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편
<-- 의외의 천적 -->
"블러드 골렘. 막아."
나는 아이언 골렘이 달려오는 걸 보며 가볍게 손짓했다.
궁금했다. 연금술사들을 처단하는 걸 떠나서. 저들이 최종병기로 삼고 있던 아이언 골렘과 4차 진화 개체급인 블러드 골렘이 맞붙는다면 어느 쪽이 이길까.
물론 한가하게 싸움놀음이나 보려고 하는 건 아니다만. 어차피 미끼로 시선을 끌어야 하는 만큼 그 과정에서 구경을 해보려고 했다.
-비켜라.
"호오."
의외다.
단순한 골렘은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헌데, 저 아이언 골렘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블러드 골렘을 보더니 정중하게 비켜달라 말을 한다.
[ 군주의 명령이시다. ]
물론.
언어 구사능력은 블러드 골렘 역시 가지고 있다. 원래는 없었으나, 유대감의 증폭 때문인지 아니면 4차 진화 개체로 진화하면서인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아 사실 블러드 골렘이 말하는 걸 보는 게 이번이 겨우 세 번째일 정도로 극히 희귀하긴 하다만.
-비키지 않는다면, 죽음뿐.
[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죽음뿐 ]
두 골렘은 서로의 대화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었다.
3m는 넘을 것 같은 거대한 대검을 손에 쥔 아이언 골렘과 피로 만들어낸 한 손도끼와 방패를 쥔 블러드 골렘의 격투는 단순했지만 화려했다. 마치 전설에서나 보던 거인들 간의 전투를 보고 있는 것 같달까.
쿠우웅-
쿠웅!
두 골렘이 움직일 때마다 터져나가는 대지.
거친 마력이 맞부딪치는 건 아니지만, 그저 거대한 체구에서 뻗어나오는 폭발적인 근력만으로도 위력이 엄청났다. 특히 놀란 건 아이언 골렘. 블러드 골렘이야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지만, 그와 대등하게 맞서는 아이언 골렘의 능력은 생각 이상이다.
"제법이네."
46단계 네임드 몬스터의 소환수치고는 굉장히 강력하다.
딱히 약점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약점은 있지. 컨트롤 타워가 꼭 있어야 한다는 점.
[ 시작하겠다. ]
`오케이.`
"블러드 골렘. 날뛰어라."
[ 명령을 위해 ]
촤아아아아악-
내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블러드 골렘이 도끼와 방패를 던지며 아이언 골렘을 향해 달려든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던져 부딪친다. 이른바 몸통박치기. 아이언 골렘이 제빠르게 검을 찔러 넣었지만, 마력이 담겨있지 않은 터라 날카롭게 파고들기만 할 뿐.
블러드 골렘의 육체를 베어내진 못했다.
검에 배가 꿰뚫린 블러드 골렘이 마치 빨판처럼 아이언 골렘을 붙잡는다. 무슨 대단한 짓을 한 건 아니다. 그저 붙잡는 게 전부였다. 아이언 골렘도, 그리고 놈의 컨트롤 타워인 하이안의 시선도.
"40단계대 치곤 괜찮았다만, 딱 여기까지."
[ 그림자 가시나무 ]
콰드드득-
콰득-
모두가 블러드 골렘에 시선이 끌린 순간.
발끝부터 시작된 자그마한 나무가 빠르게 자라나며 피와 살점을 양분 삼아 거대한 고목(古木)이 되어 전장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전장의 시간이 멈추었다.
-명령..명령이..
[ 끝났다. 그러니 먹는다. ]
콰득-
컨트롤 타워가 부서지고 멈춰버린 아이언 골렘을 뒤덮은 검붉은 피가 천천히, 그리고 집요하게 강철로 된 육체를 집어삼킨다. 블러드 골렘 또한 언데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먹어치운다. 그것이 설령 생명체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 '블러드 골렘'이 약간의 〈 성장 〉을 이뤄냅니다. ]
[ `블러드 골렘 - 나이트`의 `형태변화`가 추가됩니다. ]
[ 블러드 골렘 - 나이트 ]
: 피의 강에서 태어난 육체에 영혼이 깃들어 탄생한 블러드 골렘. 물의 성질을 지닌 블러드 골렘 특유의 능력 `형태변화`. 자신이 집어삼킨 존재의 형태를 모방할 수 있다. 개중 첫 번째로 흡수한 `아이언 골렘 - 나이트`의 형태를 복사한 것으로 `블러드 골렘 - 나이트`로 형태변화할 시 공격력과 순발력이 상승한다. ]
[ 명령을 이행했습니다. ]
"성장?"
블러드 골렘이 아이언 골렘을 먹음으로써 성장했다.
`약간`이라고 명시되어 있긴 했지만, 성장을 했다는 게 중요한 것. 이런 식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마치 찍찍이가 뱀파이어의 피를 흡수하고 성장한 것과 비슷한 원리인 것 같았다.
"형태변화라."
이런 특성이 있으면서도 스톤 골렘 같은 일반 골렘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건 아마도, 적정 수준 이상의 골렘을 먹어야만 발휘되는 특성인 듯하다.
툭-
투둑-
연금술사들이 모두 죽자.
움직임을 멈추었던 골렘의 육체가 무너지고, 호문클로스들이 그대로 바닥을 구른다. 그것으로 전쟁은 끝이었다.
〈 솔로 디펜스 46. 막아라 & 생존하라 〉
: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고자 하는 연금술사. 그들의 마지막 목표는 오직 하나. `진짜 인간`을 `창조`해내는 것. 물론 인간을 창조한다는 것은 신의 권능이나, 연금술사들은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물론 대부분의 연금술사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 말했지만, 일부 연금술사들은 달랐다. 순수한 마력의 집합체인 `인장`을 활용한다면 영혼을 불러오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 주장한 것이다. 하여 매드 알케미스트란 욕설을 받으면서도 `인장`을 빼앗기 위해 성 칼레나를 찾았다. 골렘과 호문클로스로 무장한 매드 알케미스트들의 눈은 이미 욕망으로 가득하다. 그릇된 착각으로 미쳐버린 그들을 막고 `인장`을 수호하라!
[ 남은 시간 : 0분 ]
( 30/30 )
-완료!
(Hidden)모든 적을 섬멸하라
-완료!
끝을 알리는 퀘스트 완료 메시지.
"정리 시작해."
[ 알겠습니다. ]
나는 메시지를 보면서 손을 휘휘 저었다.
이번에 챙길 건 딱히 없었다. 아니지, 이미 챙긴 건가.
[ 시체는 어찌할까요. ]
"괜찮은 것만 챙겨. 나머지는 폐기하고."
내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불사의 군단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전장의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다만 정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 솔로 디펜스 47. 막아라 & 생존하라 〉
: 매드 알케미스트들이 성 칼레나로 이동한 소식이 들리자, 여러 연금술사들이 혹시나 그들이 `창조의 진리`를 알아내진 않을까 궁금해했다. 또한, 권위있는 알케미스트 학파의 고위 연금술사들 역시 그들이 위대한 발견으로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할까 걱정했다. 하여 그들을 저지할 겸, 그리고 그들의 실험을 빼앗을 겸하여 다수의 연금술사들이 성 칼레나로 향했다. 자신들의 자리가 위험할까, 누군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까. 또 다른 욕망에 사로잡힌 연금술사들을 막고, 성의 `인장`을 수호하라!
[ 남은 시간 : 10분 ]
( 0/50 )
"또?"
이제 막 정리를 시작했는데, 또 퀘스트라니.
그리고 또 연금술사라니. 천적 관계는 끝나지 않았다는 건가.
"어쩔 수 없지."
별수 있나.
온다는 데 막아야지. 다만 계속해서 연금술사라는 게 꺼려질 뿐. 한 편으론 블러드 골렘이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터라 한편으론 좋기도 했다.
성장할 수 있는 기회란 건 쉽게 찾아오지 않으니까.
"이렇게 된거. 잔해로 성문을 막는다."
[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
호문클로스의 잔해는 가벼우니 빠르게 폐기하고, 부스러기가 남은 골렘들의 잔해는 되려 길을 막는 바리케이트로 만든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성문을 막아두면 꽤나 단단한 방패가 될 것이다.
"자 그럼. 어디 한 번 먹어보자."
이번에 본 게 아이언 골렘 나이트 형태이니.
기왕이면 다른 형태의 골렘들이 등장했으면 한다. 한 가지 형태를 많이 먹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겠지만, 가능하면 여러 가지를 먹어 다양한 힘을 구사할 수 있는 게 나는 더 낫다고 생각하니까.
물론 먹지 않는다고 해서 활이라던가 창이라던가 하는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만. `알고 하는가, 모르고 하는가`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는 만큼 가능하면 다양하게 와주었으면 한다.
"기대한다."
어느새 시간이 다 되었는지, 저 멀리 보이는 연금술사들을 향해 중얼거린 나는 블러드 골렘을 불렀다.
그러자 내 뜻을 이해했는지 블러드 골렘이 나를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내 뜻을 알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다짐하는 것 같았다. 지금을 통해 꼭 성장한다고.
기회가 많지 않으니 자신도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소환!"
익숙한 외침이 들리고 마력이 움직인다.
자신만만한 미소도 보인다. `천적`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저리도 자신 있게 소환을 외치는 것이겠지. 천적이라….
"과연 누가 누구의 천적이 될지."
"가라!!"
"가거라!!"
"모두 부숴라!!"
"공격해라!!"
.
.
.
이제부터 알게 되겠지.
누가 누구의 천적이 될지. 개구리는 뱀에게 잡아먹히는 천적관계에 있다. 내가 개구리처럼 보이겠지. 허나 사실 붉은 피를 뒤집어쓴, 뱀조차 잡아먹는 황소개구리란 걸.
저들은 알까.
"시작해."
[ 전군. 출진 ]
나는 몰랐다.
역 천적 관계의 증명 기간이 무려 50단계까지 이어질 줄은.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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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