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펜스 챌린지-254화 (254/304)

254편

<-- 이벤트 -->

`죽음`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죽음`이란. 〈 존재의 소멸 〉

그래요. `죽음`이란 어떤 대상의 존재를 소멸해 사라지게 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육체가 되었든, 영혼이 되었든 말이에요. 그래서 인간은 `육체의 소멸`을 막기 위해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영생`을 꿈꾸었고, 신(神)은 `영혼의 소멸`을 막기 위해 `불멸(不滅)`을 꿈꾸었죠.

왜냐구요?

신(神)이든, 신이 창조한 피조물이든.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요.

`죽음`에게서 절대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존재란 없어요. 그저 상대적일 뿐.

어때요.

다들 `죽음`에 대해 공부하셨나요? 그럼 이제 실습을 해볼까요?

"모두 〈 찾아오는 죽음 〉을 느껴보세요. 그리고 받아들이세요. 그것이 곧 여러분의 힘이자 능력의 전부가 될 테니까요!"

- 네크로맨시 학파 `기초 입문학` 교육 中...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 몸을 옥죄고 있는 것이 `죽음`이란 걸 느낀 순간 통증과 함께 새로운 감각으로 변해버린 것은.

`사라진다…?`

소멸.

내가 느낀 건 `소멸(消滅)`이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세포 하나하나가 사라지는 느낌. 처음 느껴보는 이상하고 신묘한 감각. 사막의 모래를 한 줌 쥐고 나서 손을 폈을 때 바람이 불어와 모래가 휘날리는 것처럼 내 몸이 부서져 흩어지는 것 같았다.

몸이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운데 그 와중에 이러한 감각이 느껴지는 다는 건 신기하다 못해 당황스러웠다. 이 `죽음`때문에 고통스럽다는 걸 알면서도, 이 과정이 너무 신묘했다.

`이게 죽음인가?`

그래서일까.

나는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죽음`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죽음`이란 그저 사자(死者)와 망자(亡者)가 내뿜는 기운 정도로만 생각했었으니까. 물론 그것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그저 내 이미지가 그것에 고정되어있었을 뿐.

아마 이 신묘한 감각을 느끼기 이전에 내가 리치에게 죽음과 관련된 마법을 배웠다면, 그 마법을 사용할 때 떠올릴 이미지는 죽은 자들의 기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했던 내 생각이 와르르 무너졌다.

새롭게 깨달은 `죽음`이란 것은 그저 `사라지는 것`이었으니까.

사자의 기운, 망자의 기운,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등등의 화려한 단어로 포장했던 것이 민망할 정도로 단순했다.

`신기하네.`

그동안 수천 번, 수만 번을 발현하면서도 이제야 본질을 깨우치다니.

1년이 넘도록 `죽음`과 함께했다는 게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이걸 견뎌내라는 건가?`

`죽음`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나자, 그다음 떠오른 건 조금 전의 메시지였다.

[ 찾아오는 `죽음`을 견디십시오. ]

다시 떠올려보니 상당히 모호한 문장이다.

찾아오는 죽음을 견디라니. 이게 고통을 참으란 소리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나타내기 위한 말인 걸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단순히 고통을 참아내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몇 번을 떠올려봐도 그런 뜻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걸까.

`찾아오는…. 찾아오는 죽음을….`

어느덧 내 머릿속에서 `고통`과 `통증`이란 감각은 사라졌다. 아니, 애초에 고통이란 감각은 `지식 전이`가 일어난 초반을 제외하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죽음`이 찾아오는 감각을 내가 `고통`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죽음`을 온전하게 받아들인 순간 통증을 잊게 된 듯했다.

그렇기에 난 그저 마지막 문장을 해석하고 그 의미를 찾아내는데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찾아오는….`

단어 하나하나를 끊어서 보자. `찾아오는`, `죽음을`, `견뎌라`. 단순하게 읽어보면 현재 상황을 알려주는 문장이다. 지금 상황에 맞게 풀이하자면 `죽음으로 인해 고통스러울 테니 그것을 견뎌라`. 이러한 뜻이 된다.

여기서 걸리는 건 `찾아오는`이라는 동사였다. 보통 `고통이 찾아온다`라고 표현하진 않는다. 찾아서 온다는 건 대상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 의지를 갖추었다는 소리인데.

고통이란 건 통증이란 감각을 표현하는 것이니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적어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에 걸렸다. 마치 답답하고 꽉 막혀있는 듯한.

`찾아오는…. 찾아...오는?`

그래서 곱씹고 또 곱씹어보던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입문서?`

꽉 막혀있던 벽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

얼마 전 읽었던 `네크로맨서 기초 입문서`가 머릿속에서 촤르륵 하고 넘어간다. 그러다 어느 한 부분에서 멈췄고, 그곳에 내가 원하던 해답이 적혀있었다.

[ `죽음`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죽음`에 대한 이야기.

[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죽음`이란. 〈 존재의 소멸 〉 ]

[ 그래요. `죽음`이란 어떤 대상의 존재를 소멸해 사라지게 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육체가 되었든, 영혼이 되었든 말이에요. 그래서 인간은 `육체의 소멸`을 막기 위해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영생`을 꿈꾸었고, 신(神)은 `영혼의 소멸`을 막기 위해 `불멸(不滅)`을 꿈꾸었죠. ]

`아아..`

한 자, 한 자 떠올릴 때마다 머릿속이 점점 더 시원해지고 입문서 상의 글귀가 더욱 선명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 ... 그럼 그럼 이제 실습을 해볼까요? ]

`모두 〈 찾아오는 죽음 〉을 느껴보세요. 그리고 받아들이세요. 그것이 곧 여러분의 힘이자 능력의 전부가 될 테니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이 문장이 내게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중얼거리고 또 되뇌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시간의 흐름도 잊고, 치밀어오르던 통증도 잊은 채.

그저 같은 말을 되풀이하던 찰나.

`아..`

깨달았다.

`찾아오는 죽음` 안에 숨겨진 의미를.

그랬다.

죽음은 정말로 찾아오고 있었다. 내 몸속 깊숙한 곳.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곳. 생과 사를 결정짓는 `심장`으로 말이다.

[ `죽음`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

[ `특수 기술 - 죽음의 인정`을 습득합니다. ]

무어라 메시지가 올라왔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심장`을 열어달라 두드리는 `죽음`을 위해 `문`을 열어주는 데 집중해야만 했다.

`문을..문을 열어준다..`

생각한다.

`심장`을 단순히 내장기관 일부라 여기지 않고, 하나의 공간이자 하나의 거대한 세계라고 가정해본다.

[ 이미지. 생각이란 그 어떤 힘보다 강력합니다. 말하는 것, 쓰는 것, 읽는 것. 모두 `생각`을 기준으로 시작됩니다. 생각은 나무요. 그 나무에서 뻗어나온 것들이 가지가 되어 생각을 실현합니다. 그렇기에 `이미지`를 떠올리고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생각`하십시오. 생각하셔야 합니다….]

리치의 가르침처럼.

생각한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거대한 공간이 열렸다. 마치 `무덤지기`의 공간을 열듯. `심장`이란 세계의 공간을 열자 텅 비어있는 공간이 보였다.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문을 연다.`

이번에는 만들어낸 공간에 문을 여는 작업을 시작했다.

평범한 주택의 문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자동문을 열어보기도 한다. 창문부터 성문까지. 문이란 문은 전부 떠올려보지만 어울리는 건 없었다.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단순한 문이 아니라, 이 세계에 어울리는 문을. 왜 건물을 건축할 때에도 그 건축물과 가장 어울리는 문을 설계하지 않는가? 나 역시 그러한 작업을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떠오른 건 `무덤지기`의 공간이었다.

`가르자.`

공간을 여는 문.

공간을 가르는 것만큼 어울리는 문은 없었다.

사아아아아아-

열린다.

이제껏 열리지 않던 공간의 문이 제 모습을 찾은 듯. 자연스럽게 열린다.

`와라.`

공간 한 켠에 거대한 문이 열리자, 나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생각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마지막으로 이 공간에 `죽음`이 찾아오도록 생각할 차례였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쉬웠다. 마치 `무덤지기`의 공간을 카피하듯 빠르게 이루어졌다.

`죽음`으로 가느다란 선을 만들고, 그 선을 잡아당겨 본다. 마치 베히모스와의 전투에서 `계약의 끈`을 잡아당겼던 것처럼. 이전의 경험을 떠올리며 `죽음의 끈`을 잡아당기니 조금씩 스며들어오는 `죽음`.

비록 외부의 죽음이 아닌, 그간 내 몸속 안에 쌓여있던 `죽음`이었지만 이것조차 만족스러웠다.

시작이 반이란 말, 첫 단추가 중요하단 말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으니까.

`됐다.`

내 안에 존재하던 `죽음`이 공간 안으로 들어왔음을 깨달았을 때.

우우우웅-

공간 안의 `죽음`과 외부의 `죽음`이 공명(共鳴)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행동을 멈췄다. 이제 내가 할 것은 끝이었다. 지금부터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이 직접 `찾아`오도록 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다른 누구의 간섭없이, 심지어 나의 의지조차 없이 오직 `죽음`의 자유의사만으로 찾아오게끔 한다.

그것이 곧 `불완전한 죽음의 주인`에게 `죽음`이 전하는 〈 인정 〉이었다.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완전한` 존재였다면 다른 방식으로 이 과정을 넘겼을 수도 있을 테지만, 나는 `불완전한` 존재.

그렇기에 나는 지금 `죽음`에게 〈 인정 〉 받기 위해 참고 견뎌야만 했다.

즉, `찾아오는 죽음을 견디는 것`의 시작이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