만한 성격을 고치겠다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죽였다면 이러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지만. 아무리 2개의 권능이 있었다고 한들.
그러나 천사들은 신의 자리를 탐낸 천사의 힘을 무시했고, 이미 끝냈다고 생각하고 살려둔 것이 문제였다.
[ 클클클 어리석은 천사들이여. 나는 죽되 다시 태어날 것이다. ]
`죽여야 한다!`
나는 그릇된 신성력으로 휩싸인 루시퍼를 보며 모든 힘을 동원했다.
천사들의 실수로 인해 살아남은 루시퍼가 무슨 짓을 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더욱이 루시퍼를 막아야 할 천사들은 `악의 심장`을 파괴하기 위해 모든 힘을 집중한 상태고, 플레이어들은 이제야 막 루시퍼의 기운에 반응한 상태였다.
이 순간.
찰나의 틈 안에 놈을 막을 수 있는 건 내가 유일했다.
[ 의형살상 ]
우우우웅-
나는 되는대로 `죽음`을 끌어모아 그대로 날려보냈다. 응용 기술 따위는 사용하지도 못했다. 그저 최대한 빠르게 공격해 루시퍼가 무슨 짓을 하기 전에 막고자 했다.
파삭-
파삭-
물론.
내 공격은 녀석의 근처에 닿지도 못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의지를 모아 사용해서 하는 기술을 워낙 다급하게 펼친 것도 있었지만, 루시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그릇된 신성력`의 수준이 상상 이상이었던 것도 있었다.
[ 찬양하고 경배하라!! 신(神)의 좌에 도전할 새로운 나를!! ]
후우우우웅-
"막아!!"
막아야 하는데.
막지 못했다. 제 영혼을 대가로 바친 루시퍼의 힘은 나 혼자서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반 사제가 사용해서 본래 사용하는 힘의 서너 배를 끌어낸 힘이다. 그런 힘을 대장군, 그것도 악마왕의 영향으로 더욱 원래보다 2배 이상 강해진 대장군 루시퍼가 발동한 기술이다.
이를 나 혼자서 막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다.
그래서 다급하게 플레이어들과 불사의 군단을 움직였지만.
끝내.
[ `오만의 대장군 루시퍼`가 `악마왕의 제물`을 발동합니다. ]
마지 못했다.
[ 강력한 제물로 인해 `악마왕 바알`이 탄생합니다. ]
[ `악마왕 바알`이 오랜 시간의 봉인을 깨고 현신합니다. ]
[ 남은 시간 : 60초 ]
"이런 미친.."
결국.
깨어나 버렸다.
루시퍼가 마지막 제물이 되어.
[ 이게 무슨 일인가! ]
[ 놈이 깨어나려 하고 있소! ]
[ 어찌 이런 일이!! ]
가장 당황한 건 `악의 심장`을 파괴하고 있던 세 명의 대천사였다.
오염된 마력으로 겹겹이 쌓여있던 `악의 심장`은 대천사들이라고 한들 단숨에 파괴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래도 거의 반 이상 파괴해가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3분 안에 완전히 파괴될 대상이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알까. 이 모든 게 자신들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걸.
[ 이대로 둘 수는 없소이다. ]
[ 신의 어린 양들이 위험할 것이요! ]
그나마 천사장 플리엘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고, 곧 탄생할 악마왕의 힘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 자 가진 권능을 발휘했다. 이미 탄생을 시작한 이상 그것을 막을 수는 없으니, 탄생하더라도 본래의 힘을 내지 못하도록.
이에 우리엘과 미샤엘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 권능을 발현했다.
[ `대천사 미샤엘`이 `권능 - 대홍수의 서막`을 발동합니다. ]
[ `투천사 우리엘`이 `권능 - 승리의 노래`를 발동합니다. ]
[ `천사장 플리엘`이 `권능 - 평화의 시대`를 발동합니다. ]
이 일이 자신들의 잘못이란 건 알지 못했지만.
이대로 역소환되기 전에 최대한 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돕고자 했다.
[ 외부의 강력한 힘으로 인해 탄생 중인 `악마왕 바알`의 힘이 3% 약화됩니다. ]
[ 외부의 강력한 힘으로 인해 탄생 중인 `악마왕 바알`의 힘이 1% 약화됩니다. ]
[ 외부의 강력한 힘으로 인해 탄생 중인 `악마왕 바알`의 힘이 4% 약화됩니다. ]
[ 외부의 강력한 힘으로 인해 탄생 중... ]
[ 외부의 강력한 힘.... ]
.
.
.
다행히 효과는 있었다.
악마왕 바알의 탄생으로 꿈틀거리던 오염된 마력이 더욱 증폭되지 못하고 그대로 막혀버렸으니까. 다만 대천사들의 권능이 펼쳐진 건 고작 1분에 불과했다.
[ `물의 대천사 미샤엘`이 귀환합니다. ]
[ `승리의 투천사 우리엘`이 귀환합니다. ]
[ `평화의 천사장 플리엘`이 귀환합니다. ]
권능을 발현한 대가로 그들 또한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없었으니까.
직접 중간계의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이라면 모를까. 인간의 몸을 대가로 소환된 이들이다. 그런 천사들이 권능까지 발현했으니 이 땅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 가지를 선택했다면 한 가지는 포기해야 했다.
[ 이런..! 벌써 ]
[ 아직 돌아갈 수 없는데! ]
[ 허.. 이대로 물러간다면 인간들이….]
세 대천사는 역소환 당하는 마지막까지 권능의 발현을 멈추지 않았으나, 곧 `법칙`에 의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천계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콰직-
`악의 심장`을 깨고 수 천 년간 잠들어있던 존재가 부활했다.
[ `악마왕 바알`이 탄생했습니다. ]
[ `악의 무리`의 힘이 30% 증가합니다. ]
[ 모든 `악(惡)`한 존재들이 `상태 이상 : 광폭`에 빠져듭니다. ]
[ `모든 `악(惡)`한 존재들이 `특수 기술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을 발동합니다. ]
[ 모든 `악(惡)`한 존재들이 `악마왕 바알`을 따르기 위해 몰려듭니다. ]
한때는 신(神)이었으나 그 힘이 너무 강력해 다른 신(神)들이 두려워해 봉인한 자. 그로 인해 신(神)의 격에서 격하되어 `왕(王)`이 된 자. 모든 `악(惡)`한 것을 다루고 지배한 낮.
그를 수식하는 말들은 많으나, 종래에는 그저 `바알(Baal)`이라 불린 자.
그가 나타났다.
[ 악마왕 바알 ]
"오랜만이구나. 새로운 세상아."
후우우웅-
나는 처음 바알을 마주한 순간 압도적인 강함을 느꼈다.
분명 `악의 심장`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였고, 대천사들의 권능에 의해 탄생 직전까지 힘이 약해졌다는 걸 아는데도 이러한 압도적인 힘이라니. 그렇다면 도대체 원래의 힘은 얼마나 강력했다는 걸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미친.."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저걸 어떻게 상대해야할까. 쉽게 답이 나오질 않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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