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편
<-- 망령군주 -->
쿠웅-
점점 폭음(爆音)이 가까워진다.
소리에 맞춰 흔들리는 진동이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럼에도 나는 여유롭게 움직였다.
"너무 뻔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
`시련`을 파훼할 열쇠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딱히 찾을 필요도 없었다. 혹시나 내가 보지 못한 글귀가 남아있을까 싶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역시나 열쇠가 있을 곳은 다른 곳에 있었다.
"치워. 부서지지 않게."
[ 알겠습니다. ]
그것은 다름 아닌.
쿠웅-
시련의 방 한편에 있던 침대였다.
너무 뻔한 상황이라 오히려 다른 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만. 때로는 뻔한 게 정답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대로 보여준다.
[ 옆으로 밀립니다. ]
침대를 치우기 위해 언데드 나이트가 손을 뻗은 순간.
아주 가볍게 옆으로 밀리며, 자그마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는 한 권의 책이 숨겨져 있었다. 이런 걸 이렇게 진행해도 되는 것인지. 이걸 제작한 누군가도 어지간히 귀찮아했었나 보다.
이렇게 허술하게 둘 정도라면 말이다. 물론 이렇게 두어도 어차피 망령들은 들어오지 못하니 `시련`을 위해 찾아오는 이가 아니라면 발견할 수 없겠지.
그래서 이곳을 망령 침입 불가 구역으로 만들어두었던 것 같기도 하고.
[ 망령의 보물 ]
: 망령의 왕국에는 3가지 보물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세 가지 보물은 오직 `군주`만이 사용할 수 있다. 망자들의 휴식처를 제공하는 `사념의 서`. `사념의 서`와 세상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망자의 거울`. 마지막으로 `율법`을 어기고 변해버린 원령들을 제거하는 `진멸의 부적`. 특이하게도 `망령의 거울`과 `진멸의 부적`은 함께 보관하나. `사념의 서`는 다른 세상에 존재한다. 이는 언젠가 나타날 `망령군주`를 위한 안배다. 세 가지 보물은 각기 다른 보물과 가까워졌을 때 빛이 나며, 세 가지 보물을 전부 모아야만 `군주`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이게 끝?"
책 안에 적힌 내용은 생각보다 더 짧았다.
혹시나 다른 페이지에 새로운 글귀가 있을까 싶었으나. 정말 한 면을 제외하곤 전부 백지였다.
"이렇게 되면 결국 거길 다시 가야 한다는 소리인데."
어쩐지 너무 쉽게 쉽게 흘러간다 했다.
그래도 `진멸의 부적`이 이번 `시련`의 열쇠라는 걸 알았고, 어느 정도 위치를 유추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겠지. 그리고 그 정도만 알고 있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리치."
[ 부르셨습니까. ]
"혹시 알고 있는 마법 중에..."
그럼 제대로 시작해볼까?
어디 한번 막아봐라. 네크로맨서, 아니 마스터 네크로맨서의 힘을 보여줄 테니까. 정확히는 마스터 네크로맨서만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 시작하겠습니다. ]
"가자."
[ 번니르의 추적술 +4 ]
[ 대상을 설정합니다. ]
*
"크아아아악!! 어디에 있나!!"
쿠구구구구궁-
시련의 방을 나오니.
마침 근처까지 다가왔던 파우스트의 괴성과 함께 거대한 마력이 터져 나오며 주변을 단숨에 파괴하는 게 보였다.
"거기 있었구나!! 내 거울을 내놓아라!!!"
주변을 단숨에 가루로 만들어버리다가, 이내 나를 발견했는지.
급히 몸을 돌려 내게로 달려든다. 소울 테이커를 피해 달아나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속도였다.
"온다."
[ 데스 블레이드 ]
[ 기사의 일격 ]
[ 이중극점 ]
.
.
.
나는 거의 날다시피 달려오는 파우스트를 향해 불사의 군단을 움직였다.
"최대한 강하게 맞받아친다."
우우우웅-
우우웅-
사아아아아-
.
.
죽음이 가득한 마력을 피워올리며, 파우스트를 향해 달리는 불사의 군단.
파우스트의 능력이 상승했다고는 하나. 4차 개체들이 못 막을 정도는 아니다. 일대일이라면 모를까. 일대 다수의 전투라면 절대 밀릴 이유가 없다. 이기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지지 않을 수는 있다.
더군다나 파우스트가 강한 이유는 녀석이 가진 `최상급 물리 저항` 능력과 `중상급 이상의 마력 저항` 능력 탓. 기본 신체 능력이나 마력 사용법 등은 오히려 4차 개체들이 앞선다. 그러니 1차, 2차 개체들과 달리 파우스트의 공격에도 오히려 반격을 꾀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콰앙!
쿵-
마력과 마력이 충돌하면서 생긴 파편이 주변으로 쏟아지며, 안 그래도 갈라지고 죽어있던 땅이 완전히 가루가 되어 휘날렸다.
자욱하게 솟아오르는 흙먼지에도 물러서지 않는 양측.
"밀어붙여. 공격이 통하지 않으면 몸으로라도 붙잡아."
첫 번째 격돌에서 피해를 입은 건 불사의 군단뿐이지만, 나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채 오히려 더욱 불사의 군단을 채찍질했다.
부서지고 파괴되어도 손가락으로, 어깨로라도 기어서 파우스트를 붙잡게 한다. 파우스트의 난동 아닌 난동으로 망령들조차 당장 가까이 오지 못하는 터라 다른 적에게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오직 파우스트 하나만을 보고, 붙잡는 데 집중한다.
"블러드 골렘."
[ 블러드 골렘 소환 ]
[ 블러드 골렘 소환 ]
아예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블러드 골렘을 불렀다.
거대한 크기. 무려 4차 개체급 골렘. 피 한 방울로 시작해 거진 벨카서스만한 3m에 다다르는 거체의 등장에 앞뒤 안가리고 난동부리던 파우스트마저 움찔한다.
블러드 골렘도 피로 구성된 골럼인 덕분에, 물리 공격에 상당한 저항력이 있을뿐더러 마력에도 꽤 높은 저항력이 있다. 생명체를 붙잡으면 자동으로 피를 뽑아내는 `블러드 드레인 오오라`는 쓸 수 없는 게 아쉽지만, 내구력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나의 길을 막지 마라!! 나는 군주다!! 이곳은 나의 세상이란 말이다!!!"
파우스트는 개미떼처럼 몰려와 자신을 붙잡는 불사의 군단이 상당히 거슬리는지.
연속적으로 마력을 터트리며 나를 향해 빠르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불사의 군단은 특성상 빠르게 처리하는 게 쉽지 않으니, 차라리 다 제쳐놓고 나를 먼저 붙잡을 생각인 것 같았다.
나는 마치 투우를 하듯, 붉은 천 대신 `망자의 거울`을 꺼내 흔들었다.
"잡아봐."
파우스트의 신경을 제대로 긁는 내 목소리가 들린 걸까.
완전히 눈이 뒤집힌 파우스트.
"크아아악!!!"
쿠우웅-
콰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바람이 일더니.
파우스트가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격하고 화살처럼 날아든다. 이 순간만큼은 4차 개체들마저도 움직임을 놓칠 만큼 빠른 속도였다.
콰드드득-
"커헉!"
"내 보물! 내 보물이다!"
워낙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라.
나는 내 배를 가르고 파우스트의 팔이 틀어박히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소울 베리어는 물론 델의 방패도 있었으나. 여러 겹의 방패가 간단히 찢겨나가고 나 살가죽이 찢긴 채 파우스트의 검게 물든 손이 등으로 튀어나온다.
"..."
나는 그저 파우스트의 팔을 바라보는 게 고작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공격에 당한 것 때문만이 아니라, 무언가 파우스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마력이 내가 움직일 수 없도록 꽁꽁 싸매고 있었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천천히 나를 묶어가는 검은 마력.
[ 주인님! ]
[ 주인님을 지켜라! ]
[ 전원 반전! ]
.
.
.
4차 개체들이 급히 몸을 돌려 파우스트를 향해 달려왔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내 것이다…!"
파우스트는 뒤에서 불사의 군단이 돌아오든 말든 완전히 무시한 채 `망자의 거울`을 쥐고 있던 내 오른팔을 붙잡고 아예 몸에서 뜯어버렸다.
콰직-
너무 손쉽게 뜯기는 오른팔.
파우스트의 입가에 미소가 보인다. 눈이 돌아가고 정신이 나간 상태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이 손에 들어왔음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다.
"드디어..드디어..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몸까지 부들부들 떨며 웃을 정도로 기분이 좋은 걸까.
희열 가득한 눈빛으로 손을 들어 `망자의 거울`을 붙잡는다.
"이제 내가 `군주`다!! 내가 바로 망령군주다!!!"
망자의 거울을 빼앗아 높게 들어 올리는 파우스트.
몇 년, 아니 몇십 년…. 그보다 더 몇백 년을 넘도록. 이 순간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우연찮게 기억해낸 `현혹` 능력으로 `가군(假君)`의 자리에 올랐으나, 언젠가 나타날지 모르는 진짜 `군주` 때문에 항상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그러나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고, 그 기회를 붙잡았다.
이제 정말로 `군주`가 된 것이다. 망령의 왕국 건국 이래 최초로. 망령이 `군주`가 되는 순간이었다.
"축하해."
"드디...어?"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팔이 뜯겨 고통스러워해야 할 인간이 웃으며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애써 무시하고 `망자의 거울` 안에 잠들어있던 군주의 힘을 끌어내 본다.
"내가 군주다!"
망자의 거울 안에 능력을 깨워 진정한 군주가 되어야 하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질 않는다. 마력을 있는 대로 전부 쏟아붓는데도. 한 줌의 변화조차 찾아오지 않는다. 알 수 없는 위화감에 완전히 나가버렸던 정신이 반쯤 돌아온 순간.
너무나도 선명한 인간의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탁-
그리고 무언가가 등 뒤에 달라붙는 듯한 느낌과 함께.
눈앞의 인간과 똑 닮은 인간이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체크 메이트. 수고했다. 리치."
[ `마법 - 미러 이미지`가 강제로 해제됩니다. ]
[ `진멸의 부적`이 발동합니다. ]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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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늘도 다들 화이팅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