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편
<-- 나태와의 전투 -->
"으으..."
"귀찮아..귀찮아.. 다 귀찮아..."
"말 하는 것도 귀찮다.."
.
.
.
.
광장에 모여 있는 나태한 병사들.
늘 그렇듯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누워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누가 다가오든 말든. 세상만사 귀찮다는 얼굴로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그런 병사들을 향해 다가가는 이가 있었으니.
[ 잘들 하고 있었네? ]
다름 아닌 `벨페고르`였다.
"아..."
"벨페고..르...님.."
"벨페고르.."
.
..
모든 게 귀찮다고 중앙거리던 나태한 병사들은 그래도 벨페고르만큼은 그냥 넘길 수 없었는지.
귀찮은 와중에도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본다. 아직 나태의 하수인이 된 건 아니지만, 나태의 저주로 인해 자연스러운 복종심리라도 생긴 것 같았다. 그런 병사들을 향해 밝게 미소 지은 벨페고르가 어딘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괴물들이 수백 명의 사람들을 끌고 들어온다.
"..제인?"
"엄마...?"
"어어...도..동생..이다.."
.
.
.
누가 나타나든 신경도 쓰지 않더니만.
그래도 가족이라서였을까. 이번만큼은 나태한 병사들도 고개를 돌려 가족들을 쳐다본다. 물론 그것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그나마 이마저도 괴물들이 끌고 왔기 때문이었지, 그냥 걸어왔으면 쳐다보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을 터.
괴물들과 함께 있으니 걱정은 되는지 눈빛으로나마 왜 거기 있냐며 도망치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왜.. 왜 그러고 있어.."
"일어나야 하나..귀찮은데.."
"거기서..나와.."
.
.
하지만 그래도 귀찮음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 듯.
한 마디씩 중얼거리면서도 실제로 일어나는 이가 없다. 그래서일까. 가만히 웃고만 있던 벨페고르가 직접 움직이더니 누군가의 머리를 손으로 붙잡았다.
벨페고르의 손에 붙잡힌 이는 고작 열셋 정도 될까 하는 남자아이였다.
"사..살려..."
[ 귀엽네? ]
한국 나이로 치면 고작 중학생이나 되었을까 싶은 남자아이는 자신의 머리를 벨페고르가 쓰다듬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우는 것조차 할 수 없는 듯.
그저 흐리멍덩한 눈으로 살려달라고 빌고 있었다.
"아르..겐.."
우연일까.
마침 벨페고르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병사 하나가 남자아이를 보며 이름을 중얼거렸고, 그 목소리를 들은 아르겐이란 남자아이 역시 병사를 바라보며 떨린 목소리로 병사를 부른다.
"혀..형..살려..줘.."
애잔한 형제 상봉의 장면이 즐거웠을까.
벨페고르가 병사를 바라봤고, 병사 역시 벨페고르를 쳐다본다. 병사의 눈 안에는 동생을 살려달라는 의지가 가득했다. 나태의 저주로 인해 복종심리가 생겼음에도 `가족`이란 인연의 힘이 그것을 비집고 튀어나온 것이다.
그러나.
콰득-
"아..."
[ 귀여운 아이였어. ]
살려달라고 부탁하던 병사의 눈 앞에서 동생의 머리가 가볍게 터져나갔다.
똑-
동생의 머리에서 터져 나온 핏물이 형의 얼굴에 떨어져, 마치 눈물처럼 흘러내린다.
"아...아아..."
병사는 이 상황이 충격적이었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실성한 듯 벨페고르를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그러나 벨페고르는 병사의 애절한 눈빛을 가볍게 무시하며 또 하나의 생명을 손에 붙잡았다. 이번엔 지긋하게 나이가 든 여인이었다.
"어..머니.."
이번에는 누군가의 어머니.
[ 여자는 필요가 없어서….]
콰득-
사람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몸에서 강제로 뜯겨나간 머리가 그대로 땅을 굴러 병사의 얼굴 앞에서 멈춘다. 마치 일부러 그쪽을 향해 굴린 것처럼 멈춰버린 여인의 얼굴에 병사가 손을 벌벌 떨며 들어 올렸다.
나태의 저주로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병사가 지금은 손을 들어 올려 여인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
콰득-
콰직-
그러거나 말거나.
이번에는 중년 남성이, 그다음에는 아직 젖도 못 뗀듯한 아이가. 누군가의 어머니가, 동생이, 아버지가. 하나하나 차례로 죽어 나간다. 그 숫자가 무려 백에 달할 때까지 벨페고르의 살행(殺行)은 멈추지 않았다.
콰드드득-
"끄아아아아악!!"
그리고 마침내 백 번째 남자.
그는 한 번에 죽지 않고, 머리 안으로 박힌 벨페고르의 손길을 느끼며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처절한 절규와 비명이 광장 안을 가득 채우며 죽어갔다. 죽어서조차 이 고통을 기억하도록 아주 천천히, 천천히 죽어갔고 그 역시 자신의 가족이었던 병사의 품에 떨어졌다.
백 번의 살행을 끝낸 벨페고르는 그제서야 손에 묻은 피를 가볍게 핥으며 나태한 병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웃었다.
[ 왜. 왜 아직도 누워있었어….]
너무나도 밝은 미소.
손에 묻은 핏자국과 주위에 가득한 시체가 아니었다면. 처참한 도살이 벌어졌으리라고는 절대 알 수 없었을 순수한 미소였다. 괴물의 얼굴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아이의 웃음과 비견될만큼 순수했다.
[ 내가 말했잖아.. 어서 다른 이들에게도 편안함을 알게 해주라고…. 안 그래? ]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벨페고르의 말에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다.
아니,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다. 가족이 죽은 병사들은 찢어지는 가슴으로 인해. 가족이 살아있는 병사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지독한 불안 때문에.
오직 벨페고르만이 병사들을 향해 홀로 중얼거린다.
[ 내가 말했지…. 너희가 움직이지 않으면 너희와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죽여버릴 거라고…. 히 ]
"아아..으아아아.."
끝내.
처음으로 동생을 잃었던 병사 하나가 전신을 검게 물들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그의 눈에서 흐르는 붉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지, 그저 동물이 우는 소리를 내며 벨페고르르 향해 흐느적거리지만 걸어간다.
붉게 충혈된 눈 안에는 깊은 증오와 원망이 담겨있었다.
[ 그래…. 어서 움직여. 다른 사람들도 쉬고 싶다잖니? 어서 `나태`의 축복을 알게 해줘야지. ]
끊임없이 비아냥거리는 벨페고르의 말에 코앞까지 다가온 병사가 이를 악물고 멈춰 선다.
나태의 저주로 인해 일어서 있는 것조차 어려울 텐데도 이 순간만큼은 극한의 정신력으로 그것을 버텨내고 있었다.
"왜...왜....왜!!!"
절규.
심장이 무너지고 가슴이 찢어지는 절규가 광장 안에 울려 퍼진다.
[ 귀엽다. 네놈의 바람을 들어준 내게 이런 대접이라…. 아주 귀여워. 자고 싶다는 걸 재워주고, 쉬고 싶다는 걸 쉬게 해주었더니…. 왜? 왜긴 왜야. ]
그러나 돌아오는 건 차가운 냉소(冷笑)였다.
[ 내 마음이지. ]
가족의 죽음과 함께 돌아온 차가운 냉소가 병사의 심장을 두드리기라도 했을까.
인간의 육신을 유지하던 얼굴마저 마침내 검게 물들어버린다. 처음 보는 형태였다. 지금까지 만나본 `나태의 하수인`은 전부 얼굴만큼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헌데, 저 병사는 아예 얼굴조차 검게 물들어버려 완전히 인간의 탈을 벗어버렸다.
단순히 육신만 검게 물들 것이 아니라 눈. 눈마저도 검게 물들었다. `마음의 창`이라 부르는 눈이 검게 물들었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지금 이 순간 거대한 분노가 병사의 육신을 넘어 영혼마저 장악해버렸다는 뜻일 터.
그러나 벨페고르는 그것마저 즐겁다는 듯.
웃으며 병사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넘겨 아직도 누워있는 나태한 병사들에게 말했다.
[ 그러니까…. 다들 어서 움직여…. 귀찮게 내가 자꾸 오지 않도록 말이야. 오늘은 날 귀찮게 한 벌로 여기 있는 이놈들만 죽일 건데.. 한 번 더 내가 오게 되면 다음은 너희를 죽일 거야. 알겠지? ]
여인의 간드러진 웃음소리처럼.
비음을 섞어가며 말하던 벨페고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콰드드득-
콰득-
아직까지 살아서 떨고 있던 이들을 향해 괴물들이 입을 벌렸다.
한순간이었다.
뜯기고 찢기고, 박살 나며 생기(生氣)를 찾아볼 수 없는 시체가 되어버린 것은.
"아아.."
"아..."
"으어..."
.
.
.
나태한 병사들의 동공이 잘게 떨린다.
그런 그들을 농락하기라도 하듯. 괴물들이 서로의 시신을 빼앗으며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단순히 죽인 것만으로도 모자라. 죽어서까지 편히 쉴 수 없도록.
영혼마저 더럽혀지도록 비참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만.."
[ 응? ]
그래서일까.
처음 벨페고르르 향해 걸어나갔던 병사가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고개를 돌려 벨페고르의 눈을 직시하며 말한다.
"그만...해.."
한 글자, 한 글자.
씹듯이 내뱉는 말투에 벨페고르가 환하게 웃는다. 마치 즐거운 듯이.
그리고 그 미소가 병사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이성의 끈을 잘라버렸다. 아니, 이 병사뿐 아니라 이 광장 안에 모여있던 모든 병사들의 이성을 짓밟아버렸다.
"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
나태한 병사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킨다.
전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게 물든 상태로. 붉디붉은 핏물을 떨구며.
그리고 그 순간이.
내가 기다렸던 시간이었다.
"저주 - 불구대천의 원수."
[ 저주 - 불구대천의 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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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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