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편
<-- 드랍과 리콜 -->
나는 예전부터 게임을 하는 것보다 보는 걸 좋아했다.
특히 좋아했던 건,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었다.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시스템도 좋았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전술을 구사하는 프로게이머들의 게임을 보는 것도 좋았다.
그중 가장 좋아했던 건.
`드랍`과 `리콜`이었다.
상대의 허를 찌르고 들어가 단숨에 쓸어버리는 드랍과 리콜은 볼 때마다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물론 나는 잘 쓰지 못했다. 손도 느렸을뿐더러 게임을 보는 눈이 없었기 때문에 어디서 어떤 전술을 써야 하는지조차 잘 파악하지 못했었으니까.
나는 게임에 재능이 없었다.
그래서 보는 걸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걸 현실로 하게됐네."
어릴 적 보고 자랐던 게임의 전술을 실제로 하게 될 줄이야.
그것도 그 실제라는 게 정말 `현실`에서 펼치는 전술이 될 줄이야. 밤마다 자기 전에 이런 상상을 해보긴 했지만, 꿈은 이루어진다는 게 정말 맞는 소리였던 건가.
"와..."
"이게 고유 능력이라고?"
"공간 계열은 처음보는데 신기하네."
"빨리빨리 들어갑시다!"
.
.
.
.
무덤지기 공간 안으로 발을 들이는 플레이어들.
일부러 집이 있는 쪽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공간을 열었기 때문에 보이는 건 끝없이 펼쳐진 묘지뿐이지만, 그마저도 신기한지 주위를 둘러보며 탄성을 내지르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몇몇 여자 플레이어들은 소름이 끼친다는 듯 몸을 떨었지만, 대부분 전장을 밥 먹듯 돌아다녔던 터라 신기하다는 게 보통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들어가 가볍게 마력을 흔들었다.
우우웅-
그러자 주위를 돌아보며 시끌벅적하던 공간이 단숨에 조용해졌다. 마력 안에 담긴 `죽음`이 그들을 자극한 것이다. 이를테면 살기(殺氣)처럼. 나는 어느 정도 조용해졌다 싶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는 이곳에서 대기합니다.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만. 되도록 이곳을 벗어나지 마십시요. 임시 지휘권을 김우석씨에게 드릴 테니 알아서 잘 해주실 거라 생각하겠습니다."
"하하 믿어주시지요!"
내 말에 고개를 플레이어들과 웃으며 너스레를 떠는 김우석. 내 말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할 게 없는 공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말을 해뒀으니 자중할 것이다. `계약`에 의해 내 말을 거부할 수 없으니까.
대신 쉬라고 간단하게 음료나 다과 등을 준비해두었고, 간이 화장실도 갖춰두었다.
김우석이 있으니 알아서 잘 하리라.
이로써 플레이어들의 고질적인 문제도 해결되었겠다. 이젠 나도 움직일 때다.
"그럼 이만."
당부의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오니, 일라이네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비장한 표정. 유일하게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당장에라도 전투에 돌입할 것 같은 기세였다. 하기사 한 두 놈도 아니고 4천가량의 렙틸리언을 잡으러 가는 일이니 긴장되지 않는 게 이상할 터.
오히려 아무런 긴장도 하지 않고 있는 내가 더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우리도 가자."
"네!"
"후우…. 준비 다 됐어요."
"알겠습니다."
"예. 아버님."
[ 팬텀 캐리지 소환 ]
스르르륵-
펠리스의 대답을 끝으로 손을 가볍게 흔들자, 허공에 거대한 마법진이 생겨나더니 그 안에서 고풍스러운 마차 하나가 소환되었다.
팬텀 스티드의 상위 버전. 팬텀 캐리지. 무려 아크 리치가 마부가 되어 끌고 가는 유령 마차였다.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타시지요. ]
유령 마차를 몰고 온 아크 리치의 말이 끝나니 저절로 열리는 문.
안은 생각보다 아늑했다. 심지어 간단한 다과까지 즐길 수 있도록 찻잔과 과일이 준비되어있었다. 전쟁을 위해 떠나는 길인데 생각보다 아늑해서 전쟁보단 유람을 가는 기분이랄까.
[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
-히이이이잉
-히이잉
[ 매스 인비저빌리티 ]
나와 일라이네들이 모두 착석하자 말고삐를 당기는 아크 리치.
무려 네 마리의 팬텀 스티드가 끄는 마차라 그런지,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이 상당히 신기했다. 아직 대회담이 시작하기까진 10시간가량 남아있었기에 우린 천천히 움직였다.
회담이 시작한 뒤에 공격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빨리 가봐야 소용이 없다.
아주 천천히, 천천히 조여간다.
*
`어떻게 돼가고 있어?`
[ 이제 곧 회담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
어느덧 시간이 흘러 회담이 열리기 30분 전.
성안도(聖安島)가 보이는 상공에서 〈 Ex - 보이지 않는 손 〉을 통해 김우길을 부르니 다소 경직된 말투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미 말을 해두었지만 그래도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뭐든 신중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전체적인 상황은?`
[ 전체적인 숫자는 전에 말씀드렸던 것보다 더 늘어났습니다. 일반 렙틸리언은 대략 3천4백, 전사가 8백가량입니다. 전체숫자는 4천3백에서 4천5백 가량으로 예상됩니다. ]
더 늘었다.
생각보다 보수 성향의 렙틸리언들이 많이 움직였다.
최대치를 4천가량으로 잡아두었는데, 일반 렙틸리언이야 몇이 늘어나든 별 상관없지만 렙틸리언 전사의 숫자가 늘어난 탓에 그게 문제였다. 그나마 플레이어들을 100명 꽉꽉 채워왔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힘들 뻔 했다.
[ 당장은 아무런 문제 없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 2시가 되면 정상적으로 회담이 시작될 듯합니다. ]
`알겠다. 일단 대기하고 있을 테니 중요 사항이 있으면 다시 연락하도록.`
[ 예. 알겠습니다. ]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공격 시점이 코앞으로 다가온 탓인지, 김우길도 나도 목소리에 긴장감이 묻어나왔다. 집 밖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긴장감이 전혀 없었는데. 아마도 전쟁이 곧 전쟁이라는 걸 몸이 아는 것 같았다.
앞으로 30분.
칼레나에서 디펜스를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긴장되는 순간이다. 그때에는 살기 위해서, 지금은 대박을 위해서.
1분 1초가 흘러갈 때마다 긴장감이 더해진다.
"5분 남았습니다!"
언제 시간이 이리 흘렀는지.
드디어 회담 시작 5분 전으로 들어왔다. 이제부터는 철저한 시간 싸움이라 1초의 시간 낭비 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김우길.`
[ 예. 주인님. ]
마지막 상황 보고를 위해 김우길을 부르니, 다소 경직된 김우길의 목소리가 들린다.
`보고해.`
[ 성안 공터 안은 일반 렙틸리언과 렙틸리언 전사들로 꽉 찼습니다. 아마 성 주변을 경계하는 전사들을 제외하곤 전부 모인 것 같습니다.]
`수뇌부는?`
[ 수뇌부들 역시 전부 자리에 착석했습니다. 성안 공터 안쪽으로 들어오시면 따로 자리를 만들어 모여있는 자들이 보일 겁니다. 개중 전사들을 제외한 전부가 수뇌입니다. 숫자는 대략 오십여 명으로 끝까지 보수로 남은 30명을 제외하곤 중립파 까지 전부 모인듯합니다. ]
적도 난도 모든 준비가 끝난 것 같다.
수뇌부까지 착석했다고 하니, 이제 남은 건 공격뿐이다.
`경계를 나간 전사들의 숫자도 알 수 있나.`
[ 대략 2백가량으로 추정 중입니다만. 확실하진 않습니다. ]
`그래. 수고했다.`
[ 조심하십시오. ]
외부 경계 인원까지 확실하게 알아냈다면 좋았을 테지만.
이 부분은 어쩔 수 없지. 몸으로 뚫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라한. 안쪽에 대기시켜.`
[ 알겠습니다. ]
이제 곧 공격이 시 잘될 터이니.
무덤지기 공간 안에서 대기 중인 플레이어들에게 대기 명령을 내리고, 새롭게 정비된 불사의 군단까지 도열을 끝마치면 돌입이다.
"아크 리치. 마차를 몰아서 섬 중앙으로 이동해."
[ 알겠습니다. ]
완벽한 돌입을 위해 팬텀 캐리지를 몰아 섬 중앙으로 향하자, 김우길이 말한 `성안 공터`가 보였다.
공터라기보단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라고 해야 맞을 정도로 휑하니 빈 대지. 그 위로 꿈틀거리는 수천 마리의 렙틸리언들. 대 회담이라는 자리 때문인지 전부 인간의 탈을 벗어던진 체 모여있었다.
이건 뭐, 하이네스의 `진실의 눈`을 빌릴 필요도 없었다.
그저 성안 공터를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다.
[ 서브 퀘스트 - unconfirmed life ]
:???
[ 남은 시간 : ??? ]
( 0/1 )
[ 서브 퀘스트 - unconfirmed life ]
:???
[ 남은 시간 : ??? ]
( 0/1 )
[ 서브 퀘스트 - unconfirmed life ]
:???
[ 남은 시간 : ??? ]
( 0/1 )
.
.
.
.
끝도 없이 올라가는 퀘스트 창.
한 번에 수 천 개나 되는 퀘스트가 겹쳐져서 출력되는 바람에 아예 눈앞에 깜깜해질 정도. 보통은 반투명한 창이라 메시지가 올라와도 그 뒤쪽 상황이 보이는 데 반해 이번만큼은 한순간이지만 아예 눈앞이 가려질 정도였다.
수 천 개의 퀘스트 메시지가 사라지길 기다린 후.
천천히 트이는 시야를 느끼며 공간의 문을 열어본다.
그러자 팬텀 스티드와 팬텀 캐리지에 올라 하나둘 허공으로 떠오르는 플레이어들.
"와..."
"미친. 정말 퀘스트가 있었어?"
"아니 저것들은 대체 뭐야?"
"현실에도 저런 게 있다니…."
"이런 건 어디서 찾아낸 건지?"
.
.
.
표정을 보아하니 다들 신선한 충격을 받은 듯싶었다.
아마도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계속 의문이었을 거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을뿐더러 정말 현실에서 퀘스트를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가득했을 테지.
나를 바라보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나는 별다른 말 대신 아래를 향해 손가락을 짚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굳이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대화가 아니라 공격이니까.
"드랍 시작이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감사합니다!
이것이 본진 드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