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편
<-- 나태와의 전투 -->
"상황이 안 좋군요."
"치료도 불가능해요…."
"저도.."
상황이 좋지 않다.
이 말을 벌써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간밤의 전투를 승리로 마치고 다음 날 아침. 상황은 어제보다 더 심각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젯밤에 보지 못했던 문제가 더욱 확실하게 보인다고 표현해야겠지.
"피곤해.."
"몸에 힘이 없다.."
"배식해야 하는데.."
"일어나고 싶지 않아.."
.
.
.
.
"..."
시름시름 앓는 목소리로 힘없이 중얼거리는 병사들.
다소 멀쩡한 이들이 소리를 질러가면서 일으켜보지만 심각하다. 혹시나 일라이네와 정다빈이 치료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둘 다 정통 사제가 아니어서 그런지 아쉽게도 치료는 불가능.
그러다 보니 전투뿐 아니라 모든 부분이 멈춰버렸다.
수성군의 배식부터 수성 전투까지.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하"
김우석이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어색하게 웃는다.
늘 사람들 앞에 서서 리더십을 보이던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는지 그저 주위를 둘러보는 게 전부다. 다행이라면 플레이어 중에는 능력치 일부 하락 외에 다른 효과가 적용된 사람이 없다는 것.
그나마 최대 전력은 살렸다.
"이렇게 되면 저희끼리라도 최대한 지켜봐야겠네요. 앞으로 지원군이 오기까지 5일만 남았으니…. 음."
"가능할까."
"해봐야지. 카를린 수성군도 3분의 2 정도는 살아있고."
"내가 바하문 성주에게 갔다 올게."
플레이어들은 저마다 앞으로의 수성 방안을 모색하는데 머리를 뭉쳤고, 김우석은 쓸만한 수성군이라도 지원받기 위해 바하문 성주와 대담을 나눴다. 바하문 성주는 성주관저에서 자고 왔던 터라 비교적 멀쩡했기에 최소한의 도움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율은 골렘 제작을 더 해줘. 아무래도 숫자를 그쪽에서 메꿔야 할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일라이네와 하이네스는 우선 환자 중 아무나 붙잡고 신성마법이든 저주 마법이든 되돌릴 방법이 있을까 찾아봐."
"네!"
"알겠습니다."
"펠리스는 성벽 위에서 경계."
"네. 아버님."
우리도 바쁘게 움직였다.
어젯밤은 어찌어찌 버텼다지만, 피해 자체가 없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앞선 나흘간의 전투보다도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아무리 플레이어 여섯이 뛰어나다고 해도 모든 부분을 커버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 탓에 지금은 수성도 수성이지만, 사망률을 낮추기 위한 계획도 세워야 했다.
`나태` 상태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던가, 혹은 `나태`한 상태에서도 살아남을 방법을 찾던가.
즉.
이제부턴 괴물들이 아니라 `나태`와의 전투가 시작된 셈이다.
뎅뎅뎅-
"지겹도록 오는구나."
끝없이 공격해오는 저놈들은 덤이랄까.
*
"이대로 가다간 정말 위험할지도 모르겠네요…."
하루가 흘렀다.
어제 하루만 세 번의 전투를 치렀고, 처음으로 2백 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왔다. 그간 아무리 많아도 100을 넘지 않았었는데. 어제 처음으로 2백이 넘었다.
일라이네와 정다빈, 그리고 몇 없는 사제들이 나서서 최대한 사망자를 줄여봤지만 그럼에도 50여 명이 죽었고 30명은 죽어가는 중이다.
그들의 죽음이 슬픈 건 아니지만. 그들이 죽어갈수록 퀘스트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기에 인상이 찡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추세라면 피해는 점점 더 커질 테니…. 이러다간 지원군이 도착하는 열흘째에 성이 함락될지도 모른다.
농담이 아니라 이 일의 주범인 `나태의 대장군 벨페로그`가 어디선가 힘을 회복하고 있을 테니 녀석이 완전히 회복한 상태로 전장에 합류한다면…. 그 피해가 심각해지겠지.
그렇다고 찾아 나설 수도 없으니.
해서 어제부터 계속 회의를 열고 있다만 딱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율 양께서 골렘을 지원해주셔서 다행입니다. 이윤 님의 언데드들도 그렇고골렘에 정령까지. 정말 이윤님이 아니었다면 전투가 더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성주된 입장으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답이 나오지 않는 회의를 이어가고 있으니 분위기가 말이 아니라 그런지.
바하문 성주가 억지로 웃으며 내게 고개를 숙인다. 극구 회의에 참여해달란 이유가 이거였나. 호의에 참여해봐야 아무런 답도 없을 거라 생각은 했다만 애초에 바하문 성주가 나를 회의에 부른 건.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긍정적인 요소가 아예 없는 것보다, 뭐라도 칭찬할 거리가 있다면 분위기가 아주 죽지는 않을 테니까.
"그건 정말 다행입니다."
"맞습니다. 정말이지 이윤님과 여러분은 저희의 `희망`입니다!"
"감사합니다!"
.
.
바하문 성주의 말이 적절했는지.
죽어가든 표정으로 회의에 참석했든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덕분에 저 심연까지 가라앉던 분위기가 조금은 살아났다.
"일단은 방법을 찾아보고 있으니, 그때까진 남은 사람들끼리라도 버텨봅시다."
"알겠습니다. 김우석님."
김우석 역시 바하문 성주의 뜻을 이해한 듯.
`희망`을 부여한다. 설혹 고문 같은 희망이 될지라도.
"이만 회의는 해산하겠습니다."
덕분에 회의를 끝내고 나가는 이들의 얼굴에는 자그마한 기대감이 스며들어있었다.
아마 저 기대감은 곧 있을 전투에서 수성군을 채찍질하는 채찍이 될 것이다. 김우석 또한 그것을 바랬을 것이다. 그는 이곳의 주민이 아니라 `플레이어`니까.
퀘스트만 완료할 수 있다면 저들이 희망 고문을 당하든 말든 플레이어에겐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지.
이기적이긴 하나 각자의 생존 방식일 뿐이다.
"영악하군."
"이렇게라도 해야지요. 후우.."
내 말에 김우석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휘휘 저으며 바깥으로 나가고, 나도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회의장 밖으로 나와 성벽으로 향했다.
"오셨어요?"
성벽으로 올라가니 `나태의 저주`에 걸려 누워있는 병사를 붙잡고 방법을 논의하던 일라이네와 하이네스가 나를 반겼다.
"효과는?"
"아직은 없어요.."
"찾고 있긴 하지만.."
"안 되면 무리하진 마."
"네..그래도 최대한 해 볼게요!"
"저도요."
둘은 아직도 신성 마법과 저주 마법으로 `나태의 저주`를 풀어낼 방법을 아직도 연구 중이다.
메시지로 벨페고르가 죽거나 15일이 지나야 풀린다고 나와 있긴 했지만, 꼭 그것만이 해주 방법은 아닐 것이란 생각에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큰 소득은 없었다.
나 역시 그 방법을 찾아보고 있긴 한데 딱히 떠오르는 건 딱히 없다.
"나태...나태라..."
'나태(懶怠)하다'의 반대 상황만 잘 이용하면 어떻게 해결 방안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무엇이 나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나태의 반대는 `성실`이나 `근면`이겠지. 부지런한 것.
근면·성실하기 위해서는 어떤 목표가 필요하다. 꼭 확실한 목표가 아니더라도 무얼 하겠다는 목적의식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게으름에서 벗어나 행동할 테니까.
즉. `나태의 저주`를 파훼하기 위해선 저 병사들에게 나태를 강제로 깰만한 강력한 목적의식을 부여해 줘야 한다는 소리인데.
피로와 피곤마저 잊게 할..
"크아아아악!!"
"벨!"
"벨! 왜그래!"
"일단 붙잡아!!"
.
.
한참 고민에 빠져있는데, 고민을 방해하는 괴성이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한 무리의 병사들이 동료 병사의 사지를 붙잡고 압박하고 있었다.
"...?"
이상한 건 동료들에게 붙잡힌 병사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태의 저주`에 빠져 성벽 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병사란 점이었다.
다른 병사들도 그래서 더 당황한 것 같았다. 당장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누워있던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니.
"무슨 일인가!"
"아.. 허드슨 기사님. 그것이 갑자기 이 친구가 일어나서 창을 휘두르는 바람에.."
"창을?"
"그렇습니다. 분명 조금 전만 해도 잠을 자듯 누워있다가 동료를 향해 창을 휘둘렀습니다. 다행히 벨을 살피고 있었던 덕분에 창은 피했지만…."
"음..일단 무장을 해제시키고 팔과 다리를 묶고 성 아래로 이송한다."
"예!"
"..흐음.."
갑자기 일어나 동료에게 창을 휘둘렀더라.
뭘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크아아아악!!!"
여전히 괴성을 지르며 발악하는 벨이란 병사.
그의 뒷모습이 어쩐지 익숙하다. 강제로 갑옷을 벗긴 병사의 등이 전장에서 자주 보는 괴물들 처럼 검게 물들어 있는 것이 상당히 익숙..
"검은 등..?"
뭐지?
왜 등이 검게 물들어있지? 나는 순간 내가 잘못 봤나 싶어 눈을 크게 떴지만, 잘못 본 게 아니 아니었다. 아니 등만 검게 물든 게 아니라 이제 보니 얼굴을 제외한 모든 곳이 검게 물들어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악!!!"
"미친.."
특이한 건 검게 물든 육체만이 아니었다.
괴성을 지르며 발악하던 벨이란 병사의 이름이 내게 보이고 있었다. 이름을 귀로 듣는 게 아니라..눈으로 보았다. 마치 이름을 가진 네임드 몬스터처럼 말이다.
[ `나태의 저주` 속에서 태어난 `나태의 하수인`이 활동을 시작합니다. ]
[ `나태의 하수인`은 오직 `나태의 대장군 벨페고르`의 명령을 받습니다. ]
[ 나태의 하수인 벨 ]
콰드득-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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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아 트와이스 보고 싶다..
5워에 콘서트 한다는데.. 가지도 못하고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