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편
<-- 시장 -->
"다 모인 것 같군요."
기다린 지 대략 1시간쯤 되었을까.
`비행기`까지 전부 건네주고 나서 기다리다 보니, 넓어 보이던 거실이 사람들도 꽉꽉 들어차 있었다. 나와 일라이네들, 김우석과 그의 동료들. 여기에 새로운 플레이어들까지 더해지니 넓어 보이던 거실이 단숨에 좁아졌다.
"완전히 시장바닥이나 다름없군."
"나머지는 들어가서 훈련해. 괜히 난잡하게 있지 말고."
김우석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서성거리던 팀원들을 전부 쫓아버렸다. 그제서야 조금 상황이 트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릴 부른 이유가 뭡니까?"
"제가 설명해 드리죠."
`비행기`를 아무 대가 없이 건네주었기 때문일까.
내가 나서지 않아도 김우석이 알아서 상황 정리를 시작했다.
"이건 `사냥꾼의 훈장`이라는 아이템입니다. 사용 시 랜덤하게 능력치를 올려주지요."
그의 설명이 시작되니 다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그의 설명을 듣는다.
김우석은 여기에 덧붙여 팀원들이 어떤 효과를 얻었는지까지 설명했다. 단순히 물건만 내놓는 것보다, 물건을 사용한 긍정적인 경험이 더해지면 홍보 효과 역시 상승한다.
그 부분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호오.. 그래서 가격은 얼마입니까?"
"몇 개나 살 수 있습니까?"
"바로 구매 가능합니까?"
.
.
김우석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손을 들고 질문하는 플레이어들.
앞선 사례를 들었으니, 자신들 역시 빨리 구매해 퀘스트가 시작되기 전에 효과를 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해서 김우석이 그에 관해 설명하려는 찰나. 내가 그의 말을 끊고 앞으로 나섰다.
플레이어들은 잘 설명하던 김우석 대신 내가 앞으로 나오니 의아한 눈치였지만 이제 내가 생각했던 `계약`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가격은 3천. 한 사람당 2개, 사고 싶은 자는 나와 `계약`할 것."
그의 팀원들과 거래할 때는 없었던 조건이자, 계약이란 단어 때문일까.
플레이어들뿐 아니라 김우석조차도 의아한 표정을 보인다.
"계약 조건은 간단합니다. 이 물건을 구매할 시 바로 복용할 것. 복용한 뒤 보름 안에 솔로디펜스 50단계까지 돌파할 것. 이 조건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위약금 백 배를 지급할 것."
"...."
"미친."
"백 배?"
"30억?"
"50단계?"
.
.
.
내 말이 끝나자 플레이어들이 인상을 찡그리거나 말도 안 된다는 듯 반문한다.
구매 가격이야 선례가 있으니 어느 정도 감안하겠다. 헌데 고작 아이템 하나 사는데 이런저런 조건이 붙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조건이 정말 단순하다면 모를까.
생존과 직결된 디펜스로 이어지는 것이기에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조건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사냥꾼의 훈장`을 팔기로 한 이유가 무엇인가. `자격`에 해당하는 플레이어들을 빨리 양성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아이템을 팔았는데도 걸리는 시간이 똑같다면. 그럼 판매한 이유가 없다.
그래서 세운 조건이 저것이었다.
구매했으면 빨리 깨라. 딱 이 내용을 풀어쓴 것이다.
`자격`에 대해 알고 있는 김우석은 내가 왜 이런 조건을 내걸었는지 깨달은 듯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다소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뜨거워질 무렵. 플레이어 중 누군가가 번쩍 손을 들며 일어났다.
"뭐야. 별 조건도 아니잖아? 나는 구매하겠소. 2개 주시오."
그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지켜보든 말든 담담히 걸어 나와 내 계좌를 물었고, `계약`을 진행했다. 단숨에 6천만원을 송금하더니 일라이네가 건넨 `계약의 물`을 단숨에 들이킨다.
"조건은 그대로. 바로 복용할 것. 복용 후 보름안에 솔로 디펜스 50단계까지 돌파할 것. 지키지 못할 시 위약금은 백 배."
"동의합니다."
[ `계약`이 이루어집니다. ]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계약은 성립되었다.
그러자 `사냥꾼의 훈장`을 받은 플레이어가 뒤를 돌며 다른 플레이어들을 향해 가볍게 소리친다.
"어차피 돌파할 거 아니었나? 그럴 거면 사서 먹고 가는 게 낫지. 싸우기 싫다고 안 싸우는 것도 아니고. 조건 같지도 않은 조건 무섭다고 덜덜 떨면서 뒤로 뺄 필요 있나."
그의 말 대로였다.
사실 플레이어인 이상 보름이든 한 달이든 결국 50단계를 넘어야 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복용하고 효과를 보는 게 낫다. 이건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다만 `보름`이라는 시간적 제한과 `백 배`라는 금전적 제약 때문에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그것을 깨닫는 순간.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라이네."
"네!"
일라이네들이 돌아다니며 내 피가 담긴 `계약의 물`을 건네자.
다들 내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피를 내어 안에 섞은 뒤 들이키고 `사냥꾼의 훈장`을 받아간다. 하나같이 집을 나설 때마다 인사를 건네는데.
예상한 대로 `필요한` 능력치가 올라갔는지 만족한 표정이었다.
"앞으로 속도가 빨라지겠군요. 하하하"
북적거리던 플레이어들이 떠나고.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김우석이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오늘의 거래로 자신에게도 간접적인 이득이 생긴 걸 알기 때문일 터. 나는 별 다른 말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일어났다.
"오늘도 좋은 거래였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오실 때마다 대단한 것들을 가져오시니. 다음에도 기대합니다. 하하하하"
늘 그렇듯.
대문까지 배웅을 나온 김우석과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차에 올라탔다.
차에 타자 조수석에 앉은 일라이네가 헤실 거리는 웃음을 보이며 나를 불렀다.
"외식해요!!"
`사냥꾼의 훈장` 판매로 돈을 벌었으니 외식을 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뒤를 돌아보니 하이네스도 상당히 원하는 눈치였고, 율이나 펠리스는 외식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그저 `얼마나 대단한 외식이라….` 정도의 표정이었다.
어차피 한 번은 갈 생각이었다만.
특별히 네 여인과 같이 나온 날이기도 하니. 시간 난 김에 오늘 가지 뭐.
"그래. 가자."
"예이!! 한우로!!"
"감사합니다!"
그렇게 좋을까.
외식의 의미를 아는 둘의 복창 소리를 들으며 차를 달려 늘 가던 고깃집으로 향했다.
*
"후아.."
외식을 끝내고 돌아온 집.
배부르게 먹고 각자 방에 들어가는 걸 보며 나도 방에 들어와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걸 집어 들고 침대에 누웠다.
몸에 가득 배었던 고기 냄새가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 클린 ]
이러면 끝이라서 말이지.
요즘 들어 배우고 있는 기초 마법에 생각보다 쓸만한 것 같다. 정통 마법에 유능한 리치에게 하나하나 마법을 배우는 중인데, 아직 단계가 낮아 화려하거나 위력적이진 않아도 현실적인 것들이라 역시 배우길 잘한 것 같다.
예전부터 배워야지 생각은 했다만.
요즘에야 시간이 나서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자. 그럼 이제 나도 시작해볼까."
마법으로 깔끔해진 옷을 가볍게 벗어 던지며 가져온 것을 들어 올렸다.
자그마한 메달. 그러나 늘 보던 것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메달.
[ 특급 사냥꾼의 훈장 ]
: 위대한 사냥꾼에게는 그에 합당하는 보상이 지급되어야만 한다.
( 옵션 : 사용 시 랜덤하게 2개의 능력치 상승 )
중앙에 자그마한 검과 도끼, 창이 새겨진 메달.
다름 아닌 렙틸리언 전사를 사냥하고 얻은 보상이었다.
"이런 걸 줄 줄이야."
렙틸리언 전사나 일반 렙틸리언이나 똑같은 사냥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괜히 전사가 아니듯, 보상도 차이가 있었다. 39개의 훈장을 팔고도 아쉬워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고. 사업 과정에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 `특급 사냥꾼의 훈장을 사용하시겠습니까? ]
[ Y/N ]
[ 2개의 능력치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
[ 5%...20%...49%...100% ]
거리낌 없이 `Yes`를 누르자.
익숙한 메시지와 함께 퍼센테이지가 올라간다.
이윽고.
[ `특급 사냥꾼의 훈장`으로 일부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
[ 능력치 1. 모든 속성 저항력 ]
[ 능력치 2. 체력 재생률 ]
"이번에는 이런 쪽인가."
하나는 속성 저항, 하나는 체력 재생이라.
엄청나게 만족스러운 능력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건 절대 아니다. 차라리 공격적인 수단보다 이런 방어적인 수단이 상승하는 게 지금의 나로서는 더 좋을지 모른다.
공격적인 기술이나 마법은 이미 차고 넘치니까.
예전처럼 특별한 조건이 충족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드러누웠다.
"얼마 남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보는 내 눈빛 속에 `끝`이라는 단어가 그려진다.
오늘로 15명. 많진 않지만 적지도 않다. 더욱이 그들이 50단계까지 올라 보상을 얻게 되면 개중 본인에게 필요 없는 건 시장에 풀릴 거고 그럼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도 영향이 될 거다.
그러니 전체적으로 보면 15명에 플러스 알파를 붙여야겠지.
그럼 결과적으로 `끝`은 더 다가온다.
"앞으로 길어야 반년."
렙틸리언들이 준동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다섯 달.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때가 되면 `끝`의 바로 직전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과연 `끝`이 오면 어떤 느낌일까. 이 지긋지긋한 시스템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하긴. 벗어나는 건 아니지. SF 영화 같은 행성침공이 남아있으니까."
그래.
사실 `끝`이란 건 없을 수도 있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게 다시 시작이 될 테니까.
그래도.
벗어나야지. 최소한 자유라는 건 있어야 하니까.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감사합니다!!
표지 일러팀하고 열심히 고안해서 만들었는데
칭찬해주시니 허허허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