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편
<-- 전쟁 선포 -->
"전쟁선포문?"
뭐지 이건?
상당히 당황스럽다.
[ 전쟁선포문 ]
[ 명예를 위해 살아가던 왕. 레비아탄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는 항상 명예를 꿈꿨고,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고독한 늑대처럼 전장을 찾아다녔다. 나는 그의 의지에 박수를 쳤으나, 사실 위험하기 그지없는 행동에 반대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물론 그는 나의 우려에도 전혀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
[ 그런 그가 끝내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전장을 떠돌아다니다 마주친 `성 칼레나`의 주인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소문의 진위를 파악했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
[ 피를 나눈 형제의 죽음에 눈물이 흘렀지만, 그의 뜻대로 명예로운 최후를 맞이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려 했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최후는 비참했고, 처절했다. ]
[ 내가 우려했던 상황 그대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이에 나는 내려놓았던 검을 다시 쥐어야만 했다. 피를 나눈 형제로서 그의 비참한 역사를 새로 써줘야만 한다. 그것이 형제의 의미이니까. ]
[ 하여. 나 `두 번째 왕 - 베히모스`는 성 칼레나의 주인. 그대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바이다. ]
[ 나는 깨부수는 왕이자 지배하는 왕. 이 글이 도착하는 날로부터 정확히 열흘. 열흘이 되는 날 그대의 `인장을 쟁취하기 위해 찾아가리다. ]
"...?"
기나긴 문장이 이어져 한 장의 선포문을 만든다.
이어서 출력되는 새로운 퀘스트 메시지.
[ 특수한 조건이 성립되었습니다. ]
[ 〈 솔로 디펜스 〉 형식에 부분적인 변화가 생깁니다. ]
〈 솔로 디펜스 35. King`s Army 〉
: `첫 번째 왕`의 죽음에 슬픔을 느낀 `두 번째 왕 - 베히모스`는 그에게 치욕적인 최후를 안겨준 성 칼레나의 주인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두 번째 왕`이 성 칼레나에 직접 찾아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열흘. 앞으로 열흘간. `두 번째 왕`이 이곳에 찾아오기까지. 먼저 그의 군대를 상대해야만 한다. 두 번째 왕의 군대가 다가오고 있다. `인장`을 수호하고 승리하라!
[ 남은 시간 : 3시간 00분 00초 ]
( 0/150 )
[ 앞으로 열흘간, 격일로 왕의 군대가 찾아옵니다. ]
[ 열흘 후 `두 번째 왕 - 베히모스`가 찾아옵니다. ]
[ 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 솔로 디펜스 〉의 단계가 하나씩 올라갑니다. ]
"이렇게도 되는 건가?"
전쟁선포문부터 퀘스트까지.
한 줄로 요약하자면, 마치 파티 디펜스처럼, 본래 15단계, 25단계처럼 보스 몬스터가 출현해야 할 35단계에서 보스 몬스터가 출현하지 않는대신 `시나리오` 형식으로 디펜스를 이어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런 방식은 이제껏 처음이라 꽤나 흥미로웠다.
"신기하긴 해도 별반 다를 건 없네."
다만 이전과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었다.
만약 솔로 디펜스를 한 단계만 클리어하고 지구로 돌아가는 일반적인 플레이어였다면, 상당히 당황하고 난감했을지도 모른다.
강제적으로 디펜스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니까. 그러나 나는 다르나. 어차피 40단계까지는 스트레이트로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그 계획이 확실하게 정립된 것과 같았으니까.
오히려 더 깔끔해진 것이다.
"앞으로 3시간이라."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앞으로 3시간 뒤에 새로운 전투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제 막 전투를 끝낸 터라 자칫하면 피로에 뭉친 상태로 전투를 맞이해야 할 수도 있었다.
"일라이네, 하이네스."
"네!"
"네."
"앞으로 3시간이다. 충분히 쉬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준비해."
"알겠습니다!"
전쟁선포란 말에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두 사람은 내 말에 급히 자리를 잡고 명상에 들어갔다.
3시간, 넉넉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기도 했다. 소모한 마력을 채우고, 다음 전투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면 금세 지나가 버릴 시간이었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속도를 내서 움직여야 했다.
"최대한 숨겨."
[ 알겠습니다. ]
나는 명상에 들어가기 전.
스켈레톤 나이트 마스터를 불러 전장 설계를 명령했다. 지금까지 죽였던 괴물들의 시체를 전장 여기저기에 숨겨놓는 작업이 꽤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가장 먼저 해둬야 한다.
네크로맨서에게 가장 필요한 건 시체니까.
"앞으로 30분 뒤. 보고를 시작한다."
[ 준비하겠습니다. ]
이어 보충이 필요한 부대의 숫자를 파악하라 지시하고, 나도 명상을 시작했다.
우리 셋 중에 명상이 가장 시급한 건 나였다.
*
[ 남은 시간 : 27분 21초 ]
"다했나."
퀘스트 발생 후 대략 2시간 반이 흘렀다.
남은 시간을 보니 이제 30분 언저리.
"어떻게 구성되려나."
준비는 모두 끝났다.
궁금한 건 적의 부대 편성 형태.
왕의 군대라고 했으니, 꽤나 정교한 구성일터. 케디악이나 알파차의 경우를 떠올리면 되려나. 아니면 그때보다 더 세밀한 상태이려나.
[ 정찰을 시작하겠습니다. ]
예정대로 스펙터를 비롯한 정찰 부대가 성 전방을 향해 나아간다.
30분은 빠르게 흘러갔다. 앞선 2시간가량의 시간이 흘렀던 것보다도 더 빠르게 떨어져 가는 모래시계 속 모래들. 이윽고 10분대 안쪽으로 떨어지자 정찰을 나갔던 몇몇 위스퍼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 적군을 발견했습니다. ]
[ 위치는 성에서부터 대략 1km 부근 ]
[ 갑옷을 입은 괴물 다수와 괴수입니다. ]
속도 차이가 있다 보니 먼저 날아온 위스퍼들이 상황을 보고하고, 뒤이어 날아온 망령들이 내게 머리를 숙인다.
손을 대고 기억을 읽어보니 꽤나 특이한 조합의 군대가 보였다.
"라이칸 스로프?"
망령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것은 반인반수(伴人半數)로 이루어진 군대였다.
늑대와 인간의 혼종, 곰과 인간의 혼종 등 익히 잘 알고 있는 `라이칸 스로프`였다. 종류가 그리 다양하진 않았지만 제법 강맹해보였다. 특히 중앙에 서 있는 호랑이 인간의 기세가 대단하다.
3m에 가까운 신체는 물론. 손에 쥔 거대한 태도(太刀)에서 거친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듀라한 나이트에게 일러. 전투 대기다."
[ 알겠습니다. ]
상황을 보니 지금의 준비를 그대로 이어가도 될 것 같다.
해서 듀라한 나이트에게 일러 앞선 전투처럼 시선 끌기를 위해 일반 개체들을 도열시켰다.
[ 남은 시간 : 5분 ]
어느덧 5분대 아래로 내려간 시간.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는 적군. 망령의 기억으로 봤을 때보다 더욱 거친 느낌이다. 놈들 역시 우리를 발견했는지, 이동을 잠시 멈추더니 아까 보았던 그 호랑이 인간이 선두로 걸어 나온다.
그리곤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거친 기합과 함께 소리를 지른다.
"크하아아앙!! 나는 베히모스군 1차 원정군 사령관 프리온이다!"
무엇을 하려는 걸까.
퀘스트 형식만 특이한 줄 알았더니, 저 녀석도 상당히 특이한 놈이다.
"나의 왕께서 전쟁을 선포했다. 이에 마지막으로 항복을 권유하니. 살고자 한다면 성문을 열고 투항하라!"
"...?"
미친놈인가.
괴물치고 제정신인 놈 못 봤지만. 이놈은 그 누구보다 정신 나간 놈이다. 명예가 어쩌고 떠들던 레비아탄 보다도 더 덜떨어진 놈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항복 권유라니.
내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녀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마지막 항복 권유를 거절했으니, 나는 왕의 명령대로 너의 목을 베고 성을 차지하겠다!"
[ 남은 시간 : 0분 0초 ]
녀석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남은 시간도 끝난다.
"공격하라!!"
화르르륵-
불꽃이 넘실거리는 태도를 강하게 내리찍으며 소리치는 녀석.
그것이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아오오오오!!"
"크와아아앙!!"
"크허허엉!"
.
.
.
가장 먼저 달려든 건 짐승 수십 마리였다.
대부분 거대한 곰 혹은 호랑이나 늑대였는데.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는지 대놓고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함정 혹은 적의 전술을 일그러뜨리는 데는 최적화된 공격.
저렇게 밀고 들어오면 마주하는 상대로서는 대비책을 찾아야 하는데, 만약 정말 함정 같은 걸 준비했었다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본대와 분대가 떨어져서 다가오니 함정의 효과가 제대로 먹힐 리가 없다.
그렇다고 함정을 발동시키지 않으면 성문이 그대로 날아갈 수 있으므로 함정을 발동하지 않는 것도 힘들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이런 상황까지도 대비해 놓았겠지만.
"막는다."
나는 베놈 버스트를 소환하는 전술을 사용하지 않고 기다렸다.
저 괴수들에게 사용했다가는 본대에 제대로 타격을 주지 못하니, 한 번 참는다.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괴수들은 듀라한 나이트가 막아줄 것이다. 아니 막아낸다.
결코, 괴수따위에 뚫릴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
"크아아아아아아아!!!"
[ 사령관 프리온이 `전쟁 시작`을 발동합니다. ]
[ 적대적 생명체의 방여력이 일시적으로 소폭 감소합니다. ]
방패가 뚫리지 않을 것이라 단언했더니, 그것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발동되는 기술.
녀석들도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건 아니란 뜻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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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