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편
<-- 의지란 무엇이지? -->
불완전한 죽음의 주인.
겨우 `죽음`의 인정을 받아 오른 자리다.
`죽음`을 내 의지하에 두면서 올라온 자리다. 그런데, `의지 싸움`에서 패배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죽음`을 담은 힘을.
"다시 한 번."
우우우웅-
조금 전은 대비조차 하지 못했기에 당했을 뿐.
이번에야말로 공격을 성공시킨다. 평범한 상태의 일대일도 아니고, 팔 한 짝이 날아간 녀석이다. 허수에 가까운 숫자라 할지라도 수천이 노리는 난전의 중심에 선 녀석이다.
그런 와중에 펼친 의지 싸움에서 졌다.
안 된다. 이건 다른 걸 다 떠나서 내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죽음`을 제 마음대로 다루지 못하는 죽음의 주인이란. 허울뿐인 이름이다.
"데스 스피어."
담담한 척.
머릿속에 강한 이미지를 떠올리며 새로운 창을 만들어본다. 그리고 그 끝에 날카롭게 다듬은 `죽음`의 창날을 이어붙인다. 그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 이젠 `실전 같은 훈련`이 아니라 `진짜 실전`이다.
솔로 디펜스 무한대전에서 했던 훈련이 무용지물이 아니란 걸 증명할 시간이다.
우우우웅-
내 `의지`를 가득 담은 창이 부르르 떨며 나에게 공명(共鳴)한다.
"죽인다."
강하게 잡아당겼다가 던진다.
후우우우우웅-
더욱 강하게 집중한 덕분인지.
조금 전보다 훨씬 빠르게 날아가는 죽음의 창.
마력을 유도해 맞부딪쳐오는 검은 구체를 교묘히 피해가며 사인드리의 심장을 노린 순간.
[ `어둠의 마도사 사인드리`가 `의지의 힘`을 발동합니다. ]
[ 서로의 `의지`가 부딪칩니다. ]
[ `의지 싸움`에서 패배할 경우, 대상의 지배권을 잃어버립니다. ]
그래도 한 번 겪어봤다고.
`기술 - 실전 감각`의 영향인지, 내 의지를 파고드는 이 느낌이 낯설지 않았다.
`느껴진다.`
덕분에 정확히 느껴진다.
어떤 방식으로 싸움을 걸어오는지. 보통 복싱을 하면 `인파이팅`과 `아웃복싱`으로 나눠듯이 `의지 싸움`에도 방식이 존재했다. 이를테면 베히모스는 `아웃복싱`. 바깥에서부터 살살 말을 걸며 안쪽으로 들어와 어느 순간 치명타를 먹이고 지배권을 가져간다. 반면 사인드리는 `인파이팅`. 우악스럽게 다가와 단숨에 내 의지를 밀어내고 대상의 지배권을 강탈해버린다.
그래서 또다시.
`...!`
빼앗겼다.
이번에는 대비까지 했건만.
[ `의지 싸움`에서 패배했습니다. ]
파삭-
허무하게 `죽음의 창`을 빼앗겼다.
빼앗긴 죽음의 창은 막 다가가던 언데드 워리어의 가슴에 박혀 들어가며 그대로 소멸시켰다.
"어째서?"
어째서일까.
이번만큼은 분명하게 나 역시 `의지`를 담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번에는 문제조차 알 수 없었다. 베히모스와의 일전에서야 정령과의 계약을 통해 `끈`을 느낀 적이 있었고 그것이 의지 싸움에서 승리할 발판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이번엔 이유도 모르고, 방법도 모르니.
도저히 감이 안 잡힌다.
고작 알아낸 게 어떤 방식으로 의지 싸움을 시도하는지 뿐이라니.
"다시."
그래서 다시 죽음의 창을 준비했다.
어쩔 수 없었다.
뭔가를 알아내려면 도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후우우웅-
[ `의지 싸움`에서 패배했습니다. ]
후우우웅-
[ `의지 싸움`에서 패배했습니다. ]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네 번이 되고. 네 번은 열 번을 넘어 스무 번에 이르렀다.
"후우..후.."
머리가 지끈거린다.
`죽음`을 다루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죽음`에게 인정을 받았다 한들.
그것을 다루고 운용하는 건 다른 일이니까. 숨이 점점 거칠어지고 집중이 풀리는 느낌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대로. 악화된 건 나 하나뿐이었다. 사인드리는 `분노의 씨앗`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니 점점 강해지고 있는 느낌인데 난 여전히 제자리걸음.
한쪽 팔의 타격이 제법 컸는지, 그나마 승기는 계속해서 붙들고 있었지만.
이 또한 언제 빼앗길지 몰랐다. 마치 나와의 `의지 싸움`처럼.
그러니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는데. 뭔가 변화가 필요한데.
"일단 피해야 하나?"
연속된 의지 싸움에서 방법도 알지 못하고 지다 보니, 활활 타오르던 오기도 점점 죽어간다.
방법을 알아야 도전이라도 할 텐데 아예 방법을 모르니, 이걸 포기하고 다른 방법으로 공략을 해야 할까 싶었다. 차라리 지금 상황에선 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나 마지막 남은 한 줌의 오기가 끝까지 내 발목을 붙잡는다.
아니.
이제 보니 이건 나 혼자만의 오기가 아니다.
-..해.
-다시.. 해.
-더 ..해.
-...알 때까지 해.
-...해야만 돼.
내 가슴 깊숙한 곳.
심장 안에 만들어 두었던 하나의 공간. 그곳에 잠들어있던 `죽음`이 내게 오기를 부리고 있었다. 이렇게 물러나면 안 된다고.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다. 나 혼자만의 오기라면 물러나겠는데.
`죽음`마저 오기를 부리니. 만약 여기서 거절하고 물러난다면 어렵사리 받았던 `인정`이 파기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파기할 게 분명했다.
〈 불완전한 〉이라는 이름이 주는 문제였다. 완전하지 않은 존재. 완전하지 못한 인정 때문에 내 멋대로 굴 수 없다. `죽음`이 인정을 무른다 한들 `불완전한 죽음의 주인`이란 이름 자체는 사라지지 않겠지만. 아마 많은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니 물러설 수 없었다.
"제기랄..."
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욕과 한숨뿐이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라. 나도 이겨보기 위해 노력했는데 안 되는걸. 이건 더 이상 노력이 아니다. 헛된 발악일 뿐. 노력과 발악은 다르다. 가능한 걸 해내고자 하는 것이 `노력`이고, 불가능한데 가능하다며 떼를 쓰는 게 `발악`이다.
나는 그 차이를 명확하게 알기에 더욱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우우우웅-
다시금 `죽음`을 불러모았다.
발악이란 걸 알지만. 포기할 수 없다면 다시 움직여야만 했다. 멈출 게 아니라면 다시 행동해야만 했다.
그때였다.
지금껏 움직이지 않고 있었던 내 심장 안의 `죽음`이 움직인 것은.
우우우웅-
"어?"
보통 내가 끌어당기는 `죽음`이란 외부에서 가져오는 `체외죽음`이다.
대기 혹은 어떤 대상이 갖고 있는 `죽음`을 강제로 끌어모아 내 의지대로 사용한다. 지금까지 이 공식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왜?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그렇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 특수 기술 - 죽음의 인정 ]
: `죽음`으로 부터 인정받은 자만이 배울 수 있는 기술. 주위의 `죽음`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으며, 대기의 `죽음`을 지배할 수 있다. 아직 능력이 미약해 반경 3m에 불과하나 이는 스스로의 노력에 따라 지배 영역이 더 넓어질 수도, 더 줄어들 수도 있다.
아마도 이 설명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대기의 죽음을 지배할 수 있다`라는 저 대목을 읽고 나서 당연하게도 `죽음`을 대기에서 끌어모았다.
`심장`안에 담긴 `죽음`을 꺼내올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인정을 받기 위해 행했던 작업이라고 생각했을 뿐.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체내 죽음`이 반응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아예 잊고 지냈다.
그런데.
"움직여?"
그것이 움직였다.
아주 미약하지만 `체외 죽음`과 합쳐져 전보다 더욱 날카롭고 단단한 창날을 만들었다.
왜일까. 지금껏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않았던 체내의 죽음이 움직인 이유가. 하지만 이유를 묻기엔 시간이 없었다. 다시금 `죽음`이 어서 공격하라는 의지를 전달했기 때문에.
그래서 날렸다.
후우우우웅-
푸욱-
"아."
내 의지와 `죽음`의 의지가 동시에 담겼기 때문일까.
불안정하다 싶은 순간, 결국 마력이 내 통제를 벗어나는 바람에 검은 구체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부딪쳤다.
파사사삭-
효과는 있었다.
거대했던 검은 구체가 단숨에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니까.
사인드리의 마력 집합체이기 때문에, 검은 구체의 타격은 사인드리 본체에도 타격으로 간다. 강제로 마력이 손실되는 것이니까. 다만 지금까지 알면서도 검은 구체를 피했던 것은 앞서 말했듯이 `죽음`을 다루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쉽다면 이미 검은 구체부터 전부 부수고 들어갔겠지.
그게 안 되니까 일부러 피하면서 본체를 노리는 데 집중했을 뿐.
"끄아아아악!!"
후우우우웅-
콰아아아!
콰과과과광!!!
검은 구체의 손실이 사인드리를 제대로 자극한 듯.
남아있던 검은 구체가 더욱 폭발적으로 쏟아져 내렸다. 안 그래도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데 이젠 아예 다가갈 수가 없다. 김우석들이 있는 1군은 안전을 위해 뒤로 물러났고 2군 역시 살짝 거리를 벌렸다.
이미 반쯤 폐허가 된 시가지를 완전히 소멸시키려는 듯.
그러나 이 모든 광경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순간 나는 오로지 `죽음`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을 뿐.
`왜?`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내 통제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려 한 이유를. 만약 내 통제에 따랐다면 조금 전 검은 구체에 부딪힐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 스스로 나선 탓에 마력이 흔들렸다.
헌데 `죽음`의 반응도 웃겼다.
우우우웅-
마치 `네가 나를 믿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말을 하듯 떨고 있었다.
이것 또한 〈 불완전한 〉 이름의 대가인 걸까.
지금 나는, 아니 지금 우리는 상당히 위험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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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