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펜스 챌린지-210화 (210/304)

210편

<-- 실험은 끝났다 -->

"전쟁인가."

"어. 너도 준비해."

장비를 챙겨 입고 성에 도착하니.

방금전까지 나름의 훈련을 하고 있었던 듯. `번트럴의 분노`와 `티탄(Titan)`을 쥐고 휘두르던 벨카서스가 퉁명스럽게 나를 반긴다. 나는 녀석의 질문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성벽으로 향하려다가.

문득 녀석이 어딘가 바뀌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

평소와 똑같아 보이는 얼굴이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무엇이 변한 걸까.

"그만 쳐다봐라. 나는 인간 남자에겐 흥미 없다."

"무슨 헛소리야."

무엇이 달라진 걸까 싶어 빤히 쳐다보니, 벨카서스가 인상을 찡그리며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바람에 나는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아마도 아스모데우스와 플레이어들의 시체를 먹고 힘이 증가한 것 같긴 한가보다.

벨카서스를 뒤로 하고 성벽 위로 올라가니, 오늘도 평화로운 성 칼레나의 바깥 풍경이 보였다.

[ 무덤지기 ]

"전군 도열."

[ 전군 도열 ]

화창한 봄날 같은 공간에 하나둘 차곡차곡 쌓이는 불사의 군단.

화창함은 사라지고 죽음의 기운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지배력이 이래저래 늘어나면서 숫자가 더 증가한 탓에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다.

"일반 개체와 1차 개체는 데스 나이트가. 나머지는 각자 지휘.`

[ 명을 받으옵니다. ]

[ 명을 받으옵니다. ]

늘 하던 대로, 익숙하게 자리를 잡아간다.

내가 할 건, 저 위로 정령들을 풀어놓고 망국의 기사단을 불러주는 것뿐.

"오랜만이네요."

"그러게."

"여긴."

무덤지기의 공간에서 불사의 군단이 모두 빠져나오고 난 뒤.

성벽 위로 세 여인을 불렀다. 일라이네와 하이네스는 몇 달 만에 찾아온 칼레나의 모습이 오랜만인지 곧 전쟁이 일어날 것에도 불구하고 감회에 젖었다. 네 달, 아니 이젠 네 달도 훨씬 지났지. 거진 반년 가까이 되었으니 감회에 젖을 만도 하다.

펠리스는 이곳이 처음인 터라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일라이네가 간단하게 이곳이 어디이고, 왜 이곳에 와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하이네스는 아직까진 펠리스가 자신의 손에 죽었던 `펠리스`의 모습을 하고 있는 탓에 어색해하는 것 같았지만, 곧 익숙해지겠지.

"또 여자인가?"

"음?"

모든 준비가 끝나갈 즈음.

번트럴의 분노와 티탄을 어깨에 걸치고 성벽 위로 가볍게 날아오른 벨카서스가 새로 합류한 펠리스를 보고 중얼거린다.

"하렘이라도 세울 모양인가 보군."

내가 녀석을 바라보니, 피식 웃으며 말을 하는데.

어째 다분히 도발적이다. 아스모데우스와 플레이어들의 시체를 먹으면서 힘이 좀 늘었다고 아주 기고만장한 꼴이라니. 힘이 얼마나 늘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저리 자신 있어 하는 걸 보면 마음에 들 정도로 성장한 듯싶다.

그러나.

예전에 내가 아니다. `봉인`의 여파로 줄어든 힘을 공략하던 그때에 내가 아니다.

지금이라면 벨카서스가 온 힘을 다한다고 해도 밀릴 이유가 하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벨카서스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일대일이라면 모를까.

"그런 말 들어봤나?"

"...?"

나는 씨익 웃으며 손을 들어 화창한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벨카서스가 내 손가락을 따라 하늘을 바라본다.

"내가 살던 곳엔 이런 말이 있는데."

하늘을 둘러보다가 다시 나와 눈을 마주치는 벨카서스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말했다.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처맞는다…. 라고."

[ 데드 레인 ]

후두둑-

화창했던 하늘이 순식간에 검은 먹구름으로 뒤덮이더니 검은 빗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비가 오는데 먼지가 날까?"

"그게 무슨.."

"나도 가끔 궁금할 때가 있어."

"..."

떨어지는 빗방울을 손바닥으로 받으며 웃자.

그제야 내 말을 이해한 듯. 벨카서스의 몸이 우뚝 멈춘다. 표정을 보니 아마 내 의사가 제대로 전달된 것 같았다. 아니. 몸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는 게 아마도 그 옛날의 기억이 떠오르기라도 했나 보다.

비가 그치고 먹구름이 가시고 나서야. 밝은 햇빛을 보며 몸을 푸는 벨카서스는 내가 명령도 하지 않았지만, 어서 자리를 뜨고 싶은지.

날개를 펄럭이며 전장으로 향했다.

"아쉽네."

아쉽다.

내 말에도 굴하지 않고 더 뻗댔으면, 정말 비 오는 날에도 먼지가 알 수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었을 텐데. 어차피 벨카서스 하나 없다고 퀘스트를 실패할 리도 없었고.

그렇게 벨카서스와의 헤프닝이 지나가고.

드디어 내가 원했던 퀘스트 메시지가 올라왔다.

〈 솔로 디펜스 41. 막아라 & 생존하라 〉

: `인장`에서 흘러나온 순수한 마력은 오염된 마력을 품은 자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벨레리아스의 바다 깊은 곳. 심해를 돌아다니며 바다를 지나는 인간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던 어인들 역시 `인장`의 순수한 마력을 통해 진정한 `인어`가 되고자 한다. 그것이 허황된 욕망일지, 바라던 기적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나. 중요한 것은 심해의 어인들이 성 칼레나의 `인장`을 빼앗기 위해 찾아왔다는 점이다. 그들은 바다가 아닌 육지에선 힘이 반감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인장`을 빼앗으려 하니, 그들을 막아내고 `인장`을 수호하라!

[ 남은 시간 : 10분 ]

( 0/200 )

"어인?"

어인(魚人)이라.

제 분수도 모르고 바다를 벗어나 육지로 찾아온 어인들 이라니. 거참. 이래서 욕심이 무서운 거다.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뻔히 알면서도 달려들게 만드는 욕심이란 참.

물론 `설정`에 의한 존재들이라 세상이 두 쪽 나도 육지든 하늘이든 찾아왔을 놈들이겠지만.

어찌 되었든.

"펠리스."

"네."

"일라이네에게 들어서 알테니 본론만 말하자면. 전쟁이 시작되고 내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사용해."

어인이든 뭐든 간에.

이번 퀘스트의 주인공은 펠리스다. 심연의 성녀가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는 실전 실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실전 같은 실험이 아니라 진짜 실전이다.

과연 펠리스는 얼마만큼 나를 만족하게 할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아버지."

"..."

다만 시작도 하기 전에 안타까운 게 있다면.

여전히 나를 `아버지`란 이상한 호칭으로 부른다는 점이다. 처음 나를 보았을 때부터 아버지, 아버지 하며 불러대는 게 영 이상해서 다른 호칭을 사용하도록 말하기도 했지만. 저 부분만큼은 고쳐지지 않는다.

아직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으나.

가능하면 다른 호칭. 적어도 평범한 호칭을 사용했으면 좋겠다만.

이것도 차차 해결해야겠지.

[ 남은 시간 : 0분 ]

"전투 준비."

머리를 휘휘 돌리며 잡념을 털어내고 전장으로 시선을 옮기자.

어느덧 10분의 대기 시간이 사라지고, 전쟁을 알리는 괴성이 들렸다.

"캬아아아아아!"

"캬아아악!"

.

.

.

.

어인(魚人)이라길래 물고기 머리를 하고 인간의 육체를 지닌 놈들을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 그냥 인간이라 불러도 무방한 놈들이었다.

목에 붙어있는 아가미와 손목, 발목의 지느러미. 물갈퀴 정도를 제외하면 그냥 인간이었다.

[ 어인습격대장 펠푸스 ]

"우리의 것을 차지한 놈이다!! 죽여라!!"

[ 어인습격부대장 하만 ]

[ 어인습격부대장 로쿠 ]

"다 죽여라!!"

"시체가 돌아다닌다! 전부 부숴라!!"

개 중에는 괴성이 아니라 언어를 확실하게 내뱉는 놈들도 있었다.

녀석들은 더욱 인간과 비슷해 보였는데, 아마도 상위 개체로 올라갈수록 더 인간과 비슷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인어`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네임드는 셋. 펠리스."

"네 아버지."

"시작해. 불사의 군단은 최대한 지연에 열중해라."

[ 알겠나이다! ]

나는 달려오는 어인들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펠리스의 능력 시험이 주목적인 만큼. 보통의 전쟁처럼 임하는 게 아니라 불사의 군단은 철저히 적군 지연에만 목적을 둔다. 오직 펠리스만이 싸울 수 있게, 펠리스만이 날뛸 수 있도록.

검은 눈으로 어인들을 바라보며 손을 뻗는 펠리스.

그리고는 가볍게 주먹을 쥔다.

우우웅-

콰드득-

콰득-

"캬아아악!!"

"캬아악!"

그저 손을 가볍게 쥔 것에 불과한데, 선두로 달려오던 어인 둘이 제 그림자에 그대로 먹혀 부서진다.

뼈고 가죽이고 할 것 없이. 청소차 안에 들어가는 쓰레기처럼. 납작하게 짓이겨져 바닥을 구르는 어인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몇 번 더 손을 휘저으니, 이번엔 그림자가 수십 개의 가시가 되어 온몸을 꿰뚫고 지나간다.

어인의 몸을 꿰뚫은 그림자 가시는 다시 새로운 가시를 뽑아내며 마치 나무에서 가지가 자라듯 일정 공간 전체를 그림자 가시로 가득 채워나간다.

"호오.."

델에게 기술을 배울 때만 하더라도 위력이 뛰어나겠거니 하는 건 알아봤지만.

생각보다 쉽게 잡는 걸 보니, 내가 예측했던 위력보다 더 뛰어난 것 같다. 아무렴 4차 개체 이상의 언데드이니 이 정도는 오히려 약과일 테지. 그리고 실험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더. 더 날뛰어봐."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