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편
<-- 결전의 서막 -->
"물의 신전?"
"이름은 아리아라고 합니다. 회의에 참석해서 얼굴을 봤는데 꽤나 예쁘더군요. 물론 우리 다빈이가 훨씬 예쁘지만. 하하하"
주둔지에 도착한 지 하루.
드디어 기다리던 성녀가 도착했다. 어디 신전인가 했더니 물의 신전이었다. 그 이외에는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김우석이야 임시 대표를 맡았기 때문에 매일같이 회의장에 불려가긴 했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은 긴장을 다스리거나 몸을 푸는 등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난 후.
드디어 완전히 전술 정립이 끝난 듯. 플레이어들에게 전술 사항이 전달되었다.
그런데.
"별동대?"
"그렇습니다."
"...?"
뭐지 이건.
나는 내 앞에 놓인 전술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김우석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윤님은 혼자가 더 편하지 않습니까. 제가 그 점을 피력했습니다. 하하 별동대라고 해서 완전히 따로 움직이는 건 아닙니다. 마치 따로 또 같이…. 정도랄까요."
그런 의미의 별동대였나.
나는 또 뭔가 했다.
"그것뿐 아니라 네크로맨서의 경우에는 오히려 아군과 진형이 겹치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라도 따로 빼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하하 제 배려가 어떠십니까?"
이건 김우석의 말이 맞다.
이제 곧 `다섯 갈래 진격`이 시작될 텐데, 주둔지별로 대략 2만에서 3만 정도가 움직인다. 그런데 나 혼자 2~3천을 운용하니 함께 움직이다가는 괜히 진형 자체가 엉켜버릴 수 있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아군에게 아군이 아닌 적군으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빠지긴 해야 한다.
악의 무리를 치는데 언데드가 나타난다? 누구라도 언데드를 악의 무리의 한 축으로 인식하겠지. 그래서 김우석이 최대한 나를 별동대 형식으로 뺀 것 같았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그의 실력이 증명되었고, 그런 그가 자신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을 했으니 저쪽에서도 그 정도라면 상관없을 거라 생각한 것 같았다.
만약 정말 안된다 했더라도 내가 빠지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또 있습니까?"
"다름 아니라, 실제로도 성녀님을 이윤씨가 보호하게 될 겁니다."
"...?"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성녀를 본대가 아닌 내게 맡긴다고?
"현재 계획 중인 `다섯 갈래 진격`의 중점은 `성녀를 앞세운다!`입니다. 그렇기에 저흰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일명 허수아비 작전이라고 할까요? 본대에는 가짜를 세우고, 그것이 진짜인 양 지킬 겁니다. 다른 주둔지 역시 그러할 테니 이쪽도 그러리라 생각하겠죠."
이유는 알겠다.
작전은 나쁘지 않다. 게다가 누가 성녀를 네크로맨서에게 맡기겠는가. 이런 점을 고려해본다면 확실히 먹힐 테지. 그런데 이 작전을 사령부에서 인정해줬다고? 내가 의아한 건 이 부분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녀다. 이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성녀를 이제 막 합류한 지 이틀밖에 안 된 내게 맡긴다니. 아무리 실력 증명을 했다고 한들. 그리고 그것이 최상의 전술이라고 한들.
"그래서 내가 왔소."
"...?"
의문으로 가득한 순간.
누군가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찰랑거리는 붉은 머리. 짙은 붉은 색 눈동자의 여기사였다.
"다칸 자작이라 하오."
어울리지 않는 하오체를 쓰며 손을 내미는 여기사.
일단은 손을 맞잡고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다칸 자작이 뒤로 물러서니, 김우석이 다가와 여기사에 관해 설명했다.
"아크 후작님의 따님이라고 하시더군요. 또한, 신 대륙군에서 가장 강한 기사 중의 하나이며 성녀 호위단의 단장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이윤님과 함께 성녀님을 보호하실 분입니다. 저쪽에서도 최상의 전술을 구사하되 믿을 만한 사람이 그래도 하나쯤은 딸려있어야 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저희가 신탁이든 뭐든 해서 무조건적인 도움을 준다지만, 그건 저희 입장이니 이렇게라도 믿을 구석을 두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설명을 들으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설명이 끝났다면 이제 내가 말하겠소."
김우석이 짧은 설명을 끝으로 뒤로 물러나니, 다시 다가온 다칸 자작이 뭐라 할 틈도 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
뭐지 이 상황은.
의아한 눈빛으로 다칸 자작을 바라보니 그녀가 아예 검을 내게 겨누며 말했다.
"사령부에서는 작전이 효율적이라 받아들였소. 그러나 이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당신의 능력이오. 그렇기에 내가 왔소. 당신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만약 당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면 이 작전은 기각될 것이오."
아.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쉽게 풀린다 했다. 아무리 깨어있는 지휘관이라고 한들,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말만 듣고 작전을 펼치는 게 이상하지.
나는 잠시 고민했다.
성녀 같은 귀찮은 짐 덩어리를 내가 껴안고 가는 게 추후 득이 될지, 독이 될지.
"좋습니다."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성녀를 안고 가는 건 내게 있어서 득인 것 같았다. 공헌도. 마지막 전투니 뭐니 해도 결국 퀘스트. 이 퀘스트의 끝에는 보상이 있을 터.
이 세계에서 벗어나고 나면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다.
행성침공이라는 외계인들의 공격이 시작되는데, 그에 대한 대비를 하기 위해서 어쨌든 가능하다면 최고의 보상을 받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귀찮지만 다칸 자작의 결투를 받아들였다.
더불어.
할거라면 확실하게.
"콜."
"시작하겠-!!"
스윽-
[ 멈춰라. ]
[ 죽고 싶지 않으면. ]
[ 한 걸음을 떼는 순간 네놈의 머리통에 구멍을 내주지. ]
[ 찌른다. ]
.
.
.
결투를 시작하고 다칸 자작이 움직이려던 순간.
이미 결투는 끝이었다. 그녀가 검을 쥐며 발을 떼기도 전에 이미 목 앞으로 검이 두 개, 등 뒤는 도끼가, 복부는 창으로, 눈앞은 화살이 시위에 걸려있었으니까.
그뿐인가.
두 개의 지팡이는 마력을 피워올렸고, 거대한 골렘은 우악스러운 손으로 압사시킬 준비를 했다. 그림자는 발목을 붙잡고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 모든 게 다칸 자작이 발을 떼려 했던 순간 이루어진 결과였다.
"어…. 어떻게.."
다칸 자작은 심히 당황한 듯, 동공이 떨리고 있다.
신 대륙군 의 최강자 중 하나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있을 터. 그런 자신이 느끼지도 못한 사이에 이미 끝나버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 것이다.
나는 일부러 죽음의 기운을 흩뿌렸다.
김우석이 회의장에서 그러했듯. 완전히 각인시키기 위해.
"됐습니까?"
이 모든 게 겹쳐지니, 약간은 얼이 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다칸 자작.
"예..예…. 됐습니다."
어느새 그녀의 말투도 존대가 되어있었다.
그녀의 반응이 이러하니, 앞으로 퀘스트를 진행하는 내내 최소한 1군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렇게 했는데도 뻗대는 놈이 있으면…. 뭐 어쩔 수 없지. 난 그렇게 인성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
"하하하 그럼 제 작전을 실행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그리 하겠습니다."
언데드들을 되돌리고, 김우석이 분위기 쇄신을 위해 나선 뒤에야 간신히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끄덕인 다칸 자작이 김우석과 함께 돌아갔다. 김우석에게도 존댓말을 쓰는 걸 보니 김우석 또한 이런 과정을 거친 것 같았다.
상황은 잘 마무리되었고, 다칸 자작이 나에 대해 어떻게 피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날 회의장으로 와달라는 말에 안으로 들어가니, 첫날과 달리 다들 나를 경외감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 가장 아크 후작마저도 내게 하오체를 사용했다. 생각보다 다칸 자작이 가지는 위치가 높았나 보다.
어쨌든. 빈자리에 앉아 간단하게 작전 설명을 듣고 나자. 누군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사령관님. 모셔왔습니다."
머랭 남작과 순백의 사제복을 걸친 여인이었다.
이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누가 봐도 `나 성녀요` 말을 하고 있는 여인이었다.
"잘 오셨소. 이쪽으로."
성녀 후보가 아니라 진짜 성녀이기 때문일까. 아크 후작도 극진한 대우를 해주며 성녀를 상석으로 불렀다. 어쩌다 보니 성녀와 마주 보는 자리가 되었는데 눈이 마주 지차 성녀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사라스님의 종. 아리아라고 합니다. 이윤님."
나를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인데.
내 이름을 정확히 알고…. 아. 미래 예지인가. 하이네스도 단편적이지만 미래를 볼 수 있었지. 마녀가 되면서 사라진 것 같긴 한데, 성녀라면 그 능력이 더 올라갔겠지.
"서로 벌써 만난 적이 있소? 그렇다면 다행이군."
서로 간단한 통성명을 하고 회의는 끝났다.
마지막으로 허수아비 역할의 성녀 대행은 어떻게 할지에 대해 들었는데, 그 부분은 성녀의 피를 이용한다고 했다. 성녀의 피를 여사제에게 묻혀 성녀로 보이게끔 한다는 데 그게 잘 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렇게 작전회의가 마무리되었고, 이틀 뒤. 마침내 결전의 서막이 올랐다.
신 대륙군 1군 병사들은 물론, 마지막 퀘스트란 생각에 플레이어들마저 긴장한 상태로 출정식을 가졌고 드디어 `다섯 갈래 진격`이 시작되었다.
"잘해보자."
"네! 헤헤"
"후우.. 후. 준비 다 됐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요. 아버님."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또한, 나 역시 1군이 완전히 눈앞에서 사라진 후.
완전 무장을 끝내고 출진을 시작했다. 나와 일라이네들, 성녀 아리아와 다칸 자착이 포함된 불사의 군단 출진이었다.
[ 출진(出振)!! ]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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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그거 아세요?
요즘 아주 쬐끔이지만 분량이 늘었다는거.
아무도 모르는 게 함정이지만 허허허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