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펜스 챌린지-180화 (180/304)

180편

<-- 봉인 풀린 주문서 -->

"잘 생각했소. 모름지기 세상은 대화로 풀어나가는 것이오. 대화가 곧 소통의 시작이자 이해의 발판이라오."

내 말에 김우길이 한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마찬가지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지. 대화는 아주 중요하지."

`그렇소. 그렇소."

내가 맞장구를 쳐주니, 더 좋다고 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시작하나."

그러자 뒤편에 서서 인상을 찡그리던 벨카서스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온다.

"그렇…. 소만. 이..이 자는 어찌."

노련한 사업가의 본능일까.

아니면 최상위 포식자인 악마를 마주한 렙틸리언의 본능일까.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미소를 짓던 김우길이 순간 굳어버린다. 말을 더듬는 것이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걸 깨달았던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김우길을 향해 환한 미소를 보였다.

"소통을 시작해보자고."

"자..잠깐!"

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 때문일까.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그러나 가녀리고 애처로운 손은 거대한 악마의 손길에 막혀버렸다.

"일라이네. 적당히 목숨만 붙여놔. 고개만 끄덕일 정도면 돼."

"네."

나는 아예 몸을 돌린 채.

일라이네를 벨카서스에게 붙여주고 그림자로 의자를 만들어 앉았다.

"놓아는 줄게."

후우우우웅-

콰직!

"크아아아악!!!"

시작되었나 보다.

거친 풍압과 함께 세상이 떠나가라 비명이 터져 나오는 걸 보니.

"이래서."

입은 함부로 놀리는 게 아니다.

물론 처음부터 결정 난 사안이긴 했다만. 괜한 입놀림으로 계획보다 더 고생을 하게 됐으니. 아래든 위든 입을 잘 놀려야 편안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거다. 이러고 있으니 문득 빛의 신전 사제들이 떠오른다.

이브라엘이었나. 이름도 가물가물한 사제들. 입 잘못 놀려서 아예 입을 쓰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잘살고 있으려나.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한다."

나는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김우길의 비명을 배경 삼아.

공책을 꺼내고 펜을 들었다. 김우길의 정신 교육이 끝날 때까지 간단하게 앞으로의 방향성을 정리해볼 생각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가족."

사실 입을 잘못 놀렸다는 다소 농담 섞인 말을 하긴 했지만.

내심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아찔하긴 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종종 나오는 진부한 스토리인데, 그걸 잊고 있었다니. 그래서 더 걱정이었다. 지금이야 김우길과 주종 계약을 맺어 넘어간다지만. 앞으로 이런 상황이 일어날 경우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당장 김우길 같은 놈만 하나 더 나타나도 부모님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무덤지기 공간으로 데려오자니, 그것도 힘들다. 나야 그편이 가장 안전하니 그렇게 하고 싶지만…. 사실 묘지로 뒤덮인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어려운 일에 속하지.

나나 일라이네들은 워낙 익숙하니 상관없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정신 나간 수준이었으니까.

"우선은 김우길을 통해서 보호하는 수밖에 없나."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한 가지뿐.

김우길을 이용하는 것. 표면적으로는 나를 노리는 대상에 속하기 때문에 김우길이 보호한다면 누구도 알아차리기 힘들 것이다. 김우길이 중간에서 적당히 정보 공작만 펼쳐줘도 부모님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어려울 터.

여기에 키메라들을 은밀히 붙여두면, 설령 렙틸리언들이나 플레이어들이 찾아와도 안전할 것이다.

특히 키메라들은 내가 100% 신뢰할 수 있는 존재. 배신 가능성 제로다.

"이게 가장 좋겠네."

이것 이외에는 딱히 적당한 방법이 없다.

아무래도 내 입장뿐 아니라, 부모님의 입장도 생각해야 하다 보니 경우의 수가 줄어들 수밖에.

"이외에는…."

당장은 부모님의 안전 문제를 제외하곤 내가 신경 쓸 만한 부분은 없는 것 같다.

김우길을 이용해 다른 렙틸리언들을 사냥하는 건, 곧장 실행하는 방법은 아니다. 좀 더 세밀하고 확실한 계획을 구성하고 움직여야 손실을 최소화하고 이득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당장 이득만 생각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황금알을 빼먹는 건, 양식장이 제대로 완성된 다음부터다.

"됐다. 그럼 슬슬 끝내볼까."

"끄아아악!!"

얼추 정리를 끝내고 뒤를 돌아보자.

처절한 절규와 함께 바닥을 구르는 김우길이 보였다. 처음 노신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흙먼지에 휩싸인 부랑자의 모습이었다. 놀라운 건 이렇게까지 몰렸음에도 렙틸리언이라는 사실을 내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마 `순간지배`나 하이네스의 `진실의 눈`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김우길이 렙틸리언이란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회복."

"크으읍.. 후회..후회 할 것이오…!!"

일라이네가 회복 주문을 걸어주니.

조금 고통이 가셨는지, 흐르는 피를 손으로 닦아내며 나를 향해 이를 간다.

"벨카서스. 요즘 많이 쉬었지?"

나는 김우길의 말에 대답하기보단 그저 벨카서스를 향해 살짝 웃었다.

그것 하나면 충분했다.

"제기랄."

*

"너도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대략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나는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는 김우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은 끝났다. 서로의 `동의`도 얻었고, 모두 `만족`하는 계약이 성사되었다.

"조만간 키메라들을 붙여줄 테니, 최대한 은밀하고 안전하게 보호해. 적당한 곳에 내가 살 집도 구해놓고."

"알겠습니다."

계약이 성공리에 마무리되자.

일은 금세 이루어졌다.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현실에도 그럴듯한 집을 구해놓기로 했다. 아무래도 계속 연락을 하려면 전화가 터져야 하는데, 그게 가능해지려면 현실에서 살아야만 했으니까.

언제까지 무덤지기 공간에서 살아갈 건 아니었기 때문에, 차라리 잘된 일이다.

"문제 생기면 바로 연락해."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마지막으로 경호원과 운전기사까지 계약한 뒤.

김우길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이것으로 상황은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 같다.

"돌아가자."

"네!"

"네."

김우길이 다시 연락을 주기 전까지는 휴식을 취할 생각이다.

새로 얻은 마법과 기존의 마법을 가지고 조합도 해봐야 하고, 새 퀘스트가 시작되기 전까지 풀 클리어를 끝내고 비밀 상점도 다녀와야 한다. 생각해보니 휴식을 취할 시간도 그리 많진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볍게 문들 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키메라 제작을 시작했다.

"흐음.."

부모님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만큼, 지금 내가 제작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가장 강력하고 은밀한 보호가 가능한.

"아. 어쩌면…."

어떤 키메라를 제작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생각에 펫 목록을 열어 키메라들을 살폈다.

"소환."

베히모스와의 전투로 펫 대부분을 날린 터라 횅한 느낌이 있지만, 다행히 몇 놈은 살아있었다.

"크르르르.."

"크르릉"

빛과 함께 소환된 키메라 라이칸 스로프들이 낮게 울며 나를 반긴다.

네임드 몬스터들로 만들어둔 녀석들이라 그런지, 베히모스 군(軍)과의 전투에서도 살아남을 만큼 괜찮은 놈들이다. 아마 플레이어 중 태반은 이 녀석들의 공격을 버티지도 못할 것이다.

나처럼 솔로 디펜스에 매달리고, 어떻게든 포인트를 얻기 위해 발버둥 치는 타입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최대한 퀘스트를 피하고 싶어 할 테니까.

아무튼. 내가 이 녀석들을 떠올린 건. 라이칸 스로프만이 가진 능력 때문이었다.

"인간 화(化)."

콰득-

콰드득-

내 말 한마디에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이 줄어들고, 몸을 뒤덮던 털이 사라진다. 10여 초가 지났을 때 내 눈앞에 있는 건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것만큼 좋은 방패가 없지."

보통 라이칸 스로프들이 보름달을 보면 미쳐 날뛴다는 소리가 있는데, 그건 실력에 따라 다르다.

네임드 몬스터급 정도 되면, 인간이 되고 수인이 되는 건 제 마음이다. 아쉬운 게 있다면, 말을 할 줄 아나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대화할 수 없다는 것.

"흐음.."

이 부분만 해결한다면, 최고의 쉴드가 될 것도 같은데 말이지.

아무래도 상점행(行) 일정을 앞당겨야 할 것 같다. 드래곤의 심장도 구해준다는 데, 대화 좀 가능하게 해주는 장비 하나 없을까. 마법이란 게 가득한 세상이다.

"그 전에."

[ 재시도 : 40단계 ]

우선 키메라의 숫자를 더 늘린다.

네임드 몬스터. 그것도 40단계 네임드 몬스터로 제작한 키메라가 최소한 스무 구 이상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 정도는 돼야 일을 맡기지. 한 두마리 정도로는 할 수 있는 게 너무 제한적이니까.

"아니 이참에 풀 클리어를 끝내놓아야겠네."

그래.

기왕 하는 거. 키메라 재료도 모을 겸. 기왕 상점에 갈 거 포인트도 전부 모으고 가야겠다. 시간은 조금 길어지겠지만, 지금의 나라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가자."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