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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펜스 챌린지-218화 (218/304)

218편

<-- 세 번째 왕. 아이작 -->

저 멀리 달려오던 아이작이 분노를 머금고 포효하는 게 들린다.

당황스러울 것이다. 아끼던 동생의 머리는 수십 개가 되었지, 죽이고 싶은 원수는 전장 여기저기를 내달리고 있으니 당황스럽고 또 화가 날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내 생존확률은 확실하게 올라간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전쟁은 내가 이길 가능성이 더 컸다.

허나 굳이 이런 수를 써가면서까지 전쟁을 치르는 건 이편이 더 확실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전투 형태로 흘러갔다면 저 비장의 한 수에 당했을지 또 누가 알까.

이 작전 덕분에 비장의 한 수도 알아냈겠다. 이겨야 하는 싸움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싸움으로 바뀌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전부 죽이겠다!"

쿠우웅-

콰과과과광!!

물론.

아이작은 거의 미쳐가는 수준이었다. 안 그래도 이런저런 제약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 하는데, 4차 개체들은 끈질기게 따라붙고 있지. 원수는 어디 있는지 모르니.

그래서 그런지.

아예 전장 전체를 대상으로 연금술을 날리고 있었다. `분노하는 마력`이란 게 단순히 분노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 아니라, 실제로 위력 증가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지.

전과 다른 위력이 전장을 뒤집어엎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세 골렘들도 피해를 보고 있었으나 아이작의 눈에는 이미 보이는 게 없었다.

파삭-

파삭-

그림자들이 하나둘 터져나간다.

피한다고 피해 보지만, 나를 모방한 터라 아이작의 속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마치 물감이 터지듯 터져나갈 때면 아이작의 분노가 조금씩 더 커진다. 농락당하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내가 펼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전술이랄까.

원래는 분노해서 달려오는 아이작을 단순히 막는 것이 본 계획이었다만.

"펠리스 놈의 머리를 전장 중에서 세워."

"네."

이리저리 도망치다.

반쯤 부서진 레비아탄의 머리를 던졌다. 이편이 아이작의 신경을 긁는 데 더욱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물론.

[ 그림자 베기 ]

정상적인 형태가 아니라.

반쯤 부서진 걸 다시 수십 조각으로 갈라 마치 퍼즐처럼 만든 뒤 그림자로 붙잡아둔다. 누군가 만지면 와르르 쏟아지도록.

"레비아탄!!!"

전장 중앙에 그림자로 대를 세우고 그 위에 레비아탄의 머리를 올려놓자마자.

폭포수처럼 마력을 쏟아내던 아이작이 그것을 발견하고 미친 듯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분노가 심해질수록 마력이나 신체 능력이 더 올라가는 형식인지.

조금 전보다 더 빨리진 속도였다.

[ 그림자 통로 ]

내가 그림자 안으로 숨어들어 가기 무섭게 도착한 아이작이 레비아탄의 머리로 손을 뻗었다.

툭-

와르르르르르...

"아아아..."

안타까우면 가득한 눈빛으로 뻗은 손이 머리끝에 닿는 순간.

퍼즐이 부서지듯 와르르 쏟아지는 조각들.

[ `분노하는 왕 - 아이작`이 `극심한 분노`를 발동합니다. ]

[ `분노하는 왕 - 아이작`이 `등가교환의 법칙 - 2`를 발동합니다. ]

[ `분노하는 왕 - 아이작`이 `분노한 본능`을 발동합니다. ]

쿠우웅-

피와 뇌수가 뒤엉켜 쏟아진 순간.

아이작이 완전히 미쳐버렸다.

"죽..인다."

오염된 마력이 폭풍처럼 주위를 쓸고 지나간다.

4차 개체들이 달려들어 저지하려 하니, 이젠 아예 소멸을 시키고 시작하려는지 마주 보며 손을 뻗는다.

쿠구구구궁-

4대 속성이 동시에 터져 나와 파도처럼 쓸고 지나가니. 제아무리 4차 개체들이라고 해도 버티기 어려웠는지 여기저기 박살 난 채로 바닥을 구르는 게 보였다.

한 가지 속성이라면 모를까.

4가지 속성이 뒤엉킨 공격이라 막는 게 상당히 까다로워 보였다.

물론.

이쪽에는 사제가 있다.

그것도 언데드 사제.

[ 완전 복원 ]

나는 델과 함께 이동하느라 소환을 해줄 수 없으나, 굳이 내가 없더라도 언데드를 되살릴 이가 있었다. 스켈레톤 비숍의 광역 복원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인 언데드 프리메이트의 `완전 복원`. 뼛조각, 살점 하나만 있어도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광역 복원 능력.

하루에 한 번 뿐인 기술이나.

불사의 군단을 상대하는 적에겐 불사의 지옥을 선사해줄 수 있는 기술이기도 했다.

"크아아아악!!!"

그 지옥의 중심에 선 아이작은 충혈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괴성을 질렀다.

이글거리는 분노로 온몸이 녹아버릴 것 같은 고통을 참아가면서까지 억지로 마력을 쏟아부었건만. 다시 살아나는 언데드라니.

"허억...헉.."

거칠어진 숨이 나오고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수명을 대가로 바친다는 건 생각보다도 더 고통스럽다. 살아있는 존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 산 채로 불에 타죽는 고통이라고 한다. 수명을 대가로 바치면 이러한 고통을 산 채로 유지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만일 수명을 대가로 바치기 시작하면 어떤 상황이든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만 한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고통은 심각하나 그만큼 얻는 능력 역시 대단하니까. 마력뿐 아니라 신체 능력까지 극도로 상승하기 때문에 웬만한 적들은 1분? 아니 30초도 걸리지 않아 찢어 죽일 수 있다.

지금처럼 상대가 죽어도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언데드가 아니었다면.

"이것도 찾아가야 하지 않나?"

"허억..헉..개..자식.."

그런 아이작을 향해 `내`가 손을 흔들었다.

손에는 베히모스의 머리가 들린 채.

"여기도 있는데?"

"이것도."

"이건 안 가져가나?"

.

.

.

또한, 아직 살아남은 `나`들 역시 베히모스의 머리를 흔들어준다.

콰드득-

수명이 조금씩 사라져 간다.

시간이 없다.

아이작은 이미 죽음을 각오했다. 그저 죽기 전. 진짜를 찾아 찢어 죽이고 같이 죽기만을 원할 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진짜를 찾을 수 있을까. 오직 분노로만 가득 차 있던 머릿속에 `이성`이 깃든다. 이대로 가다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걸 알기에 최소한의 이성을 깨운 것이다.

비록 그만큼 힘은 약해지겠지만, 이미 얻은 힘으로도 충분하니까.

`방법이..`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며 진짜를 찾기 위해 살피다.

문득 바닥의 그림자가 일렁거리는 게 보였다.

`아.`

그제서야 아이작은 주위의 가짜들 사이에 진짜가 없음을 알아차렸다.

평소라면 금세 알아차렸을 가벼운 눈속임이었지만, 분노로 인해 이제야 알아본 것이다. 일렁거리던 그림자 위로 동생의 머리를 든 킹 슬레이어가 모습을 드러낸다.

`저거다.`

진짜를 찾을 방법을 알았다.

진짜는 이 공간에 없다. 그림자 안으로 숨어들어 갔다가 일정 시간이 되면 다시 나오고 들어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럼 그때를 노려야 한다.

"크아아압!!"

아이작은 자신이 이러한 수를 깨달았다는 걸 모르게 하려고 더욱 날뛰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야만 적은 지금의 방식을 고수할 테니까. 하여 일부러 로라도 가짜들을 찾아 달렸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확인했다. 그림자에 들어갔다 나오는 간격을.

`시간은 30초. 지금 들어간다.`

진짜가 그림자 안에 들어갔다 나오는 시간은 30초.

다시 들어가는 건 5초가 걸린다. 또한,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대략 10m 정도를 이동해있다. 즉. 한 번 들어가고 나오면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등장하며 다시 들어갈 때까지 5초가 걸리는 그 순간을 노려야 한다는 것이다.

`센다..`

치열한 분노 속 자그마한 이성이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30초가 끝나갈 즈음 일렁거리는 그림자를 찾았다.

`찾았다.`

진짜가 그림자 밖으로 나오고 있다는 신호다.

아이작이 급히 몸을 돌렸다. 진짜가 나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2초. 발끝에 힘을 주고, 날아오는 검을 그대로 맞으며 발을 뻗는다.

`죽어라..`

"어?"

일렁거리는 그림자 안에서 올라오던 진짜가 당황하는 게 보인다.

분노로 미쳐 날뛰던 자신이 이런 수를 썼을 거란 생각을 못 했겠지. 그것을 증명하듯, 다급하게 그림자가 뭉쳐 방패를 세워보지만 아이작의 손길에 가볍게 부서져 나간다.

완전히 그림자 밖으로 빠져나온 진짜 킹 슬레이어가 도망치기 위해 달린다.

그러나 이미 아이작의 손이 등에 닿아가고 있었다. 진짜의 손에 들린 아우의 얼굴이 보인다.

`곧 보자.`

마지막 수명마저 불태우며 더욱 속도를 올려 도망치던 진짜 킹 슬레이어의 심장에 손을 박아넣는다.

빠각-

살가죽이 찢기고, 뼈가 부러진다.

그리고.

"...?"

느껴져야 할 심장이….

없다? 인간이라면 분명 있어야 할 심장이 없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뜨겁게 불타올랐던 분노가 차갑게 식어가는 게 느껴진다. 이어 대가로 바쳤던 마지막 수명이 타오르며 고통으로 정신이 혼미해지고 눈앞이 흐려진다.

지독한 고통에도 눈을 부릅뜨며 이 상황을 이해키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아이작을 향해. 등을 보이던 킹 슬레이어의 머리가 180도 회전하며 기괴한 미소와 함께 중얼거린다.

"체크메이트."

[ `마법 - 미러 이미지`가 강제로 해제됩니다. ]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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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유능한 사냥꾼은 덫을 여러 개 설치한다고 하죠? (맞나?)

유능한 여우가 도망칠 굴을 여러개 파두는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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